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독립운동 선열5위,5일 국내 봉환

  • 입력 1997년 8월 5일 17시 03분


일제에 맞서 이국 땅에서 조국 광복을 위해 몸을 바친 미주지역 독립운동가 부부 鄭良弼-李華淑선생과 洪焉선생, 중국지역 독립운동가 車轅夢선생,南仁相선생 등 5위의 유해가 국내로 봉환됐다. 국가보훈처는 5일 오후 4시30분 김포공항 2청사에서 朴相範국가보훈처장, 權快福 광복회장과 유족 친지 등 1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순국선열 유해 5위에 대한 봉영식을 갖고 서울 국립묘지 영현봉안관에 임시로 안치했다. 이들의 유해는 6일 오전 9시 서울 국립묘지를 출발, 오후 2시 대전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된다. 국가보훈처는 지금까지 해외에 안장돼 있는 독립유공자 유해 1백70위 가운데 소재가 확인된 1백위중 56위를 국내로 봉환했으며, 나머지 44위에 대해 국내 봉환을 추진하는 한편 소재가 확인되지 않은 70위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실태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에 봉환된 선열 5위는 봉환에 앞서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독립장 및 애족장이 추서됐다. ▲洪焉선생(1880.2∼1951.3) 1905년 하와이로 건너가 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 기관지인 新韓民報 주필등을 맡으면서 1908년까지 4년동안 신문을 제작, 발행해 국권회복과 한인동포의 애국사상고취, 문맹퇴치 등에 힘썼다. 1913년 5월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宋鍾翊등 8명과 함께 흥사단을 창립, 발기위원 겸 경기도 위원으로 선임돼 인재양성에 적극 나섰다.빼앗긴 조국의 울분을 표현한 시 1백여편을 지었다. ▲鄭良弼선생(1893.12∼1975) 1905년 柳一韓, 朴容萬 선생 등과 함께 도미, 1919년 4월 서울에서 13도 대표들이 비밀회의를 갖고 국민대표 25명과 함께 한성임시정부 객원을 발표할 때 의정관으로 선임됐다.이후 북미 대한인국민회 디트로이트 지방총회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수차례에 걸쳐 군자금을 제공하는 등 일생을 조국의 국권회복에 바쳤다. ▲李華淑선생(1892∼1979) 鄭良弼 선생과 부부 사이로 결혼전인 1919년 중국 상해에서 임시정부 후원단체인 대한적십자회 상의원으로 선출됐으며 임시정부 국무원 참사에 임명됐다. 같은해 10월 애국부인회를 조직, 회장으로 재직하면서 임시정부 재정지원 활동을 전개했다. 1920년 임시정부의 외곽후원단체인 민단의 상의원으로 활동하다 미국으로 건너가 鄭良弼선생과 결혼, 이후 미국에서 독립운동 지원활동을 전개했다. ▲車轅夢선생(1900.2∼1938.4) 평북 선천에서 3.1 독립만세 시위에 적극 가담한뒤 일제의 감시를 피해중국으로 망명했다. 한중연합작전을 위해 중국 군벌인 唐聚伍부대와 긴밀한 연락책을 수행했으며,興京縣 일대에서 항일전투에 참전하는 등 무장투쟁을 전개했다. ▲南仁相선생(1868.12∼1951.5) 1905년 을사조약후 망국의 한을 품고 만주로 망명, 학교를 세워 항일교육과 독립운동가 양성에 헌신했다. 3.1운동이 일어나자 만주지역 조선민족대표 17명중 1명으로 「조선독립선언선고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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