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매어도, 돌아가도 괜찮아요”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6월 18일 04시 30분


‘음악 큐레이터’ 김숙진이 전하는 인생의 선율


‘음악 큐레이터’ 김숙진이 전하는 인생의 선율

“클래식 음악은 참 아름답지만 어렵게 느끼는 분들이 많아요. 잘 알아야만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죠. 그 선입견을 깨고 싶었죠.”

김숙진 ‘킴스 오케스트라’ 단장(사진)은 “음대에 들어가서 했던 ‘뻘짓(허튼짓의 전라도 방언)’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고 말한다. 다른 전공 강의를 듣고 학생들을 집에 모아 자신의 꿈을 계속 파고들게 했다. 음악인으로는 다소 엉뚱해 보였던 지난 방황은 공연기획자이자 음악해설가, 교육가, 오케스트라 단장으로의 그를 있게 했다.

1980, 90년대 드라마에 자주 등장한 인기 탤런트 송기윤의 아내라는 사실은 얼마 전에야 잠깐 알려졌다. ‘킴스 오케스트라’를 창단한 과정도 그답다. 발로 뛰어 섭외가 힘들다는 유명한 국내 정상급 연주자 45명을 모셔왔다. 지휘자는 최영선 밀레니엄 심포니 오케스트라 전임 지휘자다. 대한민국 오페라페스티벌, 통영국제음악제, 국립오페라단 등에서 지휘를 했고,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의 전속 지휘자이기도 하다.

김숙진 단장과 최영선 지휘자
김숙진 단장과 최영선 지휘자

김 단장은 영화 음악, 팝페라, 탱고,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를 클래식과 함께 엮는다. 음악의 스토리를 사람의 마음과 연결시키려고 한다. 무대에 올라 진행을 하면서 작곡가가 어떤 마음으로 곡을 썼는지, 그 음악이 탄생한 시대와 배경은 무엇인지, 그 음악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감정과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이야기한다. ‘이야기가 있는 콘서트’가 탄생한 이유다.


>> 음대생의 엉뚱한 외도

예중·예고를 안 가고 서울대 음대(기악 전공)에 입학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천재 소리를 듣고 자란 학생들 사이에서 처음으로 재능의 벽을 느꼈다. 마음 정리를 하려다보니 법대 강의를 들었고, 의상학과 경영학도 접했다. 재즈에 빠졌고 영화 음악과 대중 음악도 탐닉했다. 그 과정에서 클래식이 고집하는 절대적 세계관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졸업할 때쯤 되니 잘하는 친구들이 목숨 걸고 가겠다는 길을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안 생기더라고요.” 의상을 공부한 경험으로 공연을 기획하며 무대 의상과 조명의 색감, 연출과 공간의 흐름을 직접 조율할 수 있었다. 경영 공부가 조직 운영에도 큰 도움이 됐다.

>> 아이들의 꿈을 찾게 한 거실 음악회

한 때 그는 서울 목동 아파트 지역 등에서 ‘음악 레슨의 여신’으로 불렸다. 새벽 6시부터 밤까지 음악 이론, 입시 레슨, 피아노, 속성 악기 지도를 닥치는 대로 했다. 수많은 학생을 가르치며 그는 한 가지 문제를 알게 됐다.

“아이들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고 성적만 보고 살더라고요. 적성이나 꿈이 머리에 없었다는 것에 너무 놀랐어요.”

그래서 자기 집 거실을 열었다. 학생들을 모아 ‘비전 스쿨’을 운영했다. 전문가들을 초청해 적성과 진로를 찾도록 도왔다. 마지막 수업은 늘 특별했다. 학생들이 부모 앞에 서서 자신의 꿈을 발표하도록 했다. 어떤 사람이 되겠다는 구체적 목표를 세우게 했다.

“처음에는 꿈이 없던 아이들이 어느 순간 자기 삶을 설계하더라고요. 아이들 발표를 보면서 부모들이 울어요.”

김 단장은 그 시간에 음악을 더했다. 피아니스트와 성악가, 국악인 등을 초청해 ‘살롱 콘서트’를 열었다. 집 거실은 음악회가 됐다. 아이들이 음악을 듣고 자기 얘기를 너무 잘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학부모들이 몰렸고, 학교와 지역 사회에서도 관심을 보였다. 김 단장은 학교들을 돌며 진로 특강과 음악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 교장 선생님을 중창단 무대에

‘비전 스쿨’은 희망나눔 콘서트로 이어졌다. 공연을 통해 장학금을 마련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지역 학교 교장 선생님들로 중창단을 만들어 무대에 세우려 했다. 첫 반응은 냉담했다.
“처음에는 다들 ‘저 여자 왜 저러냐’고 했죠. 정치하려고 사람들 만나고 다니는 것 아니냐는 오해도 받았어요.”

하지만 김 단장은 직접 학교를 찾아다니며 설득했다. 결국 교장들이 하나둘 마음을 열었다. 몇 달 동안 연습을 하고 공연 당일, 나비 넥타이를 맨 교장선생님들이 무대에 올라 ‘빨간 구두 아가씨’와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불렀다. 학생과 학부모들로 가득 찬 객석에서는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수익금과 후원금은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의 장학금으로 전달됐다. 그때 김 단장은 음악의 또 다른 힘을 발견했다.

“어떤 음악이든 진심이 녹아든다면 ‘누군가의 삶을 바꿀 수도 있겠구나’ 확신이 들었어요.”
산을 오르고 내려오는 사람들을 위해 국립공원 음악회도 생각해냈다. 국립공원 관계자들을 찾아가 한 번의 대형 공연보다 전국을 순회하는 음악회가 더 의미 있다고 설득했다. 그렇게 숲과 계곡, 산자락이 공연장이 됐다. 등산객과 캠핑객, 가족 단위 여행객들은 예고 없이 음악을 만났다. 음악이 사람을 찾아가는 방법에 대한 또 하나의 실험이었다.


>> 음악이 사람에게 가는 길


그는 최근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에서 ‘킴스 오케스트라’의 첫 무대인 ‘청소년과 함께하는 김숙진의 이야기가 있는 콘서트’를 열었다. 클래식과 성악, 탱고, 탭댄스, 합창이 어우러진 공연이었다. “어떻게 하면 음악이 사람들의 삶 가까이 갈 수 있을까, 늘 생각해요. 공연을 보고 돌아가는 길에 자기 삶을 한 번쯤 돌아보고, 마음 한 편에 따뜻한 힘을 얻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기웃거렸다. 그러나 그 길들은 결국 하나로 이어졌다. 음악을 사람에게로 데려가는 길이었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이 시대 골든걸들에게 자신의 인생이 어떤 메시지로 전해지길 바랄까.

김 단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웃으며 말했다.

“굳이 남들과 같은 길을 갈 필요는 없어요. 돌아가도 되고, 늦어도 되고, 헤매어도 돼요. 되돌아보면 그 시간들이 다 연결돼 있더라고요.”

그는 교향악단 수석이 되지 못했다. 세계적인 연주자가 되지도 않았다. 대신 남들보다 조금 더 돌아갔다. 그리고 그 시간들을 버리지 않았다. 그렇게 수많은 인생의 ‘음’들이 모여 ‘김숙진’만의 선율이 됐다. 김 단장은 오늘도 그 선율을 사람들 곁으로 보내고 있다.
#골든걸#킴스 오케스트라#음악 큐레이터#음악#클래식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트렌드뉴스

트렌드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