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어머니, 빨리 데려가 주세요'

  • 입력 2001년 12월 1일 23시 04분


어른들이 부끄러워해야 한다. 친구들의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보름 전 아파트에서 뛰어내린 초등학교 6학년생 선모군(13)이 끝내 숨졌다. 그의 죽음은 청소년을 보호하고 가르치는 학교에, 그리고 독버섯 같은 학교폭력을 손잡고 치유 방지해 나가야 할 가정에, 다시 한번 무거운 책임을 일깨워 준다. 아이들은 결코 ‘천사’가 아니며, 집단 속에서 그들이 유약한 ‘공격목표’를 발견하면 얼마나 가학(加虐) 행위를 일삼는지 우리는 숱한 집단괴롭힘 사건을 통해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학교 내에서 벌어지는 집단 폭력과 괴롭힘의 심각성을 어른들이 간과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어른들이 어린 시절에 비슷한 행패를 당한 경험이 있고, ‘그런 경험을 극복하면서 강하게 자라는 것이 보통’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안이한 발상에서 당하는 아이들의 절박한 ‘구조요청’을 지나쳐 버려 결국 자살과 같은 불행으로 이어진다.

근년에 학교 폭력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위험 수위에 이르렀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는 적지 않았다. 그런데도 안이한 학교의 대응이 선군과 같은 비극을 불러왔다. 학교측에서 선군이 집단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해 가해 어린이 3명과 학부모로부터 반성문과 각서를 작성하도록 한 게 9월이었다. 하지만 선군의 경우 그 후로도 집단 괴롭힘이 계속됐다. 오죽했으면 휴대전화에 ‘어머니, 빨리 데려가 주세요’라는 메시지까지 남겼겠는가.

학교에서는 이런 일이 발생할 때마다 근본적인 대책을 외면한 채 책임 회피에만 급급해 왔다. 불미스러운 일이 외부로 알려져 학교 명예가 실추될까봐, 혹은 담당 교사에게 인사 상 불이익이 떨어질까 두려워서다. 교육인적자원부도 올해를 학교 폭력 경감의 해로 정하고 특단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강조했지만 이를 위해 실제로 한 일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교육 당국이 이제라도 구체적인 대응책을 내놓아야 한다.

학교폭력 및 집단따돌림은 가해 학생의 정신적 정서적 결함, 그리고 그들의 부모의 무책임한 방치가 일차적인 원인이지만 근본적으론 우리 사회구조에서 비롯되는 측면도 있다. 각종 폭력물이 유행이 돼 버린 세태, 결손 가정, 부모의 빗나간 과잉 기대 등이 학교폭력 및 집단따돌림을 잉태하는 씨앗들이다. 그런 점에서 이 문제는 앞으로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해결을 위해 고민해야 할 숙제다. 청소년보호위원회가 10월에 발표한 ‘가칭 학교폭력 예방 및 피해자 보호법’ 제정도 한 가지 대책이 될 수 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