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역사상 처음으로 귀고리를 달고 문학상 시상대에 오른 남자」.
데뷔 3년째인 소설가 김영하(31)에게는 그런 「스캔들」이 있다. 지난해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받을 때의 일이다. 문단사람들은 두고두고 수군거렸지만 그는 태연자약했다. 그의 소설쓰기도 그런 「일탈」의 시도로 가득차 있다.
『편안하고 아름답고 예의바른 소설을 쓸 생각은 없습니다. 오히려 끊임없이 반(反)사회적인 문제를 일으켜서라도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싶습니다. 「국민작가」가 탄생하는 획일적 문화, 그런 문화파시즘이 싫어요』
그의 첫 창작집 「호출」(문학동네)이 이번 주말 출간된다. 데뷔작 「거울에 대한 명상」 등 10개의 중단편이 독자들을 불편한 대화 속으로 끌어들인다. 연세대와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던 그. 그런데 왜 대기업도 증권회사도 아닌 소설쓰기를 택했을까.
『다른 사람과의 협업없이 나 혼자 세계를 만들어 내 방식대로 세상을 향해 얘기한다는 것이 소설쓰기의 매력입니다. 등장인물들이 아무리 폐쇄적으로 그려지더라도 제 소설은 기본적으로 소통을 갈구하고 있어요』
그러나 그 소통방식은 뒤틀려 있다.
표제작 「호출」. 한 남자가 지하철역에서 만난 매혹적인 여자에게 자신의 호출기를 준다. 여자가 그것을 버리지 못하고 자신의 신호만을 기다릴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그러나 호출기를 건넨 순간부터 남자는 호출을 보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여자는 호출이 가져다줄 새로운 운명에 매달린다. 마지막 순간 호출기는 남자의 주머니속에서 울린다. 모든 것은 상상이었던 것. 남자는 독백한다. 『삐삐를 통해 호출하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결국 나 자신일 뿐이다』
똑같은 브랜드의 옷을 입고 자가용을 몰고 맥주를 마셔도 결코 서로의 존재에 가 닿을 수 없을 것이라는 단절감. 그 원자화된 개인의 모습을 그는 냉정한 시선, 메마른 목소리로 그려낸다.
평론가들이 데뷔때부터 그를 주목한 이유도 그에게서 문명비평의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탁 트인 들판을 보면 가슴이 답답해져도 글자가 빽빽히 들어찬 컴퓨터모니터를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그. 자연보다 인공현실에 더 익숙한 김영하는 로댕의 조각과 컴퓨터게임 사진 컬트영화 토막살인 인질극을 종횡무진 오가며 90년대 사람들의 의식을 가두는 「세련된 일상」의 포장을 벗겨낸다.
그에게는 교과서로 삼는 문학적 스승이 없다. 「부모없이 태어난」 90년대 작가. 밤새도록 단 한줄을 쓰기 위해 끙끙대던 문학청년시절의 기억도 없다. 그의 원고지는 인터넷(http:www.hitel.net/∼kasandra)이다. 글쓰기도 PC통신에 정치무협소설을 올리는 것으로 시작했다.
대학시절엔 쇠파이프를 들고 시위대 앞줄에 섰다. PC통신은 동구권의 몰락을 보며 스스로를 고립시켰던 그에게 세상과 연결된 마지막 「연줄」이었다. 지금도 그는 미완성의 글을 PC통신에 올린 뒤 온갖 훈수를 듣고 내용을 수정한다.
자신이 건너온 80년대와 발딛고 선 90년대에 대해 「왜 그런 것들은 함께 있을까. 면회실과 사형장, 쾌락과 죽음, 진보와 퇴행, 광주와 비엔날레」라고 자조하는 그. 가벼운 이야기꾼일지, 그의 바람대로 예언자처럼 시대를 꿰뚫어보는 작가가 될지 아직은 의문부호로 남겨둘 일이다.
〈정은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