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동아신춘문예/평론부문]당선소감 및 심사평

  • 입력 1997년 1월 3일 20시 38분


▼ 당선소감=김인호 ▼ 현대는 「근대」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고민한다. 합리성이라는 이름의 「주체」는 그 기획이 난관에 부닥친다. 그런 고뇌로부터 시작한 데리다나 로티의 철학은 주체를 해체하고는 엉뚱하게도 문학을 닮아간다. 차츰 문학과 철학의 경계는 무너지고 비평 또한 그것을 닮아간다. 노예에서 벗어난 비평이 작품 해석을 넘어 「새로운 텍스트」를 산출한다. 그런 생각을 해본다. 우리 시대에 풍미하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을 살펴본다. 거기에 숨어 있는 존재론의 다른 모습이 엿보인다. 문제는 그것의 깊은 뿌리를 들여다보지 못하는 얼치기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일 뿐이지 「철학의 부재」는 아닐 것이다. 시대의 흐름이 다만 「기호들의 놀이」처럼 보여도 거기에는 세계에 대한 진정한 고뇌, 진정한 실체찾기가 숨어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러한 것을 찾아내줄 수 있는 장르가 「비평」인 것은 아닐까. 소시적부터 문학과 철학 「사이」에서 비틀거렸던 「나」를 돌아본다. 위험스럽다. 그 「사이」에서 파괴의 여신 시바가 춤을 춘다. 그 앞에서 웅크리고만 있었던 내게 그 어지러운 춤사위 속에서 피어오르는 「진정한 생명력」이 이제야 보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춤을 춘다. 힘을 느낀다. 이제 무섭지 않다. 그렇게 믿고 싶다. 이 자리에 내가 있도록 도와주신 분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춤을 멈출 수 없다. 텍스트와의 유희를. 휴직을 용인해 준 아내, 항상 기도를 해 주신 정읍에 계신 노모님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나를 이끌어주신 모든 이들, 특히 연신세미나팀 동지들에게 감사한다. △57년 전북 정읍 출생 △동국대 국문학과 졸업 △동국대 국문학과 박사과정 입학예정 △서울 연희여중 재직 ▼ 심사평=오생근 ▼ 비평의 응모작은 모두 28편이었는데 이 중에서 한두 편의 문학일반론을 제외한 대부분의 글이 시인과 작가를 대상으로 기형도와 장정일이 각각 두 편씩 되었을뿐 나머지는 서로 다른 시인과 작가들로 한 편씩 분산되어 있었다. 심사자는 5편 정도를 집중적인 검토의 대상으로 삼았다. 「고은의 시―죽음과 어둠의 변주곡」(박정희)은 고은의 시에 대한 비평적 인식의 한계를 극복하겠다는 서두의 야심과는 달리 죽음의식과 허무주의적 세계인식의 한정된 틀을 벗어나지 못해 아쉬웠다. 「투명성의 세계와 이카루스의 시―황지우론」(이정진)은 황지우의 시를 「자기고백적인 육체의 형식」으로 파악하겠다는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했지만 명료하지 못한 개념적 어휘들과 논리적 비약이 많아보였다. 또한 「사라짐의 미학을 일궈온 두 작가에 대하여」(김순옥)는 오정희의 「옛우물」과 신경숙의 「외딴방」을 비교한 글로서 차분한 논리와 섬세한 관찰이 돋보인 글이었으나 인상주의 비평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느낌을 주는 것이 흠이었다. 이 점은 여행의 주제와 자아탐구를 관련시킨 「긴 여로를 돌아온 나 찾기」(최명환)라는 윤후명소설론에도 비슷하게 발견된다. 「최인훈의 화두에 대한 철학적 담론」(김인호)은 「화두」를 전통적인 문학작품의 의미로 접근하기보다 「텍스트」의 의미로 파악해야 한다는 논리에서 다양한 서술의 원칙을 주체의 문제와 관련지어 이 작품을 새롭게 해석해보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그러나 이 글의 내용이 철학적 담론이라는 거창한 제목에 합당한 철학적 인식의 깊이와 논리를 동반한 것이었는지는 의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 글을 당선작으로 결정한 것은 글쓴 이가 문학작품에 대한 성실한 이해와 진지한 탐구의 태도로 신뢰할 만한 비평가의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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