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영

유재영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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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부터 정치, 사건, 검찰, 법원 담당 취재를 해오다 2014년부터 스포츠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스포츠에서도 영웅과 야인의 시대를 취재하겠습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스포츠의 위대함을 느끼게 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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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6-04-13~2026-05-13
교육53%
문화 일반17%
음악7%
경제일반7%
농구7%
기획3%
보건3%
축구3%
  • “고맙습니다”… 감사의 마음을 한 문장에

    가정의 달 5월을 앞두고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에게 미처 전하지 못한 고마움을 한 문장으로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다. 진심을 담은 한 줄이 사람 사이 온도를 끌어올릴지 주목된다. 교보생명 공익재단 교보교육재단은 2026년 전 국민 감사 캠페인으로 ‘마음을 전하는 글판’ 문안 공모를 진행한다고 29일 밝혔다.감사 캠페인은 자신의 성장을 도운 가족, 스승, 친구, 동료 등에 대한 고마움을 주변과 함께 나누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쉼 없이 길고 짧은 글을 올리지만 정작 속내를 표현하는 데는 서툰 시대, 진정성 가득한 글귀가 지닌 힘에 주목한 것이다.분주한 일상 탓에 잊고 지내던 소중한 사람에게 전하고픈 감사 메시지를 60자(띄어쓰기 포함) 이내로 작성해서 그 사람과의 사연과 함께 교보교육재단 홈페이지(https://www.kbedu.or.kr)에 접수하면 된다.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마감은 다음 달 6일까지다.대상 수상작은 5월 한 달간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 ‘온라인 글판’ 형태로 게시될 예정이다. 대상부터 장려상까지 총 87명에게 교보문고 기프트카드를 증정한다. 이와는 별도로 참가자 200명을 추첨해 커피 기프티콘도 제공한다.최화정 교보교육재단 이사장은 “감사는 표현할 때 더 큰 의미가 있고 삶이 더욱 따뜻해진다”며 “이번 캠페인을 통해 감사의 마음을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나누는 문화가 확산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학생 마음건강 교사 연수’ 해외서도 관심교보교육재단이 초중교 교사 대상으로 진행 중인 ‘학생 마음건강을 위한 교사 전문성 강화 직무 연수’ 프로그램이 해외에서 관심을 받고 있다. 다음 달 15일에는 대만 교육부 관계자와 푸런대 총장을 비롯한 18명이 교보교육재단을 방문해 연수 프로그램 운영 전반을 벤치마킹하고 성과를 공유할 예정이다.이 프로그램은 학생 정서와 심리 문제에 교사가 더 전문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높이기 위해 마련됐다. 정서적 회복을 바탕으로 학생과의 관계를 건강하게 형성하면서 교실에 지속 가능한 마음건강 지원 체계를 구축하자는 취지다. 앞서 이달 4일부터 12일까지 열린 30시간 과정 연수에는 서울시교육청 소속 교사 40명이 참여했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 2026-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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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I가 지식을 대신하는 시대… 교육은 몸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달 13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교육 분야 대정부질문. 천하람 개혁신당 원내대표가 김민석 국무총리에게 물었다.“총리님. 예전 초등학교 다니실 때 점심시간이나 방과 후에 축구 좀 해 보셨습니까?”“했죠.”천 원내대표는 바로 ‘교내에서 축구를 금지하는 초등학교가 늘었다’는 기사를 회의장 화면에 띄우고는 웃지 못할 학교 체육 현실을 얘기했다. 의원실이 각 지역 교육청에 확인한 결과, 전국 312개 초등학교가 점심시간과 방과 후에 학생 스포츠 활동을 막는다고 했다. 특히 부산은 관내 초등학교의 3분의 1인 105개교가 운동을 금지했다고 전했다.김 총리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어 답변대에 오른 최교진 교육부장관은 “운동장에서 운동하지 말라는 학교가 하나라도 있어서는 안 된다”며 상황을 바로 잡겠다고 했다.체육은 여전히 각급 학교에서 외면받고 있다. 초등학교서부터 학습을 방해하는 요소로 취급받는다. 학생 안전과 학부모 민원에 책임 부담까지 겹치며 학교는 아이들 몸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점점 묶고 있다. 인공지능(AI)이 생각까지 대신하려는 시대에 몸마저 움직이길 멈춘 학생들에게 학교는 무엇을 줄 수 있을 것인가. 달리지 않는 아이는 자라지 않는다. 학생들이 뛰지 못하는 학교에서 교육을 논할 자격이 있는 것일까. 어떻게 해야 학교 현장에서 체육이 다시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지식 전달과 정보 처리 능력이 인간 수준을 앞지르고 있는 AI 시대에 교육 전문가들은 학교가 더 이상 정답만을 제시하는 공간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몸의 교육’을 통해 통찰력과 지혜를 키우는 곳이 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동아일보는 ‘AI 시대, 학교 체육의 길을 묻고 답하다’라는 주제로 조벽 고려대 석좌교수(HD행복연구소 소장)와 오정훈 서울 구룡중 교장(대한체육회 학교체육위원회 위원장)의 긴급 대담을 마련했다. 조 교수는 ‘학생이 행복해야 진짜 교육이 완성된다’는 메시지를 던져 온 교육학자다. 국내외 많은 대학에서 교수들에게 교육 혁신을 강의하며 ‘교수를 가르치는 교수’로 잘 알려져 있다. 오 교장은 중고 체육 교사와 교육 전문직을 거치며 체육 교육 현실의 변화를 몸으로 겪어 왔다. 체육을 ‘곁가지 교과’가 아닌 교육 중심에 두기 위해 현장에서 애쓰는 체육 교육 리더다.두 사람은 16일 서울 종로구 부암동 조 교수가 소장으로 있는 HD행복연구소에서 만났다. 두 시간 가까운 대담에서 조 교수는 체육 교육의 큰 방향 전환을 주문했고, 오 교장은 학교에서 체육이 올바르게 자리 잡는 방법을 제시했다. 결론은 분명했다. AI가 인간의 지식 습득 기능을 대신할수록 교육은 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체육 교육의 위상을 높이자’는 주장은 물론 ‘몸을 통한 체험 교육’을 시작이라도 해 보자는 절박함까지 토로했다. 다음은 주요 대담 내용.―학생 평가까지 AI가 하는 시대에 학교에서는 무엇을 가르쳐야 하나.조벽 교수=지식 전달 시대는 사실상 끝났다고 본다. 과거에는 지식을 많이 가진 사람이 우대받았다. AI시대에서 지식의 가치는 공짜나 다름없다. 학교가 지식 전달 공간에 머물러 있으면 존재 가치는 떨어진다. 지금까지 초중고 교육 핵심은 정답 찾기, 즉 정해진 답을 더 빨리 정확하게 찾는 것이었다. 그런데 실제 사회에선 정답이 거의 없다. 필요한 것은 해답이다. 해답은 지식만으로는 얻을 수 없다. 지혜와 깨달음, 그리고 직관으로 얻는다. 통찰력이 필요하다. 학교는 ‘정답을 전달하는 곳’이 아니라 ‘해답을 길러내는 곳’으로 바뀌어야 한다.오정훈 교장=공감한다. 교육의 질적인 변화를 얘기할 때마다 공통적으로 창의성이 언급된다. 창의성은 다양한 경험과 체험에서 얻어지는 것이라고 본다. 결국 체육이 중요하다. 솔직히 현장에서 ‘체육 교사 출신이니까 저렇게 얘기하지’라는 선입견에 자주 부딪혔다. 시대가 달라졌다. 구룡중에선 학생들이 지역 마을 연계 체육 시간에 양재천을 따라 2km를 뛴다. 숨이 차면서도 친구와 보폭을 맞추며 완주하는 것에 교육의 본질이 담겨 있다. 학교는 ‘어떻게 살 것인지 몸으로 익히는 공간’이 돼야 한다. 학생들이 자기 몸과 친해지고 세상과 연결되는 경험을 하며 타인과 연대하는 법을 배우는 훈련장이 돼야 한다. 조벽 석좌교수 “체육은 몸으로 부딪히며 느끼면서 배우는 것”오정훈 교장 “스포츠는 몸-마음-지성을 동시에 키우는 밥”오정훈 구룡중 교장 “학교, 어떻게 살지 몸으로 익히는 곳AI는 인간 ‘땀 흘린 기억’ 못 만들어연결-연대-실천의 생태스포츠 제시패배 수용해 건강한 열등감 배워야체육은 ‘융합 교육의 허브’ 되어야”조벽 고려대 석좌교수 “학교, 정답 전달 아닌 해답 기르는 곳창의성-통찰력-영감은 내면의 소리소리 들으려면 몸 다스릴 줄 알아야체육은 체험, 몸으로 배우는 모든 것생(生)교육 개념으로 다 바뀌어야”조 교수=통찰력은 바깥에서 주입되는 게 아니다. 내 안에서 나오는 ‘내면의 소리’다. 여태까지 우리는 답을 바깥에서 찾는 데 익숙했다. 흔히 훌륭한 사람들에게 ‘아이디어는 어디서 나왔습니까’라고 물으면 결국 영감이나 통찰이라는 내면의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이것을 들으려면 자기 몸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몸이 건강할 때 깨달음을 맞이할 수 있다. 이런 감각을 깨우쳐 주는 교육이 중요하다. 체육이 그래서 중요한데, 우리 현실은 다소 아쉽다. 오 교장=철학자 메를로퐁티는 ‘우리는 몸으로 세계를 안다’고 말했다. 인간의 사고는 추상적 연산이 아닌 몸의 경험에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운동하다 넘어져서 무릎이 까진 기억, 처음으로 자전거를 탔을 때의 균형감, 800m를 완주했을 때 들이마신 공기. 이런 것들이 감정과 인지, 의지를 한꺼번에 형성한다. 교실 수업으로는 결코 닿을 수 없다. ‘체화된 인지’라고도 하는데, AI가 절대 대체할 수 없는 교육 영역이다. AI는 ‘땀 흘린 기억’을 만들 수 없다.―차별화된 체육 개념과 역할 정리가 필요하다.조 교수=보통 경험과 체험을 같은 뜻처럼 쓰는데 나는 명확하게 구분한다. 경험은 책을 통해 세상을 만나는 것이다. 성경 불경 할 때의 그 ‘경(經)’ 자를 쓴다. 인간이 지식을 만나는 주된 방식이 글과 책이었다. 반면 체험은 몸을 통해 세상을 만나는 것이다. 교육학적으로 경험은 형식지(形式知)에 가깝고, 체험은 암묵지(暗默知)에 가깝다. 몸으로 부딪히고 느끼면서 배우는 것이 암묵지다. 그런데 한국 교육은 책을 통해 배우는 것, 즉 경험만 교육으로 여겨왔다. 체험은 뒤로 밀렸다. 체육의 본래 의미는 체험의 교육에서 찾아야 한다. 한국에선 체육이 스포츠, 경기, 운동 기능 정도로 축소돼 있다. 몸으로 배우는 모든 것을 체육으로 봐야 한다.오 교장=그래서 생태 스포츠 교육을 제안했다. 여기서 생태는 관계 개념이다. 스포츠를 위한 교육이 아닌 스포츠를 통한 교육이다. 연결, 연대, 실천의 가치를 포함한다. 스포츠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과 연결된 관계적 존재다. 스포츠가 세상을 바라보는 창 역할을 할 수 있다. 해외 포럼에서 생태 얘기를 했더니 역시 에코(eco)를 떠올리더라.오 교장은 신체 활동을 통한 관계, 건강, 정서, 회복력, 삶과 연결하는 교육으로 체육을 확장해야 한다며 체덕지(體德智) 일체론을 강조한다. 몸을 움직여 관계, 감정, 판단, 규칙을 배우고 스스로 성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몸이 지성과 인성으로 이어져 건강, 생각, 마음의 근육이 키워진다는 게 핵심이다. 조 교수=오 교장의 생태는 에코보다는 더 넓은 통합과 연결 개념이 들어 있다고 본다. 유럽 등에선 영어로 ‘코히어런스(Coherence)’ 같은 개념으로 통할 것 같다. 조화, 통일의 뜻인데 여러 영역이 조율된다는 것이다. 우리 말로는 ‘정합’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오 교장은 체육을 ‘운동장머리’ 교육이라고 했다.오 교장=‘밥상머리 교육’이라는 말이 있다. 가정에서 인성과 태도를 가르치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그런 교육 공간은 운동장이다. 학생들이 정서적으로 교감하고 자기를 발산하면서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배우는 공간이다.―체육은 대학입시 구조의 벽을 넘기 쉽지 않다.조 교수=경험에 의존하는 시험과 입시가 교육을 쥐고 흔들고 있기 때문에 몸으로 배우는 건 밀릴 수밖에 없다. 교육이 이대로 가면 안 된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고 있다. 다만 입시 제도가 바뀐다 해도 지금 방식으로는 학교 체육 활성화를 기대하긴 어렵다. 체육에는 게임과 놀이 원리가 있다. 게임은 결과 중심이다. 상대는 이겨야 할 적이다. 규칙도 어떻게든 나에게 유리하게 쓰려는 전략의 일부다. 승자 한 명을 위해 다수의 패자가 나온다. 반면 놀이는 과정이 중요하다. 이기고 지는 게 핵심이 아니다. 상대를 존중해야 놀이가 지속된다. 규칙은 즐거우려고 만든다. 한국 체육 교육은 게임 원리에 지배받고 있다고 본다. AI 시대에 필요한 체험, 통찰, 지혜, 암묵지와 연결되기 어렵다. 놀이 원리를 받아들이지 않고는 근본적으로 체육이 학교에 정착하기 어려울 것이다.오 교장=교육에서도 공정을 말할 때 정량 평가를 중요시한다. 당연히 국영수가 중심일 수밖에 없다. 능력주의가 결합하면서 체육이 추구하는 가치와는 큰 괴리가 생겼다. ‘어떤 사람을 기를 것인가’에 대한 합의도 없다. 만약 불확실한 세상을 뚝심 있게 헤쳐 나가는 사람을 기른다면 교육의 중심에 체육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체육만큼은 기능 교육으로 보면 안 된다고 주장해 왔다. 물론 체육 일부는 정량화할 수 있고, 해야 한다. 50m 달리기 기록, 체력 수준, 운동 습관 지속성 같은 데이터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체육의 핵심 가치는 정량화 밖에 있다. 우리 중학교에선 학생들에게 스포츠 가치 실천 선언을 받는다. 정정당당하게 임하겠다, 지더라도 수용하겠다, 규칙을 지키겠다, 상대를 존중하겠다는 내용이다. 패배를 받아들이고 아름답게 지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늘 순위로 줄 세워지지만 운동장에선 다르다. 마음 놓고 실패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남에게 져도 된다. 그러면서 건강한 열등감을 배운다. 이 열등감은 성장의 자극이 된다.―체육 교육은 몸의 첫 방어 체계라고 할 수 있다.조 교수=AI한테 매일 학교, 학원, 집만 ‘뺑뺑이’ 돌며 죽은 듯 공부만 하는 우리 학생들 모습을 그려 달라고 했다. AI가 거부하더라. ‘아동 학대라 그려줄 수 없다’고 했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한다. 공부를 죽어라 해도 직업에 대한 희망이 자주 사라지고 불확실한 미래를 느낄 것이다. 이때 스트레스는 감당 못할 수준으로 커질 수 있다. 이를 풀어 내는 방법을 학교에서 체득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온몸을 파고든 스트레스는 오감으로 느낀다. 몸의 방어 체계가 잡혀 있지 않으면 완전히 무너진다. 10년도 훨씬 전에 국가 학교폭력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중학생들은 ‘죽고 싶다’는 말을 한다고 들었다. 그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요즘은 초등학생들 입에서 ‘누굴 죽이고 싶다’는 말이 나온다고 한다. 보통 일이 아니다. 식생활 변화에 비만과 당뇨병이 일찍 오는 학생도 많다. 정신적 부담이 이중, 삼중으로 늘어나면서 최악의 스트레스로 갈 수 있다. 지금 대비해야 한다.오 교장=그동안 체육 활동을 양적으로 늘리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단순 논리로 접근했다. 학생들을 더 뛰게 하면 스트레스와 폭력이 줄어들 줄 알았다. 학생들 마음이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시간만 때우며 ‘노는 것’이 아니라 구조화된 ‘놀이’를 해야 한다. 거기서 성찰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체육 교육을 질적으로 전환하지 못 했던 점이 아쉽다.―지금까지는 체육을 다른 교과와 대등하게 대해 달라고 호소했다. 모두가 ‘체육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교육’이라고 인정할 정도로 설득해야 한다. 조 교수=체육의 언어로 체육이 중요하다고 말하면 국민을 설득하기 어렵다. 스포츠는 여전히 경쟁, 승패, 기록의 이미지가 강하다. 다른 프레임으로 접근해야 한다. 죽은 듯 앉아서 공부하는 것을 나는 ‘사교육’이라고 부른다. 사교육은 학교 밖 교육으로 통하지만, 나는 죽을 사(死) 자를 쓴다. 반대로 몸을 움직이며 배우는 것은 생(生)교육, 살아 있는 교육이다. 살아 있는 교육은 몸을 움직이고 체험하고 관계 맺는 교육이다. 개념 변화 없이 체육을 봐 달라고만 하면 환영받기 어렵다. 공교육, 사교육 구분은 중요하지 않다. 살아 있는 교육이냐 죽어 있는 교육이냐, 선택이 필요하다.오 교장=현장에서 ‘스포츠는 밥이다’라는 말을 쓴다. 밥은 매일 먹어야 하고 편식하면 안 되며 먹지 않으면 쓰러진다. 몸과 마음과 지성을 동시에 키우는 이 ‘밥’을 우리는 오랫동안 반찬 취급만 하지 않았나 싶다. 경쟁 이미지가 주는 선입견 없이 ‘스포츠는 밥’이라는 말이 스며들게 할지 고민하다가 쓰리에스(3S), 즉 스포츠(Sports·건강, 신체 교육) 스터디(Study·학습, 독서 교육) 세이빙(Saving·생태, 공존 교육)을 학교 교육의 실천 과제로 삼게 됐다. 3S는 따로따로가 아니라 운동장에서 몸으로 배우고, 책상 앞에서 생각을 키우며, 자연과의 관계에서 공존을 익히는 하나의 흐름이다. 구룡중 모토가 ‘놀면서 배우고 즐겁게 성장하는 학교’다. 처음엔 ‘논다’는 말이 공부 안 시키겠다는 뜻으로 읽힐까 걱정했다. 학부모들은 학교가 학원과 똑같을 필요는 없다며 공감해 주더라. ―조 교수께선 대담 내내 5년의 변화를 확신했다. 조 교수=지금 교육이 한계라는 걸 학부모도, 교사도, 학생도 안다. 그런데 ‘나만 이탈하면 손해 볼 것 같다’는 불안 때문에 관성적으로 버틴다. 그런데 AI가 더 깊이 생활 속에 들어오면 공부 잘해도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게 될 것이다. 체험 중심 교육 5년 전략을 세우자는 것이다. 단계적으로 설득하면 변화가 올 것이라고 본다. 한국은 위기에 강한 나라다.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때 정부 예산을 삭감하면서도 교육 예산은 늘렸다. 그 돈으로 학교에 컴퓨터를 놓고 인터넷을 깔아 교사들이 ICT(정보통신기술) 실무 훈련을 받을 수 있었다. 이것이 2000년대 초반 디지털 전환의 기초가 됐다. AI 시대에도 그런 결단이 나올 수 있다. 모두 준비해야 한다. 게임 중심, 경쟁 중심 체육은 환영받지 못한다. 체험 중심 교육, 생교육, 놀이 원리, 몸 교육이라는 개념을 5년 동안 사회에 스며들게 해야 한다. 이것은 인간다움을 지키는 문제다.오 교장=현장 평가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과정과 태도, 공동체적 기여를 포함한 다면평가로 전환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체육 교사 역할도 새롭게 정의돼야 한다. 교육 과정에서 체육이 융합 교육 허브가 돼야 한다. 체육이 모든 교과를 연결하는 실이 되는 과정을 설계해야 한다. 다행히 체험의 중요성을 받아들이는, 뜻있는 교사가 늘고 있다.조벽 교수1956년생미국 노스웨스턴대 기계공학 석·박사미시간 공대 교수 역임현 고려대 석좌교수 겸 HD 행복연구소 소장EBS 다큐프라임 ‘세계 최고의 교수’ 9인에 선정교육부 정책자문위원미래인재포럼 위원 및국가 학교폭력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역임오정훈 교장1965년생서울대 체육교육과 졸업서울체육중 교감이수중 교장서울시교육청 체육건강문화예술과 과장서울시동작관악교육지원청 교육장 역임현 서울 구룡중 교장대한체육회 학교체육위원회 위원장 및사단법인 한국체육진로교육협회 회장정리=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 2026-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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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잉아트, ‘나다 아트페어’ 참여… 스페인 작가 알레그레 회화 소개

    갤러리 도잉아트(대표 정승희)가 다음 달 13일부터 17일까지 미국 뉴욕 첼시 스타렛리하이 빌딩에서 열리는 아트페어 ‘나다(NADA) 뉴욕 2026’에 참가한다. 동시대 미술의 새로운 흐름과 실험성을 조명하는 나다 아트페어에서 도잉아트는 스페인 작가 바르바라 알레그레 작품을 선보인다. 영국 런던 왕립예술학교에서 배운 알레그레는 유럽을 중심으로 인간과 자연 요소를 교차시키며 존재 사이의 연결과 공존 가능성을 탐구하는 작품을 창작하고 있다. 나다 아트페어에서는 자유로운 색과 형태의 배열과 반복을 통해 질서를 만드는 회화들을 소개한다. 도잉아트는 나다 아트페어를 통해 글로벌 컬렉터 및 미술 관련 기관들과의 교류를 확대할 계획이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 2026-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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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티기 위해 시작한 노래가 누군가의 삶을 지켜내는 힘이 됐어요”

    # 바나나는 늘 오빠 몫이었다남아 선호가 확실한 친할머니와 살았다. 아빠, 엄마는 맞벌이를 해서 할머니와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할머니는 나보다 오빠를 더 챙겼다. 귀한 바나나는 오빠 입에만 있었다. 따끔하게 야단 맞는 게 무서워 몰래 밖에 나가 놀이터 구석에 숨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던 엄마는 시어머니와 딸이 함께 있는 시간을 줄이려고 딸을 온갖 학원으로 돌렸다. 넉넉한 형편이 아닌데 딸을 온갖 학원으로 돌렸다. 서예, 십자수, 수영, 웅변까지 안 배운 게 없다. 잔뜩 움츠려 기를 못 펴던 딸은 유독 피아노를 치며 노래할 때 편안했다. 엄마는 그런 딸을 예술중학교로 보냈다. 선화예중 3학년 때, 딸은 자신에게 ‘노래 DNA’가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 시험에서 국창(國唱) 임방울 선생(1904~1961)에 대한 주관식 문제가 나왔는데 틀렸다. 엄마는 백과사전을 들고 오라고 했다. 알고보니 명창은 엄마의 아버지, 즉 딸의 외할아버지였다. 10살 때 아버지를 여읜 엄마는 재능이 있었음에도 외할머니(한애순 광주 판소리 무형문화재 1호)의 반대로 국악을 하지 않았다. 외할머니는 남편의 힘든 삶이 자식에게 물려지지 않길 바랐다. 음악을 포기한 엄마는 딸에게 꿈을 넘겼다.딸, 소프라노 박성희에게 노래는 운명이다. 노래는 말 수 적고 수줍음 많던 그에게 숨이 되는 유일한 통로였다. “대학(이화여대 성악과)에 가서도 ‘프리마돈나’의 꿈은 없었어요. 노래는 그저 도피처였어요. 늘 기가 죽어 있는 저를 유일하게 세상에 보여줄 수 있는 게 노래였어요. 노래만 하면 가슴이 뚫렸어요. 그렇게 ‘지금’을 살고 싶다는 마음 뿐이었죠.”노래를 부르면 치유가 되는 나에게만 집중했다. 거창하게 뭘 해보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졸업 직전까지는.# 두 번 마주한 한계 … 소리를 버리고 다시 배우다“메조소프라노 김신자 선생님(전 이화여대 성악과 교수)과 등산을 하는데 대뜸 ‘하늘이 너에게 주신 기막힌 목소리로 인생 한 번 걸어보는 건 어때?’라고 하셨어요. 그 말이 계속 뇌리에서 맴돌았어요.”처음으로 내 목소리를 갈고 닦아 나눠주고 싶고, 노래로 얘기하고 싶었다. 졸업 후 무작정 짐싸서 이탈리아로 날아갔다. 자신있게 이탈리아 밀라노 국립음악원 시험을 봤다. 현실은 냉정했다. 첫 해 떨어졌다. “말과 역사가 다른 곳이잖아요. 단 번에 인정을 받겠다고 자신한 것 자체가 욕심이었죠. 그 때 알았어요. 노래도 세월이 필요하다는 것을요.”이탈리아 언어와 역사, 문화 공부를 했다. 두 번째 도전. 인터뷰에서 ‘이 나라에 정말 잘 스며들고 싶다’고 했다. 그들 정서에 관통했다. 합격이었다. 노래를 제대로 잘 할 일만 남았다. 그래서 이탈리아 전국으로 성악의 대가(大家)들을 찾아다녔다. 자존심이 또 한 번 무너질 수 있었지만 버틸 각오를 했다. “그러다 렌초 카셀라토라는 선생님을 만났어요. 그 분이 절 보더니 다짜고짜 밥을 차려주더라고요. 보통 선생님들은 칭찬을 먼저 하는데 달랐어요. 하지만 이탈리아의 유명 테너가 자기를 찾아온 낮선 동양인 여학생에게 대접한 식사의 의미는 따로 있었다. ‘너는 여기서 성공할 수 없다’는 ‘돌려까기’였다.“이미 제 목소리가 한국적으로 굳어졌다는 거예요. 편한 발성의 출발점인 벨칸토 창법으로 바꾸기 어렵다고요. 냉정하게 한국으로 돌아가 다른 일을 찾아보라고 해요. 제가 희망이 없는지 계속 물으니까…쐐기를 박더라고요.”‘정 그렇다면 2년 동안 노래하지 말라’고 했다. 그 어렵다는 국립음악원에 들어갔는데, 이해하기 힘들었다. 받아달라고 몇 번이고 다시 렌초 선생님을 찾아갔다. “그 할아버지 선생님이 자기 친구가 하는 시골 농장에 데려갔어요. 농장서 기르는 소를 가르키더니 ‘음메’ 울음 소리부터 배워야 한다는 거예요.”그는 노래를 멈추고 ‘소리’를 다시 배웠다. 밀라노에서 렌초 선생님이 사는 아드리아로 이사갔다. 그곳 카페 아주머니 부부가 작은 동양인 소프라노 지망생을 딸처럼 예뻐했다. 아주머니가 만들어주는 카푸치노 한 잔이 좋아 늘 출근 도장을 찍고 음악과 조금 멀어져 평범한 일상을 살았다. 그러니 굳어 있던 발성이 하나씩 허물어졌다. 렌초 선생님은 그래도 칭찬을 해주지 않고 ‘너의 꿈을 응원한다’고만 했다. 그렇게 2년을 보내고 나간 첫 콩쿠르에서 생애 첫 1등. 정통 이탈리아 발성이 스며든 그의 노래는 이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본격적으로 그는 유럽 주요 무대에 섰다. 동양인 최초로 이탈리아 최고 음악 학위 과정인 ‘코르소 비엔니오’를 취득했다. 수많은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했다. 오페라 ‘마술피리’, ‘라보엠’, ‘리골레토’, ‘라트비아타’ 등에선 주역을 맡았다. 흘러흘러 한국의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라는 수식어가 이름 앞에 붙었다. “좌절하고 조롱받았던 시간이 오히려 기회가 됐어요. 그 과정이 없었다면 금방 매너리즘에 빠졌을 거예요.”# 내 상처를 이해하니 다른 사람 결핍이 보였다비로소 어린 시절의 외로움, 결핍의 기억을 긍정적으로 품는 여유가 생겼다. 버거웠던 할머니가 착한 소녀로 보였다. 할머니의 딱한 인생도 보였다. 6 ּ 25 전쟁 때 남편 잃고 아들을 어렵게 키웠으니 애착이 얼마나 컸을까. 장남을 너무 사랑해 며느리와 손녀에겐 본심이 차갑게 나오지 않았나 싶다. 그제야 알았다. 할머니도 그만큼 힘들게 살아온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조금 거친 방식으로 손녀의 울타리가 되어주려 했던 것을. 할머니가 매일 기도해준 것도 생각이 났다. 받아들이니 숨지 않고 할머니 곁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 “투병하신 할머니가 집에서 요양을 했는데 돌아가시기 전날 제가 거품 목욕을 시켜 드렸어요. 욕조에서 제 손을 꼭 잡고 좋다고 웃으셨는데 그런 예쁜 미소를 처음 봤어요. 냄새 나는 내복도 버리고, 예쁜 옷으로 갈아 입혀 드렸죠. 편하게 침대에서 잠을 재워드리고 ‘내일 올게요’라며 집을 나섰는데, 다음 날 새벽 4시에 세상을 떠나셨다고 연락이 왔어요. ‘할머니, 고마웠어요’라는 생각 밖엔 안 들더라고요.”#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부모없는 아이들을 위해 깨우침을 얻고 활동하던 중, 부모없이 보육원에서 자란 여학생들을 품을 기회가 생겼다. 9년 전 한 천주교 신부가 부탁을 했다. 어려운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쳐달라고. 아이들의 결핍을 채우는 일이었지만 처음엔 선뜻 응하지 못했다. “어쩌면 내 모습이 아이들에게 화려하게 보여질까 걱정되더라고요. 자기 처지와 비교가 될테고, 마음의 상처가 될까봐 망설여졌어요.”2020년 신부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자신의 노력으로 경기도 가평에 ‘노비따스음악중고등학교’라는 대안학교를 개교했다는 소식이었다. 외면할 수 없었다. 전국 각지 보육원에서 모인 10대 소녀들 12명 중 노래에 관심이 있다고 한 4명을 품으로 들였다.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 잖아요. 처음엔 저도 믿지 않더라고요. 선물을 사줘도 챙기지 못하고 잃어버렸어요. 자기 것을 챙겨본 경험이 없으니까요.”소녀들은 기본적인 일상조차 낯설어 했다. 계절에 맞게 옷 입는 것부터 알려줬다.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와 된장찌개와 비빔밥을 만들어 먹였다. 집밥을 처음 먹는 모습이 안 쓰러웠다. 그러다 무심코 봤다. 아이들이 창밖으로 보이는 다른 아파트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것을. “세상과 벽을 치고 있더라고요. 사람과 눈을 마주친 경험도 없었고요. 그걸 하나씩 허물어주고 싶었어요.”그들에겐 성악보다 삶을 가르친 것 같다. 이탈리아에도 데려가 넓은 세상을 보여줬다. 세상을 조금씩 알아가면서 표정이 환해졌다. 올해, 4명 중 두 명이 이화여대와 삼육대 성악과에 합격했다. 출신 보육원에는 플래카드가 걸렸다. 누가 내 존재를 알아주고 ‘엄지 척’해주는 게 아이들에겐 처음이었다. 후원과 장학금을 전부 학교에 연결하고 있는 그는 말한다. “저도 아이들의 삶 하나 하나를 들여다보면서 배운 게 많아요. 성인 나이로 세상에 나갈 때 결핍이 느껴지지 않도록 도와주고 싶어요. 아이들이 세상에 어떤 사랑을 가져다줄지 기대돼요.”# 삶을 노래하는 미래는 ‘기적’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의 결핍을 메우는 계획을 줄지어 잡고 있다. 올해 6월 6일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서 주연으로 나서고 7, 8월에는 유럽 공연 투어를 진행한다.‘국창’ 임방울 선생의 울림은 세대를 건너 외손녀에게 이어져 또 어디론가 널리 스며들고 있다. 판소리에서 오페라로, 그리고 다시 자신의 DNA를 모르고 살아온 아이들의 목소리로. “이렇게 삶의 울림을 노래로 전하면 세계의 소리로 가는 연결 고리가 되지 않을까요. 외국인들이 한국 특유의 한(恨)과 정(情)이 담긴 소리를 배워 부른다면 그게 진짜 케이 팝(K-POP)일 것 같아요.”자신이 이탈리아 시골에서 원조 서양의 소리를 얻은 것처럼 말이다. 국악을 배우려는 외국인들이 있다면, 한 번쯤 한국 시골에 가서 소들의 울음 소리를 들어보라고 얘기할 자격이 그에겐 있다. “치열하게 부딪히고, 혹독하게 무너진 경험 덕분에 세상 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노래가 풍성해졌어요. 우리 여성들은 여러 일을 할 수 있는 ‘멀티 태스킹’ 능력이 좋고 인내심도 강해요. 버티면 뭐든지 기적을 이뤄낼 수 있어요.”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 2026-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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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티기 위해 시작한 노래가 누군가의 삶을 지켜내는 힘이 됐어요“

    >> 바나나는 늘 오빠 몫이었다남아 선호가 확실한 친할머니와 살았다. 아빠, 엄마는 맞벌이를 해서 할머니와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할머니는 나보다 오빠를 더 챙겼다. 귀한 바나나는 오빠 입에만 있었다. 따끔하게 야단 맞는 게 무서워 몰래 밖에 나가 놀이터 구석에 숨었다.초등학교 선생님이던 엄마는 시어머니와 딸이 함께 있는 시간을 줄이려고 딸을 온갖 학원으로 돌렸다. 서예, 십자수, 수영, 웅변까지 안 배운 게 없다. 잔뜩 움츠려 기를 못 펴던 딸은 유독 피아노를 치며 노래할 때 편안했다. 엄마는 그런 딸을 예술중학교로 보냈다. 선화예중 3학년 때, 딸은 자신에게 ‘노래 DNA’가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 시험에서 국창(國唱) 임방울 선생(1904∼1961)에 대한 주관식 문제가 나왔는데 틀렸다. 엄마는 백과사전을 들고 오라고 했다. 알고보니 명창은 엄마의 아버지, 즉 딸의 외할아버지였다. 10살 때 아버지를 여읜 엄마는 재능이 있었음에도 외할머니(한애순 광주 판소리 무형문화재 1호)의 반대로 국악을 하지 않았다. 외할머니는 남편의 힘든 삶이 자식에게 물려지지 않길 바랐다. 음악을 포기한 엄마는 딸에게 꿈을 넘겼다.딸, 소프라노 박성희에게 노래는 운명이다. 노래는 말수 적고 수줍음 많던 그에게 숨이 되는 유일한 통로였다. “대학(이화여대 성악과)에 가서도 ‘프리마돈나’의 꿈은 없었어요. 저를 유일하게 세상에 보여줄 수 있는 게 노래였어요. 노래만 하면 가슴이 뚫렸어요. 그렇게 ‘지금’을 살고 싶다는 마음 뿐이었죠.”노래를 부르면 치유가 되는 나에게만 집중했다. 거창하게 뭘 해보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졸업 직전까지는. >> 두 번 마주한 한계 … 소리를 버리고 다시 배우다“메조소프라노 김신자 선생님(전 이화여대 성악과 교수)과 등산을 하는데 대뜸 ‘하늘이 너에게 주신 기막힌 목소리로 인생 한 번 걸어보는 건 어때?’라고 하셨어요. 그 말이 계속 뇌리에서 맴돌았어요.”처음으로 내 목소리를 갈고 닦아 나눠주고 싶고, 노래로 얘기하고 싶었다. 졸업 후 무작정 짐싸서 이탈리아로 날아갔다. 자신있게 이탈리아 밀라노 국립음악원 시험을 봤다. 현실은 냉정했다. 첫 해 떨어졌다.“말과 역사가 다른 곳이잖아요. 단 번에 인정을 받겠다고 자신한 것 자체가 욕심이었죠. 그 때 알았어요. 노래도 세월이 필요하다는 것을요.”이탈리아 언어와 역사, 문화 공부를 했다. 두 번째 도전. 인터뷰에서 ‘이 나라에 정말 잘 스며들고 싶다’고 했다. 그들 정서에 관통했다. 합격이었다. 노래를 제대로 잘 할 일만 남았다. 그래서 이탈리아 전국으로 성악의 대가(大家)들을 찾아다녔다. 자존심이 또 한 번 무너질 수 있었지만 버틸 각오를 했다.“그러다 렌초 카셀라토라는 선생님을 만났어요. 그 분이 절 보더니 다짜고짜 밥을 차려주더라고요. 보통 선생님들은 칭찬을 먼저하는데 달랐어요.” 하지만 이탈리아의 유명 테너가 자기를 찾아온 낮선 동양인 여학생에게 대접한 식사의 의미는 따로 있었다. ‘너는 여기서 성공할 수 없다’는 ‘돌려까기’였다.“이미 제 목소리가 한국적으로 굳어졌다는 거예요. 편한 발성의 출발점인 벨칸토 창법으로 바꾸기 어렵다고요. 냉정하게 한국으로 돌아가 다른 일을 찾아보라고 해요. 제가 희망이 없는지 계속 물으니까…쐐기를 박더라고요.”‘정 그렇다면 2년 동안 노래하지 말라’고 했다. 그 어렵다는 국립음악원에 들어갔는데, 이해하기 힘들었다. 받아달라고 몇 번이고 다시 렌초를 찾아갔다. “그 할아버지 선생님이 자기 친구가 하는 시골 농장에 데려갔어요. 농장서 기르는 소를 가르키더니 ‘음메’ 울음 소리부터 배워야 한다는 거예요.”그는 노래를 멈추고 ‘소리’를 다시 배웠다. 밀라노에서 렌초 선생님이 사는 아드리아로 이사갔다. 그곳 카페 아주머니 부부가 작은 동양인 소프라노 지망생을 딸처럼 예뻐했다. 아주머니가 만들어주는 카푸치노 한 잔이 좋아 늘 출근 도장을 찍고 음악과 조금 멀어져 평범한 일상을 살았다. 그러니 굳어 있던 발성이 하나씩 허물어졌다. 렌초 선생님은 그래도 칭찬을 해주지 않고 ‘너의 꿈을 응원한다’고만 했다. 그렇게 2년을 보내고 나간 첫 콩쿠르에서 생애 첫 1등. 정통 이탈리아 발성이 스며든 그의 노래는 이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본격적으로 그는 유럽 주요 무대에 섰다. 동양인 최초로 이탈리아 최고 음악 학위 과정인 ‘코르소 비엔니오’를 취득했다. 수많은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했다. 오페라 ‘마술피리’, ‘라보엠’, ‘리골레토’, ‘라트비아타’ 등에선 주역을 맡았다. 흘러흘러 한국의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라는 수식어가 이름 앞에 붙었다.“좌절하고 조롱 받았던 시간이 오히려 기회가 됐어요. 그 과정이 없었다면 금방 매너리즘에 빠졌을 거예요.”>> 내 상처를 이해하니 다른 사람 결핍이 보였다비로소 어린 시절의 외로움, 결핍의 기억을 긍정적으로 품는 여유가 생겼다. 버거웠던 할머니가 착한 소녀로 보였다. 할머니의 딱한 인생도 보였다. 6·25 전쟁 때 남편 잃고 아들을 어렵게 키웠으니 애착이 얼마나 컸을까. 장남을 너무 사랑해 며느리와 손녀에겐 본심이 차갑게 나오지 않았나 싶다. 그제야 알았다. 할머니도 그만큼 힘들게 살아온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조금 거친 방식으로 손녀의 울타리가 되어주려 했던 것을.할머니가 매일 기도해준 것도 생각이 났다. 받아들이니 숨지 않고 할머니 곁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 “투병하신 할머니가 집에서 요양을 했는데 돌아가시기 전날 제가 거품 목욕을 시켜 드렸어요. 욕조에서 제 손을 꼭 잡고 좋다고 웃으셨는데 그런 예쁜 미소를 처음 봤어요. 냄새 나는 내복도 버리고, 예쁜 옷으로 갈아 입혀 드렸죠. 편하게 침대에서 잠을 재워드리고 ‘내일 올게요’라며 집을 나섰는데, 다음 날 새벽 4시에 세상을 떠나셨다고 연락이 왔어요. ‘할머니, 고마웠어요’라는 생각 밖엔 안 들더라고요.”>>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부모없는 아이들을 위해깨우침을 얻고 활동하던 중, 부모없이 보육원에서 자란 여학생들을 품을 기회가 생겼다. 9년 전 한 천주교 신부가 부탁을 했다. 어려운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쳐달라고. 아이들의 결핍을 채우는 일이었지만 처음엔 선뜻 응하지 못했다. “어쩌면 내 모습이 아이들에게 화려하게 보여질까 걱정되더라고요. 자기 처지와 비교가 될테고, 마음의 상처가 될까봐 망설여졌어요.”2020년 신부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자신의 노력으로 경기도 가평에 ‘노비따스음악중고등학교’라는 대안학교를 개교했다는 소식이었다. 외면할 수 없었다. 전국 각지 보육원에서 모인 10대 소녀들 12명 중 노래에 관심이 있다고 한 4명을 품으로 들였다.“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 잖아요. 처음엔 저도 믿지 않더라고요. 선물을 사줘도 챙기지 못하고 잃어버렸어요. 자기 것을 챙겨본 경험이 없으니까요.”소녀들은 기본적인 일상조차 낯설어 했다. 계절에 맞게 옷 입는 것부터 알려줬다. 그는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와 된장찌개와 비빔밥을 만들어 먹였다. 집밥을 처음 먹는 모습이 안 쓰러웠다. 그러다 무심코 봤다. 아이들이 창밖으로 보이는 다른 아파트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것을. “세상과 벽을 치고 있더라고요. 사람과 눈을 마주친 경험도 없었고요. 그걸 하나씩 허물어주고 싶었어요.”그들에겐 성악보다 삶을 가르친 것 같다. 이탈리아에도 데려가 넓은 세상을 보여줬다. 세상을 조금씩 알아가면서 표정이 환해졌다. 올해, 4명 중 두 명이 이화여대와 삼육대 성악과에 합격했다. 출신 보육원에는 플래카드가 걸렸다. 누가 내 존재를 알아주고 ‘엄지 척’해주는 게 아이들에겐 처음이었다.후원과 장학금을 모두 학교에 연결하고 있는 그는 말한다. “저도 아이들의 삶 하나 하나를 들여다보면서 배운 게 많아요. 성인 나이로 세상에 나갈 때 결핍이 느껴지지 않도록 도와주고 싶어요. 아이들이 세상에 어떤 사랑을 가져다줄지 기대돼요.”>> 삶을 노래하는 미래는 ‘기적’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의 결핍을 메우는 계획을 줄지어 잡고 있다. 올해 6월 6일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서 주연으로 나서고 7, 8월에는 유럽 공연 투어를 진행한다.‘국창’ 임방울 선생의 울림은 세대를 건너 외손녀에게 이어져 또 어디론가 널리 스며들고 있다. 판소리에서 오페라로, 그리고 다시 자신의 DNA를 모르고 살아온 아이들의 목소리로.“이렇게 삶의 울림을 노래로 전하면 세계의 소리로 가는 연결 고리가 되지 않을까요. 외국인들이 한국 특유의 한(恨)과 정(情)이 담긴 소리를 배워 부른다면 그게 진짜 케이 팝(K-POP)일 것 같아요.”자신이 이탈리아 시골에서 원조 서양의 소리를 얻은 것처럼 말이다. 국악을 배우려는 외국인들이 있다면, 한 번쯤 한국 시골에 가서 소들의 울음 소리를 들어보라고 얘기할 자격이 그에겐 있다.“치열하게 부딪히고, 혹독하게 무너진 경험 덕분에 세상 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노래가 풍성해졌어요. 우리 여성들은 여러 일을 할 수 있는 ‘멀티 태스킹’ 능력이 좋고 인내심도 강해요. 버티면 뭐든지 기적을 이뤄낼 수 있어요.”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 2026-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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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래식과 탱고, 팝페라를 한자리에서 만끽하다

    6월 세대와 장르를 아우르는 클래식 공연이 찾아온다. 클래식 공연 기획자이자 음악 해설사인 김숙진 단장의 킴스 오케스트라와 대한민국 대표 어린이 합창단 리틀엔젤스 콰이어가 한 무대에서 세대 공감을 전한다.6월 14일 경기 고양시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에서 열리는 킴스 오케스트라의 ‘청소년과 함께하는 김숙진의 이야기가 있는 콘서트’가 그것이다. 청소년과 학부모, 그리고 고양 시민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도록 구성된 해설형 클래식 콘서트다.공연은 김 단장이 직접 지휘하는 오프닝 무대로 문을 연다. 이어 소프라노 조수미의 전속 지휘를 맡고 있는 국내 정상급 지휘자 최영선이 킴스 오케스트라 연주를 이끈다. 반선경, 윤여훈, 한아름, 지준혁, 최진형 등 국내 정상급 성악가들이 익숙한 아리아를 들려 주고 리틀엔젤스 콰이어의 맑은 합창이 하모니를 이룬다. 세계적인 탱고 듀오 펠린 에르칸과 미겔 칼보의 화려한 춤과 팝페라 그룹 카르디오 팀의 공연까지 더해진다. 클래식에 춤과 퍼포먼스를 결합한 확장형 공연이 될 전망이다. 안성균 총감독이 전체적인 공연 완성도를 높인다.김 단장은 “음악은 세대를 잇는 가장 따뜻한 언어”라며 “아이부터 어른까지 함께 공감하고 소통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티켓은 17일부터 판매한다. 문의 고양문화재단(1577-7766).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 2026-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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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형 때문에 연세대 5번 입학”… 한 번은 인연, 두 번은 신뢰, 세 번은 운명 [유재영의 전국깐부자랑]

    깐부. ‘같은 편’, 나아가 ‘어떤 경우라도 모든 것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이’라는 의미의 은어(속어)죠. 제아무리 모두 갖춘 인생이라도 건전하게 교감하는 평생의 벗이 없다면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좋은 인간관계는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깐부들 사이에 피어나는 ‘같이의 가치’를 소개합니다.● 함께 숨 막히고 함께 버틴 날1995년 2월 13일.수많은 연세대 농구 동문 가운데 떼려야 뗄 수 없는 선후배인 둘은 자신들의 농구 인생에서 기억이 가장 선명한 순간으로 같은 날을 꼽는다. 이날이다.그날 둘은 서울 송파구 올림픽제1체육관에 있었다. 1994~1995 농구대잔치 8강 플레이오프 3차전이었다. 그 직전 시즌 ‘오빠부대’를 몰고 다니며 우승을 거머쥔 연세대는 이 시즌에도 잘나갔다. 정규리그 13전 전승 1위. 라이벌 고려대도 꺾었다. 8강 상대는 실업의 자존심 삼성전자였다. 고려대와의 경기에서 ‘야전사령관’ 이상민이 다쳐 공백이 생겼지만 ‘국보급 센터’ 서장훈이 있었기에 쉽게 고지를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전문가들은 2연패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 그런데 분위기가 묘하게 흘렀다. 삼성의 강한 압박에 2차전을 넘겨 줬다. 삼성은 3차전에서도 육탄 수비로 연세대를 괴롭혔다. 서장훈에게는 센터 3명이 돌아가며 거칠게 달라붙었다.전반전 막판 대형사고가 터졌다. 서장훈이 리바운드 경합 과정에서 상대 선수가 휘두른 팔꿈치에 목을 강하게 맞아 코트 바닥에 쓰러졌다. 한동안 일어나질 못했다. 온몸에 마비가 왔다. 더는 뛸 수 없었다. 팀 대들보가 실려 나가자 벤치 분위기는 얼어붙었다.당시 연세대 감독은 최희암 현 고려용접봉 부회장, 코치는 박건연 현 KOREA 3X3(KXO·한국3대3농구연맹) 회장이었다. 둘은 하프타임 때 어떻게든 분위기를 되살려야 했다. 최 부회장은 서장훈 대신 센터 구본근을 투입하며 스피드를 더 살리는 맞불 작전을 택했다. 박 회장은 응급처지를 받던 서장훈 상태를 살피면서 동시에 선수들이 과열된 경기 흐름에 휘말리지 않도록 계속 다독였다.깜짝 활약을 펼친 구본근의 분전에도 연세대는 졌다. 4강 진출 좌절. 그런데 더 급박한 일이 벌어졌다. 에너지를 다 쏟아낸 구본근이 경기 후 구토를 하더니 탈진해 버렸다. 호흡 곤란 증세가 왔다.“본근아, 정신 똑바려 차려. 정신 차려.”박 부회장은 소리치며 구본근의 몸 여기저기를 멍이 들 정도로 꼬집고 때렸다. 경기장 밖에선 소녀팬들이 울고불고 난리였다. 간이 산소호흡기에 의존한 채 구본근은 급히 병원으로 이송됐다. 최 부회장은 박 회장에게 상황 정리를 맡기고 인터뷰를 했다.“승패를 떠나 잘 싸워 준 선수들에게 고맙다. 스코어에선 졌지만 경기에선 이겼다고 본다. 패배에 대해선 입이 열 개라도 할 말 없다.”마음 같아선 동업자 정신의 문제를 강하게 지적하고 싶었다. 하지만 눌렀다. 선수 부상도 결국 감독 책임이라고 여겼다. 당시만 해도 술을 거의 입에 대지 않던 최 부회장은 그날 술을 마셨다고 한다. 다친 선수들에 대한 걱정과 패배의 충격이 컸다. 병원 밖에서 눈물을 흘렸다는 얘기도 퍼졌다.당시 혼자 벤치를 지키고 있었다면 그 상황을 어떻게 넘겼을까 싶다. 그래서 2월 13일은 최 부회장과 박 회장이 함께 숨막히고 함께 버티며 서로 통했던 날이다.“그날 내가 앞에서 방향을 잡고 건연이 네가 뒤에서 팀을 붙잡았어.”● 지금도 둘 사이엔 농구가 먼저다둘이 만나면 인사는 짧고 안부는 생략된다. 매일 전화하고 자주 보는 사이다. 무조건 농구 얘기가 먼저다.“요즘 프로농구에서 센터들이 왜 3점슛을 아끼는지 모르겠어. 못 던지게 하는 건가?”(최희암)‘영원한 연세대 감독’이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은 최 부회장은 박건연 회장 앞에서는 하고 싶은 말을 다 한다.“센터가 상대 센터를 끌어내려면 3점슛을 더 잘 쏴야 하지 않아?”(최희암)편하게 최 감독, 박 코치라고 하자.“요즘 픽앤드롤(공격자 2명이 스크린을 활용해 득점 기회를 만드는 전술) 수비도 그래. 다 스위치(수비 상대를 서로 바꾸는 것)를 하더라고. 예전에는 ‘파이트스루’라고 해서 상대 스크린이 오면 수비가 그대로 뚫고 나가 공 가진 상대를 따라갔는데 말이야. 지금은 (스크린에) 걸리면 바로 스위치해 버리니까 계속 미스매치(신장 차이 등 공격자에 비해 수비자가 잘못 짝 지어진 상황)가 나잖아. 골밑도 뚫리고 코너도 열리고…. 절대 안 되지. 어떻게든 밀착 수비를 해 줘야 돼.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어깨를 비벼서라도 끝까지 따라가 줘야 해.”(최희암)설명이 깊어진다.박 코치가 재빨리 방향을 틀었다.“그래서 형님이 헷지 디펜스(동료 수비를 도와 울타리를 쌓듯 공격 움직임을 저지하는 전술) 연습을 엄청나게 많이 시키셨잖아요.”숨 돌릴 틈 없이 다시 주문이 날아든다.“더블팀(수비 두 명이 순간적으로 공격자를 에워 싸는 것)도 약해. 더블팀에 들어갔으면 공이 밖으로 나오면 안 되는데 말이야. 파울이 나더라도 공을 못 나오게 해야 해.”(최희암)주문도 하기 전에 식탁 위에 농구 용어가 한가득 차려졌다. 박 코치는 정리에 능하다.“그러니까 형님이 감독을 다시 하셔야죠. 일본에는 80대 감독도 있어요.”작전타임 같다. 두 사람의 농구는 끝날 기미가 없다.● 벤치 설움을 아는 선배, 그에게 붙잡힌 후배인연의 시작은 198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일고에서 농구를 잘했던 박 코치가 연세대에 입학하던 해다.“원래 고려대를 가려고 했어요. 그래서 원서 쓰기 전날까지 (신일고 출신 고려대 농구선수) 임정명 선배 집에 잡혀 있었거든요. 접수 전날 밤이 돼서야 집에 가라고 보내 준 거예요. 그런데 접수 당일 원서 써서 고려대로 가다가 연세대 선배들한테 ‘납치’를 당한 거지. 저는 죽어도 고려대였거든요.”(박건연)그렇게 연세대 사람이 됐다. 최 감독은 연세대 74학번. 박 코치보다 7년 선배다. 1977년 현대 농구팀 창단 멤버로 입단한 최 감독은 해병대에서 군복무를 했다. 박 코치가 연세대에 입학한 해에 제대했다.“형님이 81학번 중에서도 저를 특별히 예뻐해 주셨죠.”박 코치는 대학 시절 마음고생이 컸다. 실력을 펼칠 기회가 많지 않았다. 최 감독 역시 비슷한 설움을 겪은 사람이었다. 휘문고 농구부 주장이었지만 체육특기자 진학이 어려워 대학입학 예비고사를 치르고 연세대 체육교육과에 들어갔다. 휘문고 교장 등의 도움으로 농구부에 입부했다. 1학년 때는 주전이었지만 쟁쟁한 후배들이 들어오면서 점차 설 자리를 잃었다. “중도 포기한 친구들과 비교하면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죠. 위기가 많았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 다 해 봤어요. 당장 성과가 안 나도 포기하지 않고 버틴 덕에 배운 것도 많았죠.”벤치 신세였던 3학년 때는 잠시 연세대 농구팀을 지도한 미국 농구 전문가 도널드 휴스턴에게 전술적 가르침을 받기도 했다. 이때 전수받은 것들이 나중에 지도자 할 때 탄탄한 밑거름이 됐다. 새롭게 농구를 알면서 버티는 의지가 더 생겼다. 그렇기에 비슷한 고민을 하던 후배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농구를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형님이 ‘힘들게 연세대 왔는데 왜 그만두냐? 조금 쉬면서 마음 추스르고 다시 체육관에 나와라’라고 해 주셨어요. 형님 때문에 버텼습니다.”(박건연)그런 박 코치에게 또 위기가 왔다. 실업팀 입단이 무산된 것.“졸업식 이틀 전에 연락이 왔어요. 못 받아 줄 것 같다고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죠.”군대에 갈 수밖에 없었다. 제대 후를 생각하니 아득했다. 그때 박 코치의 손을 최희암이 잡아줬다. 최 감독은 1982년 은퇴하고 현대 직원으로 일하면서 틈틈이 연세대 농구부 지도를 도왔다. 1986년 연세대 감독이 됐다. 이듬해 1월, 최 감독은 휴가 나온 박 코치에게 대뜸 물었다.“휴가가 며칠이냐?”“보름이죠.”“나 혼자 하기 힘드니까 같이하자.”그렇게 둘은 처음으로 호흡을 맞췄다.“얼마나 좋았겠어요. 6월 제대한 날에 바로 체육관으로 올라갔죠.”● 세 번의 동행… 끊기지 않은 ‘인생의 패스’둘은 대학 선후배로 시작해 세 번이나 감독과 코치로 호흡을 맞췄다. 한 번은 흔하다. 두 번은 신뢰다. 세 번이면 다르다. 최 감독은 박 코치가 여자 농구팀에서 코치나 감독 제안을 받을 때마다 보내 줬다. 연세대 코치 자리가 비면 다시 박 코치를 호출했다.1994년 박 코치가 여자 실업팀 현대산업개발 코치를 할 때였다. 당시 연세대 코치이던 유재학 현 KBL(한국농구연맹) 경기운영본부장이 신생팀 감독으로 부임해 코치 자리가 비었다.“건연아, 내가 널 데려오려고 그 팀에 찾아갔지.”“형님이 부르셔서 팀에 사표를 냈죠. 그런데 수리를 안 해 줘서 한동안 두 군데서 월급을 받았죠. 형님이 같이 가서 정리해 주셨잖아요. 다른 여자 팀으로 가지 않는다는 약속을 하고 연세대로 다시 왔죠.”박 코치는 이후 다시 여자 팀 감독을 맡았다가 한 번 더 연세대 코치로 유턴했다. 2005년에는 연세대 감독까지 맡았다.“형님 때문에 저는 연세대에 5번이나 ‘입학’한 겁니다. 형 아니었으면 제 인생 길은 여기저기 끊겨 있었을 거예요.”(박건연)“나 만난 걸 다행인 줄 알아야 돼. 건연이 너는 내가 놓치면 안 되는 사람이었어.”박 코치는 2023년 최 감독을 KXO 조직위원장으로 모셨다. 그때는 박 코치가 3대3 농구 발전을 위해 힘 써달라며 도움을 요청했다. 최 감독은 기꺼이 응했다. 최 감독은 특수 용접재를 생산하는 국내 굴지의 중견기업을 이끄는 산업 리더다. 중국 다렌 지사장을 비롯해 부사장, 사장을 거쳐 부회장에 올랐다. 박 코치 역시 농구 전문지를 창간해 운영도 하고 다른 분야 사업도 해 봤다. 코트에서 함께한 시간을 넘어 인생 후반전을 살아 가는 방식마저 비슷하다.“지금도 형님이 옆에 있으면 방향이 흔들리지 않아요.”(박건연)농구판에서 이런 관계는 흔치 않다.● 슛이 빗나가도 리바운드를 잡을 줄 안다박 코치는 최 감독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최희암이라는 길잡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잘 살았다 싶죠.”제2의 인생도 농구에서처럼 성과를 낸 최 감독이 박 코치는 놀랍다.“농구와 제조업이 통하는 게 있다는 형님의 접근법이 탁월했던 거죠.”최 감독은 고려용접봉에 들어왔을 때 농구처럼 노력하고 인내하면 당장은 성과가 안 나더라도 배우는 게 있을 것 같았다고 한다. 일을 반복하다 보면 안정적인 실력이 쌓일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일을 배웠다. 그래서 빨리 적응했다. 연세대 감독 시절 선수를 키운 노하우를 살려 직원 관리에도 스스로 눈을 떴다. 최 감독은 분업 농구의 대명사다. 선수마다 확실한 역할을 주고 그 포지션을 책임지도록 했다. 훈련 때는 다른 포지션에서도 뛰어 보게 했다. 자기 역할만 아는 것을 넘어 다른 포지션 사정까지 이해하는 선수가 더 좋은 팀플레이를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실제 그렇게 됐다. 선수들은 자기 장점을 120% 끌어냈다. 팀에서 뛰어야 할 이유를 알게 됐다. 기본, 노력, 반복, 경청의 힘으로 최 감독은 임기 내내 문경은 이상민 우지원 서장훈 김훈 조상현 조동현 등을 철저하게 포지션별 비교우위에 올려 놓았다.이를 고려용접봉에서도 잘 이용했다. 사장 때는 권역별 영업 조직을 산업별 담당을 두는 조직으로 개편해 업무 효율을 개선했다.“경영도 농구와 참 비슷하단 말이에요. 역할 분배가 중요하죠. 업무 분야마다 누가 적임자인지 잘 판단해야 하는 문제입니다.”박 코치는 평생 모신 ‘나의 감독’으로서 최 감독이 존경스럽다.“형님을 보면서 진정한 프로가 뭔지를 알게 된 것 같아요.”“한 우물을 미련하게 끝까지 파는 과정에서 얻은 거라고 할까요. 팀을 이끌 때 박 코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예전부터 감독과 코치의 시선은 달라야 한다고 했던 저예요. 내가 위를 보고 있을 때 박 코치가 밑을 잘 봐 줬죠. 그러니 선수들을 설득했고 서로 뭉치게 할 수 있었던 게 아니겠습니까. 박 코치 때문에 한 우물 팔 수 있었죠.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호기심은 여전히 식지 않는 최 감독이다. 어떤 이슈든 연구와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애매하거나 잊어버린 정보가 있으면 즉시 휴대전화로 검색해서 확인한다. 박 코치는 60대 중반이지만 이런 최 감독 앞에선 긴장을 늦출 수 없다. 객관적 근거나 수치가 뒷받침 안 되는 얘기는 아예 하지 않는 게 낫다. 괜히 두루뭉술 넘어가려고 했다간 분위기가 묘해진다.“잠깐만. 건연이 네가 방금 한 얘기 팩트체크 좀 해야겠어. 정확한 거야?”“10만 원 내기 할까요, 형님?” 박 감독도 ‘한 지식’ 하는 사람이다. 세상 현안에 밝다. 그런데도 최 감독 지식과 논리를 따라가려고 많이 공부한다. 같이하면 좋을 일도 보인다. 최 감독은 신사업 개발과 용접 재료 추가 국산화에 신경 쓰고 있다. 그러면서도 농구 발전과 엘리트 체육 선수들의 학업 및 진학 여건 개선 등에도 나서고 싶다.“나나 박 코치나 운동하면서 혜택을 많이 받은 세대잖아요. 지금 세대도 혜택을 누려야 하는데, 현재 운동선수 지원 시스템으로는 쉽지 않아요. 어떻게 목소리를 내야 할지 고민입니다.”박 코치는 완전히 ‘붙들린’ 몸이다. 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날 사이다.“첫 번째 연세대 코치 직을 그만두고 미국으로 이민 가려고 했을 때 형님이 못 가게 하셨잖아요. 그래서 지금까지 같이 저녁식사를 하네요. 감사합니다.”“건연이 너, 미국 갔으면 총 맞을 수도 있었어. 내가 생명의 은인이야. 너한테 감사한 게 많다. 나 대신 술도 자주 마셔 주고. 고생했다.”세월이 흘렀지만 앞에서 길을 보는 사람과 그 길이 흔들리지 않게 뒤에서 받쳐 주는 사람의 역할은 바뀐 게 없다.“건연야, 농구에서 슛이라는 게 100% 들어가는 법 있더냐. 3점슛 성공률 40%만 되도 끝내주는 선수잖아. 들어갈 수도 있고 안 들어갈 수도 있는 게 슛인데 그보다 우리는 리바운드 잡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했잖아. 계속 너하고 ‘인생 리바운드’ 좀 노려 보려고.”“형님은 하겠다면 하시는 분이잖아요. 뭐든지 도울 수 밖에 없죠.”박 코치는 ‘최희암 리바운드’를 위해 늘 ‘박스아웃’ 할 준비가 돼 있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 2026-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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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I시대 병원 패러다임 전환…코리아 헬스케어 콩그레스(KHC) 2026 개막

    인공지능(AI) 시대 병원의 변화와 미래를 조망하는 대한병원협회 주최 ‘코리아 헬스케어 콩그레스(KHC) 2026’이 9일부터 이틀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다.‘AI 시대, 병원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제로 열리는 KHC 2026에는 각급 병원장을 비롯해 주요 의료 관계자들이 참석해 병원 운영과 의료 서비스 전반의 전환 방향을 논의한다. 의료 정책과 산업 및 기술 흐름을 점검하고 변화하는 의료 환경 속에서 병원의 역할을 재정립할 예정이다. 병원산업전시회도 열려 최신 의료 관련 기술을 확인할 수 있다.KHC 2026의 핵심 의제는 AI 기반 진료와 데이터 중심 병원 운영이다. 의료 현장에서 축적한 데이터를 활용해 진단과 치료 정확도를 높이고 효율적인 병원 운영 기술과 사례를 공유한다. 특히 의료 데이터를 토대로 한 △의사결정 지원 방법 △환자 맞춤형 서비스 △병원 경영 최적화 등을 토론한다. 치료 공간을 넘어 데이터와 기술 플랫폼으로 진화하는 병원을 집중 전망한다.헬스 케어 관련 기업들도 참석해 회복 및 예방 기술을 소개한다. 웰니스 솔루션을 제공하는브리덴은 빛, 열, 소리를 결합해 신체 자율신경 안정과 컨디션 회복을 유도하는 프리미엄 수면의자를 선보일 예정이다. AI와 빅데이터 시대의 병원은 전환기를 맞고 있다. 진료와 운영 효율성을 높이는 기술 혁신과 동시에 환자 삶의 질을 고려한 회복 서비스도 강조되고 있다.의료계 안팎에서는 향후 병원 경쟁력은 데이터 활용 능력과 회복 및 예방 서비스 역량까지 포함하는 방향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 2026-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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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 중심’ AI로 고속도로 인프라 혁신 향해 질주

    고속도로는 지역과 산업을 연결하고 국민 교통 복지를 책임지는 국가 핵심 인프라다. 그러나 전체 고속도로의 약 11%(총연장 491km)가 노후했다. 2040년, 이 노후화 비율은 62%(3002km)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인력에 의존한 점검과 사후 대응만으로는 안전과 효율을 동시에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도로공사는 ‘사람 중심의 안전 가치’를 내세우며 고속도로 인프라를 인공지능(AI)에 기반해 재설계하는 AI 전환(AX)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사고 예측과 위험 감소에 더해 축적한 데이터를 활용하는 새로운 산업 토대까지 구축하겠다는 전략이다.● AI CCTV 도입해 안전사고 예방AX를 통해 가장 먼저 달라진 것은 고속도로 현장 작업자의 안전사고 예방이다. 차량이 빠르게 이동하는 고속도로에서의 유지 및 보수 작업은 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다. AI 위험성 평가 시스템은 과거 사고 데이터와 당일 작업 정보를 분석해 잠재 위험 요인을 사전에 도출한다. 숨어 있는 위험을 찾아내 맞춤형 대응 방안까지 제시한다. 관리자 경험에만 의존하다가 데이터를 활용한 사전 진단으로 바뀐 것. 위험 요인은 작업 전 근로자에게 공유된다. 작업이 시작되면 AI 폐쇄회로(CC)TV가 실시간 안전을 관리한다. 기존 CCTV가 사고 이후 원인을 확인하는 도구에 그쳤다면 AI CCTV는 위험 상황을 감지해 그에 따른 대응을 유도한다. 안전모 미착용, 위험 구역 접근, 신호수 미배치를 비롯한 10개 위험 유형을 자동 인식해 관리자에게 즉시 알려 현장 통제와 안전 조치가 신속하게 이뤄지도록 한다. 조치까지 걸리는 시간이 기존의 87.5%로 단축됐다. 현재 함양∼합천 고속도로 건설 사업단 등 6개 현장에서 시범 운영하고 있다. ● 쓰레기 무단 투기 NO… AI 클린아이교량 유지 관리 방식도 달라졌다. 작업자의 육안 점검에 의존하던 것과는 달리 생성형 AI 기반 분석 체계를 적용한다. 버티컬 AI(특정 산업이나 작업에 맞춰 고도로 전문화된 AI)는 현장 영상 실시간 자동 판독과 텍스트 검색 기반 판단 기술을 결합해 교량의 손상 원인을 분석하고 대응책을 제시한다. 두 달 이상 걸리던 판단 기간을 이틀로 줄였다. 로봇 점검원 워치독이 사람은 접근하기 어려운 구간까지 정밀하게 점검한다. 점검부터 분석, 보고까지 AI가 실행한다. AI 클린아이 시스템은 고속도로 나들목과 휴게소 주변의 쓰레기 무단 투기를 자동으로 감지한다. 차량에서 쓰레기를 버리는 행동 패턴을 인식해 포착한다. 관리자가 영상을 일일이 확인해야 하던 일을 AI가 ‘얌체 투기족’을 실시간으로 찾아낸다.● 데이터 전면 개방… 산업 생태계 확장 지원 혁신은 서비스 개선을 넘어 산업 생태계에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다. 한국도로공사는 AI 레디(Ready) 데이터 16종을 민간 기업에 개방했다. 교통, 시설, 안전 데이터를 공유하는 국가 교통데이터 오픈마켓을 구축해 민간에서도 데이터 결합과 분석이 가능한 환경을 마련했다. 민감한 정보도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는 안심 체계도 갖췄다. 고속도로 유휴 부지를 활용한 지역 거점 AI 데이터센터 건설도 추진 중이다. 광통신망과 전력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센터는 수도권에 집중된 정보기술(IT) 인프라를 지방으로 분산시키는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도로공사 AX는 단순한 기술 도입에 그치지 않고 도로 안전을 강화하면서 동시에 데이터 기반 산업 생태계를 확장하는 새로운 인프라 모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도로공사 관계자는 “기술을 과시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AI로 국민 생명을 지키겠다는 의미”라며 “국민이 정말로 체감하는 ‘스마트 고속도로’를 완성해 나가겠다”고 밝혔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 2026-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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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래가 다시 재밌어져”…서로 일으켜 세운 두 락커 [유재영의 전국깐부자랑]

    깐부. ‘같은 편’, 나아가 ‘어떤 경우라도 모든 것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이’라는 의미의 은어(속어)죠. 제아무리 모두 갖춘 인생이라도 건전하게 교감하는 평생의 벗이 없다면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좋은 인간관계는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깐부들 사이에 피어나는 ‘같이의 가치’를 소개합니다.“혼자인 게 좋아~.”그런데 요즘은 혼자가 아니다. 노래 가사였지만 김종서는 정말 혼자가 편한 사람이다. 미성으로 열정을 토해 내는 록가수이지만, 스스로를 ‘극(極)내향인’이라고 부를 정도다. 무대 밖에선 혼자 있을 때 안정감을 느낀다. 그의 노래처럼 ‘아름다운 구속’을 좋아한다.김장훈은 정반대다. 사람 좋아하고, 사람 사이를 누비며 에너지를 만든다. 그렇다고 아무나 어울리는 스타일은 아니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겪어 본 다음에 마음이 맞지 않으면 차라리 혼자가 낫다고 여긴다. 대신 한두 명이라도 맞는 사람이 있으면 그건 축복이라 믿는다. 그 사람에게는 자신을 아낌없이 쏟는다.성향만 보면 쉽게 가까워질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이다. 그런데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붙어 있다. 전화하고, 공연 얘기를 나누고, 무대를 함께 구상한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같이 가 보려 한다.김종서는 무대 밖으로 나오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서성이는 타입이다. 반면 김장훈은 세상 바쁘다. 남 잘 챙기고, 세상 돌아가는 이슈에도 밝다. ‘척하면 삼천리’다. 얘기를 즐긴다. 방송에서 자기 노래를 안 틀어도 괜찮지만 토크가 없으면 서운하다. 이런 두 사람이 묘하게 맞물린다.12일 만난 두 사람은 몇 시간이고 웃음과 진지함을 넘나들었다. 한 사람이 길게 이야기를 풀면, 다른 한 사람이 짧게 끼어들어 맞장구와 농담을 얹는다. 한 사람은 밥상을 잘 차리고, 다른 한 사람은 숟가락을 기막히게 얹는다.단순히 친한 형, 동생으로 설명하기는 부족하다. 서로를 다시 일으켜 세운 관계다. 김종서에게 김장훈은 무대와 세상으로 자신을 다시 끌어낸 사람이다. 김장훈에게 김종서는 가수로서의 재미를 다시 알게 해 준 사람이다. 상상의 설계를 가능하게 해 준 사람이다. ● 같은 시대, 다른 궤적둘 다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빠질 수 없는 이름이다. 김종서는 1987년 록그룹 시나위로 데뷔해, 1992년부터 솔로로 ‘대답 없는 너’ ‘아름다운 구속’ 등을 부르며 록 보컬의 상징이 됐다. 김장훈은 긴 무명 생활을 거쳐 1991년 데뷔했다. 이후 다시 긴 공백기를 거치며 공연형 가수라는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다. 둘 다 록커 계보다. 그런데 의외로 오랫동안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종서 씨, 우리 오래 안 친했어.”“맞아요. 동선이 안 맞았어.”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궤적이 달랐다. 김종서가 록의 중심에서 확고한 보컬리스트로 자리 잡을 때, 김장훈은 방향을 찾고 있었다.“종서 씨가 한창 록을 할 때, 난 노래할 거라는 생각도 못 했어. DJ 하면서 소리만 지르던 시절이었지. 고등학교에서 짤리고 12년을 연습만 했어. 그리고 스물아홉 살 때 데뷔했지. 비교하면 김종서는 록의 신이고, 나는 어중간한 신이에요.”농담처럼 들리지만, 긴 시간 버텨낸 사람의 자조가 묻어난다.둘이 오래 전 스쳐가긴 했다. 조금 보다가 말았다. “1993, 94년쯤이었지? 종서 씨 사무실에 갔어. 그날 차로 데려다 주기까지 했잖아. 그때 속으로 엄청 부러웠어.”(김장훈)“그땐 내가 나이도 속였잖아. 1968년생으로. 가까이하기엔 서로 애매했지.”(김종서)“장훈 씨 나이를 알고 있었어요. 이승환이가 장훈 씨를 형이라고 부르더라고”진짜 관계는 훨씬 뒤늦게 시작됐다.● “노래해 줄게” 한마디로 시작됐다뜻밖의 장면이 있다. 5~6년 전이다. 김종서가 LP바(bar)를 운영하던 시기. 방송에서 오랜만에 김종서를 만난 김장훈이 작정하고 그곳을 찾았다. 인사치레인 줄 알았던 “놀러 갈게요”라는 약속을 바로 지켰다. 둘 사이의 ‘온도’가 확 올라갔다.“손님이 없으니까 장훈씨가 밖에서 호객 행위를 하더라고요. ‘내가 노래해 줄게!’라면서 지나가는 사람들 붙잡더니 진짜 모시고 들어오는 거예요.”(김종서)“손님 데리고 와서 ‘종서 씨, 반주 틀어’라고 했잖아. 나도 자숙한다고 사람들 안 만나던 시기였어. 종서 씨도 ‘이 사람이 왜 나한테 잘해 주지?’라고 생각했을 걸.”(김장훈)“감동이었죠. 장훈 씨가 자기 밴드까지 데려와서 노래해 주고…. 낭만적이었어.” ● “전설을 그냥 둘 순 없었다”김장훈은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레전드인데 나보다 더 힘들게 지내면 안 되겠더라고.”(김장훈)그의 과거 경험이 발동한 것이다. 바로 움직였다.“전인권 형이 어려웠을 때 내가 수발을 들었거든. 그 마음이 뭔지는 몰라. 인권이 형을 잘 알지도 못했을 때였어. 그래도 한 시대를 풍미한 우상이었잖아. 그런 형님이 힘들어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더라고. ‘내가 여유가 되니 도울 수 있겠다’고 했어. 종서 씨한테도 같았어.”설명이 더 필요 없었다. 감정이 먼저였다. 계산은 없었다. 김종서는 그때 생각을 바꿨다.“그런 장훈 씨를 보고 사람은 사귀어 봐야 안다는 걸 확신했어요. 김장훈은 오해로 진면목이 많이 가려진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보면 볼수록 사람의 마음을 긍정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더라고요.”둘은 ‘형’ ‘동생’ 대신 ‘~씨’로 부른다. 나이보다 존중을 택했다.“종서 씨가 형이라고 부르겠다고 했잖아. 그런데 내가 이정재와 정우성처럼 서로 존대하면서 지내자고 했지. 존칭을 쓰면 서로 적당한 긴장과 예의를 유지할 수 있잖아. 난 이 결정이 너무 좋았어.”(김장훈)둘은 오래가는 관계의 선을 영리하게 잡았다.● 자멸한 그를 무대로 끌어내다김종서는 한동안 무대를 떠나 있었다.“완전히 폭망한 적이 있었어요.”10여 년 전이었다. 몇 번 공연을 했는데 사람들이 오지 않았다. 충격이 컸다. 무대가 두려워졌다.“내가 명색이 김종서인데…. 기고만장했는데 바로 트라우마가 되더라고요. 그때부터 나는 ‘공연하면 안 되는 사람’이었어요.”심각한 회의에 빠졌다. 크지 않은 무대에서 간혹 노래했지만 “열과 성을 다할 수 없었다”고 했다. 슬럼프가 달아나지 않았다. 그런데 4년 전 언젠가 김장훈이 대뜸 물었다.“왜 공연 안 해? 공연 만들어 줄게.”그리고 진짜 만들어 줬다. 2022년 김종서의 윤당아트홀 공연. 기획만 한 것이 아니라 사진전까지 더했다. 윤당아트홀 옆 갤러리에 김종서의 사진 실력까지 활용했다.“사진 사 줄 사람까지 종서 씨 한테 데려왔잖아. 꽤 팔았어.”(김장훈)단순한 도움이 아니었다. 김종서 재건 작업이었다. ‘공연의 신’답게 공연과 전시와 팬을 한꺼번에 엮어 냈다.“200석 공연 세 번. 그다음 600석 해 보고, 1000석으로 가는 거지. 이렇게 공연해 보고 방송하면 가수의 기가 살아.”김종서를 살리는 일에서 중요한 건 숫자가 아니라 감각이었다. 무대, 관객, 박수, 매진. 그 감각을 다시 불어넣어 주고 싶었다. 자존심을 복구해 주면서 김종서를 세상으로 끌어낼 수 있었다.김종서는 처음에는 ‘이 사람 뭐지?’ 싶었다. 그러다 김장훈에게 온전히 ‘나’를 맡겼다.“장훈 씨가 큰 숲을 잘 보더라고요.”자기 영역을 쉽게 내주지 않는 예술가가 자신을 포장하는 일에 상대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인정했다. 내가 갖지 못한 걸 가진 김장훈을. ● 확장 관계…“우리끼린 초라해하지 말자”김장훈도 김종서를 만나 변했다.“나이 환갑에 종서 씨한테 성악 발성을 가르쳐 달라고 했어요.”고집 강하던 독학파가 소리 내는 루틴까지 바꿨다. 원래는 무대 올라가기 전에 고음을 몇 시간씩 질렀다. 목이 쉬어 무대에 올라가기 일쑤. 그래도 버텼다. 그러다 김종서에게 힘을 빼는 법, 말하듯 노래하는 법, 고음을 쥐어짜지 않고 내는 법을 배웠다. 이제는 몸이 바로 반응한다.“지금은 공연 전에 힘을 빼요. 소리를 안 지르고 무대에서 놀 수 있게 됐어요. 호흡도 길어지고. 종서 씨에게 제일 감사한 건… 노래가 다시 재밌어졌다는 거예요.”“제가 김장훈을 가르쳤다는 건 말이 안 되죠. 아는 선에서 어드바이스만 했어요. 진짜 장훈 씨처럼 노래를 파고드는 사람을 못 봤어요. 음색도 독보적인데다, 날 것의 느낌이 확 나요. 가수로서 전성기가 아닌가 싶어요.”“별말씀을. 종서 씨는 정말 방부제 성대를 갖고 있어.”김종서에게 자신의 목소리는 ‘꽤나 아픈 손가락’이었다.“인후염 때문에 방송에서 노래를 몇 번 망쳤어요. ‘김종서 목소리 완전히 갔다’는 소문이 퍼지더라고요. 유명 가수들이 서로 경쟁하는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저를 안 불렀어요.”이렇다 저렇다 해명할 수도 없고 “저, 목소리 멀쩡해요. 아직 잘해요”라고 말하는 순간 정말 자신이 초라해질 것 같았다.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 밖에는 방도가 없었다. “노력하고 버텨 보자 마음을 먹으니까 진짜 제 목소리가 불안해졌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런데 스스로 개선하거나 조절하는 게 어렵더라고요. 발성을 바꾸기로 하고 성악 전공 정상영 교수님을 찾아갔어요. 처음엔 성악을 배우는 게 와닿지 않았죠. 터널 초입에 있는 것 같아 끝이 안 보였어요. ‘나 죽었습니다’ 하고 6개월, 1년을 버티니 소리의 길이 보이더라고요.”새 발성을 배우고 거기에 다시 자기 색을 입히는 것. 김장훈은 “정말 존경스럽다”고 했다.“다시 새로운 고음을 낼 수 있게 된 건 가수 중에서 유일하지 않을까 싶어요.”김종서는 최근 리메이크 싱글을 발표했다.“누군지는 말 못하지만 대부분 가수들이 나이가 들면 원곡을 할 때 키를 내려서 부르잖아요. 그런데 종서 씨는 28년 전 노래 ‘에필로그’를 다시 원키(원래 키)로 불렀어요.”(김장훈)1998년 곡이다.“그때 제가 방송국에 갔는데 주변에서 저를 누구랑 비교하더라고요. ‘김종서 큰일 났네. 대항마가 나왔네’ 하면서요.”김경호였다. 그의 노래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이 공전의 히트를 치던 때였다. 곁에서 김장훈이 “언젠가 그가 너를 맘 아프게~”라고 흥얼거린다.“경호 인기가 올라가니까 소속사에서 김종서도 신곡을 만들어 보자고 한 거죠. 이거 뭐, 차력 대결도 아니고. 그래서 냈어요. ‘김경호 때려잡기 프로젝트’ 곡이죠.”(김종서)“에필로그가 정말 부르기 어려운 노래거든요. 음이 얼마나 높은지 노래가 유언장 같았다니까. 성악 발성으로 목소리를 다시 찾은 종서 씨한테 제가 아이디어를 던진 거죠. 신곡 내는 것보다 에필로그를 다시 끄집어 내자. 28년 전 팔팔하던 김종서와 지금의 김종서가 대결하는 이슈를 만들자고 했죠.”(김장훈)둘의 관계는 확장하고 있다.● ‘발칙한 미래’를 그리는 우리우정에는 보통 추억이 많이 쌓여 있다. 그런데 둘의 우정엔 과거보다 같이 할 미래가 더 많다. 와이어 공연, 듀엣, 페스티벌, 새로운 무대….“장훈 씨 목표가 뭔지 아세요? 저를 와이어에 매달리게 하는 거랍니다.”(김종서)“김종서랑 이소라를 크레인에 한 번 태우는 게 죽기 전 소원이에요. 조명이 꺼지고 김종서가 크레인에서 ‘마이 러브, 부디 나를 잊어줘’라고 부르면…. 상상만 해도 행복해요.”(김장훈)김종서가 크게 웃는다.“될 거예요.”김장훈이 말한다.“규모보다 중요한 건 과정 같아.”잠실주경기장 공연도 매진시켜 봤다. 그렇지만 대학로에서 어렵게 공연을 시작해 잠실주경기장까지 가게 된 과정이 더 보람 있고 기뻤다.“그 10년이 더 재밌었어요.”멋진 수사보다 반복되는 동행에 의미를 둔다. 같이가 주는 가치를 요즘 실감한다. 김종서는 “장훈 씨를 알고 시너지라는 걸 처음 느꼈다. 뭘 하더라도 긍정적인 기대감이 생기고 동반 상승하는 기운을 느낀다”고 했다. 웬만하면 김장훈의 위성으로 주변부에 있으려 한다. 김장훈 행사면 무조건 간다. 행사 현장에서 밥을 먹다가도 김장훈이 부르면 음식이 입에 들어 있어도 노래를 부른다. 본래의 김종서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기상천외하면서도 발칙한 상상이 둘의 동행에 재미를 더한다.“종서 씨가 노래 잘 하고 히트곡도 많은데 잔잔하게 웃길 줄도 알아요. 이런 면이 유기적으로 잘 묶여 있어요. 김종서만 생각하면 별 아이디어가 다 나와요.”진짜 계속 나온다.“종서 씨하고 하고 싶은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수와 진’ 선배들처럼 듀엣하는 거예요. ‘락 앤 락’, 좋잖아요. 록큰롤 할 때 락(rock)이랑 즐거울 락(樂)으로. 밀폐용기 브랜드 ‘락O락’ 회사에 아는 사람 있어요? 협찬 받으려고. 하하.”혼자였다면 허황되게 들렸을 법하다.둘의 우정은 미담보다는 서로에게 득이 되는 실천으로 채워져 있다. 현실적인 배려가 많다. 김종서는 올해 20회 정도 공연을 하고 싶다. 김장훈이 김종서의 부산, 광주 공연을 성사시켰다. 둘은 “크게 바라는 건 없다”고 한다. 다만 알고 있다. 힘들 때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서로 옆에 서 있을 것이라고.“종서 씨, 성시경이가 주변 사람들한테 이런 얘기를 했대. 장훈이 형을 만나려면 내가 어려워져야 된다고. 자기가 잘 나갈 때는 연락이 안 되고, 힘들어지면 ‘어떻게 지내냐’고 연락이 온다는 거야.”(김장훈)“그래서 난 장훈 씨가 잘 안 되기를 기도하고 있어요. 하하.”김장훈은 김종서가 다시 혼자 ‘아름다운 재구속’에 빠질 일 없다고 자신한다. 그렇게 둘은 오늘도 서로를 살린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 2026-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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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개 대학-7만 학생을 자산으로… 성북구, 도시의 판을 바꾼다

    서울 성북구(구청장 이승로)가 지역과 대학의 연계를 기반으로 하는 ‘대학도시’로 발돋움한다. 성북구는 13일 지역과 대학을 연결해 미래를 여는 대학도시를 비전으로 하는 ‘함께 성장하는 대학도시 성북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구에 있는 7개 대학이 지역 성장의 엔진이 되고, 지역은 이 대학 인재들을 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대학도시 종합계획은 협력 거버넌스 구축, 미래 역량 증진과 산업 구조 강화, 동반성장 오픈캠퍼스, 다함께 누리는 복지·문화 생활 등 4개 전략과 16개 추진 과제 그리고 40여 개 사업으로 구성됐다.● “대학이 지역을 바꾼다” 이번 종합계획이 눈길을 끄는 것은 대학생과 청년이 많이 모여 있는 성북구가 교육, 산업, 정주(定住)를 결합한 도시 모델 실험에 나섰다는 점이다. 프로그램 중심 성과 내기에 머물렀던 여타 기초단체의 교육 사업과는 결이 다르다. 성북구에는 고려대 국민대 동덕여대 서경대 성신여대 한성대 한국예술종합학교(가나다 순)가 있다. 재학생만 약 7만 명이다. 안암동과 동선동 일대 거주자 가운데 청년 비율이 50%에 이른다. 성북구는 이 7개 대학과 7만 대학생이야말로 도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차별화한 자산으로 보고 있다. 핵심은 대학과 지역의 관계를 단순 협력 이상의 상생 구조로 끌어올리는 데 있다. 성북구는 각 대학과의 협력 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이를 전담하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대학들과의 상시 소통 채널을 마련할 계획이다. 대학과 지자체가 지속적으로 연결되는 제도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오픈캠퍼스로 인재 선순환 구조 창출 특히 오픈캠퍼스 전략은 종합계획의 상징 축이다. 대학이 보유한 교육 콘텐츠와 인적 자원을 지역에 개방해 세대 간 학습과 평생교육을 확장하는 구조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캠퍼스를 닫힌 공간이 아니라 지역 공통 공간으로 넓히겠다는 뜻이다. 대학이 주민을 위한 공공 학습 플랫폼으로 기능하면서 전 세대가 모이는 공공자산이 된다. 이 과정에서 대학 간 협력 체계도 자연스럽게 생겨날 수 있다고 본다. 대학별 특성과 강점을 살리면서도 공동 프로젝트를 통해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다. 성북구는 열린 대학 교육 체계가 지역 산업 수요와 맞물려 지역 내 취업 및 정주로 이어지게 할 계획이다. 지역을 학습 생태계로 재구성하려는 정부의 지역 혁신 정책과도 궤를 같이 한다. 종합계획은 새로운 교육 정책의 시도를 넘어 도시 전략의 전환을 꾀한다. 그동안 복지나 지원 수단 같은 보조적 기능으로 여겨진 교육 자원을 지역 성장과 산업 구조 설계의 핵심 수단으로 끌어들였다. 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이 도시 성장 핵심 전략으로 기업 유치와 물리적 인프라 확장에 열을 올리는 것과는 180도 다른 관점이다. 이승로 구청장은 “대학도시로서 성북구만의 차별화된 도시 경쟁력을 꾸준히 키워 나가겠다”고 밝혔다. 대학을 도시 미래의 공동 설계를 위한 핵심 파트너로 삼겠다는 얘기다. 대학도시 종합계획을 통해 대학 교육이 학교 안뿐만 아니라 지역 전체에서 일정 성과를 낸다면 다른 지자체에 파급하는 효과도 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 2026-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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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빠른 변화보다는 옳은 변화를”… 학생과 전공에 ‘AI 날개’ 다는 덕성여대

    올해 취임 제 13대 민재홍 총장의 ‘큰 그림’민재홍 덕성여대 총장은 이달 15일 열린 서울마라톤 겸 동아마라톤을 뛰었다. 가족과 함께 10km를 1시간 이내로 완주했다. 풀코스 42.195km의 4분의 1 거리. 민 총장은 “기록에 만족한다”고 했다. 빠르지도, 그렇다고 너무 느리지도 않게 페이스를 잘 조절하며 뛰었다. 지난달 4년 임기 총장 업무를 시작했다. 42.195km 레이스에 빗대면 이제 막 1km를 지난 셈이다. 첫 단추를 잘 꿰고 싶은 첫 1년. 마라톤으로 예행연습을 해 본 셈이다. 인구 감소와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대학에 빠른 변화와 혁신이 요구된다. 하지만 민 총장은 마라톤을 하면서, 쫓기듯 속도만 내서는 안 된다고 확신했다. ‘빠른 변화’가 시급하지만 ‘옳은 변화’가 더 중요하다는 초심을 지켜 나가기로 했다. 민 총장은 취임을 맞아 외부 인사들에게 전한 감사장에도 “단계별 성장을 진행하면서 나날이 새로워지겠다”라고 썼다. 속도 조절의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뜻일 터다. 16일 서울 도봉구 캠퍼스에서 동아일보와 만난 민 총장은 “대학의 구조 변화 압박이 커지는 상황에서 덕성여대는 무조건 방어하듯 버티는 것도 어렵고, 무조건 빠르게 이것 저것 바꿀 수도 없다. 시간을 갖고 미래지향적으로 우리만의 정체성을 재해석해 새로운 경쟁력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균형의 ‘X+AI’로 대학 체질 전환덕성여대 정문에 서면 앞으로는 북한산이, 오른쪽으로는 도봉산이 보인다. 캠퍼스는 안정감 있는 평지에 조성돼 있다. 민 총장은 이 지형을 대학의 방향성과 연결지었다. 총장실은 다른 대학 총장실에 비해 작은 편이다. 책상과 회의용 작은 탁자가 전부다. 실용과 집중의 균형이 느껴진다. 민 총장은 “일도 마찬가지다. 총장 혼자 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본부 보직자들과 함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2003년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부임해 24년째 몸담고 있는 그는 교무처장, 미래교육위원회 위원장, 신문사 주간 등 주요 행정 보직을 거쳤다. 대학 내부를 누구보다 잘 아는 ‘내부형 총장’이다. 그는 “함께 고민하고 조율하는 경험을 많이 했다. 대학 운영은 결국 협력과 균형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민 총장이 구상하는 덕성여대 성장 계획은 이렇다. 먼저 AI 기반 대학으로의 전환은 피할 수 없다. 그래서 ‘덕성 AI 이니셔티브’를 목표로 내세웠다. AI를 ‘사람 중심’ 교육과 연구, 행정에 도입하는 것이다. 특히 교육과 연구 분야에서 민 총장은 ‘X+AI’를 핵심으로 내세운다. 단 AI가 중심이 아니라 각 전공(X)을 중심에 두고 AI를 결합하는 방식이다. 그는 “AI가 전공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전공을 더 강하게 만드는 도구가 돼야 한다”며 “학생의 전공, 질문, 해석과 판단이 중심이 되고 AI는 도구로서 날개처럼 작동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인문학자로서 AI에 과도하게 치중하는 현실에 대한 우려가 문제의식에 반영돼 있다. “예를 들어 중문학의 경우 AI가 수업도 하고 번역과 통역을 다 해 버린다면 전공이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그렇지만 언어의 맥락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능력은 인간 영역이다. 전공이 중심에 있고 AI가 도구로 결합할 때 전공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깊어질 수 있다.” 문헌정보학 역시 AI와 결합해 단순 정보 관리에서 벗어나 디지털 아카이빙, 데이터 기반 지식 관리로 확장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덕성여대는 ‘AI 브릿지’ 교과목을 도입해 기존 전공 수업에 AI를 접목하고 있다. 향후 AI 리터러시 교육을 확대하고 X+AI 교과목을 최다 100개로 늘릴 계획이다.윤리와 공공성 갖춘 ‘德性 AI 리더’ 양성AI 기반 교육 인프라 구축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상반기에 학업, 수강 신청, 진로 설계, 취업 상담까지 아우르는 AI 기반 원스톱 플랫폼을 구축할 계획이다. 기존 학습관리시스템(LMS) ‘e-class’도 AI 기반으로 전환해 수업 내용 요약, 과제 지원, 리포트 생성 보조 기능을 포함하게 된다. 100여 개 외국어로도 지원할 예정이어서 외국인 유학생 유치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민 총장은 “학생이 체감하는 변화”를 강조했다.―학생들이 이 같은 변화를 어떻게 느낄 것으로 보는가. “모든 학생이 전공 기반 위에서 AI를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과정을 통해 ‘대학이 나에게 맞춰지는 경험’을 많이 해 보게 될 것이다. 현장실습학기제, 덕성인턴십, 맞춤형 취업 지원, X+AI 연계 장학 및 경력 개발 지원을 강화해 학생들이 배움과 진로를 따로 느끼게 하지 않을 것이다.”―학생들이 특별하게 체감했으면 하는 것은. “여기서 ‘HI(Human Intelligence·인간 지능)’를 강조하고 싶다. AI 시대에도 인간 지능, 전공 지능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중요해진다. AI와 HI가 함께 가야 한다. 결국 다시 조화다. 윤리, 인권, 공공성 같은 여대의 전통적 가치를 결합하는 문제다. AI를 아는 인재가 아니라 AI를 책임 있게 다루고 활용할 줄 아는 인재가 필요하다. ‘덕성(德性) AI 리더’이다. 덕성형 AI 전략이 다른 대학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행정 시스템도 이런 변화에 부응한다. AI 챗봇을 도입해 행정 절차를 자동화하고 교직원 업무 부담을 줄인다. 민 총장은 “AI는 학생과 교직원 모두의 시간을 절약해 주는 도구가 될 것”이라며 “그 시간을 더 중요한 교육과 연구에 쓰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K콘텐츠 비롯한 융복합 분야 특성화”학생들이 변화를 더 강하게 체감할 수 있도록 학사 구조 개편도 점진적이고 정밀하게 추진한다. 고민은 전공 쏠림 현상이다. 인기 전공과 비인기 전공이 분명하게 구분된다. 덕성여대는 수도권 대학 최초로 자유전공제를 도입했다. 한 단계 더 나아가 지난해부터 자유전공학부를 신설했다. 학생 선택에 따라 다전공 이수가 가능하다. 제1 전공 선택 후 다양한 전공 조합이 가능하다. 제2 전공은 물론 제3 전공까지 할 수 있다. 제1 전공을 심화 학습하고 모듈형 과정(나노-마이크로 디그리)으로 이수할 수도 있다. “자유전공학부로 정원의 30% 정도가 들어온다. 지난해 258명이 입학했다. 이들은 전부 경영학과로 갈 수도 있고, 전부 컴퓨터 계열로 갈 수도 있다. 그런데 중문과 지원은 ‘제로(0)’일 수 있다. 전공 간 불균형 현상이 갈수록 심화될 수 있다.” 민 총장은 이 현상을 위기가 아닌 새로운 전환의 계기로 본다. 그는 “전공을 줄이는 작업이 아니라 전공 간 다양한 연결을 강화하고 새로운 융합 구조를 만드는 재설계 시발점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며 “수도권 최초 도입한 자유전공제 ‘시즌2’를 만들어 앞서가는 화두를 던져 볼까 한다”고 했다. 자신이 있다. 덕성여대는 약학대학만 지명도가 높은 게 아니다. 언어와 유아교육 같은 인문사회 분야에 강점이 있다. 이들을 융복합해 덕성여대만의 추가 특정 분야를 찾아 새로운 경쟁력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우리 대학은 언어를 비롯한 인문학 전공이 다양하다. 스페인어도 있고 아동가족학, 문화인류학, 첨단분야 학과도 있다. 이를 묶어 K콘텐츠나 글로벌 문화 산업 등으로 확장할 수 있다.” 덕성여대는 이달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추진하는 ‘인문사회융합인재 양성사업(HUSS)’ 2단계 참여 대학으로 선정됐다. 기후 및 환경과 문화 전공이 지원을 받게 됐다. 특별한 ‘덕성 경쟁력’ 확보 가능성을 입증한 것이다. 기후와 환경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차원에서 전공 간, 나아가 대학 간 경계를 허물고 인문사회 중심 융합 교육 체제를 구축해 인재를 양성할 수 있게 됐다. 학생들이 기후와 환경 이슈를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출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종로캠퍼스 교양 교육 활용 추진민 총장의 핵심 비전을 간단하게 표현하면 ‘브라이트(Bright) 덕성’이다. 브라이트는 균형(Balance) 존중(Respect) 혁신(Innovation) 글로벌(Global) 조화(Harmony) 인재(Talent) 라는 6가지 가치를 상징한다. 대학 운영 원칙이기도 하다. 그는 브라이트 가운데 균형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는다. 균형을 토대로 지역 사회와의 연결도 해 볼 계획이다. 서울 도봉구의 유일한 대학으로서 전통시장 활성화, 취약계층 교육 지원, 돌봄 프로그램 같은 지역 연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민 총장은 “대학은 지역에 그저 머무는 기관이 아니라 함께 움직이는 플랫폼이 돼야 한다”며 “여대생이 참여할 수 있는 돌봄, 교육, 공공 서비스 영역에서 역할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활동은 단순 봉사를 넘어 지역 일자리와 연결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종로캠퍼스를 학생 교육에 활용하는 것도 중요한 계획 중 하나다. 1984년 현재 위치로 이전한 덕성여대는 종로에도 교육 공간을 보유하고 있다. 민 총장은 “2029년부터 1학년 교양 과목 일부를 종로캠퍼스에서 운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며 “도심 교육은 대학 경쟁력을 높이고 학생 경험을 확장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30년 1월 28일로 임기를 마치는 민 총장의 마지막 목표는 ‘2030년’이다. 2030년은 덕성여대가 조선여자교육회로 개교한지 110주년이 되는 해다. “그때 ‘변화를 말한 대학’이 아니라 ‘변화의 구조를 만든 대학’으로 평가받고 싶다.” 마라톤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완주다. 42.195km 긴 여정처럼 민 총장의 대학 개혁은 이제 막 첫 구간을 지나고 있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 2026-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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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속도의 시대에 던진 역설… “비우고 고요해야 멀리 간다”

    “리더는 비담박 무이명지(非澹泊 無以明志) 비영정 무이치원(非寧靜 無以致遠)의 의미를 생각해야 한다.” 담박하지 않으면 뜻을 밝힐 수 없고, 고요하지 않으면 멀리 도달할 수 없다는 의미다. 담박은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영정은 평온한 상태다. 평온하지 않으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올바른 판단이 어려워진다. 지속 가능한 리더십 교육 및 교류 플랫폼 인사이트넥서스연구원(INI)의 하버드 경영대 최고경영자(CEO) 프로그램 제5기가 출범했다. 윤태근 INI 이사장은 11일 서울 JW메리어트호텔에서 열린 5기 개막식 개회사에서 ‘리더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이같이 답했다. 윤 이사장이 인용한 문구는 중국 삼국시대 촉나라 재상 제갈량이 아들 첨에게 보낸 편지 ‘계자서(誡子書)’에 실린 것이다. 윤 이사장은 “예측할 수 없는 변화가 많은 시기에 불확실성 높은 환경이 주어졌을 때는 무작정 달리기만 해서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어렵다”면서 “깨끗한 마음 상태에서 욕심이 과하지 않아야 자신의 뜻을 분명히 세울 수 있고, 흔들림 없는 마음과 시선으로 시대를 바라볼 때 표면이 아닌 진실을 보고 멀리 도달할 수 있다”고 했다. 숨을 고르고 스스로를 재정비하는 기회를 5기 프로그램의 핵심으로 꼽았다. 윤 이사장은 앞서 네 번의 개막식에서도 별도의 메시지를 던졌다. 1기 때는 “작은 경쟁에 집착하기보다 더 큰 포부를 가지고 더 멀리 도약해야 한다”고 했고, 2기 때는 “각자 분야에 안주하지 않고 오래 달려온 인생 평행선이 꺾어지는 지점을 반드시 찾아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3기에는 “인생의 방아쇠를 당기는 시점으로 배움의 시간을 삼아야 한다”고 했고 4기에는 “천하에 근심이 닥치기 전에 미리 어려움을 예방해야 한다”고 했다. INI는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CEO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 및 공공 부문 리더들이 지속 가능한 경영 전략을 공유해 한국과 세계를 변화시킬 새로운 아이디어와 지식을 창출하는 장을 마련하자는 취지의 프로그램이다.● 정운찬 전 총리 “과거 성공 방식은 지워라” INI 고문위원회 위원장 정운찬 전 국무총리(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는 이날 축사에서 “인공지능(AI)이 일의 본질을 바꾸고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가 기업의 생존을 결정하며 지정학이 거대한 공급망을 흔드는 전방위적 변혁의 시대에 리더에게 요구되는 건 과거 성공 방식이 아니다”라며 “흔들리지 않는 원칙을 세우고 올바른 결단을 내리는 담대한 훈련을 통해 더 넓은 시야, 더 깊은 통찰, 더 무거운 책임감을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INI 4기 대표로 축사를 한 권민희 연성대 총장은 “리더가 감당해야 할 짐의 무게가 날로 무거워지는 시대에서 하버드 최고경영자 과정은 단순한 배움을 넘어 시대를 꿰뚫는 나침반이 될 것”이라며 “이런 혁신의 기회를 강력한 자산으로 삼자”고 말했다. 개막식에서는 4기 프로그램 수석을 차지한 김경준 ㈜아이피시 대표를 비롯한 성적 우수 원우들에 대한 시상식도 열렸다. ● 빠른 결정이 아니라 바른 결정 5기 프로그램 주제는 ‘비즈니스 리더를 위한 혁신 전략’이다. 변화 설계를 통해 변화를 읽고 구조화하는 전략적 리더십, 가치 전환을 통해 사회적, 환경적으로 창출한 임팩트를 경쟁력으로 바꾸는 경영 전략, 책임 실행을 통해 AI 시대에 도덕성과 리스크를 통합하는 실행 체계를 배우고 고민한다. 데보라 스파, 조지 세라핌, 줄리 바틸라나, 로버트 카플란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인간을 위한 AI 기술 방향 설정, 자본주의 시대에 필요한 전략과 영향력 있는 성과 데이터의 효과적 활용법, ‘모두를 위한 권한’과 ‘더욱 효과적인 변화 주체’, 성공적인 전략 실행과 리스크 측정, 관리 및 완화 역량 등을 강의할 예정이다. 5기 과정은 매주 목요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경제인협회 FKI타워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다. 1교시에는 국내외 리더들의 스피드 특강이 있고, 2교시에는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들이 원격 강의한다. 원우들은 미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캠퍼스에서 최종 강의를 들은 뒤 수료식 및 파티를 한다. 수료증을 받게 되는 원우들은 INI와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공동 주최 국제회의나 포럼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 2026-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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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몽골 하늘에서 중국 캠퍼스’까지… 한서대, ‘교육 수출’ 현장을 열다

    이달 중순, 충남 한서대 태안캠퍼스.교육부의 글로컬대학 사업에 선정된 한서대 항공특화캠퍼스의 활주로, 관제탑을 둘러보는 몽골방문단의 눈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격납고 안을 둘러보던 이들의 시선은 실제 교육에 활용되고 있는 보잉 항공기와 각종 실습 장비, 그리고 교육 과정 설명에 오래 머물렀다. 단순한 견학이 아니었다. ‘이 시스템을 어떻게 한서대와 함께 확장할 것인가’를 확인해보는 자리였다. 몽골 민간항공청(MCAA) 투르바야르 청장을 비롯한 대표단이 이달 13일부터 15일까지 한서대를 찾았다. 항공 교육 협력을 점검하고, 향후 확대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이날 현장에서 오간 대화의 핵심은 분명했다. “교육을 함께 만들자”였다. 한서대와 몽골 민간항공청의 인연은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서대는 1차 항공 교육 기관 인증을 획득하고 2022년 다시 2차 인증을 받았다. 양 기관은 이론 교육과 실무 훈련을 결합한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한서대의 항공운항학과, 항공기계공학과, 항공교통물류학과(항공교통학전공), 항공관광학과 및 부설기관인 비행교육원, 항공기술교육원, 항공교통관제교육원 등이 나섰다. 1차 지정 이후 몽골 유학생도 늘었다. 몽골 항공 인력은 한서대에서 최신 항공 교육을 받고, 한서대 학생들은 실무 중심의 교육을 통해 현장 적응력을 높이는 구조다. 이를 통해 한서대 출신 몽골 졸업생 64명이 자국 항공 산업 분야에 진출해 파일럿과 항공교통관제사, 운항관리사, 객실승무원 등 핵심 직군으로 일하고 있다. 함기선 한서대 총장은 현장에서 “이 협력은 단순한 교류가 아니라 교육 모델을 함께 만드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투르바야르 청장 역시 “한서대의 교육 시스템은 이미 검증됐다”며 “협력을 더 확대해 나가겠다”고 화답했다. 이날 현장에서 확인된 것은 단순한 방문 이상의 흐름이었다. 항공이라는 특화 분야에서 시작된 협력이 이제 ‘교육 수출’이라는 구조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흐름은 중국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한서대가 중국 안휘공업대와 공동으로 추진한 디자인·공학 융합 석사 과정이 최근 중국 교육부의 공식 승인을 받았다. 2026학년도부터 매년 50명을 선발하는 이 과정은 단순 교류 프로그램을 넘어 양국 정부가 인정한 정규 학위 과정이다. 학생들은 2+1 방식으로 교육을 받는다. 최소 1년은 한국에서 수업을 듣고, 졸업시에는 중국 안휘공업대 석사 학위와 함께 한서대 디자인공학 석사 학위를 동시에 취득한다. 교육 콘텐츠와 학위 체계를 함께 설계하고 운영하는 단계로 들어서면서 한·중 양국 산업 수요에 부합하는 실무·연구형 인재가 배출되는 것이다. 기존 대학 국제화 전략과는 결이 다르다. 대부분 대학이 유학생 유치에 집중해 왔다. 반면 한서대는 교육 자체를 해외로 확장하고 있다. ‘학생이 한국으로 오는 구조’에서 ‘교육이 해외로 가는 구조’에 더 집중하고 있다. 글로벌 협력의 폭도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지난달 한서대 서산캠퍼스에서는 인도 KIIT·KISS 대학과의 협약식이 열렸다. 협약 내용에는 로봇 공학 공동학과 설립, 항공 MRO(유지- 보수-운영)의 교육 협력, 공동 연구, 학생 교류 프로그램 개편 등이 포함됐다. 단순 교류를 넘어 교육과 산업, 연구를 연결하는 구조다. KISS는 부족민에게 무상으로 교육과 주거를 제공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원주민 교육기관이다. 기술 교육뿐 아니라 사회적 가치까지 함께 다루는 협력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인도네시아와의 협력 현장도 분주하다. 한서대는 지난해 12월 국립인도네시아대와 교류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현지 교육 플랫폼과 연계한 유학생 모집과 한국어 교육 시스템을 구축했다. 글로벌키타와 Makara UI Academy를 통해 현지에서 학생을 선발하고 교육하는 ‘해외 거점형 모델’도 가동 중이다. 이처럼 한서대의 글로벌 전략은 ▲교육 프로그램 수출 ▲학위 공동 운영 ▲해외 인재 선발 시스템 구축으로 이어지는 입체적 구조를 갖추고 있다. 지역을 중심으로 세계를 이끌어가는 글로벌대학으로의 도약한다는 혁신 목표의 핵심 동력으로 밀고 있다. 현장에서 느껴지는 변화는 분명하다. 대학이 학생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교육을 들고 현장으로 나가는 플랫폼으로 바뀌고 있다. 함 총장은 “글로컬 대학으로서 글로벌 과제를 수행하려면 국제 파트너십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며 “교육과 산업, 연구를 연결하는 협력을 통해 실질적인 성과를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학령 인구 감소와 대학 경쟁 심화 속에서 대학의 역할은 빠르게 재정의되고 있다. 이 흐름의 중심에서 한서대는 의미있는 길을 실험하고 있다. 몽골의 하늘에서 시작된 교육 협력은 이제 중국의 캠퍼스와 인도의 교실, 인도네시아의 온라인 플랫폼으로 이어지고 있다. 유학생을 받는 대학에서, 교육을 수출하는 대학으로. 한서대가 만들어가는 ‘글로컬 교육 모델’의 현장이 움직이고 있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 2026-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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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세대, 제5기 골프 최고위과정 모집

    “골프 매너가 나쁜 사람은 생활이나 사업에서도 믿을 수 없다.”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남긴 이 말은 리더들에게 골프가 단순한 스포츠 이상임을 시사한다. 국내외 수많은 CEO와 유명 인사들이 골프에 깊은 애정을 쏟는 이유는 정글 같은 치열한 경제 활동을 벗어나 넓은 잔디 위에서 교감하는 인연이 각별하기 때문이다. 라운딩 중 오가는 조언에서 정신적 영감과 비즈니스적 모티브도 얻을 수 있다. 연세대는 그간 축적된 프리미엄 최고위과정 운영 노하우를 바탕으로 최상의 교육과 강력한 인적 네트워크를 제공하는 ‘연세 골프 최고위과정’ 을 운영하고 있다.현장 중심의 실전 평가와 프로암 라운드를 비롯해 세미 필드(파3)에서 이루어지는 숏게임 실습 등과 골프학개론, 스윙 및 클럽 이론, 골프 룰 이론 수업 등으로 커리큘럼이 구성돼 있다. 골프이론가 정헌철 운영위원장과 KPGA(한국프로골프협회) 시니어 투어에서 활약 중인 고준영 프로가 전담 프로진을 이끈다. 또한 문정욱, 문지욱, 권영석, 김선미, 성시우 프로 등 KPGA와 KLPGA(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 멤버로 구성된 국내 정상급 강사진이 레슨을 전수한다.원우들에게는 연세대 총장 명의 수료증이 수여되며 세브란스병원 건강검진센터(서울역 빌딩) 이용 시 20% 할인 혜택이 주어진다. 4월 23일 입학식을 시작으로 11월 24일 수료식까지 매주 목요일 교육을 진행한다. 모집 인원은 기업 임원 및 사회 지도층 인사 30명 내외다. 문의 : 연세 골프 최고위 과정 사무국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 2026-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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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기관에서 산업 연구·지역 문제 해결 플랫폼으로 진화하는 한서대

    ● 산학 공동 기술 개발… 학생까지 참여하는 ‘현장형 연구 프로젝트’ 가동지난달, 한서대(총장 함기선)의 혁신을 주도하는 글로컬대학사업단(단장 김현성)에 공지가 떴다. 산업체의 기술 수요를 반영한 산학 공동 기술 개발 과제를 발굴, 지원하기에 앞서 수요 조사를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첨단 밀집형 K-항공 글로벌 ‘클러스터(산업 집적지)’ 를 강화하려는 취지였다. 한서대 구성원과 지원 사업 참여를 희망하는 기업이나 기관이 2주간 자유롭게 제안을 하도록 했다. 분야는 K-항공 융합·모빌리티 핵심 기술 및 서비스 개발 분야, 친환경·스마트 공항·도시·물류 혁신 솔루션 분야, K-항공 융합 연계 글로벌 서비스·콘텐츠·디자인/브랜딩 기술 분야 등이었다. 희망 분야에서 방식, 성과의 활용 방안까지 심도있는 조사가 이뤄졌다. 이달 3일 산학 공동 기술 개발 과제 지원 계획이 공고됐다. K-항공 융합 수요에 맞는 현장 밀착형 인재를 양성하고 대학이 보유한 원천 기술의 사업화와 기술 이전 촉진, 고부가가치 신기술, 신제품 창출의 시작이 마련된 셈이다. 한서대 전임 교원과 재학생, 그리고 기술 개발 역량을 가진 기업이 공동으로 참여한 연구진의 신청을 받았다. 과제는 15개 내외로 선정해 4월 1일부터 지원한다. 재학생 참여가 필수다. 4개월의 과제 수행 기간을 거쳐 8월 중 시장성 및 적합성, 기술사업화 가능성, 가치 창출 등에 대한 최종 평가를 실시한다. 지난해 9월 항공 분야 특화 혁신 계획으로 정부의 ‘글로컬대학 30 사업’에 선정된 한서대의 구조 변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한서대는 핵심 4가지 혁신 계획을 세웠다. ▲ 충남 혁신 K-항공 초밀착 지산학연 협력 허브화 ▲ 지역 산업 맞춤 학생 중심 초타파 6무(無) 교육 체제 고도화 ▲ 지속가능한 시너지 창출형 초협력 글로컬 협업 모델 저변화 ▲ 개방형 책임제 성과관리 및 투명한 초개발 성과 공개 체계 표준화 등을 추진 과제로 내세웠다. 항공 분야 보유 역량과 지역 강점을 발판으로 이 과제를 추진하는 데 속도가 붙은 모양새다. 일단 산학 공동 기술 개발을 통한 충남형 K-항공 상생 플랫폼 구축 및 선순환 생태계 구축부터 성과가 나오고 있다. ● K-항공 클러스터, 지역 기반에서 전국으로 확장생태계를 지역 밖으로 확산하는 사전 포석도 잘 깔리고 있다. 이달 들어 경상국립대 가좌캠퍼스에서 열린 ‘항공우주 인간공학 산학연관 융합 워크숍’에 경상국립대, 포항공대, 숭실대학, 울산대, 공군항공안전단, 캐나다 University of Windsor 등과 공동 주최 기관으로 참여했다. 사천 항공 우주 클러스터에 집적된 항공 우주 산업의 역량을 항공기 시스템의 핵심 요소인 ‘인간공학’ 분야와 연계하고, 산업과 학문적으로 확장하기 위해서였다. 한서대로서는 향후 ‘사천 우주 항공 클러스터’에서 추진되는 다양한 항공 산업 연구 과제에 참여할 길을 열어둔 것이다.● 시니어 일자리부터 환경까지… 현장에 들어간 대학 이달 13일 한서대 학생들은 충남 태안군 거리에서 지역 어르신들과 폐지와 재활용이 될만한 것들을 주워 담았다. 곽희정(보건학부 사회복지학과) 학생은 폐지 수거 작업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몸소 느꼈다. 깨닫는 게 많았다. 이처럼 한서대 글로컬대학사업단은 자원 재활용 분야 사회적 기업과 함께 ‘태안군 시니어 안전 일자리 환경 개선 사업’도 벌이고 있다. 한서대는 지난 달 자체 디자인을 통해 제작한 경량 손수레를 평소 폐지 등을 줍는 시니어 단체에 지원했다. 태안군도 지역 소멸 위기가 심각하다. 시니어 친화형 일자리 환경 개선과 지속가능한 지역 일자리 생태계 조성이 절실하다. 지역 정주를 위한 조건을 강화하는데 ‘지-산-학-연’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한서대는 이미 지난해 하반기에 태안군 3곳의 노인복지관과도 상생 협력 업무 협약(MOU)을 맺었다. 지역 기관, 시니어들이 모여 일자리와 지역 문제 해결 방안을 자주 논의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대학이 지역을 지원하는 수준을 넘어 지역 문제 해결을 ‘실천’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태안군과도 ‘태안군-한서대 협약 기반 자율형 지역 현안 해결 과제 성과 공유·확산 워크숍’을 통해 지자체와 대학이 협력해 추진한 지역 밀착형 사업의 성과를 점검했다. 확장 전략도 모색했다. 지역 노인의 사회 참여 활성화, 지역 특화 ‘태안형 드론’ 협업 사업 추진, 지역기업의 글로벌 진출 지원 및 마케팅 전문 인력 양성, 전통시장 경쟁력 강화 등에서 의미있는 진전이 있었다. 대학은 교육·연구 역량을 지역과 연결해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가고, 학생들은 현장에서 문제 해결 역량을 키우며, 지역은 대학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모델이 점점 구체화되고 있다.● 항공 MRO센터, 교육을 넘어 산업 인프라로 지난해 4월 출범한 태안(항공)캠퍼스 항공 MRO 센터도 확장 단계에 진입했다. MRO센터는 K-항공 글로벌 클러스터로 가는 혁신의 핵심 중에서도 핵심이다. 사실상의 항공기 정비 종합 병원이라 할 수 있다. 전국 대학에서 유일하게 있는 시설이다. 한서대는 엔진 분야 정비를 특화한다. 국내 항공사 상당 수가 엔진 정비를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엔진 정비를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데는 대한항공 뿐이다. 센터 내에 마련된 엔진 MRO 실습장 내 분위기도 분주해졌다. 저속, 저고도 항공기 피스톤 엔진을 완전 분해해 처리하는 능력을 쌓고 투자를 집중해 최대한 빨리 대형 항공기 제트 엔진 정비가 가능한 수준까지 올리려 한다. 그래야 교육 시설 차원을 넘어 산업 인프라로 전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26년도 1학기 항공 정비 기초와 가스터빈-왕복 엔진 실습 교육의 커리큘럼을 강화했다. 실제 항공 정비 현장의 흐름과 동일하도록 설계했다. 한 학생은 “수업을 듣는 게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일을 배우는 느낌”이라고 했다. 대한항공 계열 저비용 항공사인 진에어와의 교류도 늘릴 계획이다. 진에어에서 원하는 정비 교과목을 주고, 한서대가 편성을 해서 학생들이 수강을 했다. 진에어는 지난해 한서대 정비 전공 학생들을 선 선발했다. 대학이 산업을 따라가고, 또 산업도 대학을 따라오는 쌍방향 교육 시스템 설계가 더욱 체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 2026-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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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 숫자에 그치지 않고 ‘기회의 사다리’ 될까

    거점 국립대 9곳을 서울대 수준으로 육성한다는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은 교육계 최대 화두다. 수도권 집중과 학벌 중심 사회, 지역 소멸 위기가 동시에 심화되는 상황에서 이 정책은 국가 균형발전과 교육 공공성 회복을 겨냥한 구조 개혁 시도로 평가된다. 그러나 기대만큼 우려도 크고 보완 요구도 적지 않다. 거점 국립대의 지속 가능한 재정, 대학 특성화 전략, 채용시장 구조 개편, 입시와 사교육 구조 개편까지 과제는 복합적이다. 이 정책 성패는 고등교육 체제를 싹 바꾸는 수준의 밑그림 설계와 실행에 달려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정책을 둘러싼 기대와 우려는 지난달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현장의 목소리를 듣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 성공 비결은?’ 토론회에서도 분출됐다. 이날 국회의원과 대통령직속 지방시대위원회 및 교육 단체 관계자, 대학교수, 정책 연구자 등 참석자들은 이 정책이 단기 재정 지원 사업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구조 개혁이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은 거점 국립대에 대한 전략적 투자와 체계적 육성을 통해 지역 교육력을 높이고 성장을 도모하겠다는 국가적 과제”라면서도 “정책 하나로 우리 사회 모든 교육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장기적,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대가 독점한 상징자본의 양적완화… 수평적 특성화 필요” 김영춘 지방시대위원회 위원(국립공주대 명예교수)은 “우리 교육은 ‘인서울’이라는 ‘공간의 병목’과, 수능 한 번의 결과가 개인의 지위와 소득, 인생 경로를 좌우하는 ‘시간의 병목’에 가로막혀 있다”고 진단했다. 김 위원은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서울대가 독점해 온 상징자본을 지역 거점으로 확산시키는 일종의 경제학적 양적완화 정책”이라며 “핵심 전략은 하향 평준화가 아니라 수평적 특성화”라고 지적했다. 이어 “각 거점 대학이 지역 산업과 연계된 특유의 경쟁력을 갖춘 연구 중심 대학으로 성장해야 한다”면서 “대학 간 차이는 서열이 아니라 ‘창조적 전문성’의 차이로 재편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고등교육 마스터플랜을 예로 들며 연구 중심 대학, 교육 중심 대학, 개방형 대학이 층위별로 연결되는 3층 구조 모델을 참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편입 사다리를 대폭 확대해 시간의 병목을 해소하고 패자부활전이 가능한 사회를 약속해야 한다”면서 대학 간 이동 경로의 제도화를 핵심 과제로 꼽았다.● “속도보다 구조, 구호보다 제도”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의 구체성과 안전장치 부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컸다. 김한나 총신대 사범학부 교직과 교수는 “대학 자체가 아니라 학벌을 매개로 한 사회 구조적 병목에서 고등교육 문제가 비롯된다는 문제 인식에는 공감한다”면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서울대 수준’이라는 목표가 집행 단계 작동 기준으로는 충분히 구체화되지 않았다”며 “연구 경쟁력, 학부 교육 질, 국제 랭킹, 졸업생 성과 등 어떤 지표를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정책 설계와 평가 방식이 달라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재정 투입 이후 실패 가능성에 대한 안전장치가 부족하고, 거점 국립대 집중 육성이 동일 권역 사립대와 교원 양성 대학에 미칠 파급 효과 분석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속도보다 구조, 구호보다 제도가 중요하다”며 정책은 정밀해야 하고 지속 가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이 아닌 채용 시장이 변해야” 노동시장 구조가 이 정책의 성패를 좌우할 핵심 변수라는 지적도 나왔다. 송인수 재단법인 교육의봄 공동대표는 “채용시장에서 ‘출신학교 등급제’가 유지되는 한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은 의미가 없다”며 “구직자 역량을 대학 이름이 아닌 직무 능력으로 판단하는 채용 구조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 공동대표는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 사례를 언급하며 “직무 역량을 중심에 두고 채용한 결과 퇴사율 감소 같은 긍정적 성과가 나타났다. 이러한 변화를 민간 기업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 개혁과 함께 채용 구조 개편이 이뤄지지 않으면 ‘학벌 완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사교육과 대학 입시 구조 또한 정책 성공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는 시각도 있었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장은 “거점 국립대 학생 1인당 교육비를 서울대의 70% 수준까지 끌어올린다는 구상은 의미가 있지만, 재정 지원만으로 대학 서열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을지 의문을 해소할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 소장은 “지역 고교 상위권 학생들이 거점 국립대 선택을 주저하는 현실은 재정 지원만으로 해결되기 어렵다”며 “대학입학보장제와 공동선발 제도, 교육 자원 공유 같은 구조적 대안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정 확대가 필요조건일 수는 있어도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대학 숫자 아닌 기회의 경로 넓혀야”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을 중장기 고등교육 체제 개편의 출발점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상우 지방시대위원회 위원(국립경국대 교수)은 “이 정책은 대학 서열 완화보다는 지역 불균형 완화 정책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하다”면서도 “대학 간 역할 분담과 특성화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은 이미 상당 수준에 도달해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재정 투입 중심의 설계에서 벗어나 질적 전환을 동반한 고등교육 체제 개편 논의로 확장할 수 있는 정책적 기반이 마련된 셈”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백선희 조국혁신당 의원은 “재정, 입시 제도, 거버넌스, 대학 공공성을 비롯한 대학 체계 전반을 함께 점검하지 않으면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기 어렵다”고 지적했고, 김혜민 사단법인 대전환포럼 운영위원은 “편입 제도 확대와 공공 연구대학 구축, 창업 권장 대학 모델 등 다양한 실행 방안이 병행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참석자들은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은 단순히 대학 수를 늘리는 사업이 아니라 ‘기회의 경로’를 넓히는 구조 개혁으로 설계돼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안정적인 재원 확보, 대학별 수평적 특성화, 편입 사다리 확대, 채용 시장 개편, 초중등 교육 연계, 지역 대학 생태계 재설계 등이 동시에 추진될 때 비로소 정책의 실질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계에서는 대학 체제 개선이라는 맥락 속에서 고등교육과 공교육 개혁을 토대로 지역균형발전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서울대 10개’라는 숫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학생과 청년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느냐가 정책의 진짜 성패를 가를 것으로 전망된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 2026-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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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MZ에서 파리까지… 신한대, 국제·K-Culture·현장융합교육으로 미래형 인재 양성 나선다

    신한대(총장 강성종)는 국제개발협력과 글로벌 교육을 대학의 핵심 전략 축으로 삼고 단순 교류를 넘어 대학의 사회적 책임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국제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그 대표적 사례가 26일 개최되는 ‘DMZ TO PARIS 선언식’이다. 이번 선언식은 한불수교 140주년을 기념, DMZ에서 출발해 예술·교육·국제협력으로 한국과 프랑스를 연결하는 중장기 국제 문화·교육 프로젝트의 공식 출범을 알리는 자리다. 신한대는 DMZ라는 역사적 공간을 미래지향적 협력 플랫폼으로 전환하며 “Yet to come!”이라는 슬로건처럼 다음 세대 중심의 국제교육 모델을 구체화할 계획이다.●“국제협력 교육”… DMZ를 세계와 연결하는 대학 신한대의 국제화는 단순 방문이나 이벤트가 아니다. 학생들이 국제질서와 평화, 공존의 가치를 학습하는 글로벌 시민교육 과정으로 설계돼 있다. DMZ TO PARIS 선언식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과 연계해 진행된다. 대학의 첫 교육 경험부터 국제적 시야와 평화 감수성을 심어주는 방식이다. 기조 연설은 파리 제1대학(팡테옹-소르본) 국제관계사 박사인 정상천 박사가 맡는다. DMZ의 의미를 세계사적 맥락에서 조망하며 한불 협력의 새로운 교육적 지평을 제시할 예정이다.●“K-Culture 교육”… 세계 문화로 확산되는 한류 인재 양성 신한대의 또 다른 경쟁력은 K-Culture 특성화 교육이다. 공연예술학과, K-POP학과, K-뷰티학과 등 문화콘텐츠 분야를 기반으로 학생들이 예술과 산업, 글로벌 무대를 연결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고 있다. DMZ TO PARIS 프로젝트 역시 학술 프로그램에 더해 공연·음악·전시 등 문화예술 요소를 결합했다. 학생들은 예술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참여하며 국제문화 역량을 확장하게 된다. 신한대는 이를 통해 K-Culture 기반의 글로벌 문화인재 양성 대학으로 정체성을 강화하고 있다.●“융합형 인재 양성”… 예술·학술·현장을 결합한 교육 모델 신한대 국제교육의 핵심은 현장을 교실로 만드는 융합형 학습 구조다. 선언식 둘째 날에는 참가자들이 DMZ 접경 지역을 방문한다. 이는 단순 견학이 아니라 분단의 현실을 직접 마주하고 평화의 가능성을 성찰하는 현장 기반 평화교육(Field-based Learning)이다. 이러한 교육 모델은 이미 신한대가 추진해온 학생 참여형 프로그램으로 확장돼 왔다. 작년 6월 진행된 ‘대마도 평화비전기행(WAY MAKERS)’에는 약 1000명의 신입생이 참여했다. 학생들은 역사 탐방, 문화 교류, 환경 봉사활동을 수행하며 평화 감수성과 글로벌 시민 역량을 함께 길렀다. WAY MAKERS는 역사문화 탐방, 문화 예술 교류 행사, 비전선언문 발표, 봉사활동 등을 포함한 비교과 국제교육 모델로 설계됐다. 올해 5월 말 두 번째 행사가 예정돼 있어 지속 가능한 교육 모델로 발전하고 있다. 신한대는 DMZ TO PARIS 프로젝트를 통해 국제 협력, K-Culture 특성화, 현장 기반 융합교육을 결합한 미래형 대학 교육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DMZ라는 역사적 공간을 평화와 창조적 협력의 플랫폼으로 전환하고, 학생들이 세계와 연결된 학습 경험 속에서 글로벌 감수성과 문화역량을 갖춘 융합형 인재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다. 더 나아가 신한대는 올해 10월 한·중·일 다음 세대가 함께 참여하는 국제 프로그램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세계, 문화, 기후 의제를 중심으로 협력의 장을 확대할 예정이다. 또한 향후 프랑스·인도 등으로 연계 범위를 넓혀 차세대 국제 리더십 역량을 강화하고, 동북아를 넘어 글로벌 차원의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중장기 전략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번 선언식은 한불수교 140주년을 기념하는 상징을 넘어 미래 세대를 위한 국제문화교육 연대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 2026-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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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패스는 꼭 그에게 가야 했다” 골보다 오래 남은 이름, 이태호와 최순호[유재영의 전국깐부자랑]

    깐부. ‘같은 편’, 나아가 ‘어떤 경우라도 모든 것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이’라는 의미의 은어(속어)죠. 제아무리 모두 갖춘 인생이라도 건전하게 교감하는 평생의 벗이 없다면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좋은 인간관계는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깐부들 사이에 피어나는 ‘같이의 가치’를 소개합니다.1985년 10월 26일, 구름 가득 낀 오후 3시 무렵. 일본 도쿄 요요기국립경기장에 들어찬 6만 일본 관중이 흔드는 일장기가 시야를 지배했다. 이곳 관중석은 가파르다. 많은 관중이 부는 경적 같은 에어혼(압축 공기로 소리를 내는 응원 도구) 소리가 아래로 꽂히듯 깔리며 퍼졌다. 귀가 먼저 피로해지는 소리였다.1986년 멕시코 월드컵 진출을 향한 아시아 최종 예선 1차전. 이때 아시아에 걸린 티켓은 단 두 장. 그중 동아시아 몫은 하나. 한국과 일본은 외나무다리에 마주 섰다. 이곳에서 어느 두 사람은 평생 우정의 끈을 잡았다.● 6만 관중을 적막에 빠트린 둘의 단 한 번 시선 교환원정 경기에 나선 한국 대표팀은 조심스럽게 탐색부터 했다. 전반 30분, 일본 수비가 걷어낸 공이 공격에 가담한 수비수 정용환의 오른 발등에 정확히 걸렸다. 골망을 찢을 듯한 선제골. 경기장은 숨을 멈춘 듯 고요해졌다. 12분 뒤, 훗날 평생 절친이 되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선물’을 건넸다.한국 수비가 일본 공격을 끊어 내자 최순호가 일본 진영 가운데에서 오른쪽 측면으로 빠져나갔다. 순간 박창선의 패스가 왔다. 공을 잘 잡아 놓고 고개를 살짝 돌렸다. 처진 공격수 이태호가 가운데 빈 공간으로 전력 질주했다. 일본 수비수 둘 사이로 찔러 주면 골키퍼와 1대1 상황이 날 것 같았다. 보폭을 계산해 서너 걸음 앞으로 공을 밀어 줬다. 정확했다. 이태호는 왼발로 공을 접어 수비 하나를 제쳤다. 이태호를 마주한 일본 골키퍼는 골 왼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겼다. 이태호는 오른쪽을 택했다. 골. 이태호는 두 손을 번쩍 들며 환호했고, 그라운드엔 한국 선수들 함성만 들렸다. 2대1 승리. 32년 만의 월드컵 본선 진출을 사실상 확정 지은 골이다. 지금 생각해도 미친 호흡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움직임이었다.● 직설과 여백이 만든 완벽한 타이밍이름까지 ‘호’로 끝나는 둘에게 이날은 평생 술안주이자 밥반찬이다. 건빵 봉지에 든 별사탕처럼 씹을수록 단맛이 난다. 회상할 때마다 늘 새로운 장면을 끄집어 낸다. 죽어도 지면 안 됐던 한일전.최순호는 경기 전에 ‘이태호와의 기적’을 어느 정도 예상했다고 한다. 이태호는 처음 듣는 얘기다. “김정남 감독님이 나를 쓰려고 하는 느낌만 받았다”는 최순호의 말은 이태호를 더 놀라게 한다.“태호 네가 선발로 나갈 줄 알았어. 감독님이 날 부르더니 가운데에서 오른쪽 측면으로 계속 빠져서 기회를 노리라고 하셨어. 왼쪽은 (김)주성이에게 맡기고. ‘네가 이동하면 태호가 가운데로 들어올 거’라면서 ‘태호도 한가닥하는 친구니 기회를 살릴 거다’라고 한 말이 기억 나. ‘이렇게 해야 이긴다’고 거의 애원을 하셨어. 그런데 이 전술이 경기에 그대로 나온 거야.”소름 돋는다는 이태호다. “너하곤 원래 호흡이 잘 맞았잖아. 순호한테 패스가 가는 순간 무조건 날 봐 줄 것 같았어.” 사실 최순호도 스스로 놀랐다.“태호야, 정말 축구에 관해선 내가 고집이 좀 있잖냐. 그런데 이날은 나를 버렸어. 축구 인생에서 감독님 말을 100% 들은 유일한 경기였다고.” 특별한 고백이었다. 이태호는 친구를 설득한 감독이나 팀 전체를 위한 ‘필승 그림’을 받아들인 최순호가 대단하고 고맙다. 김 감독이 나, 이태호를 확실한 선발 자원으로 여기진 않았지만 최순호 이태호 콤비만이 할 수 있는 ‘한 방’이 꼭 필요해 제안한 것이라 여긴다.“순호만 만나면 무조건 옆에 붙는 일본 수비수가 있잖아. (최순호가 옆에서 ‘이시카미라고 있어’라고 한다.) 아, 맞다. 김 감독께서 그 친구를 나랑 묶어 역이용한 거라고 봐. 그래서 순호가 김 감독 작전에 절대적인 신뢰를 보낸 준 것이었어.” ● “너 아니었으면 나 없었어” 서울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2차전은 이태호와 최순호의 우정을 키운 또 다른 드라마였다. 1차전에서 골을 넣고 의기양양, 2차전에도 선발로 나선 이태호는 전반이 끝나고 교체됐다. 자신과 교체해 들어간 허정무가 결승골을 넣었다. 이태호는 무척 분했다.“서울에서 월드컵 진출 주역이 되고 싶었거든. 그런데 교체가 됐으니 속이 상하더라고.”벤치에서 후반전 내내 고개를 묻고 있었다고 했다. 승리라는 결과 앞에서 분이 풀리긴 했지만 아쉬웠다. “태호야. 경기 중에 나를 봤어?”(최순호)이태호는 몰랐다. 그저 최순호가 후반 때린 절묘한 왼발 슛이 일본 골대를 맞고 나왔고, 그것을 허정무가 골로 연결한 것만 기억한다. 그런데 최순호는 전반 막판 이시카미의 거친 태클로 무릎을 심하게 다쳤다. “무릎이 완전히 꺾였다가 다시 튀어 나온 것 같더라고. 바로 인대가 크게 손상됐구나, 느낄 수 있을 만큼.”(최순호)하프타임 때 락커룸에 누워 경기를 포기할까 생각하던 순간.“누가 내 머리를 붙잡고는 ‘순호야, 너 없으면 안 된다. 꼭 뛰어야 한다’고 해. 고개를 돌려 보니까 김 감독이셔.”그런 일이 있었는 줄 몰랐다. 최순호는 다친 무릎으로 후반에도 나갔다. 1차전 김 감독의 전략에 신뢰를 보낸 최순호는 그의 부탁을 외면할 수 없었다. 허정무의 골 세리머니에는 무릎 통증을 참을 수 없어 동참하지 못했다.“정무 형이 골 넣고 내 반대쪽으로 가더라고. 하하.”(최순호)“순호야, 그래서 혼자 손만 번쩍 들고 흔들었구나.”(이태호)이태호는 지금 다시 생각하니 최순호가 자신 때문에 통증을 참고 후반에도 나가 준 것 같다. 이날 경기는 어떻게 보면 이태호 축구 인생에서 별 볼 일 없던 날이다. 최순호까지 후반에 못 뛰었다면 1차전 둘의 활약이 빛 바랠 수도 있었다. “네가 나 대신 싸워 준 거네. 진짜 고마워. 순호야.”최순호가 손사래를 친다. “괜찮아유.”●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된 우리이태호는 대전 출신이다. 대전상고(현 우송고)를 나왔다. 최순호는 고향이 충북 괴산이다. 청주상고를 나왔다. 충청남도와 충청북도가 각각 낳은 축구 전설이다. 같은 충청 출신인데 스타일은 다르다. 이태호는 달변이다. 말재주로 사람을 끈다. 최순호는 “대표팀이 외국 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 타기 위해 시간이 나면 태호의 진가가 나온다”고 했다. 한번 얘기를 시작하면 여러 화제를 넘나든다. 화려한 언변으로 동료들을 5~6시간 집중시킨 건 전설처럼 전해지는 얘기다.그는 직설적이다. ‘MSG(조미료)’를 뿌리지 않는다. 이태호는 “나 다음에는 변병주가 분위기를 잡았다. 나는 있는 그대로 재밌게 얘기하는 편인 반면 변병주는 ‘구라’가 조금 심했다”고 또 웃긴다. 결정과 선택 상황에서 뜸 들이는 법이 없다. 신조가 ‘오늘 결혼하면 내일 아들 낳아야 한다’다. 최순호는 결이 조금 다르다. 감정이 막 드러나지 않는다. 담담하고 성찰적이다. 여백의 미가 있다. 이태호 같은 사람을 좋아하고 그 사람에게 잘 스며든다. 속으론 심지가 강하다. 한 사람이 날이 서 있다면, 다른 사람은 부드럽다. 한 사람은 순간의 결단을 잘하고, 다른 사람은 부드럽게 전체 그림을 잘 그린다. 결이 달라서 오히려 잘 맞았다. 서로에게 잘 흡수됐다. 축구 스타일도 성격과 닮았다. 이태호는 순간 위치 선정과 타이밍 맞는 침투를 잘하고 골 결정력이 있다. 최순호는 골을 잘 넣으면서 경기 조율 능력과 흐름 설계가 탁월했다. “우리 46년째네.” 둘은 1979년에 처음 알았다. 이태호는 고려대 1학년, 최순호는 청주상고 3학년 때다. 호적 정리가 복잡한데, 어쨌든 친구다. 최순호가 “그냥 넘어가유. 알면 다쳐유”라며 원천봉쇄한다. 당시는 그랬다. 적게는 두세 살, 많게는 다섯 살 차이가 있어도 친구가 되는 일이 많았다. 이태호는 “삐쩍 마르고 키 큰 애가 잘한다는 얘기를 (정)해원이한테 들었다”고 했다.최순호는 “중학교 3학년 때 대학보다는 실업으로 가겠다고 생각했다. 월급 받고 축구하면 더 잘할 것 같았다”고 했다. 그래서 간 청주상고에서 축구에 눈을 떴다. 당시 잘하는 선수는 거의 대학에 갔다. “고3 때 한국전력으로 갈 수 있었어. 그런데 팀 분위기가 무섭더라고. 그래서 포항제철로 바꿨지.”(최순호)이태호는 또 처음 듣는 얘기다. “나는 네가 집안 사정이 어려워서 연고대나 다른 대학을 안 가고 실업 팀에 간 줄 알았지.”둘은 그해 20세 이하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현 U-20 월드컵) 대표팀에서 처음 만났다. 이태호는 청소년 대표팀 터줏대감이었고 최순호는 그해 봄에 처음 뽑혔다. “운이 좋았어. 당시 청소년 대표팀 트레이너로 오신 김호 선생님(1994 미국 월드컵 대표팀 감독)이 나를 뽑아야 한다고 추천하셨다는 거야.”(최순호) 둘은 일본 고베에서 열린 이 대회에 나가 조별 리그 3경기를 같이 뛰었다. 이태호는 대표팀의 유일한 골을 넣었다.“그때 우리가 붙어 다니지는 않았어. 마라도나 기억나? 우리랑 같은 호텔에 묵었잖아. 정말 작은 친구가 마라도나라고 해서 데리고 나가서 겁이라도 주고 싶었지. 하하.”(이태호) 1980년 5월 둘은 성인 대표팀에 같이 소집돼면서 각별해졌다. 그해 아시안컵 준우승 이후 대표팀은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및 스페인 월드컵 예선과 1984년 LA 올림픽 아시아 예선 등에서 번번이 미끄러졌다. 이태호는 쟁쟁한 선배들에 밀려 벤치에 머무는 시간이 길었다. 기대는 상처가 됐다.“초등학교 이후로 후보를 해 본 적이 없거든. 그런데 벤치에 있으니까 막 분한 거야. 1980년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 때도 고향 대전공설운동장에서 경기가 있었는데 배려를 해주셨으면 좀 좋았겠냐고. 하하. 팬들이 내 이름 적힌 플래카드 걸어 놓고 했을 것 아냐. 그런데 1분도 못 뛰었어. 열 받아서 경기 끝나고 유성에서 대표팀 회식을 하는데 술 먹고 꼬장을 부렸지. 이강조 형이 옆에서 말리고 그랬어.”(이태호)“나는 태호처럼 이런 게 없었어. 그때만 해도 뛰라면 뛰고 말라면 마는 거였지. 운이 좋긴 했어. 고등학교 3학년 10월부터는 포철에 합류해서 훈련했는데, 김정남 감독이 포철 코치로 온 거야. 계속 둘이 같이 훈련했겠지. 김 감독께서 1980년에 대표팀 감독이 되셨잖아.”(최순호)최순호는 대표팀에서 준수한 활약을 했지만 적극적으로 뛰지 않는다는 시선과 지적 때문에 오래 혼란스러웠다.“활동량이 많은 편이긴 한데 대표팀에선 많이 안 뛰었어. 설렁설렁 한다고 욕을 자주 먹었지. 그런데 대표팀에는 (나보다) 빠르고 재능 있는 선수가 많았잖아. 난 골 넣고 도움 주는 것만 신경 쓴 거지.”뉴델리 아시안게임 조별리그에서 일본에 져서 충격의 예선 탈락을 한 뒤에는 극심한 컨디션 난조를 겪기도 했다. 최순호는 “그 뒤로 폼이 급격하게 무너졌다”고 했다.이태호도 잘 안 풀렸다. 선발로 많이 나간 대회에서는 팀 성적이 좋지 않았다. 1982 스페인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쿠웨이트와의 경기에선 석연치 않는 퇴장을 당했다. 둘은 1983년 LA 올림픽 아시아 예선 때 불합리한 대표팀 운영을 지적하며 태릉선수촌을 무단 이탈하기도 했다. 이태호가 주도하고 친구가 따랐다. 아무 생각없이 선수촌을 나가면서 외출증을 끊지 않았던 게 화근이 됐다. 징계도 받고 많이 힘들었다. “젊은 혈기에 참을 수 없었어.”(최순호)“지금은 그렇게 못 하지. 그래도 선수촌 밖에 있는 동안 재밌게 놀았어. 내가 (프로축구 팀) 대우에 있었잖아. 팀 높은 관계자를 찾아가니 100만 원 주셨잖아. 갈비도 먹고 잘 돌아다녔네. 하하.”(이태호)4년 동안 대표팀 한솥밥을 먹으며 끈끈해진 둘에게 황금 같은 시절이 찾아온다. 경기장에선 눈빛만 봐도 서로가 뭘 원하는지 알았다. “1985년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 때 내가 힐패스한 공을 순호가 다시 힐킥으로 밀어 줘서 내가 골을 넣었잖아. 기억나? 우리가 느린 것 같아 보이는데 순간 빨랐어. 몸이 반응하잖아.”(이태호) “충청도잖유. 충청도 말이 느린 것 같으면서도 짧게 압축해서 정곡을 찌르잖냐. 몸도 그려.”(최순호)둘은 몇 달 뒤 한일전에서 평생 우정을 약속하는 역사적인 골을 합작한 것이다. ● 최순호의 월드컵 원더 골과 이태호1986년 멕시코 월드컵. 공격수와 미드필더를 오가는 포지션이던 이태호는 선발 출전 기대감을 또 접어야 했다. 당시 세계 최고 축구 리그인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뛰는 차범근까지 합류했기에 몸 컨디션은 최고였지만 벤치 신세였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최순호는 후보를 죽도록 싫어하는 이태호의 마음을 너무 잘 알았다. 그렇다고 티를 내고 챙길 수도 없었다. 속으로 미안했기에 책임감을 더 느꼈다. 이태호와 같이 못 뛴다면 어떻게든 친구 몫까지 하고 싶었다.아르헨티나 및 불가리아와의 대결에서 1무 1패를 하고 맞선 3차전 이탈리아. 그런데 최순호에게도 불편한 상황이 왔다.“태호야, 내가 불가리아 전에 안 나왔잖아. 이걸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야. 대표팀에 소집되서 선발로 못 나간 게 이때가 두 번째였을 거야. 기분이 안 좋아서 이탈리아 경기엔 안 나간다고 했어. 그러니까 창선이 형, (조)영증이 형이 다독이면서 마음을 풀어 주더라고.”얼어붙은 마음을 되돌린 건 이태호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어떻게 보면 최순호 축구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에 이태호 덕에 최순호가 버텼다. 그리고 이탈리아 전에서 최순호는 세기의 중거리슛 골을 터트리고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포효했다. 역대 월드컵에서 나온 가장 아름다운 골 중 하나로 꼽힌다. “네가 슛을 할려고 볼을 오른쪽 약간 뒤로 접어 놓고는 기가 막히게 꺾어 때렸잖아. 그 경기에서 네가 볼을 접은 각도, 슛을 때리는 순간 발목의 각도를 난 분명하게 기억해. 내가 정말 좋아하는 각도거든. 경기도 못 나가고 열 받아 있었는데, 그 순간만큼은 소름이 돋아서 소리를 질렀지.”(이태호)둘은 은혜를 주고받았다고 말한다. 아무리 유명하다 해도 국민이 기억할 만한 역사적인 골을 넣은 선수는 많지 않다. 그것을 서로가 만들어 줬다. 이태호는 “그래서인가. 순호가 나한테 고맙다며 한일전에서 또 한 번 골을 넣게 해줬다”고 했다.1989년 서울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한일 정기전 후반전, 최순호는 수비를 제치고 측면을 돌파해 이태호에게 시쳇말로 ‘밥상을 차려주는’ 패스를 했다. 이태호는 숟가락만 들고 맛있게 먹었다. 1-0 승리. 결승골이었다. “순호 때문에 내가 일본 킬러가 됐어. 하하.”● ‘쬐끔’ 고집 있는 충청도 축구 콤비11년간 국가대표로 A매치 90경기에서 37골을 넣고 은퇴한 최순호는 프로축구 포항에서 두 차례, 강원에서 한 차례 감독을 지냈다. 서울과 수원 FC 단장직을 맡았고 대한축구협회 부회장도 역임했다. 축구인으로 감독과 행정, 경영을 다 경험했다. 국가대표로 A매치 80경기에서 24골을 넣은 이태호는 프로축구 대전 감독으로 부임하자마자 FA컵 우승을 일궈 냈다. 이후 고교와 대학 감독을 맡았고 지금은 강동대 감독이다.둘 다 바빠 자주 보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둘의 우정은 시간의 벽을 넘어선다. 마음으로 통한다. 남이 보기에 골 넣은 얘기는 영웅담 같지만 둘에겐 일상생활 이야기다. “꽈리야. 15년 뒤에 인터뷰 또 같이 혀. 지금은 기억이 없는데 나중에라도 1985년, 1986년 때 일이 새롭게 생각날 수도 있는 거 잖유.”(최순호)꽈리는 이태호의 별명이다. 고등학교 때 선배한테 맞아 터진 입술을 몇 바늘 꿰메고 나니 크게 부풀어 꽈리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졌다. 나중에 대우에서 뛸 때는 당시 안종복 단장이 말을 잘 꼬아 재미있게 한다는 의미로 ‘꽈리’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래 순호야. 1979년에 만나서 안 죽고 살아 있는 것도 다행이다. 자주 보자.”맛이 있는 우정이다. 충청도 느린 말투와 직설적인 농담이 뒤섞인다. 흐름 자체가 이태호와 최순호의 관계를 설명한다. 직설과 여유, 냉정과 농담이 공존한다. 서로를 미화하지 않고 기억하며 인정해 주고 웃는다. 지금 보니 주고받은 선물은 골이 아니라 서로의 이름 같다. 두 이름의 조합은 레전드를 넘어 ‘깐부’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 2026-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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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끝까지 따라가 반드시 리커버리”… 조상현 감독이 혼자 영화 보고 피자 한 판 포장하는 까닭[유재영 기자의 보너스 원샷]

    왜 어느 팀은 잘 돌아갈까. 지난 시즌 남자프로농구(KBL) 챔피언이자 이번 시즌에도 선두인 창원 LG 세이커스 전력은 왜 좀처럼 흔들리지 않을까. 기복 없는 힘의 근원을 알고 싶었다. 조상현 감독에게 물었다.조 감독은 홈인 창원에서 경기가 없는 날엔 “완벽한 외톨이가 된다”고 했다. 혼자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는 피자 한 판 포장해 숙소로 들어온다. 하루이틀 일상이 아니다. 피자 전문점도 아닌 맥줏집 안주용 피자인데 입맛에 정확히 ‘꽂혔다’. 가족이나 코치들, 지인과 시간을 보낼 것 같지만 아니다. 선수들에게도 웬만하면 연락하지 않는다. 붙잡지 않고 놓아둔다. 거리를 유지하며 자신을 회복한다.코트에서는 정반대다. 선수들에게 “훈련 1시간 30분만 집중해 달라”고 요구한다. 함께 외치는 주문이 있다. “리커버리(Recovery)!” 일종의 복구다. 일상에선 놓아두고 코트에선 붙잡는다. 놓쳤다가도 반드시 따라붙는 그의 농구 설계와 닮았다. ‘조상현표’ 농구는 한번 잡혀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태도와 구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마레이에서 시작된 수비 설계“LG에 와서 아셈 마레이를 보고 수비 농구를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출발점은 외국인 센터 마레이(이집트)였다. 마레이는 수비의 철옹성이다. 리그 리바운드와 가로채기 1위. 골밑에서 잘 버티고, 끈적하게 막고, 집요하게 뺏는다. 상대 팀은 골치가 아프다.“경기당 30~40점씩 넣는 선수는 아니잖아요. 부임 때부터 마레이 중심으로 상대를 귀찮게 해서 최대한 점수를 안 주고 이기자는 농구 설계 방향을 잡았죠.”이 목적 설계 성과는 숫자로 드러난다. LG는 팀 리바운드 1위, 수비 리바운드 1위다. 상대 공격 리바운드와 2차 득점 확률이 낮아진다. 자연스럽게 적은 실점으로 이어진다. 수비 효율(DEFRTG·Defensive Rating)은 101.8. 100번 수비에서 101.8점만 내줬다. 역시 리그에서 가장 낮다.상대는 LG를 만나면 3점슛으로도 재미를 못 보고 있다. 조 감독이 가장 싫어하는 장면이 ‘편안한 3점 허용’이다. 조 감독이 정한 기준은 한 경기 3점슛 10개 미만 허용. 실제로 상대 팀은 LG 전에서 경기당 3점슛을 평균 24.2개만 시도해 7.0개를 넣었다. 성공률 28.8%에 불과하다. 덜 쏘게 하면서도 어렵게 쏘게 만든 결과다.LG 공격은 여러 공격 지표 평균 리그 중상위권이다. 압도적이지 않다. 미국프로농구(NBA) 지난 시즌 챔피언이자 이번 시즌도 선두인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와 닮았다. 수비로 지지 않는다. 오클라호마시티 DEFRTG도 105.6으로 리그 최저 수준이다. 실책에 의한 실점, 속공 실점은 리그에서 가장 적다. 공격보다 일관된 수비 태도, 집중력, 구조와 동선 복구(리커버리) 관리에 방점이 찍혀 있다.LG 가로채기 숫자는 많지 않다. 상대 턴오버를 억지로 만들기보다 공격 시간을 소모시키는 데 초점을 둔다. 탑에서의 무리한 트랩 대신 사이드라인 쪽 유도, 드리블 방향 제한, 패스 각 차단으로 상대의 첫 옵션을 없앤다. 상대는 ‘터프 샷’을 쏘게 되고, 이는 낮은 야투 성공률로 이어진다. 페인트존 진입이 어려워지면 장거리 슛이 늘고 공격 효율도 떨어진다.● 숫자에 잡히지 않는 복구의 가치―상대의 공격 선택지가 하나씩 지워지는 것 같다.“맞더라도 쉽게 맞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핵심은 리커버리예요. 스크린에 걸려도 끝까지 따라붙어 지연시키라고 합니다. 뚫려도 페인트존을 쉽게 내주지 않는 간격 유지가 필요하죠. 마지막 리바운드까지 책임지는 동선을 확보합니다. 공격이 실패했을 때 백코트도 빨라야 하고요. 한발 늦었어도 끝까지 쫓아가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정렬하는 복구가 중요합니다.”이런 수비 태도와 동선, 간격과 복구 타이밍은 수치로 잘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조 감독은 경기 후 기록지를 집요하게 들여다보지 않는다. 마레이와 국가대표 슈터 유기상의 기록 정도만 확인한다. 대신 코트 리커버리를 유지할 수 있는 코트 밖 리커버리에 더 신경을 쓴다.“이기든 지든, 특히 패하고 나서는 곧장 락커룸으로 안 가요. 감독실 문을 먼저 엽니다. 선수들도 얼마나 기분이 안 좋겠어요. 감정에 지배돼 기록을 들이밀면 역효과죠.”마레이와 아시아쿼터 칼 타마요도 리커버리 차원에서 ‘리스크’를 관리한다.“박살 나는 경기를 보면 대체로 마레이와 타마요 멘탈이 먼저 흔들려요. 심판만 쳐다보고 항의만 하죠. 불평이 있으면 나한테 하라고 합니다. 팀은 건드리지 말자고요.”리커버리 기강을 무너뜨리는 행동은 용납하지 않는다. 버스 탑승 시간 같은 사소한 규율도 칼같이 지킨다. ‘1~2분쯤 괜찮겠지’ 하는 순간, 버스는 이미 출발한다. ● 코트 밖 에너지 정렬에 방점조 감독은 최근 연승 흐름 속에서도 쉬는 날마다 자신의 코트 밖 리커버리를 반복한다. 조언을 듣고 전술을 재포장하기도 한다. 휴대전화에는 대학 시절 은사 최희암 전 감독 이름이 자주 뜬다.“가드 양준석이 수비를 더 깊게 끌어들이며 다음 플레이를 하는 게 좋겠다고 조언해 주셨어요. 큰 도움이 됐죠.”최근 양준석이 수비와 ‘밀당’을 하면서 공간을 확보하고, 공격 숫자 우위 상황을 만드는 조율이 능숙해진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코트 밖 시간은 코트 안에서 흐트러진 감정과 에너지를 다시 정렬하는 데 쓴다. 현주엽에게 배운 양고기가 아직 완전히 입에 맞지는 않지만 적응 중이다. 민물매운탕도 최근 국가대표팀에서 전희철 감독과 함께 먹으며 익숙해졌다고 웃는다. 낯선 것을 받아들이며 앞으로 가는 적응과 확장의 리커버리다.영화관의 고요함과 피자 한 판의 온기 그리고 코트에서 끝까지 따라붙어 복구하는 잰걸음. 소란스럽지 않은데 참 단단하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 2026-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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