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시]「1996년 12월 마지막 저녁에」…안도현

  • 입력 1996년 12월 30일 20시 20분


1996년 12월 마지막 저녁에 안도현 1996년 12월의 마지막 저녁에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한 해 동안 수고했노라고, 늦은 귀가를 서두르는 가장들의 어깨 위에 꽃다발을 걸어 줄 것인가 정말 잘 참고 견뎌냈다고, 살다 보면 더 좋은 날이 오지 않겠느냐고, 그 처진 어깨를 감싸안고 국밥 집에서 같이 소주라도 마실 것인가 아니면, 되는 일 하나 없이 세월이 갔노라고, 이대로는 안된다고, 어두운 노래방에서 마이크를 잡고 밤새도록 고함이나 지를 것인가 흰 눈 뒤집어 쓴 응달의 소나무야, 육십촉 알전구를 켠 해변의 횟집들아, 파업의 불을 지핀 공장의 굴뚝들아, 창문마다 어둠을 붙이고 달리는 도시의 지하철아, 속으로 울며 가는 우리 나라 모든 푸른 강들아,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1996년 12월의 마지막 저녁에 세 끼 밥 굶지 않아도 배가 고프고 지붕에 비 새지 않아도 등이 시리다 기다려도 희망은 나를 데려 가지 않고 기다리지 않아도 절망은 나를 따라 온다 가진 게 많은 이들은 줄 것이 없다고 하고 가진 게 없는 이들은 줄 것이 없어 마음 아프다 1996년 12월의 마지막 저녁에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데뷔 △시집 「그대에게 가는 길」 소설 「연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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