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책]김연경/「고양이의,고양이에 의한…」

  • 입력 1997년 6월 3일 08시 08분


스물 두서넛 된 풋내기의 소설. 그나마 미성년 시절에 씌어진…. 「나의 책」이랄 게 없다. 첫 소설집이니까. 제목부터 치기가 느껴진다. 「고양이의, 고양이에 의한, 고양이를 위한 소설」(문학과 지성사). 그러나 김연경의 소설은 「뭐에 씌어」 씌어졌다. 강석경의 「숲속의 방」이 10년쯤 뒤에 나왔으면 이랬을까. 생살을 뜯는 듯한 선연한 감각…팽팽한 힘줄이 면도날에 툭툭 끊기는 자의식의 분열과 뒤엉킴…. 오랜만에 살아있는 산문, 그 원시적인 생명력과 부딪친다. 『제 소설의 뿌리는 현실의 체험이 아닌, 문학에서 끌어온 문학의 소스에 닿아 있어요. 그래서 소설은 상상력에 많이 기대고 있지요. 그러나 상상이 상상하는 것은 단지 기억일 뿐. 말하자면 상상은, 경험 저편에서 피어나는 기억을 우려먹는달까…』 그는 한때 정신병원에 입원하려 했다고 한다. 『병원비가 없어서 대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들입다」 팠지요. 지금 생각하면 병을 얻은데서 병을 치료하려는 어리석은 짓이었어요』 그래서일까. 표제작인 「고양이…」는 시작부터 스산하다. 「자신의 이름이 스산임을 알게 된 스산은, 소름끼치는 스산함을 느낀다…」. 「고양이…」에는 소설 속의 인물인 스산과 스산이 쓰는 소설속의 인물인 해와 달이 등장한다. 언뜻 소설은 「소설 안의 인물」인 스산이 「소설 밖의 인물」인 해를 만남으로써 화해를 갈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스산과 해의 만남은 절망의 비극적인 종착역, 즉 죽음일 수밖에 없다. 「해가 뜨면 스산함이 사라지듯…」. 『절망은 삶의 정직한 모습이지요.아무리 몸부림쳐도 벗어날 수 없는, 죽음만이 마침표인…』 자살 자학 자위 등등…. 「자자(自字)돌림」의 말들을 유난히 입에 달고 다니는 그는 소설을 쓸 당시 섹스에 관한 한 진짜 미성년이었다고 한다. 그 미성년을 「갓 벗은」 지금, 그는 그때의 성묘사에 대해 『상상이야말로 정말 무섭고 지독하다』고 웃는다. 그러나 정작 무섭고 지독한 것은 섹스의 순간마져도 절망의 끝을 놓지않는 그의 처절함이다. 서울대 노문과를 나와 대학원에 다니는 그는 소설을 쓸 때는 대개 앉은 자리에서 내리 7∼8시간씩 (키보드를) 「찍어 누른다」고 한다. 〈이기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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