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람선대학 세계여행⑦]바다올림픽

  • 입력 1997년 8월 26일 08시 32분


오늘은 「세계의 이해」라는 교양과목의 중간고사가 있는 날. 배에 타고 있는 사람은 모두 한사람도 빠짐없이 의무적으로 들어야 하는 강의다. 매일 아침 9시면 어김없이 시작되는 이 과목은 우리가 여행하는 나라들에 대해 지리 역사 문화 경제 풍습 등 모든 것을 배우는 시간이다. 단연 인기 캡. 맡은 일 때문에 수업에 참가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유선TV로 중계까지 할 정도다. 그만큼 교수들도 열성적이다. 강의 도중에 해당국가의 대사관에 직접 전화를 걸어 궁금한 것을 묻기도 한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이 수업의 하이라이트는 자유롭게 질문하고 의견을 발표하는 토의시간. 토론자 중에는 하도 논리정연하게 말을 잘해 우리 국회의 「청문회 스타」같은 인기를 누리는 학생도 있었다. 나도 여러나라의 문화를 비교하는 강의를 듣다가 「개를 먹는 미개한 나라도 있다」는 어느 교수님의 말을 듣고 흥분해서 마이크를 잡은 적이 있다. 『나도 개를 키우고 사랑하지만 그것은 개를 먹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일이다. 그것은 오랜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 문화의 한 자연스런 모습일 뿐이다. 우리나라의 이웃인 일본만 해도 시아버지가 목욕할 때 며느리가 옷을 벗고 시아버지의 등을 밀어주는 풍습이 있다는데 그렇다고 해서 일본을 미개한 나라라고 할 수 있느냐? 어쨌든 여러분도 개고기를 한번 먹어봐라. 그러면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이 용감한(?) 발언에 『와아』하는 소리와 함께 박수가 터졌다. 예상 외로 모두들 마음을 열고 나의 이 이야기를 받아줬다. 하지만 난 이 사건 이후로 『헤이, 개먹는 친구(Hey, dog eater)』라고 불리게 됐다. 「세계의이해」시험이끝나고 나니 유람선대학은 다시 예전처럼 왁자지껄한 분위기로 돌아왔다. 더구나 다음날은 유람선대학의 항해기간 중에 가장 큰 행사라고 할 수 있는 「바다 올림픽(Sea Olympic)」이 있는 날. 이 날을 위해 배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2주일 전부터 준비모임을 갖고 종목별로 팀을 만들어 연습해왔다. 내가 속한 「붉은 바다(Red Sea)」팀도 개회식에서 입을 옷과 팀을 상징하는 깃발을 만들었다. 바다올림픽은 화려한 개막식에 이어 약식축구, 농구, 젓가락으로 파트너에게 초콜릿 먹여주기, 탁구, 수중발레, 옷 입고 하는 수영릴레이 등으로 순위를 가린다. 입장식은 한마디로 「유치찬란」 그 자체였다. 머리는 장발인데 옷차림만 스님들처럼 분장한 팀, 인디언 옷차림을 한 팀 등 한마디로 온갖 상상력을 동원한 첨단 패션을 저마다 뽐냈다. 개회선언에 이어 선장과 교수 학생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두 학장을 배안의 수영장에 풍덩 빠뜨렸다. 이를 신호로 너도나도 주위 친구들을 밀어 수영장에 빠뜨리거나 스스로 뛰어들며 환호성을 질렀다. 비로소 바다올림픽이 시작된 것이다. 모두들 원없이 하루를 뛰고 웃고 즐겼다. 그중에서도 교수와 학생이 함께 하는 수중발레 경기엔 모두가 배꼽을 잡고 웃었다. 율동을 맞추려고 물속에서 아옹다옹하는 모습이 정말 가관이었다. 1등을 한 팀에는 「황금색 밀러맥주 캔 껍데기로 만든」 금메달을, 2등에는 「하얀색 버드와이저 맥주캔 껍데기로 만든」 은메달을, 3등에는 「초록색의 캐나디안 진저에일 캔 껍데기로 만든」 동메달이 주어졌다. 곧이어 별빛을 조명삼아 댄스파티가 열렸다. 음악은 그 방면에 소질이 있는 친구들이 기타와 드럼 색소폰을 연주하며 분위기를 맞췄다. 그러나 난 춤을 추고 있으면서도 불안했다. 내겐 아직 내일 종교학시험이 남아 있었던 것. 옆에서 학생들과 흥겹게 몸을 흔들고 있는 종교학교수님이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에라 모르겠다. 어떻게 되겠지』 난 그 다음날 순전히 「똥배짱」으로 종교학 시험지를 받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노교수님은 책을 봐도 되고 옆사람과 의논해도 된다고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그 말에 책을 뒤적거리며 답을 찾는데 그것도 영 쉽지 않다. 그때 오늘 아침 밥을 같이 먹었던 앤드루가 이런 나를 보고 답을 콕콕 찔러 가르쳐준다. 『오우 하나님, 고맙습니다』 이렇게 해서 난 이번 학기들어 처음으로 1백점을 받았다. 『교수님 만세. 친구들 만세. 유람선대학 만세』 <문형진씨 참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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