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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7월 1일 18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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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도이치를 비롯한 초기 통합 이론가들이 국가 통합의 지표로 커뮤니케이션을 들면서 전화 TV 라디오 보급률과 함께 신문 구독률을 빠뜨리지 않았던 것도 그래서였다. 그들은 신문을 보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국가는 그렇지 못한 국가보다 더 통합돼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신문은 또한 정치발전의 수준을 가늠케 하는 지표로 활용되기도 했다. 후진국의 정치발전을 연구하는 일단의 계량주의 학자들은 국민소득, 문맹률 등과 함께 신문 구독률을 정치발전의 주요한 척도의 하나로 간주했던 것이다.
새삼 이런 얘기들을 떠올리는 것은 언론사에 대한 이 유례 없는 세무조사가 우리 사회의 통합, 곧 화합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서다.
세무조사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명백한 언론탄압”으로 보고 “끝까지 싸워달라”는 격려가 있는 반면 “반성부터 하라”는 질책도 있다.
격려와 질책의 경중을 따질 생각은 없다. 언론도 자성할 점이 있겠지만 이런 식의 세무조사는 액면 그대로 수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 이면엔 비판 언론에 대한 정치적 보복의 기도가 숨어있음을 누구나 안다.
그 의도가 어디에 있든 이번 세무조사는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의 분열 양상을 더 심화시키는 쪽으로 이미 기능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지역과 계층에 따라 이리 갈리고 저리 갈려있는 사회가 언론을 놓고 또 갈라지고 있다. 심지어는 신문과 방송, 신문과 신문이 대립 반목하는 사태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어떤 사안을 그 자체로 보지 않고 지역과 계층의 눈으로 보는 일은 이 정권 들어 흔한 일이 됐지만 세무조사로 사정은 더 악화되고 있다. 지역과 계층에 관계없이 심정적으로 DJ를 지지해 왔던 사람들마저도 고개를 돌리려고 하기 때문이다.
평소 스스로를 리버럴하다고 생각해 온 직장 동료 한 사람은 “이제 더 이상 미련을 갖지 않기로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정권 출범이래 DJ의 개혁정책을 앞장서서 지지했던 시민단체들 중에는 세무조사에 대한 명확한 입장 표명을 유보하고 있는 단체들도 있다. 이들마저 양 극단으로 나뉘면 굳어진 지역의 벽, 계층의 벽은 누가 허물까.
국가와 사회란 커뮤니케이션에 의해 유지 발전된다. 커뮤니케이션은 구성원들에게 정신적 문화적 동질성을 느끼게 하고 언제 어디에서나 자신이 가정과 사회, 그리고 정부와 통해있다는 마음을 갖게 한다. 이런 사회에서는 굳이 일사불란함을 말하지 않아도 된다.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나머지 과제는 사회적 통합이다. 김대통령 자신도 동서 화합, 계층 화합, 노사 화합의 필요성을 누누이 강조해 왔다. 대통령의 말이 아니더라도 이 시대를 사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우리 사회가 더 이상 갈라지고 찢겨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회적 통합이 정말로 필요한 때에 이 정권은 통합의 가장 유용한 수단인 언론을 찢어놓고 있다. 그것도 민주화 투쟁의 선봉에 섰던 신문을.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재호<정치부장>leej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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