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생각 저생각]지하철 탑승기

  • 입력 1996년 12월 20일 19시 37분


걷기를 좋아하는 나는 이따금 시내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게 된다. 사생활이 있을 운전기사에 대한 배려와 장차 기사가 운전해 주는 직장차량을 회수당할 때 겪게 될 불편을 덜기 위한 예비훈련 목적이다. 청승맞다고 할는지 모르지만 대중교통수단, 특히 지하철을 이용하면 편리한 점이 많다. 우선 기사 눈치 안보고 생각이 자유로울 수 있고 책 읽기가 편하며 또 무엇보다도 교통비가 싸서 좋다. 또 요즈음 같은 교통지옥에서 정체에 안걸리고 한 시민으로서 교통체증해소에 도움을 준다는 명분 때문에 떳떳하기도 하다. 지하철 찻속에서는 여러층의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를 엿들을 수 있고 뭇 광고문도 읽어볼 수 있어 세상돌아가는 분위기를 짐작케 한다. 나는 비록 자리가 비어 있더라도 앉지 않고 폴에 기대서는 버릇이 있다. 그 편이 더 편안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내나이 50대에 들어서면서 희어지기 시작한 머리를 약 일년전부터 검게 물들이고 보니 아무도 60이 넘었다고 판단하는 사람이 없어진 것 같고 노인대접을 안 받으니 기분은 아직도 40대며 행동도 40대처럼 하고 있다. 출퇴근시간이 아닌 비교적 한가한 낮시간이나 주말에 지하철을 이용하기 때문에 나를 알아볼 만한 승객이 거의 없어 해방감마저 만끽할 수 있다. 얼마전 밤늦게 귀가하던 찻속에서의 일이다. 그 이튿날 조간신문 가판지 한 부를 문가 폴에 기대선채 읽고 있었는데 옆에 앉아 있던 어느 중년신사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나에게 앉으라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내 얼굴은 달아 올랐다. 마치 금지된 장난을 하다가 들킨 어린애처럼 말이다. 아무리 숨기려해도 내나이는 못속이는구나 싶었다. 그러면서 머리를 염색한지 약 한달이나 지났음을 상기하고 내일은 당장 이발소에 뛰어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신문을 읽고 있었으니 망정이지 주책없이 젊고 예쁜 여인이라도 넋빠지게 쳐다보고 있었으면 어쩔 뻔했나. 홍 세 표<한미은행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