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는 바뀌고 세상은 변한다. 낯선 용어가 생기고 어떤 말은 사라져버린다. 오늘의 키워드를 통해 세기말문명의 특징과 문화적 흐름을 읽어본다.
세기말은 한 세기를 보내는 것이며 한편으로는 새 시대의 개막이다. 이 키워드들이야말로 오늘을 알고 내일을 내다보는 소중한 열쇠가 아닐까.
▼ 포스트주의(Postism) ▼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구조주의 등 근대를 대표하는 이론 앞에 「포스트(후기)」가 덧붙여진 흐름. 학술적으로는 주로 서구 지성을 이끌어온 데카르트 이후의 이성 중시 풍조와 역사발전 등 구조 중심 논의를 비판한다. 20세기 말은 「이성의 해체」 「주체의 죽음」 등이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문학에 나타난 탈식민주의(post―colonialism)는 식민 지배의 본질을 「지배와 억압」 「권력과 지식」 「훈련과 처벌」로 이해하고 문화현상과 현실을 바라보려는 것이다. 회화에서는 순수주의를 강조해온 모더니즘의 특징을 거부하였다. 새로운 것은 더 이상 없다는 인식 하에 모방과 모사, 그리고 혼성기법을 통한 창조를 겨냥한다.
▼ 카오스(Chaos) ▼
20세기 현대과학의 바탕을 제공해온 결정론을 비판하는데 이용된 이론중 하나. 60년대 미국 기상학자 E로렌츠가 현대과학에서 거의 무시했던 작은 힘도 지구를 움직일 수 있다는 「나비 효과론」을 펼치면서 힘을 얻었다. 이후 뉴턴 역학 등장 이후 정형화된 과학계의 결정론이 근본에서 흔들리기 시작했고 예견 불가능한 많은 사건들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어쩌면 음악에 있어서 창작과 연주의 단일성을 파괴하기 위해 존 케이지가 도입한 불확정성(uncertainty)이란 개념과 맞아 떨어지는 대목도 엿보인다. 이는 작곡자가 작품의 진행순서나 편성 등을 확정하지 않고 연주자의 뜻에 맡기거나 난수표 혹은 주사위 등으로 결정케 하는 것이다.
▼ 디지털(Digital) ▼
모든 정보를 0과 1 두 숫자로 처리하는 방식으로 컴퓨터회로의 근본 구성 원리. 이로부터 기억용량의 무제한, 커뮤니케이션의 광속화(光速化)가 가능해졌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으로 컴퓨터는 멀티미디어로 발전하였으며 여기에 등장한 쌍방향성(interactivity)이란 개념은 문학과 미술 음악 등 전반에 응용된다. 90년 미국의 마이클 조이스가 쓴 「오후―어느 이야기」에서 비롯된 하이퍼 픽션(hyper fiction)은 하이퍼 링크와 쌍방향성이란 컴퓨터의 특성을 결합한 것으로 독자가 텍스트를 조합해 제2의 창작이 가능하도록 했다. 미술에 있어서는 백남준의 비디오아트가 등장하였고 음악에 있어서는 수용자와 창작자가 구분되지 않는 집체창작의 형태로 발전하기도 한다.
▼ 미니멀리즘(Minimalism·극소주의) ▼
현대미술에서 단순성을 강조하며 일정한 패턴을 반복하는 기법이 음악으로 확장된 개념. 단순한 음형식으로 만들어진 패턴을 반복 연주하며 변형시키는 작곡 기법을 통칭한다.
▼ 생태주의(Ecology) ▼
산업화에 따른 환경오염을 과학기술의 발전과 이용을 통해 감소시킬 수 있다고 믿는 것이 환경주의라면 생태주의는 오염의 연원이요 주체인 인간에 눈을 돌리고 있다. 생태학적 상상력을 통한 소생 문학의 대표작으로는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미국의 송어낚시」를 꼽을 수 있다. 미술에 있어서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오브제나 작품을 만들지 않고 바위 토지 잔디 눈과 같은 물질로 작업하는 「대지의 미술」개념도 이와 상통한다. 크리스토, 마이클 하이저, 안 프와리에 등의 작가가 이 분야의 유명한 작가들이다.
▼ 뉴에이지(New Age) ▼
20세기말 태양의 춘분점이 2천년간 지속돼온 물고기좌에서 물병좌로 옮겨감에 따라 기독교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는 주장을 기초로 한 세기말적 문화운동. 환생론 등 동양의 신비주의적 요소를 받아들여 초창기에는 작은 교파를 중심으로 제기되어오다 최근에는 음악 문학 명상 등 문화전반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 사이버펑크(Cyberpunk) ▼
사이버와 펑크의 합성어로 20세기말의 대표적 반문화 현상. 컴퓨터로 대표되는 정보기술에 지배되는 사회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운동, 혹은 그같은 문제를 다룬 문학 영화 등의 문화 장르를 총칭한다. 그러나 세기말적 허무주의에 빠진 문화란 비판도 있다.
〈조헌주·유윤종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