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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8년 5월 31일 20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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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억∼수백억원대의 토지와 건물 등을 가진 ‘재력가’들이 최근 IMF 여파로 부동산 경기가 꽁꽁 얼어붙고 자산이 묶이는 바람에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고 있다. 반면 금리는 급등, ‘1백억 부동산 거지와 1억 현금 재벌’이란 말도 나오고 있다.
특히 최근 전세가격 폭락과 함께 입주자들이 서로 보증금 반환을 요구하면서 수십억원대 빌딩을 갖고 있어도 내줄 돈이 없어 세입자를 피해 도망다니는 ‘부동산 부자’도 허다하다.
경기 안산시에서 시가 1백60억원에 달하는 7층 건물을 소유한 ‘지역 유지’ P씨(57). 건축업을 하던 그는 지난해 초 가진 돈을 모두 끌어모아 이 건물을 짓고 임대수입으로 안정된 노후생활을 꿈꾸었다. 사업을 하는 아들의 돈도 곧 갚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지난해말 전세가격 폭락과 함께 세입자 중 절반 가량이 “나가겠다”고 통보해왔다. 당장 보증금 20억원을 마련해야 할 상황에 처한 그는 건물을 내놓았지만 도무지 거래 움직임이 없어 애만 태우고 있다.
40억원 가량의 은행 대출금 탓에 매달 물어야 할 7천만원 남짓한 이자도 현금자산이 없다보니 고스란히 ‘생돈’을 물어야 할 형편이다.
서울 강남의 테헤란로에도 비슷한 케이스는 얼마든지 있다. 테헤란로 대로변에 연면적이 2천6백평에 달하는 15층 빌딩을 소유한 김모씨(53).
최근 4개 층을 쓰고 있는 은행이 당장 나가겠다고 알려와 보증금 50억원을 내놓아야 할 형편에 처해 시가 2백70억원에 상당하던 이 건물을 1백30억원에 급매물로 내놓았다.
보증금과 은행 저당금 등을 합쳐 1백20억원 남짓한 금액을 물고 나면 수중에 남는 돈은 얼마 되지 않지만 당장 사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없다.
부동산 외에 현금자산이 별로 없는 P씨(55·자영업)는 쪼들리다 못해 최근 미국으로 유학갔던 아들과 딸을 모두 학업을 중단시키고 불러들였다.
그가 가진 경기 용인 인근지역 10억원 상당의 토지와 수지지구의 57, 47평형 아파트 2채는 아무런 보탬이 되지 못했다.
중소 제조업체를 운영하다 부도위기를 맞고 있는 김모씨(55)는 분당에 사둔 60평형대의 아파트가 안팔리면서 세입자로부터 전세금 독촉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부동산컨설팅 정광영(鄭珖泳)대표는 “기업체에서 내놓은 부동산 물건이 우리 사무실에만 4조원 가량 접수될 만큼 매물이 쏟아져 나왔다”면서 “부동산 가격 폭락은 물론 매매가 끊겨 부동산 소유자들이 극심한 ‘돈 가뭄’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했다.
〈김경달·이헌진기자〉d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