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6월. 학생사회의 「신분제도(?)」는 어떨까.
크게 「범생(모범생)」과 「비(非)범생」이 있다. 범생은 알려진 대로 공부를 잘하고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 아이들이다.
학생의 대다수를 이루는 비범생들은 다양하게 분류된다. 제일 꼭대기에는 「날라리」가 있다. 80년대 날라리는 놀기만 하는 문제아였지만 90년대의 날라리는 공부와 놀기 인물 사교성 등 4박자를 갖춰야 한다. 벼락치기에 능하고 정학의 경험이 있으면 금상첨화다.
이에 비해 다음의 「널러리」는 어감에서 느껴지듯 날라리에 비해 모든 게 한수 떨어진다. 「삐리」는 성적이 중하위로 노는 데 주로 신경쓰는 친구들. 이들 밑에는 삐리 축에도 끼지 못하는 「쪽삐리」와 「양아치」들이 있다.
카피라이터 조동원씨(42)가 예비 카피라이터들과 함께 각종 설문조사와 PC통신 등을 통해 들여다 본 10대들의 세계다. 조씨는 1년간의 작업 끝에 「10대를 주제로 한 조동원의 카피세상」 창간호를 펴냈다.
그렇다면 이들의 「알바(아르바이트)」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삐끼(호객행위)」에서부터 「따끈맨(신문배달·따근따끈한 신문이오)」 「삐까번쩍맨(세차)」 「리모컨맨(노래방)」 「삐구마맨(삐삐로 군고구마 배달)」 등이 이들의 직업군. 이들은 또 브랜드(유명상표)의 세계에 살고 기성세대와 다른 언어 속에 살며 가상게임을 통해 세상을 배운다. 특히 브랜드는 이들의 자존심이나 다름없다. 카피 중에는 이런 글들이 자주 눈에 띈다.
1. 남이 볼까 두려워 입고 다니는 쌍방울, 남이 가져갈까 두려워 입고 다니는 캘빈 클라인.
2. 빨랫줄에 걸어놓은 세 벌의 청바지 중 닉스와 리바이스는 없고 뱅뱅만 남았다.
이들의 강점은 다른 세대들이 따를 수 없는 컴퓨터에 대한 적응력이다. 가상게임의 발달은 이들에게 현실에 앞서 세상 밖 이야기를 접하게 하는 창을 제공하고 있다. 이들은 경영지식을 바탕으로 만든 게임에서 사장이 됐다가 자식을 키우는 「공주만들기」를 통해 부모가 된다. 또 거대도시의 시장이 되어 도시행정을 운영하기도 한다.
이들의 언어 역시 기성세대와는 다른 독특한 법칙 속에 만들어지고 통용된다. 전화비 고지서와 직결되는 빠른 채팅 능력을 위해서는 짧은 신조어들이 필요한 것이다.
『어서 오십시오』가 아니라 『어솨요』라는 식이다. 한 카피라이터는 『10대들의 언어에는 이미 표현을 위한 액세서리가 사라지고 있다』고 말한다.
조씨는 『대학생들은 이같은 10대들의 문화에 대해 재미있다고 표현하는 반면 나이 든 세대는 「잘 모르겠다거나 이해하기 어렵다」고 답변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밝혔다.
카피 구석구석을 훑다보면 10대의 세계가 지나치게 소비적이고 계층적이라는 비판적 의견도 있다.
그러나 조씨는 『그같은 규정들은 이미 구세대의 가치관에서 판단한 편견』이라며 『자기 PR에 능하고 감각적 판단 능력을 갖춘 이들의 장점을 살려주는 것이 세대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하게 만드는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김갑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