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영화에 담지 못한 원작소설의 감동

  • 입력 2001년 8월 17일 18시 30분


《소설은 영화의 보고(寶庫)다. 그러나 원작을 뺨칠만한 영화는 찾기 힘들다. 초당 24개의 이미지를 쏟아내는 스크린에는 책이 가진 사색의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개봉한 ‘파이트 클럽’, 현재 상영 중인 ‘늑대의 후예들’ 역시 예외가 아니다. 영화는 나름의 색깔을 갖고 있으나 원작소설을 영상으로 번역한 수준이다. 필름에 담지 못한 온전한 감동과 재미는 관객이 아니라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비디오점이나 극장을 향하기 전에 서점을 먼저 찾으시길 권한다.》

▼'파이트 클럽' 척 팔라닉 장편소설/239쪽 7500원/책세상▼

'할리우드의 스타일리스트 감독 데이비드 핀처와 최고의 인기배우 브레드 피트가 의기투합하게 만든 소설.’ ‘세븐’(1995년) 이후 화끈한 성공작을 내지 못했던 두 사람이 재기작으로 무명작가의 소설을 선택했다. 1999년 이들의 선택은 결국 상업성의 실패와 예술성의 성공이 엇갈리면서 절반의 성공으로 끝났다. 하지만 원작자 척 팔라닉(39)은 영광의 월계관을 쓰게 됐다. 작가로서 그는 북미권의 젊은이들로부터 컬트에 가까운 지지를 얻게 되었다(그 증거는 작가의 홈페이지 www.chuckpalahniuk.net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입맛 까다롭기로 유명한 할리우드 제작자들도 앞다투어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메이저 영화사들은 ‘서바이버’ ‘초크’ 등 그의 후속작의 판권을 일찌감치 사들였다. 이제는 용도가 다한 존 그리샴, 스티븐 킹, 마이클 클라이튼의 후계자로 그를 낙점한 것일까.

‘파이트 클럽’은 제목 그대로 작품의 소재는 살벌한 주먹싸움을 취미로 벌이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일상에서 무기력한 소시민인 멤버들은 함께 치고, 맞고, 피를 흘리면서 살아있음의 쾌감을 맛본다. 불면에 시달리는 평범한 샐러니맨 잭도 ‘파이트 클럽’의 리더 타일러를 만나 이 클럽에 빠져든다.

‘풍자 스릴러’인 소설의 얼개는 영화가 그리는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에드워드 노튼이 호연한 잭을 통해서 ‘아버지를 잃은 유약한 젊은 세대’안에 숨겨진 광기를, 브레드 피트가 열연한 타일러를 통해서 사회에 대한 독설적인 풍자를 여실히 보여준다.

영화에 비해 소설은 “우리는 살아있는 쓰레기야”라고 외치는 테일러에 대한 정서적 공감대가 훨씬 크다. 일례로 그는 “현대문명의 해결책은 자기 개선이 아닌 자기 파괴”라며 문명을 날려버릴 ‘메이햄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영화에서는 이것이 치기 어린 장난에 불과하다는 점만을 보여주는데 그쳤지만 원작에서는 허황된 행동이 갖는 묵시적 메시지가 오랜 잔상을 남긴다.

롤러코스터를 타듯 숨가쁘게 진행되는 팔라닉의 소설은 구성 형식이 특히 돋보인다. 첫장에서 주인공의 비극적인 결말을 보여주고 짧은 순간의 회상으로 결말에 이르게된 과정을 설명하는 방식이다. 함께 번역 출간된 근작 ‘서바이버’(1999년작)에서는 아예 장(章)과 페이지 일련번호를 역순으로 매겨서 이야기가 거꾸로 진행된다. 최필원 옮김, 원제 ‘Fight Club’(1997년)

▼'늑대들의 계약' 피에르 플로 장편소설/391쪽 9000원/들녘▼

문화적 자존심이 강한 프랑스는 올해 할리우드의 독재에 대적할 블록버스터로 역사 스릴러를 택했다. 프랑스에서 700만명이란 기록적인 관객을 동원했고, 현재 국내에서도 개봉되어 지적인 관객에게 입소문이 난 ‘늑대의 후예들’이 그것이다.

작품의 배경은 근대 시민사회가 태동하기 직전인 18세기 중반 프랑스 산간지역 제보당이다.

첩첩산중인 이곳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야수에 의해 100여명의 주민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것은 대혁명 전야에 절대왕권의 몰락을 점치는 흉흉한 전조로 전국에 소문이 나고, 급기야 루이15세는 왕립박물관 기사 프롱사크와 모히칸족 전사인 마니를 밀사로 파견한다.

이 소설은 봉건에서 근대로의 이행기에 벌어지는 구(舊) 권력집단의 동요를 야수라는 상징을 통해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정체 불명의 야수의 배후에 있는 비밀 광신도 집단인 ‘늑대들의 계약’의 정체는 계몽사상을 반대하는 토착 봉건귀족과 신교도를 거부하는 전통 카톨릭 세력이 공모한 반정세력임이 드러난다.

‘현대판 기사문학’으로 평가할 수 있는 이 소설은 액션·멜러·스릴러 사이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영화에 비해 흡인력이 강하다. 영화에서는 눈치 빠른 관객은 일찌감치 범인을 눈치챌 만큼 보안이 허술했지만 소설은 깔끔한 반전에 이르기까지 팽팽한 긴장을 유지한다.

이 때문에 소설은 인간의 수성(獸性)과 그 공포, 역사의 변혁기를 맞이한 수구권력의 광기를 실감나게 전달하고 있다.

참고로 역사책에 따르면 ‘제보당의 전설’은 야수가 아니라 늑대떼의 소행이었다고 한다. 이 사건이 불안한 민중의 입을 거치면서 유럽 지방에서 내려오는 ‘루가루(Loup-garou·늑대인간) 전설’과 섞여서 쇠이빨을 가진 괴수로 둔갑한 것이었다.

한가지 미덕을 더 꼽자면 번역자의 지적처럼 고전 스타일의 묵직함과 현대적 분위기의 대중성을 겸비했다는 점이다. “‘바로크적 괴기’와 ‘고전적 영롱함’이 맞물리는 작품”이란 작가의 자평은 자화자찬만은 아니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 피에로 플로(56)는 왕성한 소설가이자 화가이다. 대중소설과 본격문학에 양발을 걸치고 있으면서, 연극 대본과 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독특한 재능의 소유자다. 임헌 옮김, 원제 ‘Le Pacte des Loups’(2001년)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