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구

이진구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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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부터 ‘이진구 기자의 대화’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딱딱하고 가식적인 형식보다 친구와 카페에서 수다 떠는 듯한 편안한 인터뷰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sys1201@donga.com

취재분야

2025-11-05~2025-12-05
종교70%
문학/출판20%
문화 일반7%
인사일반3%
  • ‘우리 소리’ 종자 키우기 60년… 싹은 틔우지 않았나 싶어요

    “열매까지는 아니더라도, 싹은 틔우지 않았나 싶습니다.” 8일 서울 중구 동국대에서 만난 박범훈 대한불교조계종 불교음악원장(77·동국대 한국음악과 석좌교수)은 “우리 소리 종자를 키우려고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어느덧 60년이 훌쩍 지났다”고 했다. 1986년 아시안게임 개막식 작곡·지휘,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 ‘해맞이’ 작곡, 2002년 한일 월드컵 개막식 음악 총감독 등을 지낸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국악계 대부. 중앙국악관현악단 창단, 국립국악관현악단 초대 단장 및 예술감독, 서울국악유치원 설립, 국악 예술중 신설, 국내 최초로 국악 단과대 설립(중앙대) 등 그가 우리 국악계에 뿌린 씨앗은 셀 수 없을 정도다. ―세월이 참 빠릅니다.“중학교 밴드부에서 트럼펫을 불었어요. 어느 날 동네에 남사당패가 왔는데, 그 소리에 홀려 매일 어울렸지요. 그때 꼭두쇠가 후에 중요무형문화재가 된 남운용 선생님(1907∼1979)이었는데, 그분 손에 끌려 1965년 피리 전공으로 국악예술고(현 국립전통예술고)에 들어갔어요. 벌써 60년이 흘렀네요. 하하하.” ―아시안게임을 맡았을 때가 30대였더군요.“아시안게임, 서울올림픽이 한국을 본격적으로 세계에 알리는 무대였잖아요. 그래서 개막식에서 연주하는 곡은 우리 것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국악 위주로 하면 외국인들이 공감하기 쉽지 않아 국악과 서양음악을 접목할 필요가 있었어요. 근데 당시 두 분야를 모두 공부한 사람이 거의 없었거든요. 저는 대학은 국악과가 아니라 중앙대 예술대 음악과(서양음악 작곡 전공)에 들어갔거든요. 일본 유학 중에는 아시아·서양음악의 접목을 연구했고요.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한일 월드컵 개막식의 문을 연 ‘수제천(壽齊天)’을 국악과 서양 오케스트라, 합창단으로 연주한 것이 그런 까닭입니까.“수제천은 우리의 훌륭한 궁중음악이지만, 그대로만 연주하면 세계인의 공감을 끌어내기 힘들어요. 세계 모든 사람이 국악을 들으며 감동하게 만드는 게 진짜 국악의 세계화지요. 그래서 국악관현악단과 서양 오케스트라, 대규모 합창단이 어우러진 수제천으로 만들었습니다. 대금과 판소리가 바이올린, 첼로, 합창단과 어우러진, 외국인도 이해할 수 있는 한국의 소리가 된 거죠.” ―많이 나아졌다지만 여전히 국악이 제대로 대접받고 있지 않단 의견이 있습니다.“국악 전문가 양성이나 국악과 서양음악의 접목도 중요합니다만, 그전에 먼저 우리 안에서 국악이 대접받고 생활의 일부가 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흐지부지됐지만, 한때 정부가 국악을 음악 교육과정에서 빼려고 한 적도 있습니다. 이러면서 세계화를 말하는 건 자가당착이지요. 우리가 우리 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데, 남이 왜 하겠습니까.” ―국악유치원을 만든 것도 그런 이유에서인지요.“1999년 국악예술고 이사장 때 만들었는데…, 국악 중고교와 달리 유치원은 국악인 양성이 목표가 아니에요. 어릴 때 피아노를 가르치는 게 꼭 피아니스트를 만들기 위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 소리, 우리 몸짓 등 예술을 통해 인성교육을 시키기 위해서지요.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국악을 친숙하게 여길 테고요. 공감하는 부모님들이 많은지, 지금도 굉장히 인기가 높아요. 이런 씨앗들이 싹을 틔우고, 더 자라 열매를 맺으면 언젠가 K드라마나 K팝처럼 K국악도 어깨를 나란히 하는 날이 오겠지요.”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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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악에 오케스트라 접목, 외국인이 이해해야 진짜 세계화”

    “열매까지는 아니라도, 싹은 틔우지 않았나 싶습니다.”8일 서울 중구 동국대에서 만난 박범훈 대한불교조계종 불교음악원장(77·동국대 한국음악과 석좌교수)은 “우리 소리 종자를 키우려고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어느덧 60년이 훌쩍 지났다”고 했다. 1986년 아시안게임 개막식 작곡·지휘,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 ‘해맞이’ 작곡, 2002년 한일 월드컵 개막식 음악 총감독 등을 역임한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국악계 대부. 중앙국악관현악단 창단, 국립국악관현악단 초대 단장 및 예술감독, 서울국악유치원 설립, 국악 예술중 신설, 국내 최초로 국악 단과대 설립(중앙대) 등 그가 우리 국악계에 뿌린 씨앗은 셀 수 없을 정도다.―세월이 참 빠릅니다.“중학교 밴드부에서 트럼펫을 했어요. 어느 날 동네에 남사당패가 왔는데, 그 소리에 홀려 매일 어울렸지요. 그때 꼭두쇠가 후에 중요무형문화재가 된 남운용(1907~1979) 선생님이었는데, 그분 손에 끌려 1965년 피리 전공으로 국악예술고(현 국립전통예술고)에 들어갔어요. 벌써 60년이 흘렀네요. 하하하.”―아시안게임을 맡았을 때가 30대였더군요.“아시안게임, 서울올림픽이 한국을 본격적으로 세계에 알리는 무대였잖아요. 그래서 개막식에서 연주하는 곡은 우리 것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국악 위주로 하면 외국인들이 공감하기 쉽지 않아 국악과 서양음악을 접목할 필요가 있었어요. 근데 당시 두 분야를 모두 공부한 사람이 거의 없었거든요. 저는 대학은 국악과가 아니라 중앙대 예술대학 음악과(서양음악 작곡 전공)에 들어갔거든요. 일본 유학 중에는 아시아·서양음악의 접목을 연구했고요.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한일 월드컵 개막식의 문을 연 ‘수제천(壽齊天)’을 국악과 서양 오케스트라, 합창단으로 연주한 것이 그런 까닭입니까.“수제천은 우리의 훌륭한 궁중음악이지만, 그대로만 연주하면 세계인의 공감을 끌어내기 힘들어요. 세계 모든 사람이 국악을 들으며 감동하게 만드는 게 진짜 국악의 세계화지요. 그래서 국악관현악단과 서양 오케스트라, 대규모 합창단이 어우러진 수제천으로 만들었습니다. 대금과 판소리가 바이올린, 첼로, 합창단과 어우러진, 외국인도 이해할 수 있는 한국의 소리가 된 거죠.”―많이 나아졌다지만 여전히 국악이 제대로 대접받고 있지 않단 의견이 있습니다.“국악 전문가 양성이나 국악과 서양음악의 접목도 중요합니다만, 그 전에 먼저 우리 안에서 국악이 대접받고 생활의 일부가 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흐지부지됐지만, 한때 정부가 국악을 음악 교육과정에서 빼려고 한 적도 있습니다. 이러면서 세계화를 말하는 건 자가당착이지요. 우리가 우리 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데, 남이 왜 하겠습니까.”―국악유치원을 만든 것도 그런 이유에서인지요.“1999년 국악예술고 이사장 때 만들었는데…, 국악 중·고와 달리 유치원은 국악인 양성이 목표가 아니에요. 어릴 때 피아노를 가르치는 게 꼭 피아니스트를 만들기 위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 소리, 우리 몸짓 등 예술을 통해 인성교육을 시키기 위해서지요.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국악을 친숙하게 여길 테고요. 공감하는 부모님들이 많은지, 지금도 굉장히 인기가 높아요. 이런 씨앗들이 싹을 틔우고, 더 자라 열매를 맺으면 언젠가 K드라마나 K팝처럼 K국악도 어깨를 나란히 하는 날이 오겠지요.”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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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릉 가뭄 지원” 팔걷은 지자체-종교계

    극심한 가뭄을 겪고 있는 강원 강릉시에 각계의 지원과 기부가 잇따르고 있다. 서울에서는 자치구들이 지원에 나섰다. 성동구는 2일부터 6일까지 닷새 동안 급수차 3대를 투입해 총 180t의 생활용수를 공급했다. 성북구는 3일 급수차 5대를 긴급 파견해 연곡정수장 등 주요 취수원에 물을 공급했다. 송파구는 4일 2L짜리 생수 2만 병을 긴급 지원했고, 은평구와 강동구도 각각 5000병과 1만 병의 생수를 전달했다. 서울시는 이미 두 차례에 걸쳐 ‘아리수’ 병물을 보낸 바 있다. 지난달 20일 8448병을 전달한 데 이어 이달 1일에는 1만7000병을 추가 공급했다. 시 관계자는 “현재 35만 병 이상의 아리수 비축분을 확보하고 있다”며 “상황이 악화될 경우 즉각 추가 지원에 나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경기 김포시는 9일 자체 병입 수돗물 ‘금빛수’ 1만 병을 강릉에 보냈다. 수원시는 8일 살수차와 급수차 총 5대를 동원해 강릉에 26만2000t의 물을 공급했다. 광명시와 안산시도 각각 생수 1만 병, 2700병을 전달하며 힘을 보탰다. 종교계의 온정도 이어졌다. 대한불교조계종(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8일 강릉시청에서 가뭄 극복을 위한 생수 70t(2L짜리 생수 3만5000병)을 전달했다. 이날 전달식에는 조계종 아름다운동행 상임이사 법오 스님과 조계종사회복지재단 사무처장 덕운 스님, 강릉불교사암연합회장 설암 스님, 월정사 덕엄 스님, 강릉포교당 관음사 회현 스님, 김상영 강릉부시장 등이 참석했다. 법오 스님은 “강릉 가뭄이 해소돼 하루빨리 시민들의 생활이 안정되길 바란다”면서 “조계종은 향후 재난 재해 현장에서도 적극적인 나눔을 이어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앞서 가톨릭대 가톨릭중앙의료원은 3일 천주교 춘천교구를 통해 생수 10t을 전했으며, 강릉시기독교연합회도 3∼5일 소방대원들에게 빵과 음료 1200개를 전달했다. 금융권의 동참도 이어지고 있다. 가상자산거래소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는 약 5억 원 상당의 생수 100만 병을 기부했고, 우리금융은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생수 20만 병을 전달했다. IBK기업은행은 1억 원을 기부해 대한적십자사가 생수를 구입·전달하도록 했다. 새마을금고, 신협, 수협 등도 구호 행렬에 합류했다.오승준 기자 ohmygod@donga.com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 2025-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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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릉 극심한 가뭄에 각계 지원 이어져…서울·경기·종교계 나서

    극심한 가뭄을 겪고 있는 강원 강릉시에 각계의 지원과 기부가 잇따르고 있다. 서울에서는 자치구들이 지원에 나섰다. 성동구는 2일부터 6일까지 닷새 동안 급수차 3대를 투입해 총 180t의 생활용수를 공급했다. 성북구는 3일 급수차 5대를 긴급 파견해 연곡정수장 등 주요 취수원에 물을 공급했다. 송파구는 4일 2L 생수 2만 병을 긴급 지원했고, 은평구와 강동구도 각각 5000병과 1만 병의 생수를 전달했다. 서울시는 이미 두 차례에 걸쳐 ‘아리수’ 병물을 보낸 바 있다. 지난달 20일 8448병을 전달한 데 이어 이달 1일에는 1만7000병을 추가 공급했다. 시 관계자는 “현재 35만 병 이상의 아리수 비축분을 확보하고 있다”며 “상황이 악화될 경우 즉각 추가 지원에 나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경기 김포시는 9일 자체 병입 수돗물 ‘금빛수’ 1만 병을 강릉에 보냈다. 수원시는 8일 살수차와 급수차 총 5대를 동원해 강릉에 26만2000t의 물을 공급했다. 광명시와 안산시도 각각 생수 1만 병, 2700병을 전달하며 힘을 보탰다. 종교계의 온정도 이어졌다. 대한불교조계종(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8일 강릉시청에서 가뭄 극복을 위한 생수 70t(2L 생수 3만 5000병)을 전달했다. 이날 전달식에는 조계종 아름다운동행 상임이사 법오 스님과 조계종사회복지재단 사무처장 덕운 스님, 강릉불교사암연합회장 설암 스님, 월정사 덕엄 스님, 강릉포교당 관음사 회현 스님, 김상영 강릉부시장 등이 참석했다. 법오 스님은 “강릉 가뭄이 해소돼 하루빨리 시민들의 생활이 안정되길 바란다”면서 “조계종은 향후 재난 재해 현장에서도 적극적인 나눔을 이어갈 방침”이라고 밝혔다.앞서 가톨릭대 가톨릭중앙의료원은 3일 천주교 춘천교구를 통해 생수 10t을 전했으며, 강릉시기독교연합회도 3~5일 소방대원들에게 빵과 음료수 1200개를 전달했다.금융권의 동참도 이어지고 있다. 가상자산거래소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는 약 5억 원 상당의 생수 100만 병을 기부했고, 우리금융은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생수 20만 병을 전달했다. IBK기업은행은 1억 원을 기부해 대한적십자사가 생수를 구입·전달하도록 했다. 새마을금고, 신협, 수협 등도 구호 행렬에 합류했다.오승준 기자 ohmygod@donga.com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 2025-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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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의 인플루언서’ MZ세대 첫 聖人 탄생

    ‘신의 인플루언서’로 불리는 카를로 아쿠티스(1991∼2006)의 시성식(諡聖式)과 시성 미사가 7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로마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거행됐다. 교황 레오 14세는 이날 시성식에서 “복자(福者) 카를로 아쿠티스를 성인(聖人)으로 선언하고 확정하여 성인 반열에 올리고 온 교회가 경건한 신심으로 이분들을 성인으로 공경하도록 결정한다”라고 공표했다. 교황은 이어 “카를로 아쿠티스 성인은 우리 모두, 특히 젊은이들에게 삶을 낭비하지 말고, 우리 삶을 위로 향하게 하고 걸작으로 만들도록 하는 초대”라고 덧붙였다. 이날 2시간여 동안 열린 시성식은 삼종기도로 마무리됐으며, 세계 각지에서 수만 명의 신자와 관광객이 참석해, 첫 밀레니엄 세대 성인의 시성식을 축하했다. 이탈리아 출신인 아쿠티스는 가톨릭 역사상 최초의 밀레니얼 세대(1980∼1990년대 중반 출생 세대) 성인이다. 초등학생 때 독학으로 컴퓨터를 익힌 그는 15세에 급성백혈병으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세계에서 일어난 성체 기적과 마리아 발현을 정리해 웹사이트에 게시하며 열성적으로 복음을 전파했다. 이에 세간에선 ‘신의 인플루언서’, ‘인터넷의 수호성인’ 등으로 불렸다. 2020년 그의 시신을 이탈리아 아시시 성모대성당 성지에 재안치할 때도 화제를 모았다. 그의 시신이 후드 차림에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있는 모습으로 대중에 공개됐기 때문. 이에 ‘MZ세대 신앙인’의 상징으로 불리기도 했다. 성당 앞 그의 동상 역시 통상적인 성인과 달리 예수 그리스도 옆에서 무릎을 꿇고 노트북 컴퓨터를 손에 올려놓은 모습이다. 아쿠티스에 대한 시성은 전례가 드물 정도로 빠른 편이다. 교황청은 가톨릭 사제 또는 신자에 대해 영웅적 덕행 정도와 기적의 유무를 조사·검증한 뒤 가경자(可敬者), 복자, 성인 등의 호칭을 수여한다. 가경자는 성덕만 인정된 이에게 부여되고, 이후 한 번의 기적이 인정되면 복자, 두 번 이상의 기적이 검증되면 성인으로 각각 추서된다. 긴 시간을 두고 검증 절차를 밟기 때문에 통상의 시복(諡福·복자품에 올리는 일)·시성은 짧아도 수십 년이 걸린다. 아쿠티스는 선종 뒤 췌장 관련 질병을 앓던 브라질 소년이 그의 유품을 접하고 기도한 뒤 완치되는 등의 2건의 기적을 인정받아 2020년 복자품에 올랐고, 지난해 5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시성을 승인했다. 원래 시성식은 4월 27일 열릴 예정이었으나,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으로 연기됐다. 이날 시성식에서는 가난한 이와 병자들을 위한 자선 사업에 헌신한 이탈리아 평신도 피에르 조르조 프라사티(1901∼1925)도 함께 성인품에 올랐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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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의 인플루언서’ MZ세대 첫 聖人 탄생

    ‘신의 인플루언서’로 불리는 카를로 아쿠티스(1991~2006)의 시성식(諡聖式)과 시성 미사가 7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로마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거행됐다.교황 레오 14세는 이날 시성식에서 “복자(福者) 카를로 아쿠티스를 성인(聖人)으로 선언하고 확정하여 성인 반열에 올리고 온 교회가 경건한 신심으로 이분들을 성인으로 공경하도록 결정한다”라고 공표했다. 교황은 이어 “카를로 아쿠티스 성인은 우리 모두, 특히 젊은이들에게 삶을 낭비하지 말고, 우리 삶을 위로 향하게 하고 걸작으로 만들도록 하는 초대”라고 덧붙였다. 이날 2시간여 동안 열린 시성식은 삼종기도로 마무리됐으며, 세계 각지에서 수만 명의 신자와 관광객이 참석해, 첫 밀레니엄 세대 성인의 시성식을 축하했다.이탈리아 출신인 아쿠티스는 가톨릭 역사상 최초의 밀레니엄 세대(1980~1990년대 중반 출생 세대) 성인이다. 초등학생 때 독학으로 컴퓨터를 익힌 그는 15세에 급성백혈병으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세계에서 일어난 성체 기적과 마리아 발현을 정리해 웹사이트에 게시하며 열성적으로 복음을 전파했다. 이에 세간에선 ‘신의 인플루언서’, ‘인터넷의 수호성인’ 등으로 불렸다.2020년 그의 시신을 이탈리아 아시시 성모대성당 성지에 재안치할 때도 화제를 모았다. 그의 시신이 후드 차림에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있는 모습으로 대중에 공개됐기 때문. 이에 ‘MZ세대 신앙인’의 상징으로 불리기도 했다. 성당 앞 그의 동상 역시 통상적인 성인과 달리 예수 그리스도 옆에서 무릎을 꿇고 노트북 컴퓨터를 손에 올려놓은 모습이다.아쿠티스에 대한 시성은 전례가 드물 정도로 빠른 편이다. 교황청은 가톨릭 사제 또는 신자에 대해 영웅적 덕행 정도와 기적의 유무를 조사·검증한 뒤 가경자(可敬者), 복자, 성인 등의 호칭을 수여한다. 가경자는 성덕만 인정된 이에게 부여되고, 이후 한 번의 기적이 인정되면 복자, 두 번 이상의 기적이 검증되면 성인으로 각각 추서된다.긴 시간을 두고 검증 절차를 밟기 때문에 통상의 시복(諡福·복자품에 올리는 일)·시성은 짧아도 수십 년이 걸린다. 아쿠티스는 선종 뒤 췌장 관련 질병을 앓던 브라질 소년이 그의 유품을 접하고 기도한 뒤 완치되는 등의 2건의 기적을 인정받아 2020년 복자품에 올랐고, 지난해 5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시성을 승인했다. 원래 시성식은 4월 27일 열릴 예정이었으나,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으로 연기됐다.이날 시성식에서는 가난한 이와 병자들을 위한 자선 사업에 헌신한 이탈리아 평신도 피에르 조르조 프라사티(1901~1925)도 함께 성인품에 올랐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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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바뀌겠다” 사이코패스의 말 진심일까

    조두순 출소를 앞두고, 오랜 기간 끔찍한 흉악범들의 정신 감정을 맡았던 정신과 전문의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는 “사이코패스 같은 극악무도한 정신 이상 흉악범도 나아지려는 본인의 의지와 제대로 된 충분한 치료를 받는다면 치료될 수 있다”고 했다. 솔직히 수긍하기는 어려웠다. 사이코패스가 보여주는 ‘나아지려는 의지’를 정말 믿을 수 있을까? 정신 전문 간호사이자 범죄심리사인 저자가 교도소에서 만난 정신질환 범죄자의 상담 과정과 기록, 그 과정에서 그들이 보여준 모습 등을 담담하게 담았다. 정신질환 범죄자들이 겪은 내면의 깊고 어두운 이야기를 통해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어떤 과정을 통해 범죄에 이르게 됐는지를 보여준다. 저자의 말대로 쓰는 내내 상당히 고통스러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칫 이 책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그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저자는 범죄자를 이해하려 노력할수록,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는 오히려 몹쓸 짓을 하는 것 같은 생각에 휩싸였다고 솔직히 고백한다. 그럼에도 “그들의 마음을 좀 더 이해할 수 있다면, 이를 통해 범죄 예방과 사회 안전으로 나아가는 해법까지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며 책을 쓴 이유를 밝힌다. ‘환자’이면서 동시에 ‘범죄자’인 이들의 이중 정체성을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한다면,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도 많이 해소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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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美 사이 ‘물밑채널’ 역할해온 한국교회

    지난달 25일(현지 시간)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정보 당국으로부터 (한국에서) 교회들에 대한 압수수색이 있었다고 들었다”며 “그것이 사실이라면 너무 나쁜 일일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은 7월 18일 채 상병 특검(특별검사 이명현)의 김장환 극동방송 이사장(수원중앙침례교회 원로 목사)과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 자택과 교회 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일컫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개신교계에선 “트럼프 대통령 주변에서 누군가 한마디해 달라고 요청한 게 아니겠느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세계침례교연맹 총회장을 지낸 김 목사는 세계적인 전도사 고 빌리 그레이엄 목사, 그의 아들 프랭클린 그레이엄 목사와 친분이 두텁다. 미 개신교계와 정계에 폭넓은 네트워크를 가진 인물로 평가받는다. 프랭클린 그레이엄 목사는 트럼프 1기 캠프 핵심 참모였다. 김 목사는 이런 인맥을 바탕으로 한미 관계가 껄끄러울 때마다 양국 간 물밑 채널 역할을 해 왔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 성사에도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1월 당시 대통령실에서도 김 목사에게 대선에서 승리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과의 면담 주선을 요청했다고 한다. 이 목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 공식 일정에 모두 초대받은 유일한 한국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장남 트럼프 주니어는 지난해 4월, 8월 방한 때 모두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찾을 정도로 이 목사와 친분이 두텁다. 트럼프 대통령의 ‘영적 멘토’로 불리며 20년째 트럼프 가족 예배를 매주 인도하는 폴라 화이트 목사도 이 목사의 백악관 인맥이다. 화이트 목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 신설한 ‘신앙실(Faith Office)’의 수석 고문으로 보수적 기독교 가치관을 국정에 반영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10여 년 전부터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열리는 ‘세계 교회 성장 대회’에 강사로 참여하고 있다. 이 목사는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대통령실의 요청으로 양국 정상 간의 우호적인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이런 인맥을 동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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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외 유출 조선 불화 ‘신중도’ 獨서 되찾아

    해외로 유출됐던 조선 불화 ‘신중도’(사진)를 독일에서 되찾아 환수했다. 대한불교조계종(총무원장 진우 스님)과 조계종 제6교구 본사 마곡사(주지 원경 스님)는 2일 “국외 유출된 충남 금산군 보석사 신중도를 독일 경매에서 낙찰받아 되찾았다”고 밝혔다. 보석사 신중도는 마곡사 화승인 금호 약효 스님(?∼1928)이 1886년 그린 것으로 그의 초기 화풍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그림 상단에는 제석천과 범천을, 중앙에는 깃털로 장식된 투구를 쓴 위태천(韋太天·불법을 지키는 신장)을 담았다. 붉은 색조를 바탕으로 푸른색과 녹색이 강렬한 대비를 이룬 것이 특징이다. 약효 스님은 1879년 봉녕사 석가설법도를 비롯해 100점이 넘는 불화를 남긴 근대의 대표적인 불모(佛母·불상을 그리는 사람)다. 조계종은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으로부터 제공받은 국외 한국 문화유산 경매 모니터링 자료를 통해 신중도가 출품된 것을 파악한 뒤, 보석사의 본사인 마곡사와 협의해 경매에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1일 국내에 반입된 신중도는 현재 마곡사 성보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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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외 유출된 불화 ‘신중도’, 獨 경매서 발견해 환수

    해외로 유출됐던 조선불화 ‘신중도’(사진)를 독일에서 되찾아 환수했다.대한불교조계종(총무원장 진우 스님)과 조계종 제6교구 본사 마곡사(주지 원경 스님)는 2일 “국외 유출된 충남 금산군 보석사 신중도를 독일 경매에서 낙찰받아 되찾았다”고 밝혔다. 보석사 신중도는 마곡사 화승인 금호 약효(?∼1928)스님이 1886년 그린 것으로 그의 초기 화풍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그림 상단에는 제석천과 범천을, 중앙에는 깃털로 장식된 투구를 쓴 위태천(韋太天·불법을 지키는 신장)을 담았다. 붉은 색조를 바탕으로 푸른색과 녹색이 강렬한 대비를 이룬 것이 특징이다.약효 스님은 1879년 봉녕사 석가설법도를 비롯해 100점이 넘는 불화를 남긴 근대의 대표적인 불모(佛母·불상을 그리는 사람)다. 1860년대부터 입적까지 마곡사에 주석(駐錫)하며 많은 불화를 남겼으며, 현재 마곡사에 불화 17점이 전해지고 있다. 조계종은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으로부터 제공받은 국외 한국 문화유산 경매 모니터링 자료를 통해 신중도가 출품된 것을 파악한 뒤, 보석사의 본사인 마곡사와 협의해 경매에 참여했다”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21일 국내에 반입된 신중도는 현재 마곡사 성보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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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족-친구-연인이란 이름으로 통제하는 순간, 지옥 찾아온다”

    “사회적 문제 해결에 역할을 다하는 게 세상의 어려움을 보듬고, 자비를 실천하는 것이니까요.” 최근 책 ‘인연 아닌 사람은 있어도 인연 없는 사람은 없다’(불광출판사)를 출간한 묘장 스님은 1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수행자가 중매에 앞장서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묘장 스님은 ‘불교는 엄숙하고 재미없다’라는 고정관념을 깬 요즘 가장 ‘핫’한 스님 가운데 하나다. 2023년 8월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복지재단 대표이사에 취임한 뒤 청춘남녀 만남을 주선하는 템플스테이 ‘나는 절로’와 청년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청년밥心(심)’, ‘부처님 생신 카페’ 등 통통 튀는 프로그램을 잇달아 히트시켰다. 미국 로스앤젤레스타임스와 일본 NHK 방송에 소개될 정도로 유명 인사가 됐다. 2년 넘게 재단 대표이사를 지낸 그는 지난달 총무원 기획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인연 아닌 사람은 있어도…’는 ‘나는 절로’ 등 히트 프로그램의 탄생 과정과 불교의 사랑 이야기, 그가 느낀 일상과 인생의 지혜 등을 담은 책이다. ‘나는 절로’는 이달 중순 열리는 ‘강원도 신흥사’ 편의 경우 남녀 각 12명 모집에 2600여 명이 신청했다. 평균 100 대 1이 넘는 경쟁률을 기록한 셈이다. 묘장 스님은 “서로 다른 듯 보이지만 이 모든 것을 하나로 엮는 말이 ‘인연’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갈수록 사람을 대하기가 힘들어지고 관계 맺음이 행복이 아닌 불행처럼 느껴지는 건, 그 사이에 욕망과 욕심이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건강한 관계의 핵심이지요.” 묘장 스님은 “가족, 친구, 연인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통제하고 내 방식에 맞추려고 하는 순간 관계는 ‘지옥’이 된다”라며 “우리는 상대를 나에게 맞게 바꾸려 할 때 더 쉽게 다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통제고, 사랑은 소유가 아닌 동행의 기술이라는 얘기였다. 그는 “상대를 통제하려는 마음을 내려놓는 순간 오히려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된다”라며 “인연은 붙잡는 힘이 아니라, 놓아 주는 용기로 숨을 쉰다”라고 강조했다.“세상에 인연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지금은 외롭거나 관계에 지쳤을지라도, 살아가는 한 우리는 누군가와 이어질 수밖에 없는 존재지요. 인연은, 조바심 낸다고 빨리 만나고 밀어낸다고 끊어지지 않아요. 내 삶이 순리대로 흐르면 시절이 무르익어 모든 것이 오고 가는 것이죠.” 묘장 스님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운명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 가꿔 가는 좋은 인연을 만드는 기술”이라며 “이 책이 서툰 인연으로 시작해 괜찮은 인연, 신뢰로 이어진 인연으로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라고 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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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묘장 스님 “인연은 붙잡는 힘이 아닌 놓아 주는 용기로 숨을 쉬죠”

    “사회적 문제 해결에 역할을 다하는 것이 세상의 어려움을 보듬고, 자비를 실천하는 것이니까요.”최근 ‘인연 아닌 사람은 있어도 인연 없는 사람은 없다(불광출판사)’를 출간한 묘장 스님은 1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수행자가 중매에 앞장서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묘장 스님은 ‘불교는 엄숙하고 재미없다’라는 고정관념을 깬 요즘 가장 ‘핫’한 스님 중 하나. 2023년 8월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복지재단 대표이사에 취임한 뒤 청춘남녀 만남 템플스테이 ‘나는 절로’, 청년들을 위해 식사를 제공하는 ‘청년밥心’, ‘부처님 생신 카페’ 등 통통 튀는 프로그램을 잇달아 히트시키며 미국 LA타임즈, 일본 NHK 방송에 소개될 정도로 인기 스타가 됐다. 2년여간 재단 대표이사를 지낸 그는 지난달 인사에서 총무원 기획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인연 아닌 사람은 있어도~’는 ‘나는 절로’ 등 히트 프로그램의 탄생 과정과 불교의 사랑이야기, 그가 느낀 일상과 인생의 지혜 등을 담은 책이다. ‘나는 절로’는 이달 중순 열리는 ‘강원도 신흥사’편이 남녀 각 12명 모집에 총 2600여 명이 신청해 평균 100대 1이 넘는 경쟁률을 기록하는 등 인기를 끌고 있다.묘장 스님은 “서로 다른 듯 보이지만 이 모든 것을 하나로 엮는 말이 ‘인연’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갈수록 사람을 대하기가 힘들어지고, 관계 맺음이 행복이 아닌 불행처럼 느껴지는 건, 그사이에 욕망과 욕심이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건강한 관계의 핵심이지요.”묘장 스님은 “가족, 친구, 연인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통제하고 내 방식에 맞추려고 하는 순간 관계는 ‘지옥’이 된다”라며 “우리는 상대를 나에게 맞게 바꾸려 할 때 더 쉽게 다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통제고, 사랑은 소유가 아닌 동행의 기술이라는 얘기였다. 그는 “이 때문에 상대를 통제하려는 마음을 내려놓는 순간 오히려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된다”라며 “인연은 붙잡는 힘이 아니라, 놓아 주는 용기로 숨을 쉰다”라고 강조했다.“세상에 인연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지금은 외롭거나 관계에 지쳤을지라도, 살아가는 한 우리는 누군가와 이어질 수밖에 없는 존재지요. 인연은, 조바심 낸다고 빨리 만나고 밀어낸다고 끊어지지 않아요. 내 삶이 순리대로 흐르면 시절이 무르익어 모든 것이 오고 가는 것이죠.”묘장 스님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운명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 가꿔 가는 좋은 인연을 만드는 기술”이라며 “이 책이 서툰 인연으로 시작해, 괜찮은 인연, 신뢰로 이어진 인연으로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라고 말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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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평택 수도사, 사찰음식 체험행사 열려…조리법으로 3덕-6미 정신 배워

    30일 경기 평택 수도사(주지 적문 스님)에서 해군 제2함대(사령관 허성재) 주최로 장병들과 주민 등이 참여한 가운데 사찰음식을 직접 만들고 나누는 ‘사찰음식 체험 행사’가 열렸다. 수도사는 ‘사찰음식 특화 사찰’로 주지 적문 스님은 대한불교조계종이 지정한 사찰음식 명장 중 유일한 비구. 템플 라이프 형식으로 열린 이날 행사에서 적문 스님은 조리법과 함께 사찰음식에 담긴 정신을 상세히 설명했다. “사찰음식의 궁극적인 목적은 수행입니다. 그래서 조리법은 물론이고 음식에 담긴 3덕(德) 6미(味)의 정신, 발우공양, 마무리까지 정해진 절차와 의례가 있지요. 3덕은 조리 원칙을 말하는데, 인공조미료나 방부제가 없는 깨끗함을 말하는 청정(淸淨), 수행에 부담을 주지 않도록 담백하게 만드는 유연(柔軟),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게 만들어야 하는 여법(如法)을 말합니다. 6미는 쓴맛, 단맛, 짠맛, 매운맛, 신맛, 담백한 맛을 말하지요.”이날의 메뉴는 옥수수 장떡과 연근 지짐. 옥수수 장떡은 풍부한 식이섬유로 장 건강에 도움이 되고, 특유의 고소한 맛으로 입맛을 사로잡는다. 연근 지짐은 미네랄과 비타민이 풍부한 연근을 갈아 만든 음식이다. 적문 스님은 “사찰음식은 불교의 계율과 수행 정신에 기초해 만들어지는 음식으로, 탐욕과 폭식을 경계하고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려는 불교의 철학을 담고 있다”라며 “세계적으로 K-푸드에 관심이 많은 데, 그 맨 앞에 사찰음식이 있다”라고 말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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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둥글납작 얼굴에 외꺼풀… 근대 미인상은 만들어졌다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트 여자 싱글. 한국의 김연아와 일본의 아사다 마오의 대결을 앞두고 언론은 두 선수를 ‘세기의 라이벌’이라 부르며 요모조모 비교했다. 경기력이나 수상 경력 및 필살기는 물론이고, 키가 1cm 차이란 걸 짚은 보도도 있었다. 1990년생 동갑내기로 생일이 20일 차이라는 것조차 주목받았다. 그런데 소셜미디어 등에선 지금 생각하면 낯부끄러운 투덕거림도 적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외모를 따지는 게 옳지 않다는 인식이 부족했던 탓이었겠으나, 두 운동선수를 두고 누가 낫다는 둥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미의 기준’이란 사람마다 지역마다 시대마다 다를 수밖에 없건만, 서로가 옳다고 우기는 촌극은 꽤나 격렬했다. 이 책은 미술사를 전공한 저자가 ‘미인’이라는 여성상이 시대적 가치관과 미의식 속에서 어떻게 만들어지고 확산해 왔는지를 고찰했다. 대중매체의 등장과 함께 미인 담론이 형성되기 시작한 19세기 후반부터 1940년대까지 동아시아 지역에서 공유된 미인에 대한 개념을 서술했는데, 저자는 ‘미인은 당대의 전형적 이데올로기를 몸에 새긴 여성상’이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변화는 1923년 조선물산장려회의 물산 장려 운동을 계기로 가속화했다. … 조선 제품의 광고 속 여성 이미지는 일본 도상을 차용하지 않고 조선이 여성을 모델로 한 사실적인 미인상을 그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한복 차림에 둥글고 납작한 얼굴과 붉게 상기된 두 볼, 외꺼풀의 눈매는 기존의 일본 미인 도안에서 볼 수 없었던 여성상으로…”(3장 미인 제조 ‘일본 미인상의 조선적 변용’에서)일제강점기 식민 치하에서 일본 제국을 선망하던 분위기는 일본 여성과 일본의 미의식을 동경하는 식민주의적 미의식을 형성했다. 하지만 독립과 반일 감정이 확산하면서 이런 의식이 여성의 외모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이러한 미의식 형성은 일제강점기 근대 조선에서 세 차례 개최된 미인 대회를 통해 서구적 미의식으로 이어졌다. 저자는 여성의 신체를 키와 몸무게 등으로 수치화하는 서구적 미의 기준은 외모 지상주의와 여성의 상품화를 불러온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또 다른 맥락도 있다고 설명한다. 당시 막 여성의 사회 진출이 시작되던 초기, 미인임을 공적으로 알리는 것은 여성의 사회적 자기표현 수단이 됐다는 점에서 지금의 미인 대회와는 다른 의미를 지녔다는 분석이다. 2018년 미스 이탈리아 대회에선 수영복 심사에 의족을 착용한 18세 참가자(키아라 보르디)가 등장했다. 어릴 때 오토바이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은 그는 의족을 드러내며 멋진 경쟁을 펼쳤고, 3위라는 놀라운 결과를 이뤄냈다. 보르디의 용기가 사회적으로 얼마나 많은 감동과 영향을 끼쳤을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미인 만들기’가 시대적, 사회적 가치와 이념과 연관돼 형성된다는 저자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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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세-성공 등 입에 맞는 설교로 복음 훼손… ‘직업 목사’ 너무 많은 탓에 한국 교회 위기”

    “복음에 물 타고, 입맛에 맞춘 설교만 하는 ‘직업 목사’가 너무 많은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22일 대전 서구에 있는 온누리교회에서 만난 김상수 담당 목사(사진)는 “한국 교회의 위기가 무엇 때문이라고 보느냐”란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최근 교계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책 ‘하마터면 직업 목사로 살 뻔했다’(샘솟는 기쁨)를 출간한 그는 저서에서 자기반성과 함께 기득권에 안주해 본질을 잃어버린 목회자들과 교회의 행태를 지적하며 자성을 촉구했다. ―‘직업 목사’란 말이 눈에 띕니다.“최근 한국 교회에 생계와 교회 운영을 위해 쿠팡 배달, 일용직 노동자 등을 겸하는 이중직 목회자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목사가 목회에만 전념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만, 저는 소명만 잃지 않는다면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해요. 반면 저처럼 상대적으로 편안한 제도권, 대형 교회에서 사역하면서 사명을 잃어버렸다면 참된 목사라 할 수는 없겠지요. ‘직업 목사’란 교회를 유지하기 위해 배달을 하는 목사가 아니라, 안락한 환경에 안주해 세속적·외형적인 것에 몰두하는 ‘본질을 잃어버린’ 목사를 말합니다.” ―복음에 물을 타고, 입맛에 맞춘 설교란 게 무엇인지요.“순수한 복음을 전하기보다 사람들이 원하는 출세와 성공, 기복주의, 번영주의를 설교에 섞는 거죠. 쉽게 말해 ‘예수 믿으면 다 잘된다’라는 겁니다. 그렇게 보이기 위해 또 성공한, 출세한 사람을 간증자로 세워요. 예수 믿어서 이렇게 됐다는 식이죠. 인간의 성공, 출세를 영적인 축복이라고 가르친 건데… 남 얘기할 것도 없이, 부끄럽지만 제가 그랬습니다. 책 제목이 ‘하마터면…’인 것도 그런 까닭이지요.” ―그게 꼭 나쁘다고만 하긴 어렵지 않습니까.“목사가 신자들에게 출세와 성공을 달콤하게 가르치면 사회에서 실패한 사람, 낙오자,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은 교회에서 소외됩니다. 교회가 가장 품어야 할 사람이 그들인데, 그분들은 어디로 가나요. 신자들도 ‘우리 교회 누구, 누구 나온다’ ‘OOO가 주차 봉사하더라’라는 말을 쉽게, 자랑스럽게 합니다. 알게 모르게 교회와 성공을 일치시키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거죠.” ―‘목사는 많은데 목사가 없다’고도 하셨더군요.“한 대형 교회에서 목사 공개모집을 했는데, 지원자는 많았지만 결국 뽑지 못했어요. 면접관들 얘기를 들어보니 다들 스펙은 최상위권이고 화려한데, 교회 표현으로 영성(靈性)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을 볼 수 없었다고 하더군요. 심지어 뽑히고 싶어서 스펙을 속였다가 들킨 사람도 있고요. 어떻게 목사가…. 소명보다 ‘대형 교회 목사’라는 타이틀을 더 원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조심스럽지만, 이제는 교회가 일반 사회보다 뒤처진 면도 많은 것 같습니다.“부끄러운 얘기지만 요즘 세상에 여성은 목사가 될 수 없다고 하면 말이 되겠습니까? 교회도 정직해야 합니다. 노회나 총회에 회비를 낼 때는 세례 교인 수로 내면서, 교세를 말할 때는 크게 보이고 싶어 거의 나오지 않는 등록 교인까지 다 포함해 수만 명이라고 해요. 지금 한국 교회의 위기를 이겨내는 길은 거창한 데 있는 게 아닙니다. 진정성, 순수함, 정직 등 초기 한국 교회가 가졌던 마음으로 돌아가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대전=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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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교회 위기는 입맛 맞춘 설교만 하는 ‘직업 목사’ 많은 탓”

    “복음에 물 타고, 입맛에 맞춘 설교만 하는 ‘직업 목사’가 너무 많은 탓이라고 생각합니다.”22일 대전 서구에 있는 온누리교회에서 만난 김상수 담당 목사는 “한국 교회의 위기가 무엇 때문이라고 보느냐”라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최근 교계에서 화제를 모으는 책 ‘하마터면 직업 목사로 살 뻔했다’(샘솟는 기쁨)를 출간한 그는 저서에서 자기반성과 함께 기득권에 안주해 본질을 잃어버린 목회자들과 교회의 행태를 지적하며 자성을 촉구했다.―‘직업 목사’란 말이 눈에 띕니다.“최근 한국 교회에 생계와 교회 운영을 위해 쿠팡 배달, 일용직 노동자 등을 겸하는 이중직 목회자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목사가 목회에만 전념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만, 저는 소명만 잃지 않는다면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해요. 반면 저처럼 상대적으로 편안한 제도권, 대형 교회에서 사역하면서 사명을 잃어버렸다면 참된 목사라 할 수는 없겠지요. ‘직업 목사’란 교회를 유지하기 위해 배달을 하는 목사가 아니라, 안락한 환경에 안주해 세속적·외형적인 것에 몰두하는 ‘본질을 잃어버린’ 목사를 말합니다.”―복음에 물을 타고, 입맛에 맞춘 설교란 게 무엇인지요.“순수한 복음을 전하기보다 사람들이 원하는 출세와 성공, 기복주의, 번영주의를 설교에 섞는 거죠. 쉽게 말해 ‘예수 믿으면 다 잘된다’라는 겁니다. 그렇게 보이기 위해 또 성공한, 출세한 사람을 간증자로 세워요. 예수 믿어서 이렇게 됐다는 식이죠. 인간의 성공, 출세를 영적인 축복이라고 가르친 건데… 남 얘기할 것도 없이, 부끄럽지만 제가 그랬습니다. 책 제목이 ‘하마터면…’인 것도 그런 까닭이지요.”―그게 꼭 나쁘다고만 하긴 어렵지 않습니까.“목사가 신자들에게 출세와 성공을 달콤하게 가르치면 사회에서 실패한 사람, 낙오자,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은 교회에서 소외됩니다. 교회가 가장 품어야 할 사람이 그들인데, 그분들은 어디로 가나요. 신자들도 ‘우리 교회 누구, 누구 나온다’ ‘OOO가 주차 봉사하더라’라는 말을 쉽게, 자랑스럽게 합니다. 알게 모르게 교회와 성공을 일치시키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거죠.”―‘목사는 많은데 목사가 없다’고도 하셨더군요.“한 대형 교회에서 목사 공개모집을 했는데, 지원자는 많았지만 결국 뽑지 못했어요. 면접관들 얘기를 들어보니 다들 스펙은 최상위권이고 화려한데, 교회 표현으로 영성(靈性)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을 볼 수 없었다고 하더군요. 심지어 뽑히고 싶어서 스펙을 속였다가 들킨 사람도 있고요. 어떻게 목사가…. 소명보다 ‘대형 교회 목사’라는 타이틀을 더 원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조심스럽지만, 이제는 교회가 일반 사회보다 뒤쳐진 면도 많은 것 같습니다.“부끄러운 얘기지만, 요즘 세상에 여성은 목사가 될 수 없다고 하면 말이 되겠습니까? 교회도 정직해야합니다. 노회나 총회에 회비를 낼 때는 세례 교인 수로 내면서, 교세를 말할 때는 크게 보이고 싶어 거의 나오지 않는 등록 교인까지 다 포함해 수만 명이라고 해요. 지금 한국 교회의 위기를 이겨내는 길은 거창한 데 있는게 아닙니다. 진정성, 순수함, 정직 등 초기 한국 교회가 가졌던 마음으로 돌아가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전=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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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즈넉한 들판, 그 길… 번뇌에 쉼표 찍는다

    온전히 자신의 걸음에 의지해 그저 묵묵히 걷는 순례길. 종교가 없어도 상관없다. 고즈넉하게 펼쳐진 들판 사이를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동안, 온갖 번뇌로 들끓던 마음이 어느새 부드럽게 가라앉는 걸 느낄 수 있으니.22일 ‘한국의 산티아고’라 불리는 충남 당진 ‘버그내 순례길’을 걸었다. 버그내 순례길은 당진 솔뫼성지부터 합덕성당, 신리성지를 잇는 약 13.2km의 천주교 순례길. 버그내는 합덕 장터의 옛 이름이라고 한다. 이 지역은 바닷물이 내륙 깊숙이까지 들어와 포구를 이뤘기 때문에 서양 선교사들이 많이 들어와 활동했다. 이 과정에서 박해를 피해 숨어서 신앙생활을 하던 선교사와 신자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순례자의 길이 형성됐다.‘소나무가 우거진 작은 동산’이란 뜻의 솔뫼성지는 1821년 8월 21일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1821∼1846)가 탄생한 곳이다. 이곳에 터를 잡은 김대건 신부 집안은 증조부 김진후, 작은할아버지 김종한, 부친 김제준, 당고모 김데레사, 김대건 신부 등 4대에 걸쳐 10명이 넘는 순교자를 배출했다. 이 때문에 솔뫼성지는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순례지가 됐다. 2014년 8월 방한한 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곳을 방문해 김대건 신부 생가 앞에서 기도를 드렸는데, 이 모습을 그대로 형상화한 동상이 생가 앞에 세워져 있다.1890년 예산 양촌성당으로 출발한 합덕성당은 충남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중 하나다. 1899년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면서 합덕성당으로 이름을 바꿨다. 1929년 페랭 신부가 벽돌로 장엄한 고딕풍의 성당으로 신축해 지금의 모습이 됐다. ‘헉헉’거리며 성당 앞 계단을 오르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빛의 광채가 온통 눈을 감쌌다. 작열하는 태양이 정확하게 성당 뒤에 숨어 마치 광배(光背)와 같은 효과를 냈다. 이런 점까지 고려하고 지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제강점기 힘든 삶을 살았던 이들에게는 성당에 오는 것만으로도 천국에 온 듯한 느낌을 줬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워낙 아름다운 건물이라 드라마, 영화에도 많이 등장한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수상한 파트너’ ‘정년이’,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 등을 여기서 찍었다고 한다.내포 평지 한가운데 있는 신리성지는 ‘조선의 카타콤바’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카타콤바는 로마 시대 박해를 피해 숨어서 예배를 드린 지하 묘지를 뜻한다. 1860년대부터 교우촌이 형성된 신리 지역도 워낙 박해가 심해 숨어서 신앙을 이어가던 곳이라 이런 이름이 붙었다. 기해박해(1839년), 병인박해(1866년) 등을 거치며 40여 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이는 이름이 밝혀진 내포 지역 순교자 중 10%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곳에서 순교해 성인이 된 사람만 성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1818∼1866), 성 오메트르 베드로 신부(1837∼1866), 성 위앵 루카 신부(1836∼1866), 성 황석두 루카(1813∼1866), 성 손자선 토마스(?∼1866) 등 5명에 이른다. 인근에는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46기의 무명 순교자 묘지도 있다. 실제 순교자는 이보다 몇 배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저녁 무렵인데도 땅의 열기가 사라지지 않는다. 태양보다 뜨거운 마음으로 살았던 사람들이 걷던 길이어서일까. 종교를 떠나 자신의 삶을 진실함으로 채우려 했던 옛사람의 마음이 느껴지는 하루였다.당진=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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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끝마다 묻어나는 진실의 삶…‘한국의 산티아고’ 버그네순례길을 걷다

    온전히 자신의 걸음에 의지해 그저 묵묵히 걷는 순례길. 종교가 없어도 상관없다. 고즈넉하게 펼쳐진 들판 사이를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동안, 온갖 번뇌로 들끓던 마음이 어느새 부드럽게 가라앉는 걸 느낄 수 있으니.22일 ‘한국의 산티아고’라 불리는 충남 당진 ‘버그네 순례길’을 걸었다. 버그네 순례길은 당진 솔뫼성지부터 합덕성당, 신리성지를 잇는 약 13.2km의 천주교 순례길. 버그네는 합덕 장터의 옛 이름이라고 한다. 이 지역은 바닷물이 내륙 깊숙이까지 들어와 포구를 이룬 탓에 서양 선교사들이 많이 들어와 활동했다. 이 과정에서 박해를 피해 숨어서 신앙생활을 하던 선교사와 신자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순례자의 길이 형성됐다.‘소나무가 우거진 작은 동산’이란 뜻의 솔뫼성지는 1821년 8월 21일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1821∼1846)가 탄생한 곳이다. 이곳에 터를 잡은 김대건 신부 집안은 증조부 김진후, 작은할아버지 김종한, 부친 김제준, 당고모 김데레사, 김대건 신부 등 4대에 걸쳐 10명이 넘는 순교자를 배출했다. 때문에 솔뫼성지는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순례지가 됐다. 2014년 8월 방한한 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곳을 방문해 김대건 신부 생가 앞에서 기도를 드렸는데, 이 모습을 그대로 형상화한 동상이 생가 앞에 세워져 있다.1890년 예산 양촌성당으로 출발한 합덕성당은 충남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중 하나다. 1899년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면서 합덕성당으로 이름을 바꿨다. 1929년 페랭 신부가 벽돌로 장엄한 고딕풍의 성당으로 신축해 지금의 모습이 됐다.‘헉헉’거리며 성당 앞 계단을 오르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빛의 광채가 온통 눈을 감쌌다. 작열하는 태양이 정확하게 성당 뒤에 숨어 마치 광배(光背)와 같은 효과를 냈다. 이런 점까지 고려하고 지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제강점기 힘든 삶을 살았던 이들에게는 성당에 오는 것만으로도 천국에 온 듯한 느낌을 줬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워낙 아름다운 건물이라 드라마, 영화에도 많이 등장한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수상한 파트너’ ‘정년이’,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 등을 여기서 찍었다고 한다.​내포 평지 한가운데 있는 신리성지는 ‘조선의 카타콤바’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카타콤바는 로마 시대 박해를 피해 숨어서 예배를 드린 지하 묘지를 뜻한다. 1860년대부터 교우촌이 형성된 신리 지역도 워낙 박해가 심해 숨어서 신앙을 이어가던 곳이라 이런 이름이 붙었다. 기해박해(1839년), 병인박해(1866년) 등을 거치며 40여 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이는 이름이 밝혀진 내포 지역 순교자 중 10%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곳에서 순교해 성인이 된 사람만 성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1818~1866), 성 오메트르 베드로 신부(1837~1866), 성 위앵 루카 신부(1836~1866), 성 황석두 루카(1813~1866), 성 손자선 토마스(?~1866) 등 5명이 이른다. 인근에는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46기의 무명 순교자 묘지도 있다. 실제 순교자는 이보다 몇 배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저녁 무렵인데도 땅의 열기가 사라지지 않는다. 태양보다 뜨거운 마음으로 살았던 사람들이 걷던 길이어서일까. 종교를 떠나 자신의 삶을 진실함으로 채우려 했던 옛사람의 마음이 느껴지는 하루였다.당진=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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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주단옥→다마코→올가 송… 기억해야 할 ‘사할린의 아픔’

    1995년 광복 50주년 3·1절 기념 문화축제에서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가 공식적으로 발표됐을 때 ‘철거 대신 다른 곳으로 옮겨 보존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많을 테고 철거의 이유도 분명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불행했던 역사도 잊지 않기 위해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경복궁을 가리는 그 자리에 있을 필요는 없고, 어딘가 상징적인 곳으로 옮겨 힘 없는 나라의 말로가 어떤 것인지 묵언의 징표로 삼는다면 그 또한 훌륭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역사가 기억하지 않는 이들을 문학으로 조명해 온 작가가 일제강점기 말기 일자리를 준다는 말에 속아 사할린으로 끌려간 사할린 한인 1세대의 삶과 아픔을 담담한 필치로 담았다. 주인공은 주단옥에서 야케모토 다마코, 다시 주단옥, 올가 송까지 수십 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름과 국적이 몇 번이나 바뀐다. 그와 주변 사람들의 삶을 통해 국가란 과연 무엇인지, 그때는 상상도 할 수 없었을 만큼 좋은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는 과연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조선인들은 소련 정부가 곧 일본에서 해방된 자신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 줄 거라고 믿었다. … 조선인들은 자신들이 귀환선을 탈 수 없다는 걸 배가 와서야 알았다. … 대다수 조선인들은 발길을 돌리지 못했다. 항구 근처에서 지내며 귀국선이 오기만을 기다리다 실성하거나 자살하는 사람도 생겼다.”(1부 ‘행렬’에서) 지금 우리는 ‘역사’를 한 권의 책, 한 편의 영화로 접하지만 당대를 살았던 누군가에게 역사는 징용과 이산, 눈물과 피로 얼룩진 현실이었다. 원치 않게 왔지만, 자식과 손주들이 있는 사할린을 떠나고 싶지 않은 단옥. 사할린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에서 살고 싶은 단옥의 동생. 일본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사할린에 남은 단옥의 친구 유키에. ‘슬픔의 틈새’ 외에 그들 모두를 관통하는 말이 또 있을까.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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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리적 고민없는 AI, 인간이 듣고 싶어하는 말만 해줘 위험”

    “인공지능(AI)은 인류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에 대한 고민은 그릇 속 환경호르몬만큼도 안 해서….” 18일 서울 종로구 대한불교조계종(총무원장 진우 스님) 조계사에서 만난 전 합천 해인사 승가대학장 보일 스님은 “불교계에서 왜 AI 연구소를 만들려고 하느냐”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서울대 철학박사이기도 한 스님은 20여 년 전 스마트폰이 나오기도 전에 이미 AI와 관련된 논문을 썼을 정도로 불교계에선 AI 전문가로 통한다. 현재 올해 말 설립을 목표로 AI 시대에 벌어질 윤리·철학적 문제를 고민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AI 부디즘 연구소’를 준비하고 있다. ―윤리적, 철학적 고민이 없는 AI 기술은 재앙을 부를 수 있다고요. “예를 들면 지금은 북한, 인권, 동성애 등에 대한 입장으로 진보·보수를 판단하지만 AI 시대엔 완전히 달라질 수 있어요. 만약 AI 칩을 몸에 이식해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대체하는 세상이 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인체의 내외부 조직을 기계로 대체하고 이를 이식한 AI로 움직인다면요. 그때는 AI 칩 이식에 대한 찬반이 진보·보수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일 겁니다. 아무 준비 없이 덜컥 그런 날이 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간간이 우려는 나오지만, 본격적으로 고민하는 곳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기술적 발전이나 관련 회사의 주가에는 관심이 많지만, 발전된 AI 기술이 파생시킬 사회문제에 대해 우리가 어떤 가치관이나 기준을 마련해야 하는지는 고민하지 않아요. 아직은 로마 교황청 등 종교 쪽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정도지요. 그래서 이름은 ‘AI 부디즘 연구소’이지만, 실제 연구는 불교를 넘어 AI로 인해 벌어지는 다양한 문제를 다룰 계획입니다.” ―AI 이용 패턴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고요. “기존 이용률 1위는 검색과 자료 조사 등이었어요. 그런데 작년부터 1위가 인생 상담으로 바뀌는 추세입니다. 특히 가족 갈등이 눈에 띄게 많아요. 부부나 자식, 고부간 문제 등을 AI와 의논하는 거죠.” ―그렇게 된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가족 문제는 남에게 털어놓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AI는 완벽하게 익명성이 보장되고, 말이 샐 걱정도 없지요. 그러다 보니 사람에게 상담할 때보다 훨씬 더 직설적으로, 더 세세하게, 분노나 미움 같은 속마음까지 담아서 털어놔요. 생성형 AI는 그런 표현, 말투, 말의 뉘앙스까지 학습해서 사람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파악해 답하니 고민, 인생 상담에 그 이상 좋은 상대가 없지요. 그래서 더 위험합니다.” ―한번 끌리면 빠져나오기 힘들 것 같습니다. “AI는 오래 쓰면 쓸수록 사용자에게 최적화해요. ‘맥락 인터페이스’라고, 사용자가 얼핏 진행 중인 대화와 관계없어 보이게 말해도 과거의 모든 정보나 상황, 행동 등을 바탕으로 맥락을 이해해 대화를 이어가는 거죠. 앞서 말한 것처럼 사용자가 듣고 싶어 하는 편향된 방향으로요. 웬만해서 빠져나오고 싶은 생각이 들겠습니까? AI는 우리 인간성이 파괴될 수 있는 위험성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술적 발전에 못지않게 인문학적·윤리적 성찰과 연구가 꼭 필요합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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