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리 미발표 유작 詩30편 「문학과 사상」에 공개

  • 입력 1998년 6월 25일 07시 45분


95년 작고한 소설가 김동리(金東里)의 미발표 유작 시 30편이 월간 ‘문학사상’7월호에 공개된다.

‘귀뚜라미’‘청산(靑山)’ 등 그가 남긴 미발표 시들은 부인 서영은(徐永恩·55·소설가)씨가 보관해 온 것으로 두 사람이 결혼한 87년부터 90년 고인이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직전까지 썼던 것.

이번에 공개된 작품에서는 ‘우주 참여’의 시정신과 인생의 황혼을 맞는 노작가의 심회가 두드러진다.

‘하늘에 하나 가득/별 박힌 가을 밤//땅위는 온통 귀뚜라미/소리로 차 있다//하늘과 땅은/어둠을 사이 한 가까운 이웃//귀뚜라미 소리로 별들은/뜬눈으로 밤을 새운다’ 작품 ‘귀뚜라미’에서는 땅위의 작은 벌레 울음마저도 우주와의 화음으로 확장하는 세계관을 보여준다.

‘아, 나 없었으면,/나 죽었으면/하루에도 몇번씩/이렇게 맘속으로 외지만/내 오늘도 아직(여기)/살아있네/뜰앞에 백일홍이/피었다,/하늘에 흰구름이/떠간다./그런 거 바라보노라면/어느덧 또 하루가/지나가는 것을’ ‘무제(無題)’라는 시에서는 노년의 무상함과 영원회귀에의 바램이 겹쳐 드러난다.

권영민(權寧珉)문학사상 주간은 “김동리의 문학에는 본원적으로 시성(詩性)이 깊이 자리잡고 있다”며 “그가 ‘등신불’ ‘무녀도’ 등에서 우주 속에 놓인 존재로서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의 모습을 이해하기 위해 끈질기게 노력한 것도 이 시성의 발현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소설 영역에서의 비중이 너무 커 김동리의 시작(詩作)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시에 대한 고인의 관심은 평생을 일관했다. 데뷔 초기인 37년 서정주 김달진과 더불어 ‘시인부락’ 동인에 참여, ‘바위’ 등 두 권의 시집을 펴냈던 그는 “소설이 사회상을 그리는 것이라면 시는 본질적으로 ‘우주에 참여한다.’ 둘 중 어느 것이 더 크고 중요하다고 따질 수 없다”고 말했었다.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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