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구

이진구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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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부터 ‘이진구 기자의 대화’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딱딱하고 가식적인 형식보다 친구와 카페에서 수다 떠는 듯한 편안한 인터뷰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sys1201@donga.com

취재분야

2024-03-28~2024-04-27
종교37%
문학/출판20%
문화 일반20%
인사일반10%
역사7%
미술3%
여행3%
  • “화는 집착하는 마음에서 생긴 독… 당연히 놓아야죠”

    “화를 참지 마세요. 이해하면 사라집니다.” 1996∼1997년 서울대 졸업생과 재학생 10여 명이 세속의 보장된 삶을 버리고 잇따라 출가해 화제가 됐다. 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까지 제작됐을 정도. 이들 중 한 명으로 현재 서울과 강원 춘천에서 사성제 수행도량인 제따와나 선원을 운영하는 일묵 스님은 22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화의 근본 원인을 알고 통찰하면, 화로부터 자유로워지고 현실의 상황도 개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 수학과 83학번인 그는 박사학위 과정을 밟던 1996년 성철 스님의 상좌(제자)인 원택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외람됩니다만, 스님은 화를 안 내시는지요. “하하하, 저라고 어떻게 화가 안 나겠습니까. 화라는 게 막 성질내고 분노를 폭발하는 것만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뭔가를 통제하고 싶은데 잘 안될 때, 이렇게 됐으면 좋겠는데 안 될 때 느끼는 감정도 모두 화이지요. 불교적으로는 불안, 초조, 답답함, 우울, 걱정, 공포, 이런 게 다 화에 들어가거든요. 저도 제자들이 잘 따라오지 못할 때 답답함을 느끼지요.” ―화를 이해하면 사라진다고 하셨습니다만…. “화를 완전히 버리는 건 부처님의 경지지요. 수행자에게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차에 독이 있다는 걸 알면 먹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모르면 먹겠지요. 내가 아예 관심이 없는 대상에는 화가 나지 않습니다. 화가 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이 집착하고 있는 어떤 대상이 뜻대로 되지 않는 데 대한 반작용입니다. 그 집착하는 마음이 바로 독이고요. 지금 나를 화나게 하는 이것이 바로 독이라는 걸 안다면 당연히 놓고 싶고, 놓으려고 노력하겠지요.” ―요즘 유행하는 ‘멍때리기’도 도움이 됩니까. “명상은 일시적으로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닙니다. 일상생활에서 정신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균형 있게 유지하는 법을 몸에 체득시키는 과정이지요. 멍때리기가 일시적인 편안함은 줄 수 있어도 너무 심하게 빠지면 곤란하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으신지요. “멍한 상태에 있으면 의식이 둔해지고 몽롱해지는 걸 느끼지요. 그러니 편안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일종의 의식 멈춤 상태인데…. 일이 뜻대로 안 되거나 화가 날 때 술 마시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술이 일시적으로 괴롭고 힘든 생각을 멈추거나 둔화시키는 거죠. 그런데 효과가 있는 것 같다고 계속 마시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비슷해요. 명상은 일상의 삶을 제대로 살기 위해 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공부도 필요하지요.” ―명상은 참선과 비슷한 줄 알았습니다. “운전과 비슷해요. 안전 운전을 하려면 교통신호, 법규 등을 알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지요. 빨간불이 뭘 의미하는지 모르고 운전하면 당연히 사고가 나겠지요. 그래서 사성제, 팔정도 등 불교 공부도 필요해요. 불교 이론을 배우라는 게 아니라 이런 것들이 모두 부처님이 먼저 경험한 괴로움을 소멸하는 수행 방법이거든요. 그 뒤에 자기에게 맞게 재구성하는 거죠. 요즘 세상이 화로 가득 차 있는 건 자기 마음을 자기가 제어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운동을 해야 근육이 생기듯 마음도 훈련해야 제어할 수 있지요.”춘천=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4-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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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00원짜리 김치찌개… 청년들 배불리 먹고 가는 모습 보면 좋아”

    “청년들이 돈 걱정 없이 배불리 먹고 가는 모습을 볼 때 제일 마음이 좋아서요.” 16일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 ‘따뜻한 밥상(따밥) 외대점’에서 만난 심성훈 따뜻한말씀교회 목사(58)는 목회 활동으로 식당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 끼 식사에 1만 원이 훌쩍 넘는 시대에 ‘따밥’은 어려운 이들을 위해 단일 메뉴인 김치찌개를 3000원에 제공해 유명해진 곳. 밥은 무한 리필이고 라면과 달걀, 김 등은 각각 500원으로 저렴하다. 전국에 13개 지점이 있고, 지난해 5월 문을 연 심 목사의 외대점은 9호점이다. ―웬만한 동네 김치찌개가 8000∼9000원인데, 이문은 고사하고 재료비도 안 될 것 같습니다만…. “하하하. 지난해 문을 열 때 파 한 단에 2000원 정도였는데, 지금은 5000원이 넘어요. 좀 빠듯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운영할 수 있어요. 어떻게 알고 찾아오셔서 1만 원 내고 거스름돈 안 받고 가시는 분도 계시고, 또 쌀을 후원해 주시는 분들도 계시지요. 힘들기는 하지만 돈을 벌려고 하는 건 아니니까요.” ―식당이 곧 교회라고요. 그런데 왜 십자가 하나 없습니까. “평일에는 식당을 하고 주말에는 여기서 신도들과 예배를 드려요. 그런데 제가 큰 교회에 있으면서 좀 한계를 느꼈던 게, 목사는 99% 기독교인만 만나게 된다는 점이었어요. 저는 종교를 가리지 않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목회 활동으로 식당을 열었지만 여기서는 전도하지 않아요. 종교가 다르거나 없는 분들은 밥 먹으러 왔다가 불편해지니까요.” ―목회 활동을 할 분야는 매우 많지 않습니까. “몇 년간 위임목사로 있던 곳에서 나온 뒤 따밥 1호점(서울 은평구 연신내)에서 2년 동안 봉사활동을 했어요. 처음에는 서빙을 했는데 점차 재료도 준비하고, 밥과 찌개도 만들게 됐지요. 그런데 생각보다 힘들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맛있게 먹고 가는 모습을 보면 제 마음이 좋은 거예요. 그때 ‘사람을 먹이는 일’이 하나님이 제게 준 사명이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손님 대부분이 학생이라고요. “인근에 대학이 있거든요. 1호점인 연신내점은 어르신들이 많지요. 요즘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화려한 생활을 자랑하는 일부 젊은이들 때문에 상대적으로 가려져 있는데…. 지난해 대학 구내식당에서 1000원에 아침밥을 제공하니까 매우 많은 학생이 몰렸잖아요. 저는 그게 지금 학생들의 경제 상황을 잘 대변해 주는 모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 끼를 먹으면 한 끼를 굶어야 하는 학생들도 있으니까요. 이곳도 학기 중에는 하루에 60∼70명씩 오거든요.” ―밥 주는 게 설교보다 좋습니까. “하하하. 이곳에서 늘 혼자 밥을 먹던 학생이 있었어요. 아주 자주 왔죠. 그런데 어느 날 말쑥하게 차려입고 나타났는데, 목에 삼성증권 사원증을 걸고 있더라고요. 왜 그렇게 마음이 좋던지…. 혼자 늘 귀퉁이에서 밥을 먹던 한 남학생이 어느 날 여자 친구와 함께 오더라고요. 그것도 참 보기 좋았어요. 보통 하루 14, 15시간을 일하기 때문에 고되기는 하지요. 하지만 마음이 즐거우니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4-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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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인들, 빈 깡통처럼 내공없어 시끄러워”…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 인터뷰

    “요즘 정치가 시끄러운 건 정치인들이 빈 깡통처럼 내공이 없기 때문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올 4월 총선을 앞두고 이전투구를 벌이는 정치권을 향해 일갈했다. 진우 스님은 15일 서울 종로구 조계종 총무원장실에서 동아일보와 가진 신년 인터뷰에서 “내공이 없는 사람들이 꼭 큰소리치고, 소리 지르고 싸운다”라며 이처럼 지적했다. 진우 스님은 “정치권이 하나도 빼앗기지 않으려고 서로 싸우지만, 지금 양보한다고 영원히 빼앗기는 게 아니라는 것은 동서고금, 역사가 증명해 준다”며 “먼저 내려놓고 양보하는 사람이 이긴다. 그런데 내려놓지를 못하니까 양 진영이 이전투구로 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진우 스님은 또 “국가 원로들과 종교계가 갈등을 일으키는 정치인과 진영에 대해 어른으로서 꾸짖고, 또 양보하고 내려놓는 행위에 대해서는 용기를 주고 칭찬하는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치인들, 서로 다 가지려해… 평안이 없으니 치고받는 싸움만” [신년 인터뷰]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 인터뷰정치인 중에 무식한 사람 너무 많아… 양보하면 잃어버리는 게 아닌데내공 없으면 꼭 큰소리치고 싸워… 양보하면 이긴다는 것 보여줬으면인구감소는 민족 정체성의 문제… 최소한 출산율 1.0명은 넘어야 경남 양산의 통도사에는 지난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여야 지도부가 총선 경쟁이 본격화하는 시점에 경쟁적으로 신년하례 법회가 열리는 통도사를 찾아 진우 스님을 예방한 것이다. 조계종 총무원장인 진우 스님은 한국 불교계 최대 종단인 조계종을 대표하는 종교 지도자이자 사회 원로다. 15일 서울 종로구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실에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 응한 진우 스님은 정치권을 향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당장 양보한다고 해서 영원히 잃어버리는 게 아닌데, 마치 영원히 빼앗기는 것처럼 여겨 다 가지려고 이전투구를 하니 안타깝다”며 “먼저 양보하는 쪽이 이긴다는 것을 국민이 보여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1시간 넘게 진행된 진우 스님과의 대담 진행은 이정은 부국장이 맡았다. ―내일(16일)이 해봉당 자승 대종사의 49재입니다. 지난해 비보를 듣고 많이 놀라셨을 것 같습니다. “당일(지난해 11월 29일) 연락을 받고 당연히 굉장히 놀랐습니다. 동시에 한편으로 ‘아, 때가 왔구나’라는 느낌도 들었지요. 흔한 일은 아닙니다만, 우리 스님들이나 수행자들이 원적에 들기 전에 일반인으로서는 생각하지 못하는 말이나 행동을 할 때가 있어요. 그런 기록들이 많이 있지요. 그래서 생각보다는 담담하게 원적하신 곳(경기 안성 칠장사)에 내려갔고, 남기신 게송을 보며 ‘그때가 지금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사형(師兄)처럼 지낸 사이라 지금도 안 계신다는 게 잘 믿기지는 않지요.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기분이라고 할까요.” ―올해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은 물론이고 사회가 첨예한 진영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급기야 최근에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피습당하는 사건도 벌어졌습니다. 정치권의 상호 비방과 막말, 강성 팬덤의 폐해가 커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정치인들이 찾아올 때마다 ‘제발 좀 내공을 키워라, 내적인 힘을 가져야 한다’고 말해주지요. 정치인들 중에 너무 무식한 사람이 많아요. 기억력은 좋은지 몰라도 본인이 (정보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그런 소화력이 좀 없어 보입니다. 내공이 없는 사람들이 꼭 큰소리를 치고, 소리를 지르고, 싸웁니다. 마음이 넉넉하고 자신감이 있는 사람들은 안 그러지요.”―정치인들이 내공을 더 키워야 한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사람이 자기 마음이 평안해야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여유가 생기고 양보도 타협도 거기서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정치적 협상도 그래야 가능한 것이겠지요. 그런데 본인 마음이 평안하지 못하니까 당연히 여유가 없고, 그러니 치고받는 싸움에만 빠지는 겁니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정치인들이 명상 수행을 할 필요가 있다고 하셨다고요. “했지요. 윤 대통령도 많이 수긍하더라고요. 불교에 보살(菩薩)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인데, 자신과 타인을 함께 완성할 수 있도록 이끄는 이상적인 인간상을 말하지요. 물론 정치인들더러 그런 경지에 이르도록 수행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는 못 하더라도 명색이 나라의 지도자들인데 그런 마음을 갖고 유지하기 위해 노력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명상은 그런 마음을 갖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지금 같은 정치 환경에서 그런 평정심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양보와 타협의 정치를 하려면 모든 걸 내려놓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 정치, 정치인들은 내려놓지를 못해서, 서로 다 가지려고 양 진영이 생으로 부딪치고 있지요. 지금 어떤 걸 양보한다고 해서 영원히 뺏기거나 잃어버리는 게 아니라는 건 동서고금을 통해 이미 다 증명된 것입니다. 그러니 새옹지마, 사필귀정이라는 말이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당장 내가 양보하면 영원히 그걸 잃어버린다고만 생각하니까 못 놓는 거지요. 그러니 타협이 되겠습니까. 전쟁이 나는 거지요. 그런 용기를 가지려면 내공을 길러야 하고, 명상은 내공을 기르는 자기 수행에 도움이 됩니다. 국민께도 꼭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양보하는 정치인, 정치 집단을 지지하고 응원해줬으면 합니다. 먼저 내려놓고 양보하는 쪽이 이긴다는 것을 보여줬으면 하지요.” ―12일 통도사에서 국민의힘 한동훈 비대위원장과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를 모두 만나셨지요. “워낙 바쁜 사람들이다 보니 차분하게 얘기할 시간은 별로 없었어요. 저보다 더 바쁜 사람들이니까요. 그저 단편적으로 ‘잘했으면 좋겠다’라고 한 정도지요. 물론 말이 쉽지, 정치가 그렇게 만만한 분야는 아니잖아요. 이 고해의 바다에 들어와서 얼마만큼 역량을 발휘할지 걱정스럽긴 한데…. 그래도 국운이 따르면 잘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요즘 우리 사회가 마약, 인터넷 중독은 물론이고 이로 인한 정신적 빈곤 상태에 빠져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너무 큰 행복을 원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불교적 관점에서 보면 모든 것은 동전의 앞뒤 면과 같습니다. 생기면 사라지고, 선이 있으면 악이 있고, 호(好)가 있으면 불호(不好)가 있기 마련이지요. 좋은 때가 있으면 나쁠 때도 있고, 해가 뜨면 반드시 지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밀물이 들어오는 시간이 있으면 당연히 썰물이 돼 나가는 시간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부처님 경전에는 ‘행복’이란 말이 없습니다.”―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지요. “행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불행이라는 과(過)가 생기지요. 손등과 손바닥처럼 양면이 존재하는 곳이 바로 여기 사바세계지요. 사바세계의 업은 외부에서 오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이 잡념과 관념을 줄여나가는 게 명상의 핵심이지요. 우리는 행복을 추구하고 가능하면 더 큰 행복을 원합니다. 그런데 앞서 말한 대로 사바세계는 동전의 앞뒤 면이기에 큰 행복은 반드시 큰 불행도 가져옵니다. 행복하고 즐거움이 클수록 불행도 커지는 것이지요. 극단적인 즐거움을 누리려고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면 상대적으로 똑같은 크기의 괴로움과 불행에 빠지기 쉽지요. 마약 중독이 그렇지 않습니까.”―올해 한국적 명상 프로그램인 K명상을 개발해 글로벌화하겠다고 했습니다. “현재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명상은 일본의 선(ZEN)이나 티베트 불교의 명상 등을 미국과 유럽에서 가져가 약간의 변형을 한 것이에요. 대부분 잠깐 마음을 쉬게 하고, 복잡한 마음을 잠시 끊어주는 방식이지요. 마음의 불을 잠시 꺼주는 효과는 있지만 이 방식은 근본적으로 마음을 치유하는 데는 한계가 있고, 어느 정도 하다 보면 면역이 돼서 더 이상 소용이 없게 되는 경우가 생겨요. 우리 K명상은 명상을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 스님들이 하는 간화선, 조사선까지 여러 단계로 나눈 것이에요. 차근차근 단계를 밟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놀라운 경지에 이를 수 있을 겁니다.”―경주 남산 열암곡 마애불상 바로 세우기가 애초 예상과 달리 많이 늦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장 큰 마애불인 데다 불상의 얼굴이 정말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신라시대 기술력의 총화라고 할 수 있지요. 80t에 이르는 워낙 거대한 불상이다 보니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는 데다 관련된 행정기관이 여럿이다 보니 행정절차가 복잡해서 시간이 걸리고 있습니다. 그래도 불상을 일으키는 모의실험 등을 거쳐 내년에는 바로 세우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넘어져 계시던 부처님을 일으켜 세우면 왠지 우리나라 국운이 다시 부흥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국운’을 말씀하셨는데 한국은 저출산 문제가 심화하면서 ‘국가 소멸’ 위기에 놓였다는 말까지 나옵니다. 불교를 비롯한 종교계가 이 문제를 푸는 데 우리 사회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저출산으로 인해) 우리의 국운은 지금 바닥을 치고 있는 형국입니다. 인구가 줄어든다는 것은 민족의 정체성 문제이기도 하지요.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빨리 역전시켜야 합니다. 이제 바닥을 쳤으니까 인구는 다시 증가해서 최소한 출산율이 1.0명은 넘어야 해요. 우리가 단일민족이던 시대는 이미 지났지요. (저출산 문제와 함께) 자살률도 한국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에 가장 높습니다. 젊은이들이 불안하고, 미래를 기약할 수 없으니 그런 현상이 벌어지는 겁니다. 청년들의 마음을 이제는 정상적으로 순환시켜 나가야 합니다.”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1961년 강원 강릉시 출생△1978년 강릉 보현사에서 관응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 수지△1998년 경남 양산 통도사에서 청하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 수지△2017∼2018년 총무원 총무부장·기획실장·호법부장·사서실장△2018∼2019년 불교신문사 사장△2019∼2022년 8월 조계종 교육원장△2022년 9월∼현재 조계종 37대 총무원장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4-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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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만번 넘게 선 그어야 작품 한 점… 펜화 한획 한획 그리는 과정이 수행”

    “펜화 한 점을 그리려면 선을 수십만 번 이상 그어야 해요. 고찰(古刹)의 깊은 느낌을 주는 데도 제격이지만, 한 획 한 획 그으며 완성해 가는 과정이 모두 수행이지요.” 최근 ‘펜화로 읽는 사찰 1, 2’(불교시대사)를 출간한 김유식 작가(60)는 12일 인터뷰에서 0.05mm의 가는 펜으로 절을 그리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펜화로 읽는 사찰’은 펜으로 그린 전국 전통 사찰 53곳의 아름다운 풍광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엮은 내용이다. ―펜으로 사찰을 그리는 이유가 있습니까. “수백 년 된 절에는 오랫동안 풍파를 이겨낸 세월의 깊이, 무게가 있어요. 또 기둥에도 아주 세밀한 잔금이 수도 없이 많고요. 펜으로 선을 긋고, 그 위에 또 긋고 하는 식으로 중첩하다 보면 선들이 두께를 만들어서 세월의 무게감, 고풍스러움을 표현하기가 좋지요. 고찰의 곳곳에 보이는 잔금도 붓이나 다른 도구로는 표현하기가 어려운 점도 있고요. 그런데 같은 펜으로 현대식 건물을 그리면 절을 그릴 때와 완전히 다른 느낌이 나요. 마치 설계도처럼 보이거든요. 참 신기하죠.” ―작업 과정이 수행의 일부라고요. “보통 한 점(53×40cm)을 그리는 데 하루 8시간씩 열흘 이상 걸리니까요. 붓으로 칠하면 몇 번이면 될 공간도 펜으로는 수십만 번을 그어야 하지요. 또 절을 제대로 그리려다 보니 그 안에 담긴 역사나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등도 취재하고 공부하게 되더라고요. 제가 불교 신자여서이기도 하지만 그러다 보니 이 모든 과정이 일종의 수행 과정처럼 되더군요.” ―함께 소개한 사찰에 숨겨진 이야기도 꽤 눈길을 끕니다. “세밀한 도구로 그리다 보니 곳곳을 세밀하게 보는 습관이 생겼기 때문인가 봐요. 인천 강화 전등사 대웅전(보물 제178호) 네 귀퉁이에는 벌거벗은 여인 조각상이 쪼그리고 앉아 처마를 힘겹게 떠받들고 있어요. 절에서 그런 조각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을 리가 없잖아요? 그래서 절을 만든 도편수가 자신을 배신하고 떠난 여인에게 평생 고통받으라고 몰래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죠.” ―큰절보다 말사(末寺)의 아름다움에 더 큰 비중을 뒀더군요. “경기 파주 고령산 자락에 있는 보광사는 경기 남양주 봉선사 말사인데 대웅보전의 건축미도 대단하지만, 3m 가까이 되는 목어(木魚)가 일품이지요. 다른 곳에서 순회 전시를 할 정도니까요. 목어는 보통 종각에 달려 있는데, 만세루 툇마루에 달린 것도 이채롭고요. 대웅보전 편액은 영조대왕 친필이고, 관음전 뒤편 어실각은 드라마 ‘동이’의 주인공으로 그려졌던 숙빈 최씨, 즉 영조대왕 모친의 위패를 모신 곳이에요.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숨은 매력이 많은 말사가 많이 있어요. 제 그림이 사람들에게 잘 몰랐던 절의 아름다움을 알려주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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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착취, 질병, 환경파괴… 달콤함 위해 치른 대가

    막 출근한 직장인들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 커피믹스. 믹스 커피는 커피 맛 때문에 선택하는 걸까, 달달한 설탕 맛 때문에 마시는 걸까. ‘믹스 커피에 중독됐다’고 하는 사람까지 있는 걸 보면 후자가 더 큰 영향을 끼친 게 아닐까. 이 책은 희귀품이던 설탕이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품이 된 과정과 그로 인해 벌어진 착취, 노예제, 비만, 환경 파괴 등 세계사에 관한 이야기다. 저자는 황제 같은 특권층만 접하던 설탕이 유럽에 확산되면서 폭력적인 공급이 이뤄졌다고 말한다. 대서양을 건넌 아프리카 노예 상당수가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농장으로 끌려갔는데, 이는 설탕에 대한 유럽인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저자는 설탕의 대량 생산으로 교역이 발달하면서 주도권 쟁탈을 위한 자본가들과 설탕 가문, 설탕을 대체할 인공 감미료를 생산하는 대기업의 각축전이 확대됐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이들이 국가 정책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아스파르템(인공 감미료)은 1975년에 판매가 금지됐지만, 금지 조치가 영원하지는 않았다. (미국) 국방부 장관을 지냈고 나중에 또 그 자리에 오르는 도널드 럼즈펠드가 설(아스파르템 개발사)의 회장으로 고용되는데, 금지 조치의 취소를 이끌어 내는 것이 그의 임무 중 하나였다.”(14장 ‘천연 식품보다 더 달게’ 중) 저자는 현대의 설탕 산업이 환경 파괴는 물론이고 개발도상국의 수많은 노동자를 저임금 착취 노동에 시달리게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 의학계가 오랫동안 설탕이 비만과 당뇨병의 원인이 되는 등 건강에 해롭다고 지적함에도 불구하고, 설탕 산업계는 단합해 다양한 방법으로 설탕의 부정적인 면을 감추고 오히려 설탕이 필수적인 에너지원으로 깨끗하다고 호도한다고 말한다. 내용이 다소 전문적이고 딱딱하지만, 설탕을 중심으로 본 세계사와 근현대 관련 산업계의 각축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읽다 보면 ‘총, 균, 쇠’(재러드 다이아몬드 저)의 ‘설탕’ 버전 같다는 느낌도 든다. 원제는 ‘The World of Sugar’.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4-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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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대 종교인들 “우리중 누구의 말이라도 위로와 희망이 되길”

    “누구의 답이 옳은지 그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 중 누군가의 말이라도 따뜻한 위로와 희망으로 전해질 수 있길 바랍니다.” 8일 오후 서울 중구 컨퍼런스하우스 달개비에서 ‘만남 중창단’의 ‘종교는 달라도 인생의 고민은 같다’(불광출판사) 출간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2022년 결성된 만남 중창단은 종교의 벽을 허물고 사랑과 화합을 노래하자는 취지로 성진 스님, 하성용 신부, 김진 목사, 박세웅 교무(원불교) 등 4대 종교 성직자들이 모여 만든 노래 모임. 신간은 평소 노래로 평화와 화합, 치유의 메시지를 전해 온 이들이 행복이란 주제를 죽음, 돈, 관계, 감정, 중독 등 5가지 분야로 나눠 이야기한 책이다. 이날 간담회는 평소 TV와 라디오, 유튜브, 각종 공연에서 구수한 입담을 자랑하던 이들답게 웃음과 해학, 그 속에 담긴 깨달음으로 가득 찼다. “죽기 직전에 부처님께 귀의하거나 ‘나무아미타불’ 세 번을 외면 극락에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돌아가시는 분들 임종을 지켜본 바로는 안 됩니다. 숨 넘어가는 중에 ‘나무아미타불’ 못 외어요.”(성진 스님) “한순간에 회개할 수 있다고 여기는 건 죽음을 앞둔 사람이나 그 주변인들이 위안을 얻으려는 속셈에 불과합니다. 회개는 믿음이고, 믿음은 실천입니다. 진심으로 믿고 그렇게 생활해야 회개했다고 말할 수 있지요.”(김진 목사) 박세웅 교무는 책을 통해 외모, 성적, 취업 등이 기대만큼 충족되지 않아 자존감이 낮은 청소년들에게 1억 원짜리 수표 이야기를 비유로 해준다고 말했다. “구겨지고 찢어졌어도 1억 원짜리 수표의 가치는 변함이 없습니다. 자존감도 마찬가지여서 살다 보면 지치고 힘들고 상처받지만, 자신의 고귀한 가치가 변하는 것은 아니지요.” 하성용 신부는 마음의 문을 닫는 자녀 때문에 힘들어하는 부모들에게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하고 안일하게 있다가 안 되면 종교인의 도움을 받으러 찾아오는데 먼저 전문가에게 상담과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 신부는 “종교인은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보조적인 수단에 불과하다”며 “하느님께 기도한다고 아픈 몸이 낫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고 믿는 건 전적으로 잘못된 신앙”이라고 했다. 성진 스님은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 어떤 부분에서는 결을 같이하고, 또 어떤 곳에서는 서로 생각의 차이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을 향한 자비심과 배려가 우리를 행복으로 이끈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는 “가족, 친구, 동료 등 우리의 삶은 다른 사람의 삶과 항상 이어져 있다”며 “사랑하는 사람이 불행한데 나만 행복할 수 없듯, 하나의 존재가 행복해지려면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이 더불어 행복해야 한다는 것이 삶의 진리”라고 덧붙였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4-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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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양한 분야 활약’ 스님 10명의 출가 이야기

    “출가를 위해 포기한 것은 없어요. 내가 원하는 삶을 위해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니 포기할 게 없어요.”(비구니 군법사 균재 스님)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이 최근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스님들의 출가 이야기를 담은 ‘슬기로운 출가생활’(사진)과 ‘불교는 좋지만 출가는 겁나는 너에게’ 등 2종(담앤북스)을 발간했다. ‘슬기로운 출가생활’에는 각계에서 활약하는 스님 10명의 사연과 삶이 담겼다. 젊음의 거리인 홍익대 인근에 ‘명상+게스트하우스’인 ‘저스트비(Just Be) 홍대 선원’을 연 준한 스님은 미국 유학파. 출가 후 대학 시절 경험했던 수행을 바탕으로 명상 프로그램을 개발한 그가 문을 연 ‘저스트비’는 댄스 명상, 소리 명상 등의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끌며 청년들의 ‘힙’한 수행처로 자리 잡았다. 사찰에 담긴 문화재와 역사 이야기를 소개하는 무여 스님은 1세대 불교 유튜버. 그가 운영하는 ‘무여 스님 TV’는 구독자 5만여 명, 누적 조회수 440만여 회에 이르는 대표적인 불교 유튜브 채널이다. 이 밖에 비구니 군법사 균재 스님, 사찰음식 전문가 성화 스님, 사회복지사 혜능 스님 등의 출가와 활동 이야기가 담겼다. ‘불교는 좋지만 출가는 겁나는 너에게’는 청소년부터 은퇴자에 이르기까지 출가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맞춤형 법문 자료집이다. 각 세대에 맞춘 법문을 통해 출가의 의미와 중요성을 짚어보고 초기 불교와 대승불교 경전, 선어록 등을 바탕으로 출가 정신을 되새겼다. 교육원장인 범해 스님은 “고뇌에서 벗어나 행복한 삶을 완성하는 방법은 자기 생각과 실천에 있다”며 “각자의 소신대로 노력하며 구도의 길을 완성해 가는 스님들의 모습이 인생의 길을 모색하는 분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어 줄 것”이라고 말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4-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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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달장애 아이들 특별한 연주회, 꿈 이뤄진다는걸 보여줘”

    지난해 12월 12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 세라믹팔레스홀에서 밀알복지재단(이사장 홍정길 목사)이 운영하는 밀알첼로앙상블 ‘날개’의 제11회 정기연주회가 열렸다. 2012년 창단된 ‘날개’는 발달장애 등 자폐성 장애인으로 구성된 국내 최초의 첼로 앙상블. 지휘를 맡은 정석준 음악감독(45)은 3일 일원동 밀알아트센터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장애가 있어도 꿈을 가질 수 있고, 또 얼마든지 이룰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연주곡이 에드바르 그리그의 ‘홀베르 모음곡’, 하이든 교향곡 94번 ‘놀람’ (2악장), 영화 ‘맘마미아’ OST 등 쉽지만은 않더군요. “하하하. 우리 단원이 모두 18명인데, 다들 열심히 했어요. 물론 연습이 쉽지는 않지요. 한창 연습 중에 갑자기 나가서 간식을 먹거나 하는 돌발 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나오는 우영우처럼 소리에 민감한 단원도 있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관객들에게 연주가 끝난 뒤에도 박수를 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 적도 있지요. 그런데 놀라운 게… 그 학생이 점차 악기 소리에 적응하고, 앙상블의 즐거움을 느끼다 보니 이제는 박수 치지 말아 달란 부탁을 안 해도 될 정도로 나아지더라고요.” ―‘날개’를 만든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날개’는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들에게 세상과 소통하는 장을 만들어 주기 위해 만들어졌어요. 장애가 있다 보니 아이들이 세상에서 고립되기가 쉽거든요. 악기를 하다 보면 음악에 대한 기쁨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의 소리를 듣고 맞춰 가게 되잖아요. 더 나아가 관객들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박수를 받는 그런 과정 모두가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죠. 음악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아이들이 스스로 장애를 극복하고 이겨 내는 데 도움이 되더라고요.” ―눈으로 확인이 될 정도입니까. “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아무래도 발달장애라는 특성상 좀 산만한 경우가 많아요. 집중을 하는 데도 한계가 있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이 연습하면서 집중하는 시간이 점차 늘어나더군요. 재미도 있고, 왜 해야 하는지도 알고 그러니까 견뎌 내는 것 같아요. ‘날개’에서 활동하다가 음대(첼로 전공)에 진학한 단원들도 있으니까요.” ―첼리스트로 활동하는 차지우 씨를 말하는 건가요. “네. 그 외에도 몇 명 더 있어요. 지우는 치료 차원에서 첼로를 배웠는데 ‘날개’에서 활동하는 동안 악기에 대한 재능을 발견하고 아예 음대 진학으로 진로를 결정했어요. 지금은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하면서 연주자로도 활동하고 있지요. 2016년 뉴욕 유엔본부 초청으로 ‘세계 장애인의 날’ 기념 공연도 했고요.” ―입단 자격은 어떻게 되는지요. “초등학교 4, 5학년 이상만 되면 누구나 들어올 수 있어요. 악기를 배우지 않았어도 상관없어요. 들어와서 배운 아이도 많거든요. 들어오면 여기 있는 선생님들이 주 1회씩 개인 지도를 해줘요. 단체 앙상블 연습은 별도고요. 지금은 연 1회 정기연주회와 외부 초청 연주를 나가는데 앞으로 더 많은 공연 기회가 있었으면 하지요. 장애가 있어도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으니까요.”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4-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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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귀족화-우민화 된 한국교회… ‘신분’ 상승하니 현실 안주”

    “지금 한국 교회는 밤길을 걷고 있습니다. 밑바닥에서 시작해 올라왔는데, 신분이 상승하니 이제는 안주하고 있으니까요.” 2일 경기 동두천시 두레문화마을에서 만난 김진홍 목사(82·두레문화마을 대표)는 한국 개신교계가 귀족화, 우민화, 물량화의 늪에 빠져 본질을 잊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1971년 서울 청계천에서 빈민선교와 사회사업으로 목회 활동을 시작한 그는 최근 80년 인생을 정리한 ‘내 삶을 이끌어준 12가지 말씀’(미문 커뮤니케이션)을 출간했다. ―교회가 신분이 상승하니 안주하고 있다고요. “집회나 모임 같은 곳에서 외제 차, 대형 차를 끌고 온 젊은 목사들을 자주 봐요. 심지어 신학대학 교수 중에도 자기 차가 벤츠라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명색이 목사가 그걸 자랑이라고 하면 되겠습니까. 그런데 신학대 학생 중 상당수가 또 그런 목사들을 동경하고 추종해요. 사회의 가장 낮은 밑바닥 사람들과 함께하며 올라온 한국 교회가 어느새 사회 지도층이 되고 신분이 상승하니까 귀족화돼 그 단맛을 즐기기 시작한 거죠.” ―교회를 찾는 사람들이 준 것도 같은 이유라고 보시는지요. “한국 개신교는 1970, 80년대 폭발적인 성장을 했습니다. 저도 청계천에서 빈민 선교부터 시작했습니다만, 당시 한국 교회는 사회의 가장 하층민들에게 다가가 스스로 희생하고 봉사하고 아픔을 함께 나눴지요. 교회에 가면, 목사를 만나면 행복하고 따뜻하니 사람들이 모이는 게 당연하지요. 그런데 지금 한국 교회, 교계 지도자들은 누구와 함께하고 있습니까.” ―과거와 달라졌다는 말인지요. “제가 어떤 회사의 판매 여직원들을 모아서 설교한 적이 있습니다. 눈을 감고 ‘혹시 이 중에 교회에 다니는 사람 손들어 보라’고 했지요. 3%가 채 안 되더군요. 저는… 과거와 달라진, 귀족화된 한국 교회가 없는 사람, 어려운 사람들에게 이질감을 느끼게 한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 청와대 초청을 받아서 차를 갖고 간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왔는지 말했는데도 입구에서 안 믿고 들여보내 주질 않는 거예요. 나중에 죄송하다면서 그러더군요. 프라이드 타고 오는 종교인은 처음 봤다고. 30년 전에도 그 정도였으니…. 교회가 사람들이 발길을 끊게 만든 원인을 제공한 건 아닌지 자성해야 합니다.” ―목사신데… 무조건적인 믿음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도 하셨더군요. “예수님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진리 안의 자유를 말씀하신 거지요.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도록 설명을 해줘야지 ‘무조건 믿어라’라고 하면 되겠습니까. 그건 우민화지요. 그러니 목사가 기침해도 ‘아멘’ 하는 사람이 나오는 거지요. 맹목적인 신앙은 추종자만 양산하지, 참된 신앙인을 기르지 못합니다. 신앙이 먼저가 아닙니다. 인간다운, 사람이 되는 게 먼저지요.” ―실례입니다만, 아주 느린 말투로 설교하는데 원래 그런 것인지요. “아니에요. 젊었을 때는 저도 ‘따발총’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청계천 빈민 선교부터 시작했잖아요. 가장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이다 보니 교회 용어나 어려운 말을 쓰면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교회 어법이 아니라 그들의 용어, 화법으로 말을 쉽게 바꿨지요. 말이 빨라도 마찬가지였지요. 그래서 사람들이 들으면서 생각하고 이해할 시간을 갖게 하기 위해 일부러 천천히 말하고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오래되다 보니 지금처럼 느릿한 말투가 되더군요. 하하하.”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4-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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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 들어주기만해도 어려운 사람에겐 큰 힘 되죠”

    “귀담아들어 주기만 해도 힘든 사람에게 정말 큰 힘이 되지요.”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졌지만, 정신의 빈곤을 호소하는 시대. 지난해 12월 2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만난 순복음상담소 이미옥 선임 목사(상담 총괄)는 “어려움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삶의 용기를 갖는 분들이 많다”며 이렇게 말했다. 올해로 설립 44년째인 순복음상담소 ‘아가페 전화’(옛 사랑의 전화)는 80여 명의 자원봉사자가 한 달 평균 500여 통의 상담 전화를 받고 있다. ―요즘 사람들이 어떤 어려움을 많이 상담하는지요. “가족 문제, 직장 문제, 물질과 대인관계 등 어려움의 유형은 대체로 전과 비슷해요. 그런데 최근에는 사회적으로 비혼, 1인 가구가 늘어나다 보니 그로 인한 외로움이나 대인관계 문제를 호소하는 상담이 많아졌어요. 대체로 가족과도 교류가 거의 없고, 일은 하지만 회사에서도 잘 어울리지 못하는 분들이에요. 그러다 보니 이직을 자주 하게 되고, 점점 더 질 좋은 직장과는 멀어지면서 악순환이 거듭되는 거죠.” ―상담만으로 문제가 해결되거나 치료될 수가 있습니까. “전화 상담을 요청하는 분들 상당수는 문제 해결보다 어디에 자기 이야기를 할 곳이 없으니까 찾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분들은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 들어주는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살아가는 데 큰 힘을 얻거든요. 상담이 효과가 있다는 방증이죠. 그래서 이런 분들은 상담으로 힘을 얻고 살다가 또 힘들어지면 전화하는 패턴을 보여요. 물론 전화 상담이라는 특성상 한계가 있어 근본적인 문제 해결과 변화를 끌어내기가 쉬운 것만은 아니지요.” ―남의 어려움을 들어준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만…. “사명감이 없으면 하기 쉬운 일은 아니에요. 아가페 전화에서는 80여 분의 자원봉사자가 각자 하루 3시간씩 상담 전화를 받는데, 시작하면서 30분 동안 한다고 알려주지만 시간을 넘기기가 일쑤지요. 어디에 얘기할 곳이 없어서 힘들게 용기를 냈는데 시간 됐다고 끊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분들로서는 죽을 것 같은 고통을 어떻게든 이겨내 보려고 몸부림치는 것일 수 있잖아요. 그리고 꼭 하고 싶은 말이, 가족이나 친구, 지인이 힘듦을 호소할 때 ‘그게 뭐 힘들다고…’라는 식으로 말을 대수롭지 않게 던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말을 대수롭지 않게 던지지 말라는 게 무슨 의미인지요. “내가 볼 때는 대수롭지 않은 어려움이어도 누군가에게는 자기 삶이 송두리째 날아간 것 같은 큰 힘듦일 수 있어요. 그런데 대부분 겪는 일이라고 ‘뭐 그런 일로 우냐?’ ‘시간 지나면 다 나아진다’는 식으로 별것 아닌 것처럼 대하는 경우가 많지요. 그럼 당사자는 입을 닫고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거든요. 그렇게 오랜 시간 쌓이면서 문제가 커지는 거죠. 상담하다 보면 가정이나 주변에서 조금만 신경을 써줬어도 이렇게 커지지 않았을 경우를 많이 봐요. 누군가 ‘힘들다’고 말하면 ‘살기 위해 내게 손을 뻗는구나’ 이렇게 생각했으면 합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4-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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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없는 사람에게 밥은 하늘, 연탄은 땅입니다”

    “없는 사람에게 밥은 하늘, 연탄은 땅이지요.” 최근 전국을 강타한 최강 한파가 물러간 27일 서울 노원구 연탄은행에서 만난 밥상공동체·연탄은행 대표 허기복 목사(67)는 어려운 이들에게 연탄이 어떤 의미를 갖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허 목사는 “올해 목표가 300만 장인데 현재 약 250만 장을 후원받은 상태”라며 “작년에 비해 기업 후원이 꽤 줄었다”고 말했다. ―작년보다 목표를 적게 잡았는데도 부족하다고요. “작년에는 약 400만 장을 후원받았는데, 올해는 전기료도 많이 오르고 경기도 좋지 않을 거라는 전망이 있어서 목표를 적게 잡았어요. 그런데 기업 후원이 많이 줄어서 50만 장 정도가 부족한 상태입니다. 후원하던 기업에 호소했는데 쉽지 않습니다.” ―연탄을 때는 가구가 얼마나 됩니까. “전국적으로는 현재 7만4000가구 정도인데, 2년 전(8만1000여 가구)보다 7000가구 정도가 줄었어요. 하지만 서울 등 일부 지역에서는 오히려 2400가구 정도가 늘었지요. 기름보일러를 쓰다가 다시 연탄으로 돌아갔기 때문이에요.” ―다시 연탄을 사용하는 이유가 뭔가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주거 개선 차원으로 기름보일러로 바꿔줬는데 기름값 지원은 없어요. 기름보일러를 쓰면 한 달에 50만 원 정도가 드는데, 연탄은 15만 원(150∼200장·장당 850원)이면 되거든요. 기름값이 없으니 연탄으로 다시 돌아간 거죠.” ―여름에도 연탄이 필요하다고 들었습니다. “주거 환경이 워낙 안 좋아 장마철에는 방 안이 눅눅하고 통풍도 잘 안 돼 곰팡이가 많이 피거든요. 난방을 좀 해야 벽이나 방바닥에 습기가 고이거나 곰팡이가 피는 걸 막을 수 있어요. 봄, 가을에도 씻을 때 온수는 필요하고요.” ―연탄은행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 겁니까. “1998년 IMF 외환위기 때 강원 원주에서 무료 급식소를 시작했는데, 어떤 분이 연탄을 후원하겠다고 하셨어요. 연탄 나누기 운동을 하자는 거죠. 그때 하루에 3시간 잠잘 정도로 너무 바빠서 처음에는 고사했는데, 후원하겠다는데 안 하는 것도 그렇잖아요. 그래서 수요 조사를 했는데, 할머니 한 분이 일주일째 한겨울 냉방에서 이불만 뒤집어쓰고 떨고 있는 걸 봤어요. 충격이었죠. ‘내가 목사라면서 세상을 너무 모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게 계기가 돼 2002년 원주에 연탄은행 1호점을 세웠고, 현재 전국에 31곳의 연탄은행이 있습니다.” ―후원 모금 외에 힘든 점은 없는지요. “도시가스가 훨씬 싼데 연탄 때는 걸 보면 부자 아니냐, 그런 사람들을 왜 도와주냐고 따지는 분들이 있어요. 도시가스가 연탄보다 싸긴 하죠. 도시가스관을 설치할 수 없을 정도로 낙후된 동네라 연탄을 때는 건데…. 또 대부분 산동네다 보니 일일이 지게로 져 날라야 하는데 조심해도 연탄 가루가 길에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동네 지저분하게 한다고 뭐라 하는 분들도 있고…. 새해에는 조금은 더 남을 생각하는 사회가 됐으면 합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3-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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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순택 대주교 신년 메시지 “전세계 전쟁… 평화 일구는 사람돼야”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정순택 대주교(사진)는 27일 발표한 신년 메시지에서 “최근 전 세계가 전쟁과 폭력으로 신음하는, 우리 모두 평화가 간절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며 “이럴 때일수록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평화를 내려주시길 청하며, 우리 스스로 각자의 자리에서 평화를 일구는 사람이 되도록 하자”고 강조했다. 정 대주교는 이어 “하느님, 이웃, 나 자신과 ‘친교’를 이루고, 세상의 논리가 아닌 복음의 논리를 삶으로 증거하는 ‘선교’를 실천하며, 세상의 모든 구성원이 함께 주인공으로 살아가도록 ‘참여’를 증진하는 길, 이 길이 바로 우리가 모두 바라마지 않는 평화로운 세상으로 우리를 이끌어줄 것”이라고 말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3-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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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병철 회장이 ‘신과 죽음’ 물었던 정의채 몬시뇰 선종

    ‘한국 천주교의 지성’으로 불린 정의채(세례명 바오로·사진) 몬시뇰이 27일 선종했다. 향년 98세. 1925년 평안북도 정주군에서 태어난 정 몬시뇰은 28세에 사제품을 받고, 부산 초량 본당과 서대신 본당에서 보좌신부로 사목했다. 1961∼1984년 가톨릭대 신학부(현 가톨릭대 성신교정) 교수로 근무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불광동 본당과 명동 본당 주임신부를 지낸 후 학교로 돌아가 학장(당시 총장)으로서 후학 양성에 힘썼다. 1992∼2009년 서강대 석좌교수를 지낸 정 몬시뇰은 2005년 교황이 주교품을 받지 않은 가톨릭 고위 성직자에게 부여하는 몬시뇰 칭호를 받았다. 정 몬시뇰은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회장이 1987년 10월 죽음을 한 달여 앞두고 ‘신이 인간을 사랑했다면 왜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주었는가’ 등 24가지 질문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불광동 본당 신부였던 정 몬시뇰은 답변을 준비했지만 이 회장이 별세해 답을 들려줄 수 없었다. 정 몬시뇰은 국가적 문제에 대해서는 진보·보수를 넘어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빈소는 서울 명동대성당에 마련되며 28일 오전 11시부터 조문객을 받는다. 장례미사는 서울대교구장인 정순택 대주교와 사제단의 공동 집전으로 30일 오전 10시 명동대성당에서 열린다. 장지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용인공원묘원 내 성직자 묘역이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3-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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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계종 총무원장 신년 메시지… “몸-마음 평안한 푸른용의 해 되길”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사진)은 26일 신년 메시지를 통해 “갑진(甲辰)년에도 몸과 마음이 평안하시고 뜻한 바를 이루는 푸른 용의 해가 되길 지극한 마음으로 축원드린다”고 밝혔다. 진우 스님은 “개인의 작은 이익과 편리함을 위하여 대의는 가차 없이 버려지며, 경제의 저성장 속에서 저출산 고령화가 대세가 되어 사회 구조의 근간마저 흔들리는 상황”이라며 “마음 수행법을 대대적으로 보급하면서 동시에 불교적인 대안을 끊임없이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또 “대한불교조계종은 기존 조직의 전면적 개편을 통해 종단에 부여된 사명 완수에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고 예고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3-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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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족에 용서 빌고 싶다는 사형수, 옥중시집 인세 보내”

    “옥중에서 낸 시집 인세를 피해자 유가족에게 보내는 사형수도 있지요.” 서울 영등포구 글로벌 찬양의 교회에서 21일 만난 안홍기 목사(66·법무부 교정위원·사진)는 “흔히 사형수 정도면 교화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다 그렇지는 않다”며 이렇게 말했다. 안 목사는 20여 년간 사형수 등 중범죄자 교화 사역을 해 ‘사형수, 조폭 교화 전문 목사’로 불린다. ―같은 노력이라면 사형수 같은 중범죄자보다 죄가 가벼운 이들을 교화하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습니까. “제 경험으로는 사형수나 10년, 20년씩 사는 중범죄자들이 오히려 쉬웠어요. 그 사람들은 체념하고 다 내려놓는 경우가 많거든요. 1, 2년 사는 사람들은 곧 나가니까 욕심도 버리지 못하고, 잘못을 인정하기보다는 ‘운이 없어서 잡혔다’고 생각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교화가 쉽지 않아요.” ―오늘도 사형수를 만나고 오셨다고요. “제가 사형수 8명을 교화 중이에요. 오늘 만난 사형수는 20여 년째 수감 중인데 옥중에서 시집을 내서 그 인세로 연락이 되는 피해자 유가족에게 얼마라도 보내줬어요. 용서도 빌고요. 물론 교화가 안 되는 사람도 당연히 있지요. 참회한다고 죽은 사람이 돌아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모습을 보면서 유가족 마음의 응어리가 조금이라도 풀리지 않았을까요.” ―교정위원인데, 우리 교정 정책에 아쉬움이 많다고 했습니다. “이름은 교정·교화 정책인데 실제로 그 역할은 거의 하지 못해요. 처음부터 중범죄자가 되는 게 아니에요. 작은 범죄로 들어왔을 때 제대로 교정·교화하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거든요. 소년범은 특히 더 그렇고요. 그런데 교정위원인 저조차 하루 면담 시간이 10분밖에 안 돼요. 그 시간에 뭘 할 수 있겠어요. 교정 활동이 아니라 일반인 면회 개념으로 생각하는 거죠.” ―일각에서는 교정보다 처벌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합니다만…. “휴…. 교정·교화에 더 투자하고 노력하면 작은 범죄가 큰 범죄로 자라는 걸 차단할 수 있어요. 재범률도, 수도 줄겠죠. 그런데 근본적인 노력을 안 해 범죄를 키워놓고, 대책이라고 처벌을 강화하고 교도소를 더 짓고 각종 관리 장비와 인력을 늘리는 게 과연 합당한 방법이겠습니까? 저는 사형 집행을 하지 않아서 범죄가 더 흉악해져 간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사형 집행을 할 때도 흉악범죄는 있었으니까요. 우리가 생각을 바꿨으면 합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3-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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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전쟁도 파괴하지 못한 ‘사랑하는 습관’

    나이가 들면서 인간 혐오증에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처음에는 ‘네가 어떻게 내게…’, ‘내가 그렇게 잘해줬는데…’로 시작된다. 점점 심해지다 보면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지’라는 데까지 생각이 이른다. 바람직한 생각은 분명 아니지만 딱 잘라 잘못됐다고 하기도 어려운 게, 살면서 도움을 받을 때와 그 후가 달라지는 모습을 너무 많이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와 내 가족, 친구들의 목숨을 걸고 남을 도우라고? 자기 이득을 위해서라면 욕먹는 것 정도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남을 짓밟고 법을 어기는 것조차 무감각한 사람들이 판을 치지만 그래도 세상에는 자기 이득이나 악의 유혹, 이기주의를 이겨내고 선함의 꽃을 피워내는 사람들이 있다. 인류학자인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나치의 만행을 피해 프랑스 중남부에 있는 작은 고원 비바레리뇽으로 숨어들어 온 낯선 이들을 도운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남을 돕지 않는 것은 고사하고 자신이 살기 위해 타인을 죽여도 정당화되는 당시 현실에도 불구하고 왜 그들은 목숨을 걸고 타인을 지키려 했을까.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비바레리뇽 주민들은 제2차 세계대전의 나치 점령이라는 불운을 맞닥뜨린 낯선 사람들을, 수백에서 수천 명까지 수용했다. … 이들은 늘 목숨을 잃을 위험에 처해 있었다. 실제로 일부 마을 주민들은 독일 점령군과 이들에게 부역한 프랑스 경찰에게 처벌받았다. 일부는 목숨을 잃었다.”(1장 ‘대답 없는’에서) 저자는 그 선함의 뿌리를 찾고자 고원을 찾았지만, 주민들과 만나 대화하면서 인류학자, 사회과학자로서의 태도를 내려놓는다. 탐구하고 파고들기보다 서로 느끼며 함께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한 것이다. 그리고 비바레리뇽 주민들이 전쟁 중임에도 밤에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을 때 문 뒤에 누가, 무엇이 있는지 모른 채 사랑하는 마음으로 문을 열어준 것처럼 우리 모두 사랑이 습관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읽다 보면 세파에 치여 자꾸만 오그라들고 비뚤어지던 마음이 조금은 더 넉넉해지고, 지금보다는 약간 더 예뻐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원제 ‘The Plateau(그 고원)’.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3-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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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도 감소는 사람들의 바람을 종교가 못채우기 때문”

    “신도 감소 현상은 지금 사회와 사람들이 바라는 것을 종교가 채워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도 자성할 부분이 많지요.” 전북 익산 원불교 중앙총부에서 19일 만난 나상호 원불교 교정원장(사진)은 내년 익산 중앙총부 설립 100주년을 앞두고 교단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1891∼1943)가 1916년 창시한 원불교는 1924년 익산에 중앙총부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2021년 취임 때 대대적인 변화를 추진하겠다고 하셨습니다. “100년이 넘다 보니 세상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우리 안에서 안주하는 경향이 솔직히 있었습니다. 종교가 사회를 앞장서서 견인해야 하는데 사회 변화를 뒤쫓는 입장이고, 그마저도 느렸지요. 대표적인 예가 원불교 여성 교무 법복(法服)입니다. 흰색 한복 저고리에 검정 한복 치마, 쪽 찐 머리로, 원불교 초기인 일제강점기 이 복장은 신여성을 상징했습니다. 당시에는 가장 엘리트 여성이 입는, 진보적인 것이었죠. 그런데 100여 년 동안 그대로 있다 보니 이제는 사람들이 ‘웬 유관순 열사 복장?’ 하며 신기하게 봅니다. 지금은 양장도 함께 입을 수 있게 바꾸긴 했지만 몇 년 안 됐어요.” ―변화의 하나로 최고 의결기구의 일반 신도 비율을 높일 계획이라고요. “교단 최고 의결기구는 수위단회로, 교단 내 모든 일을 시작하고 마무리 짓는 가장 핵심 기구지요. 어느 종교든 이런 최고 의결기구에 일반 신도가 참여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처음부터 성직자와 재가자의 비율이 3 대 1 정도 됐어요. 그걸 내년 3월경 교헌 개정을 통해 2 대 1 정도로 바꾸려고 합니다. 재가자들은 사회에서 각종 활동을 하시기 때문에 재가자 비율이 높아지면 우리만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좀 더 사회 변화에 발맞출 수 있을 거라 봅니다.” ―중앙총부를 옮기는 방안도 고려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내년이 익산 중앙총부가 설립된 지 꼭 100년 되는 해입니다. 여러 행사를 준비 중인데 중앙총부 이전도 고민 중이지요. 다른 종교들은 모두 서울에 있지 않습니까. 큰 틀의 변화를 하려면 이전도 필요한 것 아니냐는 제안이 꽤 있지요.” ―올해도 며칠 안 남았습니다. 국민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요. “현재 보건복지부와 연계해 전체 성직자를 대상으로 자살 예방 및 상담 교육을 시행 중입니다. 교육의 특성상 소수로 진행할 수밖에 없어서 속도는 다소 느리지만 궁극적으로 전체 성직자 1500여 명 중 절반 정도를 이 분야 전문가로 양성하는 게 목표입니다. 살고 싶지 않다고 호소하는 당사자는 물론이고 자녀나 형제자매의 극단적인 선택으로 트라우마를 겪는 분들이 정말 많습니다. 그분들을 위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것도 종교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종교는 물론이고 사회 지도층이 힘든 국민을 보살피고 치유해 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미안한 심정입니다.”익산=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3-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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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정엔 인물의 정신 담겨야”

    “영정(影幀)에는 인물이 표방하는 정신이 담겨야 해요. 그래서 어렵지만 보람된 작업이지요.” 대전 자택에서 14일 만난 윤여환 충남대 회화과 명예교수(70)는 평생 역사적 인물들의 영정을 그려온 이유를 말했다. 유관순 논개 박팽년 등의 국가표준영정을 그린 그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표준영정 작가로, 최근 대전 중구 대전예술가의 집에서 화업 49년을 마무리하는 회고전을 열었다. ―역사적 인물은 대부분 실제 모습을 모르지 않습니까. “작가마다 방법이 다르겠지만, 저는 일차적으로 후손들 얼굴에서 공통점을 찾습니다. 논개(주논개·국가표준영정 제79호)를 그릴 때는 그가 자란 전북 장수지역 신안 주씨 후손 40여 명을 촬영해 특징을 분석했지요. 화장과 복식도 문헌과 출토된 동시대 유물을 참고하고요. 가장 중요한 것은 인물의 정신을 구현하는 것이죠. 그래서 완성될 때까지 문화체육관광부 내 영정동상심의위원회 심의를 수십 번 받습니다. 유관순 열사 새 영정을 그리는 데는 2년이나 걸렸지요.” ―유관순 열사는 사진이 남아 있는데요. “이화학당 재학 중 찍은 단체 사진과 감옥에 있을 때 사진이 있어요. 그런데 기존 영정은 수형 중 고문 등으로 부은 얼굴 사진을 토대로 그려 수심이 가득한 중년 여성을 떠올리게 한다는 지적을 받았지요. 그래서 18세 소녀의 청순함과 나라를 지키려는 기개, 결연함을 담은 모습으로 다시 그렸습니다. 어떤 모습, 표정이 기개 있는 건지는 보는 사람마다 다 다르잖아요? 그래서 어렵지요.” ―유관순 열사가 든 태극기도 몇 번을 수정했다고 들었습니다만…. “워낙 화제가 되다 보니 중간 심의 과정 중인 그림이 언론에 공개됐어요. 그런데 ‘잘못된 태극기를 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 거죠. 지금 쓰는 태극기와 다르다는 건데…. 현재 태극기 모양은 광복 후 정립된 거예요. 3·1운동 때는 정해진 규격도 없고 만드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었지요. 저는 당시 썼던 것 중 하나를 고증해 그렸거든요. 심의위원회에서는 찬성과 반대가 반반이었는데 ‘유관순 열사가 잘못된 태극기를 들고 있다’는 말을 매번 듣는 게 힘들 것 같아서 결국 지금 모양으로 바꿨지요.”대전=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3-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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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는 세계 10위권, 기부는 88위… 부끄러운 현실”

    “우리나라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권인데, 지난해 세계기부지수는 88위였다는 걸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경기 광주의 한 카페에서 11일 만난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85)가 우리 사회의 나눔 문화 부족을 지적했다. 유산 남기지 않기 운동, 장애인 인권운동,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 등 활발한 사회운동을 펼쳐 온 그는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실천하는 지식인이다. 12년간 맡았던 나눔국민운동본부 대표에서 올해 8월 물러난 그는 “우리 사회가 커진 경제 규모만큼 나눔 문화가 확산하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연말이라 아름다운 기부 뉴스가 심심치 않게 나는데 88위라니 의외입니다. “‘세계기부지수’란 것이 있어요. 영국 자선구호단체인 CAF(Charity Aid Foundation)가 100여 개 나라에서 1000여 명씩 설문 조사해 발표하는 것인데, 지난해 우리나라는 88위를 했지요. 물론 자선단체에 기부한 적이 있는지, 도움이 필요한 낯선 사람을 도와준 적이 있는지,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는지 등 질문이 상당히 주관적이어서 의외라고 생각하는 나라가 앞쪽에 있기도 합니다. 그래도 미국, 영국 등 선진국들이 대체로 순위가 높지요.” ―그런 지수가 있는지 몰랐습니다. “우리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권입니다. 월드컵, 올림픽에서 예선 탈락하거나 순위 안에 못 들면 난리가 나지 않습니까? 그런데 기부·나눔 문화가 꼴찌 수준이라는 것에는 아무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몇 년 전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 앞에서 장애 학생 학부모들이 무릎을 꿇고 애원한 일이 있지 않습니까. 저는 나눔 문화 부족과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저도 그런 일 때문에 명예훼손으로 검찰 조사까지 받은 적이 있으니까요.” ―명예훼손이라니요? “자폐 아동을 위한 특수학교를 설립할 때였어요. 지역 주민들이 기피 시설로 간주해 공사를 심하게 방해했죠. 그래서 주민들에게 편지를 썼어요. 절대로 학교 때문에 집값이 떨어지지 않으니 반대하지 말아 달라고. 그랬더니 자기들을 집값 때문에 반대하는 사람으로 매도한다고 검찰에 명예훼손으로 고발하더군요.” ―나눔국민운동본부 대표에서 스스로 물러나셨다고 들었습니다. “8월 말에 물러났는데, 너무 오래 한 것도 있고 또 사회적으로 기부 문화를 확산시키는 데 제 능력이 부족한 건지 큰 열매를 거두지 못한 것 같았어요. 더 잘할 수 있는 분이 맡는 게 낫겠다 싶었지요.” ―지난해 13억 원 상당의 재산을 장애인을 위해 기부하셨습니다. “제가 평소 강의에서 유산을 남기지 말자고 많이 말했어요. 그 강의를 들은 사람들이 유산남기지않기운동본부를 만들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참여하지 않을 수는 없잖아요?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건 행복한 사람을 더 행복하게 만드는 것보다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의 아픔을 줄여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가장 고통을 많이 받는 사람 중 하나가 바로 장애인들이고요.” ―한 해가 또 저뭅니다. 나눔의 정신이 더 절실할 때인데 어떤 말씀을 하고 싶습니까. “모든 부모는 자녀가 훌륭하게 자라길 바랄 겁니다. 그런데 부모가 집값 떨어진다고 동네에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학교가 들어오는 걸 반대하고, 임대아파트 아이들과 어울리지 말라고 아파트 단지에 벽을 치는 걸 아이가 보고 자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대한민국은 선진국입니다. 하지만 삶에 대한 가치관도 선진국 수준이냐고 물으면 많이 아쉽지요. 새해에는 좀 더 달라진 사회가 됐으면 합니다.”광주=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3-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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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로 필요한 분들에 희망을” … 정순택 대주교, 성탄 메시지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정순택 대주교(사진)는 13일 발표한 성탄메시지를 통해 “가난하고 소외된 분들과 위로가 필요한 우리 사회의 모든 분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이 큰 희망과 힘이 되길 기도한다”고 밝혔다. 정 대주교는 “아기들은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존재이지만, 모든 사람 안에서 선함을 이끌어내는 힘이 있다”며 “예수께서 가장 연약한 갓난아기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심은 우리 안에 원래부터 내재해 있던 선함을 이끌어 내시고자 함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힘없고 가난하고 소외된 분들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가장 연약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신 아기 예수님의 부르심을 들어보자”고 강조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3-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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