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가 21일 입수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 회담 발언록 전문’에서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의 ‘훼방꾼’ 발언으로 논란이 된 대목. 발언록 전문에는 박 원내대표의 ‘훼방꾼’ 발언이 보이지 않았다.
중국 외교부가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주장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부주석의 ‘훼방꾼’ 발언 논란에 대해 21일 “그런 발언은 없었다”고 공식 부인함에 따라 박 원내대표의 책임론이 정치권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한나라당은 “국제적인 망신을 당해 국가의 품격을 떨어뜨렸다”며 박 원내대표의 사퇴를 압박했고 민주당은 곤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박 원내대표는 중국 정부의 부인 직후 “사실을 말했다”면서도 입을 닫았다.
○ “남북관계 경색” 발언 주체는 DJ
동아일보가 21일 입수한 면담록에는 지난해 5월 김대중 전 대통령과 시 부주석이 나눈 대화가 녹취 수준으로 정리돼 있다. 이 면담록에 시 부주석이 이명박 정부의 책임을 거론한 대목은 없었다. 시 부주석은 먼저 “한중 양국 간 ‘전략적협력동반자관계’의 성과에 만족한다. 이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양국 국민의 근본 이익뿐 아니라 지역의 평화 및 안정에 부합한다”며 이명박 정부와의 협조에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에 김 전 대통령은 “2000년 방북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난 이래 약 10년간 남북관계는 상당히 좋은 관계를 보였으나 최근 경색되고 있는 것에 대해 매우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자 시 부주석은 “중국은 남북한 모두의 친구인 바, 진심으로 남북 간 협력 및 화해를 원하며 이를 위해 건설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히고 “(남북이) 화해와 협력이라는 큰 방향을 유념하면서 인내심을 갖고 서로의 우려를 배려해 나간다면 현재의 난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재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련 각국이 더욱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것인 바, 이런 면에서 미국도 더 많은 일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민주당 의원까지 “부적절”
안상수 대표를 비롯한 한나라당 지도부는 전날 청와대가 펼친 강공 바통을 이어받은 듯 21일 오전부터 박 원내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의 외교통상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도 한나라당 의원들은 “사과하고 책임질 것을 촉구한다”(유기준 의원), “김 전 대통령에게도 모욕이 되고 시 부주석에게는 있을 수 없는 결례를 범한 것”(김효재 의원) 등의 강한 비판을 퍼부었다.
중국 정부의 공식 부인이 나오기 전에 발언한 민주당 문희상 의원은 “(박 원내대표의) 그 말이 상당히 진실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럼에도 부적절했다고 생각한다”며 “상대방은 주요 국가의 차기 수장이고 그 상대방은 우리나라 외교권의 수장이었다. 그 두 분의 발언을 그렇게 쉽게 얘기하면 안 된다는 게 제 생각”이라고 비판했다.
답변에 나선 김성환 외교부 장관은 “면담요록 및 대사관 관계자들에게 확인한 결과 그런 내용(훼방꾼 발언)이 없었다”며 “부끄럽기도 하고 한중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안형환 대변인은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본인의 정치적 거취를 고민해야 하는 중대한 거짓말”이라고 비판 수위를 높였다.
○ 버티는 박 원내대표
생각에 잠긴 박지원 원내대표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2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당 고위정책회의 도중 생각에 잠겨 있다.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박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당 고위정책회의에서 “지금까지 사실이 아닌 것을 말해 본 적이 없다”며 “합의를 하고 야당 대표를 길들이려고 해야지 민주당이 그렇게 허술한 당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어떻게 외교부의 보고는 믿고 우리 측 인사들이 얘기한 것은 믿지 않는지 유감스럽다”, “벌 떼처럼 달려들어서 쏘아 봐야 그렇게 죽지는 않는다”며 자신의 발언이 사실임을 거듭 강조했다.
그러다 오후에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부인 발표가 나오고 1시간여 뒤 박 원내대표는 보좌관을 통해 짧은 서면발표문만 기자들에게 배포했다. 그는 첫 대목에서 “우선 중국 정부의 외교적 입장을 이해한다”고 했다. ‘자신이 전한 시 부주석 발언은 사실이지만 중국 정부가 외교관계를 고려해 부인한 것’이란 뉘앙스다. 그는 “사실을 말한 것”이라면서도 “그 이상 논란이 되는 것은 한중 양국 간의 외교관계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며 국익을 위한다는 차원에서 그 이상의 언급은 하지 않겠다”고 끝을 맺었다.
○ 고민에 빠진 민주당
민주당 내에서는 ‘박 원내대표가 너무 나갔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박 원내대표가 거취 문제를 심사숙고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오가고 있다.
외통위 소속 한 민주당 의원은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박 원내대표가 설마 정상급 회담의 대화를 함부로 옮기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믿었는데 큰일 났다”고 말했다. 정동영 의원은 “중국 정부의 이례적인 신속한 대응에 다소 난감하다”면서도 “통역의 실수로 빚어진 일이 아닐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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