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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6월 19일 17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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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의 아쉬움을 알기에 승리의 환희도 이해할 수 있는 것. 이곳 교민들은 꼭 이날 만이 아니라 월드컵 대회 개막 이후 일본인들의 태도가 예전에 비해 훨씬 부드러워졌다고 한다.
거리를 따라 한국 간판이 이어지는 이곳은 한국과 일본, 양국의 문화와 사람의 접점이다. 그러나 약간의 긴장감과 껄끄러움은 있어왔다. 일사불란함에 익숙한 일본인들은 온통 한글간판으로 덮인 이 거리를 자신들과 관계없는 이방인들의 나라로만 여겨왔다.
한국팀의 승리가 확정되자 일본에 유학온 대학생이건 이곳에서 음식점이나 옷가게를 하는 자영업자건,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이건 코리아타운으로 모여 들어 목이 쉬도록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다. 웃통을 벗고 몸에 태극기를 그려넣은 청년들이 거리를 오가며 ‘대한민국’을 선창하면 이 일대에 밀집한 한국 음식점 안에서 축하의 건배를 하던 사람들이 화답을 했다.
일본 청년이나 외국관광객들도 금새 열광적인 분위기에 취해 ‘대한민국’ 구호를 따라 하며 즐거워했다. 미소를 지으며 ‘한국, 축하합니다’는 인사를 건네고 지나가는 일본인도 있었다.
관광을 전공하는 유학생 S씨는 이날 새벽 분위기에 함께 취해 거리를 누비면서 “월드컵 대회 이후 한일 양국간 이해가 깊어지고 관광교류도 늘어날 것이라는 논문을 썼지만, 이처럼 빨리 그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고 말했다.
코리아타운에서 걸어서 5분거리의 JR 야마노테선의 신오쿠보역. 이 역사 안에는 지난해 1월 전철 플랫폼 아래로 떨어진 취객을 구해내고 숨진 유학생 고 이수현씨를 추모하는 글이 새겨져 있다. 이 역 앞에서도 18일 밤부터 19일 새벽까지 한국과 일본 청년 수십명이 함께 어울려 ‘대한민국’을 외치며 승리의 기쁨을 같이 했다. 때로는 ‘닛폰’을 외치면서 패배의 아쉬움도 함께 나눴다.
이들 청년들처럼 월드컵대회를 통해 양국민이 서로의 나라를 ‘가깝고도 먼 나라’ 가 아닌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로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면 이국 땅에서 살신성인을 실천한 고인의 영혼도 기뻐하지 않을까.
도쿄〓조헌주기자 hans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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