IMF시대 젊은이들 「꺼진 사랑 다시찾기」

  • 입력 1998년 8월 17일 20시 09분


“그간 잘 지냈어?” “예, 그냥 뭐….”

“별일 없고?” “….”

한동안 서먹한 대화가 오갔다. K호텔에 근무하는 정모씨(27·여)는 지난달 초 직장으로 걸려온 뜻밖의 전화에 바짝 긴장했다. 수화기 저편에서 들려온 목소리의 주인공은 지난해 봄부터 6개월간 사귀었던 P증권사의 이모씨(28).

가을에 접어들 무렵 사소한 이유로 말다툼이 잦다가 ‘자꾸 싸우느니 차라리 그만 보자’는 이씨의 전화를 마지막으로 둘의 관계는 끝났었다. 결국 둘의 만남은 다시 시작됐고 지금은 조심스럽게 결혼까지 거론되는 단계. 정씨는 아직도 궁금하다. “왜 그가 다시 연락한 걸까. ‘잊을 수 없었다’는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일까….”

경제적 시간적 심리적 ‘3중고’를 겪고 있는 20,30대의 미혼남녀 사이에 ‘지난 애정관계 돌아보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IMF는 ‘꺼진’애정에 다시 불을 붙여주는 마력을 가진 걸까? 아니면 인간관계에도 ‘재활용’ 정신이 ‘강요’되는 것일까.

심리검사연구소인 사이콜로지코리아의 최창호박사(사회심리학자). “사업을 시작할 때 드는 초기투자비용이 유지비용보다 큰 것처럼 이성관계에서도 ‘초기투자’의 부담은 크다. ‘탐색전 시기’에 경제적 감정적 집중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IMF시대가 젊은 남녀의 물질적 정신적 여력을 소진시키자 초기투자가 필요없고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과거의 연인이나 주변사람을 다시한번 돌아보게 되는 것 같다.”

남자에게 더욱 절실할 수 있다. 젊은이의 1회 평균 데이트비용은 남자가 5만4천원으로 여자(1만8천9백원)에 비해 3배 가까이 높고 그 만큼 ‘초기투자’의 부담도 크기 때문(㈜선우이벤트 97년12월 조사).

IMF시대에는 이성문제에서도 비효율적인 ‘중복투자’는 퇴출대상이 된다. C광고기획사의 기획담당 박대리(31). 3,4명의 ‘복수 파트너’를 두고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비정기적 데이트를 즐겨왔다. 최근 그는 ‘팬클럽’의 규모축소를 심각히 고려 중. “지난해까지 여러명의 여성을 만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요즘 보너스는 줄고 야근이 많아져 ‘감당’하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조만간 한사람만 남기고 ‘정리’할 생각이다.”

심리학자들은 ‘교환이론’을 들어 이같은 현상을 설명한다. 이성교제를 포함한 인간관계에서는 주고받는 ‘물질적 심리적 총량’의 형평이 맞을 때 지속적이고 안정된 관계가 유지된다는 이론. 경제적 정서적으로 풍요로운 때는 반대급부와 관계없이 ‘주는 것’(과잉투자)이 가능하지만 ‘전시상황’에서는 철저한 ‘기브&테이크’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

LG커뮤니카토피아연구소의 김재갑선임연구원(심리학). “‘교환이론의 관점에서 요즘 인간관계에도 ‘거품빼기’가 진행 중이다. 불황기에는 또 기존 네트워크를 보완하고 유지하는데 급급해 새롭게 관계를 맺는 데 부담을 느끼게 된다.”

〈박중현기자〉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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