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도로주 훈련에서 그는 10㎞, 20㎞는 물론 30㎞를 넘어서도 전혀 지친 기색이 없었다. 달리는 폼은 경쾌했고 얼굴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체계적인 훈련으로 몸이 만들어져 이젠 30㎞를 넘어서도 힘들다는 느낌이 없다. 근육에 탄력이 생겼고 유연하다는 감이 뛸 때마다 느껴진다.
30일 제주종합운동장에서 열린 30㎞ 지속주 훈련에선 5㎞를 15분05초∼15분10초대로 끊었다.
3월18일 서울에서 열리는 2001동아국제마라톤대회까지 46일 남은 상황에서 이 정도면 풀코스 2시간7분대 페이스.
이평송 상무 감독이 “너무 빨라, 속도를 줄여”라고 외칠 정도로 몸상태가 좋았다.
훈련을 마친 김이용은 “이제야 제 컨디션을 되찾은 것 같습니다”라며 오랜만에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었다.
“부상만 없다면 충분히 한국최고기록(이봉주 2시간7분20초)도 갈아치울 수 있을 것 같아요.” 김이용은 그 어느 때보다 자신감에 찬 모습이다.
이젠 뛸 무대만 있으면 된다. 자신의 건재를 보여주기 위해 선택한 것이 동아서울국제마라톤. 그는 94년 동아마라톤(8위)에서 마라톤에 데뷔했고 98년 대회에선 우승했다.
“나의 마라톤 인생을 이번 동아마라톤에 완전히 걸고 있습니다.” 그동안 동아마라톤만 6번이나 뛰며 한국 마라톤의 간판으로 자리잡은 김이용. 그가 동아마라톤을 재기의 도약대로 삼은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마음의 고향’같은 동아마라톤에서 좋은 기록으로 정상에 올라 8월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 제패의 디딤돌로 삼겠다는 각오. 이 때문에 지난해 말 제주도로 내려온 김이용은 동아마라톤 정복을 위해 주당 300㎞가 넘는 강훈련을 거듭해 왔다.
1m68, 54㎏으로 마라톤에 적합한 체격조건에다 천부적인 스피드와 심폐지구력, 순발력을 갖춰 94년 마라톤에 데뷔했을 때 ‘제2의 황영조’란 찬사를 들으며 한국 마라톤의 ‘차세대 주자’로 떠올랐던 김이용. 99년 4월 로테르담 마라톤에서 2시간7분49초로 역대 국내 2위의 기록을 세우기도 했지만 숱한 ‘암초’ 때문에 자칫 사그라질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전 소속팀 코오롱과의 갈등에 이은 결별, 이에 따른 갑작스러운 군입대, 올림픽 대표탈락,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고질적인 위장병과 부상 등이 잇따라 그의 발목을 잡아 근 2년간 부진의 나락을 헤맸던 것.
하지만 ‘독종’이란 별명은 괜히 붙여진 게 아니었다. 불굴의 의지로 옛기량을 되찾기 시작한 것이다. 3월18일 그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자못 궁금하다.
<제주〓양종구기자>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