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도 「구조조정」…휴대전화 해약-용돈 삭감 등

  • 입력 1998년 5월 24일 19시 56분


“사는 게 어렵다고 한숨만 쉴 수 있나요. 주부가 나서서 가계 구조조정이라도 해야죠.”

아직도 대중가요를 좋아하고 친구들과 만나 놀기를 즐긴다는 주부 장현지씨(34·가명·서울 송파구 성내동).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 월급이 회사 구조조정 여파로 30% 넘게 줄었다. 장씨는 가계부를 쓸 때마다 탈출구가 없다는 기분을 자주 느끼게 됐다. 올해 초 세운 화려한 재테크 계획도 하나둘씩 포기하고 끝내 ‘적자’ 신세를 맞았다.

가정을 부도낼 수는 없는 법. 장씨는 이달 초 정부와 기업을 본떠 ‘가계 구조조정’을 단행한다고 남편과 아이들에게 ‘폭탄 선언’을 했다. 우선 가계 고정비용을 철저히 분석했다. 전화료 수도료 전기료 휴대전화료 PC통신이용료 교육비 남편 교통비와 용돈…. 의외로 많은 고정비용에 스스로 크게 놀랐다.

“휴대전화와 PC통신은 끊어버렸어요. 남편과 아이들의 불만이 컸지만 안 따르면 아내와 엄마직을 사퇴하겠다고 강경하게 나갔어요.”

더 큰 고민은 저축문제였다. “내 집 장만과 목돈마련을 위해 이것저것 붓고 있는 적금들이 마음에 걸렸어요. 당장 다 해약해버리고 싶었지만 미래를 위해 차마 그럴 순 없더군요.”

월부금 70만원을 30만원으로 줄였다. 10개월이 채 안된 30만원짜리 적금 하나를 해약했다. 이자손실이 적은 것이었기 때문.

모질게 마음먹고 세들어 사는 집의 주인을 찾아갔다. 전세계약은 7월에 끝나지만 재계약문제를 미리 담판짓기 위한 것. 집주인도 빠듯한 자금 사정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결국 집주인이 전세금 7천만원 중 1천만원을 10월말까지 돌려주기로 약속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집걱정은 일단 끝. 2년간 더 전세살이를 해야 하지만 1천만원의 여유자금을 확보할 수 있어 재계약에 만족하기로 했다.

아내의 확 변한 모습에 가장 놀란 사람은 남편. “내 용돈까지 줄이고 너무 하는 것 아니냐”고 조심스레 ‘저항’하지만 장씨는 “그래도 우리집에 ‘감원’은 없지 않느냐”며 맞받아친다. 장씨는 “하지만 가계구조조정 차원에서 현 가족수 4명을 앞으로도 유지하겠다”고 몰아붙였다. 남자아이 둘을 키우다보니 은근히 딸 하나 더 갖고싶어 하는 남편의 욕심은 여지없이 깨졌다.

장씨의 마지막 구조조정은 남편을 위한 연구개발(R&D) 투자. 끝을 알 수 없는 정리해고 회오리바람에 앞날을 낙관할 순 없는 일. 남편을 설득해 영어회화와 컴퓨터학원에 다니도록 배려했다. 젊은 만큼 돈은 좀 들더라도 실력을 더 쌓아야 한다고 판단한 것.

컴퓨터활용지 월간PC라인의 편집장인 이선희씨(33). 맞벌이부부인 이씨는 올들어 부부의 연수입이 2천만원 이상 줄었다. 이에 따라 이씨는 ‘최소 생계’라는 살림 전략을 펼쳤다.

두 아이를 키우기 위해 유모를 고용한 만큼 저축의 경우 두 아이가 취학 후에 들 교육비 마련을 위해 월 10만원짜리 최소 적금을 붓기로 한 것. 이외에 부부를 위한 보장성생명보험 하나만 가입하고 있다. 나머지 돈은 두 사람의 최저용돈과 살림비, 유모 월급으로 딱 떨어진다.

이씨는 “비록 저축은 못하지만 가계 부도(?) 걱정은 씻었다. 빚도 따로 없기 때문에 IMF시대를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김종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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