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정부조직개편안이 확정됨에 따라 새 방송 정책의 윤곽이 드러났다. 핵심은 방송통신위원회의 신설과 공보처 폐지. 그러나 방송통신위원회의 위상이나 권한 등이 모호해 새 정책이 온전한 모습을 갖추기까지 진통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방송통신위원회(안)는 기존 방송위원회와 종합유선방송위원회, 정통부의 통신위원회와 정보통신윤리위원회 등을 합친 거대 조직으로 21세기 방송과 통신의 융합에 대비한 기구다. 여기에 방송 인허가권을 가질 경우 한국방송사상 유례없는 강력한 기구가 된다.
그러나 최재욱 사회문화분과위 위원장은 “위원회가 인허가권을 가지면 행정기구가 되는데 이 경우 현행 법체계와 어긋나 신중한 협의를 거쳐야 한다”며 아직은 유보적인태도다. 또 방송통신위원회가 출범할때까지 방송행정을 담당하게 될 정통부가 인허가권을 선뜻 내줄지도 미지수. 정통부 내부에서는 벌써부터 인허가권 대신 추천권을 내줄 가능성도 내비치고 있다.
인허가권을 어디에서 가지느냐의 문제는 결국 방송관할권을 어디에서 가지느냐와 같은 문제. 인허가권을 가지면 전파법에 따라 방송시설허가를 경신할 때 행사하는 평가 권한을 이용, 직간접적으로 방송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방송통신위원회의 권한 강화를 지지하는 측에서는 그동안 방송사가 정부의 입김에 영향을 받은 사례가 적지 않았던 만큼 방송통신위원회가 제대로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권한을 가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방송통신위원 선임이나 구성 방식도 진통이 예상되나 선임 과정에서의 투명성이 보장돼야 한다는데는 이론이 없다.
지금까지 알려진 방송통신위원회의 골격은 미국의 연방통신위원회(FCC)와 유사하다. 1934년 설치된 FCC는 독립행정위원회로 인허가권과 프로그램 사후 감독권 등을 갖는 강력한 규제기구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미국식 연방통신위원회가 한국의 방송문화에는 맞지 않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상업 방송이 지배하고 있는 미국의 제도가 공영방송위주인 한국에서는 마찰을 빚을 소지가 많다는 것. 따라서 공영제의 성격이 강한 유럽 각국의 방송 규제 기구와 같은 기구의 도입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방송계에서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위상과 권한등을 둘러싼 이같은 논란으로 SBS 등 상업방송은 FCC식 기구의 통제하에 두고 특별법으로 설치된 공영방송인 KBS와 MBC는 별도 관리하는 기형적인 제도가 나오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하고 있다. 또 정통부가 방송행정을 전담하면 방송을 문화가 아니라 단순히 기술적 시각에서 재단하지 않겠느냐는 지적도 많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위상과 권한에 대한 논의는 2월 임시국회에서 정부조직법이 통과된 뒤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그 결과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21세기 미디어 정책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작업인 만큼 기구 이름이나 자리만 바꾸는 법안이 돼서는 안된다는 지적들이다.
〈허 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