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B]공직사회 이민바람 "쥐꼬리 월급에 신분불안"

  • 입력 2001년 12월 26일 17시 59분


정부 중앙부처 과장으로 20년간 공직생활을 해온 A씨는 행정고시에 합격할 때 품었던 ‘평생 공무원’의 꿈을 버리고 최근 해외 이민을 계획하고 있다. 자녀 교육 문제와 신분 불안 때문이다.

A씨는 “자녀 과외비로 한달 평균 250여만원이나 쏟아부어야 하는 등 사교육비 부담이 너무 크고 신분 불안도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해외로 이민을 떠나는 공무원이 늘고 있다. 안정적인 신분 보장에 따라 한때 ‘철밥통’으로까지 불리던 공무원 사회가 변하고 있다는 징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공무원 해외이민 실태〓서울 종로구 S이민알선업체에는 요즘 현직 공무원들의 이민 상담이 꾸준히 들어오고 있다. 100여건의 상담 건수 중 4, 5건이 현직 공무원의 상담 요청이라는 것.

이 업체 관계자는 “이민을 원하는 공무원의 상담이 꾸준히 늘고 있어 놀랐다”며 “하지만 외국에선 공무원 경력을 써먹을 데가 없어 배우자와 함께 미용기술이나 차량정비 등을 배우는 공무원도 있다”고 말했다.

2월에는 교사들의 해외 이민을 전문적으로 알선하는 업체까지 생겨나 300여명의 교사가 신청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 27년간의 공무원 생활을 정리하고 호주로 이민 가 목장에서 일하고 있는 이모씨(51)는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에 비해 턱없이 낮은 290여만원의 월급을 받으면서 신분까지 불안정해 이민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98년 해외 이민을 간 공무원은 60여명에 불과했지만 99년은 2배 가량 늘어난 117명에 달했으며 지난해는 163명으로 늘었다.

전체 해외 이민자수가 98년 1만3974명에서 99년 1만2655명으로 줄었는데도 공무원 이민자 수는 이 기간에 오히려 늘어났다.

▽왜 떠나나〓가장 큰 이유는 명예퇴직과 정년 단축 등으로 인한 신분 불안과 자녀 교육 문제 때문.

수도권의 한 동사무소에 근무하는 5급 공무원 박모씨(48)는 “직원이 줄어 업무가 많아진 데다 무조건 큰소리치는 주민들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다”면서 “올해 대입시험을 치른 고3 딸이 힘들어하는 걸 보면서 중1 아들의 장래를 위해 이민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중앙정부 경제부처에 근무하는 7급 공무원 김모씨(47)는 “인맥 등을 따지는 공무원 사회의 인사 관행과 공무원을 비리집단으로 보는 사회의 시각이 따가워 견딜 수 없다”며 “박봉에다 공무원이란 자부심이 사라져 해외 이민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99년 공무원 해외 이민이 소속기관장의 동의서를 받아야 하는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뀐 것도 공무원의 해외 이민이 늘어난 요인 중 하나로 알려졌다.

<박용기자>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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