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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2월 16일 18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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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출간된 ‘노벨문학상과 한국문학’(월인)은 역대 노벨문학상이 어떤 배경에서 선정됐는지 내밀한 사연을 전했다. 해당 언어권 문학 전공 교수 16명이 집필에 참여했다.
이들은 역대 수상자 98명을 배출한 34개국 중에서 구미 지역을 제외한 아프리카 중남미 동구유럽 일본의 사례를 집중 분석했다.
이들이 내린 결론은 “노벨문학상 수상은 양질의 작가 번역자 출판사 평자 등이 확보되어야 하고 국가 이미지 개선, 외관단체 지원 등도 함께 수반되어야 가능하다”(최재철·한국외국어대 일문과)는 것.
작품이 갖추어야 할 요건으로는 노벨의 상 제정 취지인 ‘이상주의’, 즉 “작품이 이상(理想)을 향한 인간의 투쟁에 얼마나 기여했는가”가 중요하다. 당대에 무정부주의자로 낙인찍힌 톨스토이나 반체제주의자로 지목된 에밀 졸라가 수상을 못한 것은 이 요건에 부합하지 못했기 때문.
다음으로는 구미 평단과 출판계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 탈식민지문학을 대표하는 나딘 고디머(1991년 수상)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배경에는 영국의 더 타임즈의 지속적인 호평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윤혜준·한국외국어대 영어과).
비영어권 작품은 번역이 중요하다. 노벨문학상 메달을 건 작가 대부분이 수상전에 20개 이상의 언어로 주요 작품이 번역됐다. 가와바타 야스나리(1968년 수상)의 작품은 26개 언어로 133종이, 오에 겐자부로(1994년 수상)의 작품은 19개 언어로 150종이 각각 번역됐다.(최재철)
폴란드가 동구 유럽국가 중 가장 많은 3명의 노벨문학상을 배출한 배경에도 세계 각지에 흩어진 폴란드계 유태인을 중심으로 지속적인 번역 작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분석(최건영·연세대 문과대).
이것만으로는 수상의 충분조건에 미치지 못한다. 노벨문학상이 1940년대 이후 ‘예술적 선구자’를 중시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 작품 못지 않게 작가의 사회 정치적 활동이 영향을 미친다.
나이지리아 독재체제에 반대한 윌레 소잉카(1968년 수상)는 노벨문학상 메달을 목에 걸었고, 80년대말 아르헨티나 군사구테타를 묵인한 보르헤스가 번번이 고배를 마신 것은 이 때문이다(장태상·한국외국어대 아프리카어과).
그렇다면 한국이 노벨문학상을 받기 위한 처방은 무엇인가.
이 책은 “노벨문학상 기준이 무엇이며 어떤 경로가 지름길인지 찾는 것은 헛수고”라고 진단한다. 무엇보다 “문학 그 자체의 중요함을 인식하고 지원하는 장기적인 안목과 정성”이 중요하다는 것.
이를 위해서는 “번역전문가에 대한 체계적인 양성과 지원, 해외 한국어 교육에 대한 지원 확대”(권영민·서울대 국문학과)가 절실하다. 우리 문학을 알릴 수 있는 ‘대표주자’를 선정해 집중적으로 해외에 알리고, 외국 문단과의 적극적인 교류를 지원하는 방안(이태동·서강대 영문학과)을 마련하는 것도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