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속의 과학]산과 염기…식초먹어도 혈액 산성도 불변

  • 입력 1996년 12월 23일 21시 00분


식초는 시큼한 맛이 나고 양잿물은 미끈거린다. 바로 산(酸)과 염기(鹽基)라는 서로 성질이 정반대의 물질인 아세트산(초산)과 수산화나트륨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산성이나 염기성 물질이 물에 녹으면 물 속의 수소 이온의 농도가 변하게 된다. 수소 이온은 하나의 양성자로 된 아주 작은 알갱이지만 물 속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에 대단히 큰 영향을 미친다. 수소 이온이 많은 산성의 물은 아연이나 마그네슘과 같은 금속을 녹이기도 하고 단백질의 가수분해를 촉진한다. 위 속에서 단백질이 분해되는 것도 염산이 주성분인 위액 때문이다. 반대로 염기성 물질을 넣으면 수소 이온의 농도가 낮아진다. 염기성 물질을 「알칼리성」 물질이라고도 한다. 「알칼리」라는 말은 아랍어로 「식물성 재」를 뜻한다. 나무를 태운 재에 포함된 탄산 칼륨이라는 물질의 특성에서 유래한 말이다. 강한 염기성(알칼리) 물질도 유기물질을 녹이는 위험한 성질이 있고 약한 염기성 물질은 세탁용으로도 사용된다. 우리 선조도 나무를 태운 재를 우려낸 잿물을 세제로 사용했었다. 물 속의 수소 이온의 농도는 PH라는 양으로 표시한다. 순수한 물의 PH는 7이다. PH가 이보다 작으면 「산성」이고 크면 「염기(알칼리)성」이라고 한다. 물 속의 수소 이온 농도가 10배 커지면 PH가 1만큼 줄어든다. 생체내에서 일어나는 반응은 PH에 특히 민감하다. 우리 혈액의 PH는 7.4 정도가 되어야만 건강이 유지된다. 만약 혈액의 PH가 6.8에서 7.8의 범위를 벗어나게 되면 몸 속의 모든 화학반응이 심각한 영향을 받아 생명이 위험해진다. 그러나 우리몸속에서는 세포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가 피에 녹아들어서 생기는 탄산 이온이 혈액의 PH를 안전하게 유지한다. 그래서 식초를 먹어도 피의 산성도는 변하지 않는다. 몸에 해로운 진한 염산 용액에 역시 독성 물질인 양잿물을 적당히 넣어주면 짠 맛이 나고 먹어도 괜찮은 소금물이 되는 것이 화학의 신비로움이다. 바로 산과 염기의 중화반응 때문이다. 식당에서 불고기 판을 독성 화학물질인 염산으로 씻는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적당한 양의 양잿물을 넣어주기만 하면 진한 소금물이 되어 인체에 전혀 해롭지 않기 때문이다. 이 덕 환<서강대교수·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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