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강원택/선관위에 계좌추적권 주라

  • 입력 2002년 7월 29일 18시 36분


민주화 이후 정치적으로 적지 않은 성과를 이뤄왔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여전히 회의적이다. 돈선거와 정치부패가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선거관리위원회가 제안한 선거개혁안은 우리 정치의 부정적 관행을 교정할 수 있는 전향적이고 혁신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이번에 제안된 개선방안은 그동안 선거 때마다 있었던 각종 정당 집회가 ‘자발적’인 참여에 의한 것이 아니라 돈에 의해 ‘고용된’ 것이라는 현실을 인정하였다는 점이 우선 눈에 띈다. 선관위는 정치적 행사의 참여나 지지를 매개로 후보자와 선거운동원, 청중 등과의 돈 거래를 막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따라서 후보자와 유권자간의 직접적인 접촉을 크게 줄이는 대신 대중매체를 통한 간접적 접촉을 유도하고자 했다. 유급선거운동원을 폐지하고 자원봉사자에 의존하도록 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뤄진 조치로 보인다.

▼TV선거 불법 부추길 수도▼

그러나 선관위의 제안대로 대중매체를 이용한 선거운동만 허용하고 나머지 선거운동 방식을 억제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라는 원칙적인 문제를 지적하지 않더라도, 오히려 불법 선거 운동의 가능성만을 높일 수도 있을 것 같다. TV선거운동이 아무리 활성화된다고 해도 선관위에서 의도한 대로 TV선거운동에만 전념한 채 나머지 당 조직은 두 손 놓고 앉아 있을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만약 TV토론 결과 어떤 후보의 인기가 떨어졌다면 그 후보측은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불법이더라도 당 조직을 동원하여 유권자들과의 직접적 접촉을 시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유권자들로서도 선거운동 방식의 제한은 문제가 된다. TV는 유권자들이 별다른 노력 없이도 후보자를 대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장점을 갖지만, 유권자들이 그 속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사실상 연출되고 윤색된 후보자의 이미지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TV선거운동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그 후보자의 실질적인 역량과 자질을 평가하는 기회를 왜곡시킬 위험성도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동원에 의한 대규모의 연설회 등은 마땅히 규제되어야 하겠지만 선거운동 방식 자체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이번 개정안은 국회의원 선거와 관련해서 볼 때도 다소 문제가 있다. 선관위는 정당에 대한 선거보조금의 폐지, 후원회 모금액의 축소, 지구당의 폐지를 제안하고 있지만, 이러한 조치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선거비용의 실질적 감소로 이어지기는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에서는 기존의 청중 동원 방식을 대신하여 TV 등 매스미디어를 이용한 선거 유세를 할 수 있지만,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이러한 방식이 적용되기 어렵다. 우리나라의 국회의원 선거는 유럽 국가들처럼 정당을 중심으로 한 선거운동(party-centered campaign)이 아니라 후보자 중심의 선거운동(candidate-centered campaign)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후보자 중심의 선거운동이 이루어진다면 선관위의 개정안에도 불구하고 후보자들은 적지 않은 선거비를 지출하려는 유인을 계속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지구당 폐지 방안 역시 그 효과와 실현 여부가 의심스럽다. 지구당이 그동안 위원장 개인을 위한 선거 전위조직의 기능을 해 왔기 때문에 법적으로 지구당을 폐지하더라도 유사한 형태의 사조직이 생겨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선거공영제 반드시 실현해야▼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이번에 제안된 개혁안 가운데 가장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사항은 결국 정치자금의 수급에 대한 투명성 확보의 규정이라고 판단된다. 후보자들의 선거운동 방식을 인위적으로 규제할 필요도 없이 누구에게서 정치자금을 받았고 어디에 그 돈을 지출했는지를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면 불법적인 선거운동은 이뤄지기 어렵다. 선관위가 제안한 대로 불법 정치자금 수수에 대한 계좌추적권 부여 역시 정치자금 투명성을 제도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방안이라고 생각된다.

각 정당은 이번 개혁안에 대해 일단 환영의 뜻을 표했다. 그러나 선거를 앞두고 논의된 개혁안은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의해 표류하는 경우가 잦았다. 결국은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될 것이다. 국민이 두 눈을 부릅뜨고 정치권의 움직임을 지켜봐야 할 시점이다.

강원택 숭실대 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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