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좌담회]『아버지들이여 다시 고개를 들자』

  • 입력 1997년 5월 7일 20시 01분


《「고개숙인 아버지」가 상징하듯 요즘 아버지들의 위상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아버지들은 바쁜 직장과 사회생활에 쫓긴 나머지, 특히 자녀교육 문제에 있어서도 주체의 자리를 아내에게 완전히 내준 채 「하숙생」신세를 맴돌고 있다. 어버이날을 맞아 아버지의 진정한 모습을 되찾고 아버지들이 자녀교육의 주체로 다시 바로 설 수 있도록 새로운 「아버지 문화」를 모색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李華洙(이화수)의장〓지난해부터 「아버지」라는 소설이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불경기로 직장에서 명예퇴직당하는 사람이 늘고 있던 시점과 맞아떨어져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과연 아버지란 어떤 존재인가, 다시 한번 뒤돌아보게 만든 계기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바쁜 직장생활속에서 무심코 잊고 지내왔던 아버지의 진정한 역할, 아버지상(像)은 어떤 것인지 함께 고민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아내-자식과의 벽 허물자 康禹鉉(강우현)씨〓저는 새 시대에 맞는 부모, 특히 아버지의 의식개혁을 위해 몇년 전부터 「좋은 아버지가 되려는 사람들의 모임」에 참여하고 있고 관련 잡지도 만들고 있습니다. 우선 「아빠상(像)」과 「아버지상(像)」은 구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아이들과 재미있게 놀아주는 아빠상을 뛰어넘어 자녀교육 문제에 진지한 관심을 갖고 인격적인 감화를 줄 수 있는 아버지상이 필요한 때입니다. 李那美(이나미)씨〓글쎄요, 호칭 문제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젊은이들은 어른이 없을 때 아버지 흉도 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굳이 아버지를 이중적 의미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흔히 아버지는 외롭다고 합니다. 그런데 임상경험을 보면 아버지들이 외롭다는 데는 아내와 자식들도 공감하지만 「왜 외로운가」에 대해서는 주장이 서로 다릅니다. 아내는 남편의 이기심과 출세지향적 성향 때문이라 하고 자식은 아버지가 권위주의적이고 보수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서로 보이지 않는 벽을 쌓고 의사소통을 안합니다. 서로에 대한 오해와 몰이해를 푸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李星鎬(이성호)교수〓공감입니다. 아버지에게도 엄연히 세대구분이 있습니다. 60대이상의 1세대와 40, 50대의 2세대, 그리고 30대의 3세대 아버지가 있죠. 1세대는 아버지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존경하고 권위를 인정하며 살아온 세대입니다. 가족문화가 할아버지→아버지→자식 순으로 내려간다고 보면 2세대는 전통적 가치관을 수용하면서도 자식에게는 전달하지 못하는 가치혼란의 세대입니다. 3세대는 완전히 신세대여서 자유분방하게 행동합니다. 구태의연한 말 같지만 요즘 젊은 가정을 보면 누가 윗사람인지 구별못할 정도로 가정교육이 엉망인 경우를 많이 접합니다. 아버지의 권위와 위상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특히 젊은층이 아버지의 위상을 되찾는 노력을 해야한다고 봅니다. 이씨〓30대 아버지들이 자식과 격의없이 지내는데는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자신들이 아버지에게서 받지 못한 따뜻한 사랑을 자식들에게 표시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에 대해 맹목적으로 존경하고 권위를 인정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밥상머리 교육」부터 확실히 이교수〓요즘 부모 자식간의 대화를 많이 강조합니다. 옛날에는 밥상을 함께하면서 혹은 사랑방에서 자연스럽게 대화하면서 예의범절을 가르치고 부모의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눈으로 보는 것이 가정교육이었습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요즘 아이들이 공공장소에서 버릇없이 행동하는 것은 젊은 세대가 가정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문제의 원인은 바로 아버지 자신에게 있습니다. 이의장〓좋은 지적입니다. 어떤 상사원이 말레이시아의 외국인학교에 자녀를 입학시키려는데 안받아줘서 애를 먹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국아이들은 버릇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더군요. 자식의 기를 살려준다고 착각하는데 30, 40대 아버지들이 최소한의 역할과 권위는 되찾아야 합니다. 이씨〓서양과 한국의 자녀양육방법은 정반대입니다. 서양은 어려서 엄하게 키우고 자라면서 자율성을 주는 반면 한국은 어려서는 풀어서 기르고 크면서 틀속에 잡아두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신세대 아버지들은 개인주의적 가치관을 갖고 있어 인생관 자체가 다릅니다. 이들은 전통적인 가부장적 가족제도는 싫지만 이를 대신할 뚜렷한 대안이 없기 때문에 앞서 지적한 자녀교육 실종과 같은 문제가 생긴다고 봅니다. 이교수〓자녀교육에 혼선이 생기는 것은 부부간의 역할분담이 잘못된 데도 원인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남편도 아내에게 존대어를 쓰고 살림살이는 알아서 하도록 상대를 존중해 주었습니다. 성급한 이야기일지 모르나 지금은 가정의 경제주도권을 차지하고 남편을 가볍게 여기는 것을 여권(女權)의 신장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외 등 자녀교육문제도 모두 어머니들이 결정합니다. 이는 아버지들이 자녀문제에 무관심하고 교육에 대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아버지 스스로 교육에 관한한 포기해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자녀가 몇학년 몇반인지도 모를 정도가 된 것은 전적으로 아버지의 책임입니다. ▼아버지를 강아지로 묘사 강씨〓맞습니다. 92년에 10여명이 모여 「좋은 아버지 모임」을 결성해 처음으로 한 행사가 자식에게 하고 싶은 말을 그림책으로 만든 일이었습니다. 그 그림책은 「하숙생 아버지」들의 반성문이나 다름없었어요. 흔한 이야기지만 초등학생에게 아버지를 그리라고 하면 넥타이 매고 잠자는 강아지를 그린다고 합니다. 직장생활이 힘들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매일 술에 취해 귀가하면서 아버지로서 해야할 일, 알아야 할 일을 너무 많이 간과해 왔습니다. 하루에 단 1분만이라도 자녀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면 큰 문제도 해결된다고 봅니다. 이씨〓아버지는 사회생활이나 경제능력에서 항상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문제를 직시하기보다 회피하려는 심리도 있는 것 같아요. 이의장〓우리 교육민회도 지난2일 「아버지도 자녀교육에 참여합시다」라는 주제로 포럼을 가졌지만 무조건 아버지의 권위를 되찾자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그동안 관심을 쏟지못했던 자녀문제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자는 것입니다. 강씨〓지금 젊은 아버지들을 중심으로 자녀교육에 관심을 가지려는 신선한 바람이 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치맛바람」이 아니라 「넥타이바람」이라는 말까지 등장했습니다. 아직 숫자는 적지만 아버지들이 학교운영위원회에도 참여하면서 자녀교육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아버지회」가 구성된 학교도 있습니다. 1년에 4∼6회 자녀및 선생님과 함께 산행 수련대회 자연보호활동을 하거나 학교운동장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기도 하죠.한번 해보신 분들은 교육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뜨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 찾아뵙는 노력 필요 이교수〓한국의 아버지들은 돈만 많이 벌어다 주면 된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도 교육에 관심을 갖자고 하면 첫 반응이 『학교에 갈 시간이 없다』고 합니다. 물론 선생님을 직접 찾아뵙고 자녀문제를 얘기하면 더욱 좋겠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을 경우 전화나 편지로도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관심과 의지가 문제지요. 강씨〓아버지가 학교교육에 참여할 수 없게 만드는 사회여건도 문제입니다. 일일교사 등으로 학교에 가거나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여하려고 해도 직장 때문에 고민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아이 문제로 학교에 좀 다녀와야겠다』고 했을 때 이를 선뜻 받아들여주는 직장이 얼마나 있습니까. 거짓말을 해야 자녀를 위해 외출할 수 있는 직장풍토가 바뀌어야 합니다. 이씨〓동감입니다. 요즘은 맞벌이부부가 많은데 여성의 사회활동을 가로막는 원인중 하나도 자녀양육 문제입니다. 학교에 갈 일이 있을 때 부부가 서로 교대로 가는 가정도 늘고 있습니다. 30대가 직장에서 일찍 퇴근하면 『요즘 사람들은…』하면서 못마땅한 눈초리로 보는 직장상사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40, 50대의 사고방식을 젊은층에 강요한다면 적어도 가정문제에서는 나아질 게 없습니다. 학교에 가야겠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사회분위기가 아쉽습니다. 이의장〓학교에서도 아버지가 학교에 오는 것을 환영한다고 합니다. 여성들보다 사회경험이 많아 의사결정도 빠르고 아버지끼리도 잘 어울리기 때문에 지역사회를 통합하는 역할도 어느 정도 한다고 봅니다. 아버지회가 잘되는 학교는 교내폭력도 적다는 연구도 있더군요. 이교수〓부모이혼 등으로 인해 겉으로 드러난 결손가정보다 부모가 멀쩡히 있으면서도 자녀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는 가정이 진짜 결손가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아버지가 있으면서도 아버지역할을 제대로 못할 때 자녀들은 아버지에 대해 신뢰감을 느끼지 않고 당연히 권위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의장〓부모가 되기는 쉬워도 좋은 부모가 되기는 어렵다는 말이 새삼스레 생각납니다. 아버지들은 가정과 사회에서 존경받을 수 있는 위상을 스스로 만들고 실천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믿음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이인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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