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봉순이 언니(59)

  • 입력 1998년 7월 1일 19시 40분


그건 남자들은 잘 이해할 수 없는, 하지만 우리 여자들에게는 흔한 풍경이리라. 아마 함께 운다는 것은, 여자들이 함께 운다는 것은 그렇듯, 합리로는 설명해내기 힘든 그런 신비스러운 일이며, 그날 봉순이 언니와 미자 언니와 나의 울음도 그런 풍경 중의 하나 였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렇게, 우리가 제각기 이유없이 울고 있을 때,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 올 사람이 없는데 기웃거리며 미자 언니가 천천히 일어서려는데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봉순이 혹시 여기 있니?

어머니였다. 후다다닥, 재떨이를 치우고 미자 언니는 입에 달고 있던 담배를 비벼 껐지만 대문을 연 어머니가 중문을 밀고 들어오는 시간이 그보다 좀 더 빨랐다. 내가 주간지를 뒤로 감추었음은 물론이고 어머니의 시선을 비켜가며 봉순이 언니가 재떨이를 치웠지만, 마루에 놓인 술병과 술잔은 그대로였다. 커다란 들국화 문양만 비로드로 도드라지고 나머지는 연한 색깔인, 그 당시 유행하는 감색 춘추비로드 한복 차림의 어머니는 기가 막히다는 듯, 그 자리에 잠시 서 있다가

―짱아 데리고 얼른 집에 와라!

한마디만 하고는 나가버렸다. 봉순이 언니와 나는 난감한 표정으로 주섬주섬 신을 신고 집으로 돌아갔다. 어머니는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안방문을 밀면서 우리가 들어서는 것을 물끄러미 보다가, 한숨을 내리쉬고는, 짧게 말했다.

―집 비워두지 마라. 요새 동네에 좀도둑이 끓는단다.

하지만 봉순이 언니에게 가타부타 더 말이 없었던 어머니는 그날 저녁 나를 불러서, 앞으로 미자 언니네 집에 한번만 더 가면 엄마가 봉순이 언니와 나를 함께 내쫓아버릴 거라고 으름장을 놓아 다시 나를 울렸다. 아마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제 갓 스무살이 된 언니를 정말로 시집 보낼 구체적인 계획을 어머니가 세우기 시작한 것은. 그날 이후 어머니는 봉순이 언니를 바라볼 때마다, 어쩌면 좋지, 하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으니까.

―글쎄 애가 단단히 바람이 들었어. 어떨 땐 나도 무서워지는 거 있지. 예전에 알던 그 봉순이가 아니야. 짱아야 아직 어려서 그런다지만 영아나 준이 생각하면 안되겠어 그래, 네가 저번에 말한 그 사람 좀 잘 알아봐라, 아, 애 딸린 홀아비면 어떠니? 지 귀여워해주면 됐지. 얼굴 좀 못 생기면 어때? 뭐 남자 얼굴 뜯어먹고 살 일 있나? 다만 그저 봉순이 귀여워해주구 마음두 넓구 먹구 사는 걱정 안하구 그러면 돼… 그래 그렇긴 하다마는, 지가 어디 성한 처녀냐구. 그걸 생각해야지.

어머니는 모래내 이모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그렇게 말하곤 했다.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봉순이 언니는, 예전처럼은 아니지만 배도 들어가고 어느 정도 홀쭉해진 봉순이언니는 공연히 장난을 치면서 나한테 히히 웃기도 하고, 어머니 눈치를 살펴가며 가끔 미자언니네 집에 가서 담배도 얻어피우곤 했다.

언니는 다시 옛날로 돌아가는 듯했다. 언니가 점점 더 옛날을 되찾아감에 따라 나도 점점 더 회복되어 가고 있었다.

<글:공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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