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구

이진구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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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부터 ‘이진구 기자의 대화’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딱딱하고 가식적인 형식보다 친구와 카페에서 수다 떠는 듯한 편안한 인터뷰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sys1201@donga.com

취재분야

2024-03-28~2024-04-27
종교37%
문학/출판20%
문화 일반20%
인사일반10%
역사7%
미술3%
여행3%
  • 도포 입고 갓 쓴 예수…운보 김기창 성화집 ‘예수의 생애’ 출간

    운보 김기창(1914∼2001) 화백이 예수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 30점을 모은 성화집 ‘예수의 생애’(쿰란출판사)가 최근 출간됐다. 김 화백이 1952~1953년 그린 이 작품들은 예수의 탄생, 세례, 수난, 죽음, 부활 등을 한국 풍속화 방식으로 표현했다. 김 화백은 미국에서 파견된 선교사 앤더스 젠센 선교사의 제안으로 이 같은 독특한 스타일의 성화를 그린 것으로 알려졌다.김 화백은 ‘예루살렘에 입성’이란 작품에서 갓을 쓰고 한복을 입은 예수가 조선의 성과 마을을 지나 입성하는 모습으로 묘사했다. 또 예수 잉태를 예고한 ‘수태고지’ 작품에서는 마리아를 녹색 치마와 노랑 저고리 차림으로 물레를 앞에 두고 앉아 있는 조선 여인 모습으로 표현했다. 이런 작품은 당시 화단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성화집에 작품 해설을 맡은 소강석 새에덴교회 담임목사는 “예수를 갓 쓴 조선 선비 모습으로 그린 운보 김기창 화백의 그림은 한국 기독교 문화예술사에 큰 충격과 아름다운 파문을 일으켰다”라며 “김 화백의 작품을 통해 한국 기독교는 우리만의 문화와 사유의 방식으로 복음을 좀 더 폭넓게 이해하고 예술적 토착화를 이뤄냈다”라고 말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3-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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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대건 신부, 한국만이 아닌 세계의 성인 돼”

    16일 오후 4시 반(현지 시간)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한국 최초의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1821∼1846) 성상 제막 축복식이 열렸다. 이날은 김대건 신부가 순교한 지 177년 되는 날이다. 성 베드로 대성당 지하 묘지 출구 인근 외부 벽에 설치된 김대건 신부 성상은 높이 3.7m, 가로 1.83m 크기의 전신상으로, 갓과 도포 등 한복을 입은 김대건 신부가 두 팔을 벌린 모습이다. 한진섭 조각가가 제작했으며 성상의 좌대에는 맨 윗줄에 한글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라는 문구가 새겨졌다. 성 베드로 대성당에 동양 성인의 상이 세워진 건 교회 역사상 처음이다. 대성당 외벽에 수도회 창설자가 아닌 성인의 성상이 설치된 것 역시 최초다. 성상 설치는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을 맞아 2021년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으로 있는 유흥식 추기경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성상 봉헌 의사를 밝히면서 결정됐다. 이날 축복식을 주례한 마우로 감베티 추기경은 “김대건 신부를 시작으로 이제는 각 민족과 나라를 대표하는 성상을 성 베드로 대성당에 모실 것”이라며 “오늘 축복식은 동서양 교회가 함께 걸어가길 바라는 희망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축복식에 앞서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는 유 추기경의 주례로 기념 미사가 봉헌됐다. 유 추기경은 “25년의 짧은 삶을 살았지만 어떤 어려움에도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았던 김대건 신부의 삶을 전 세계 젊은이가 본받길 기대하고 기도 드린다”고 말했다. 이날 기념 미사와 축복식에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주교 등 400여 명이 참석했다. 한진섭 조각가는 “한국(만)의 김대건 신부님이 아니라 세계의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이 됐다”고 말했다. 한편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오전 바티칸 교황사도궁 클레멘스홀에서 진행된 한국 가톨릭교회 대표단의 특별 알현에서 2014년 8월 방한 당시 김대건 신부가 태어난 충남 당진 솔뫼 성지를 방문했던 일을 회고했다. 교황은 당시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라는 요한복음 12장 24절 문구가 떠올랐다”고 소개했다. 그리고 “한국 최초의 사제이자 사제 품을 받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젊은 나이에 순교한 김대건 성인은 여러분들 신앙의 아름다운 역사를 영적인 눈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줬다”고 말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3-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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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석굴암서 영감받은 ‘14사도화’… 명동대성당 聖미술품 아시나요

    서울 명동대성당 안에 유럽 성당 못지않은 성(聖) 미술이 즐비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16일부터 11월 11일까지 성당 내 미술품을 설명해 주는 ‘명동대성당 가톨릭 미술 이야기 도슨트 프로그램’ 하반기 투어(매주 수, 토요일)가 운영된다. 도슨트 투어는 2019년 봄 시작됐지만 코로나19로 중단됐다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재개됐다. 명동대성당의 미술품을 살펴봤다. 성당 전면 중앙제대 뒷면을 감싸고 있는 ‘14사도화’는 한국 교회 미술 개척자이자 서울대 미대 학장을 지낸 화가 장발(1901∼2001)이 1926년 완성한 작품이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외에 초기 교회 기틀을 놓은 바오로와 바르나바를 포함한 것으로, 얼굴을 그릴 때 당시 활동하던 주교와 사제를 모델로 삼았다. 장발은 경주 석굴암을 방문했을 때 석가모니 둘레의 10대 제자상 입상 부조를 보고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스테인드글라스(유리화)는 19세기 프랑스 툴루즈의 대표적인 스테인드글라스 제작사인 제스타 공방 작품으로 1898년 설치됐다. 성당 정면 제대 뒤편의 ‘로사리오 15단’ 유리화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묵상하는 가톨릭교회의 묵주기도 각 단을 주제로 묘사했다. 트랜셉트(십자가형 교회의 좌우 날개 부분) 좌우의 작품은 각각 ‘예수와 열두 사도’, ‘아기 예수 탄생과 동방박사 경배’를 표현했다. 성당의 청동문은 세상과 거룩한 곳을 구분하는 역할을 한다. 명동대성당 정면의 3개의 문 가운데 중앙문은 최의순 작가가 1987년에 완성한 것으로, 초기 한국 교회의 중요한 사건을 저부조(低浮彫·얕게 만든 부조)로 표현했다. 맨 위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미사를 집전한 중국인 주문모 신부와 우리말 교리서(주교요지)를 편찬한 명도회 정약종 회장을 묘사했다. 명동대성당 북측 사제관 앞 정원엔 장동호 조각가가 1994년 제작한 예수님 두상 ‘예수 사형선고 받으심’이 있다. 사형선고를 받던 당시 고통스러운 예수님의 모습을 잘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도슨트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이 밖에도 ‘79위 복자화(유채)’ ‘요한 바오로2세 교황(부조)’ ‘명례방 천주교 집회도’ 등 20여 점의 성 미술을 볼 수 있다. 신청 및 자세한 내용은 인터넷 홈페이지 참조.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3-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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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는 만큼 보이는 명동대성당”… 성당 곳곳에 담겨있는 가톨릭 미술

    한국 천주교의 마음의 고향이자 가난하고 힘든 이들의 안식처. 민주화 운동의 성지. 굳이 지명을 붙이지 않아도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는 곳, 명동대성당. 하지만 그 안에 유럽 성당 못지않은 성(聖) 미술이 즐비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마침 16일부터 11월 11일까지 성당 내 미술품을 설명해주는 ‘명동대성당 가톨릭 미술 이야기 도슨트 프로그램’ 하반기 투어(매주 수, 토)가 시작된다. 명동대성당 도슨트 투어는 2019년 봄 시작됐지만, 코로나19로 중단됐다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재개됐다. △14사도화(제단화)성당 전면 중앙제대 뒷면을 감싸고 있는 ‘14사도화’는 한국 교회 미술 개척자이자 서울대 미대 학장을 지낸 장발(1901~2001) 화가가 1926년 완성한 작품이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외에 초기 교회 기틀을 놓은 바오로와 바르나바를 포함했는데, 얼굴을 그릴 때 당시 활동하던 주교와 사제를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장발은 처음 이 공간을 어떻게 장식할지 많이 고민했는데, 마침 경주 석굴암을 방문했을 때 석가모니 둘레 10대 제자상 입상 부조를 보고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독일에서 유행하던 보이론(Beuron) 화풍을 따라 화려함보다 절제미를 추구했다. △스테인드글라스(유리화)19세기 프랑스 툴루즈의 대표적인 스테인드글라스 제작사인 제스타 공방 작품으로 1898년 설치됐다. 성당 정면 제대 뒤편의 ‘로사리오 15단’ 유리화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묵상하는 가톨릭교회의 묵주기도 각 단을 주제로 묘사했다. 트랜셉트(십자가형 교회의 좌우 날개 부분) 좌우의 작품은 각각 ‘예수와 열두 사도’, ‘아기 예수 탄생과 동방박사 경배’를 표현했다. △청동문성당의 ‘문’은 세상과 거룩한 곳을 구분하는 역할을 한다. 명동대성당 정면의 3개의 문 가운데 중앙문은 최의순 작가가 1987년에 완성했다. 초기 한국교회의 중요한 사건을 저부조로 표현했는데, 맨 위에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미사를 집전한 중국인 주문모 신부와 우리말 교리서(주교요지)를 편찬한 명도회 정약종 회장을 묘사했다. △예수 사형 선고 받으심(조각)명동대성당 북측에 세워진 사제관 앞 정원에 있는 예수님 두상이다. ‘예수 사형 선고 받으심’은 작품 제목으로 장동호 조각가가 1994년 제작했다. 사형 선고를 받던 당시 고통스러운 예수님의 모습을 잘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탈리아의 대리석 산지인 카라라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는데, 16일 바티칸에 설치되는 성 김대건 신부 성상도 같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예수님이 눈을 감고 입을 다문 모습을 섬세한 끌질 표현했는데, 고통과 체념 동시에 무한한 사랑을 함께 느낄 수 있다고 한다.이밖에도 도슨트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79위 복자화(유채)’ ‘요한 바오로2세 교황(부조)’ ‘명례방 천주교 집회도’ 등 20여 점의 성미술을 볼 수 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3-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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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0년만에 오대산 돌아오는 조선왕조실록 감격”

    국보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이 100년이 넘는 타향살이를 끝내고 올해 11월 오대산 월정사로 돌아온다. 1913년 일제에 의해 강제 반출된 지 110년 만이다. 보물 조선왕실의궤 오대산 사고본도 101년 만에 함께 귀향한다. 의궤는 결혼, 장례 등 왕실과 국가의 주요 행사를 정리한 기록이다. 강원 평창군 월정사에서 11일 만난 대한불교조계종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은 “2006년 일본으로부터 반환받은 뒤에도 17년 동안이나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돼 있던 실록을 이제야 환지본처(還至本處·본래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불교 용어)한다”며 “20년 가까이 실록을 제자리로 돌리기 위해 했던 노력이 마침내 결실을 보게 됐다”고 했다. ―드디어 실록이 집에 돌아오게 됐습니다. “조선 왕실은 임진왜란으로 전주 사고본만 남고 나머지 장소에 있던 실록들이 모두 소실되자 전주 사고본을 바탕으로 실록 4부를 재간행했습니다. 그리고 이곳 오대산 사고 등 4곳에 보관했지요. 오대산 사고본은 일제강점기인 1913년 모두 도쿄제국대로 반출됐는데, 불행히도 1923년 간토대지진으로 27책만 남고 소실됐습니다. 그 27책이 1932년 경성제국대로 옮겨졌다가 광복을 맞았지요. 처음에는 존재하는 오대산 사고본이 그게 전부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다 도쿄대가 47책을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지요. 그래서 2006년 저와 경기 남양주 봉선사 주지 철안 스님을 공동의장으로 하는 ‘조선왕조실록 환수위원회’를 구성하고 반환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민간이 나선 이유가 있습니까. “1965년 한일협정에 포함되지 못한 문화재는 사실상 청구권을 포기한 것으로 간주했으니까요. 한일협정 당시에는 도쿄대에 오대산 사고본 47책이 있는지조차 몰랐으니…. 그래서 국가는 나설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반환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만…. “소송 등 모든 방법을 다 쓰려고 했지요. 그런데 도쿄대에서 약탈 문화재를 두고 소송까지 가는 게 굉장히 부담스러웠던 모양입니다. 당시 한일관계도 그리 나쁘지 않았고요. 그래서 우여곡절 끝에 도쿄대가 기존 27책이 있는 서울대에 두 나라 국립대학 간 학술교류와 협력 차원에서 47책을 기증하는 형식으로 돌아오게 됐습니다. 2006년 3월 위원회 구성 석 달여 만에 이룬 쾌거지요.” ―조선왕실의궤 반환 운동도 하셨더군요. “오대산 사고에는 조선왕실의궤도 있었는데, 일제가 1922년 반출해 갔습니다. 의궤가 일본 왕실 도서관에 있다는 것을 알고, 실록을 돌려받은 뒤 바로 다시 2006년 의궤 환수위원회를 발족해 반환 운동을 펼쳤지요. 그리고 2011년 82책을 돌려받았습니다.” ―그런데 왜 둘 다 바로 월정사로 오지 못한 겁니까. “불교계와 민간단체들은 환지본처를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오대산에 보존·관리할 시설이 없다는 것과 연구 등을 이유로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키로 했지요. 그래서 월정사에서 2019년 지상 2층 규모의 국립 조선왕조실록·의궤 박물관을 지었습니다. 그런데도 환지본처는 지지부진했는데, 지역사회가 나서고 국회에서도 촉구 결의안을 내는 등의 노력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된 겁니다. 서울대에 있던 27책, 우리가 돌려받은 47책, 이후 문화재청이 매입한 1책 등 실록 75책과 의궤 82책입니다.” ―왜 그렇게 반환 운동에 적극적이셨던 겁니까. “‘영토를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 있지만, 역사를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는 말이 있지요. 인연이 없는 사람도 나설 일인데 월정사는 오대산 사고본이 있던 곳이고, 역대 월정사 주지에게는 실록을 지키는 ‘실록수호총섭(實錄守護摠攝)’이라는 벼슬까지 내려졌습니다. 제가 안 나서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지요. 11월 9일 개관식을 열 예정이어서 박물관 리모델링 막바지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꼭 오셔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평창=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3-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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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법이 닿지 않는 곳… 수평선 너머의 불편한 진실

    “그 저인망 어선 앞쪽에 웃옷을 입지 않은 수척한 남자가 목에 녹슨 쇠고랑을 찬 채 웅크리고 있었다. 남자의 멍든 목을 옭아맨 1미터 길이의 사슬은 갑판 위 말뚝에 고정되어 있었다. … 쇠고랑을 찬 남자의 이름은 랑 롱이었다. 태국 어선단에 있는 성인 남자와 남자아이 수천 명과 마찬가지로 캄보디아 국경을 넘어 태국으로 인신매매된 사람이었다.”(10장 ‘해상 노예’ 중) 20년 가까이 미국 뉴욕타임스(NYT) 탐사보도 기자로 일한 저자가 무법이 횡행한, 그러면서도 슬픈 바다에서 사는 인간의 이야기를 여행기처럼 풀어냈다. 오대양과 부속해 20여 곳을 포함한 1만2000해리의 여정, 전 세계 40개 도시를 누빈 촘촘한 취재가 생생한 현장감은 물론이고 글맛을 더한다. 지구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드넓은 바다에서 벌어지는 무법의 세계를 파헤칠 생각을 한 것이 놀랍다. 아이디어의 참신성은 차치하더라도 ‘죽을 수도 있다’는 결심을 하지 않으면 쓸 수가 없었을 텐데. 저자는 해상에서 벌어지는 인신매매업자와 밀수업자, 화려한 대형 크루즈 선박 뒤에 숨은 갖가지 오염물질의 해양 투기, 해적 등에 의한 해상 위험이 커지면서 이에 비례해 성장하는 해상 민간 보안시장 등 바다에서 벌어지는 온갖 추악한 모습을 고발한다. 그리고 우리가 유조선 사고로 기름을 뒤집어쓴 갈매기 사진에는 그토록 분노하면서 독성이 강한 폐기물을 그대로 바다에 버리는 행위에 대해서는 굉장히 둔감하다고 지적한다. 저자에 따르면 미국, 영국, 소비에트연방 등 10개 이상의 국가들은 쓸모가 없어진 원자로와 핵 슬러지를 방사성 연료가 여전히 들어 있는 채로 북극해와 북대서양, 태평양에 버렸다. 이런 행위는 1993년에야 금지됐지만 그 실효성은 여전히 의문이고, 폐기물 해양 투기를 대행하던 업자들은 이제 지하세계로 숨어 지중해와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연안으로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다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직후 바다에 버린 화학무기들이 약 70년이 지난 2016년 어망에 걸려 어민들이 사고를 당하는 상황이니 핵폐기물이야 말해 무엇할까. 투기하는 물질이 위험하고 처리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업자들이 챙기는 돈이 더 클 것은 불을 보듯 뻔할 것이다. 그렇다고 바다가 검은 거래에 악용되는 악의 장소인 것만은 아니다. 저자는 임신중지가 불법인 나라의 여성들을 자국법이 미치지 못하는 공해상으로 데려가 안전하게 시술해주는 의사 이야기를 통해 사회 정의란 과연 무엇인지 물음을 던진다. 임신중지가 불법인 나라에서 강간, 데이트 폭력 등으로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들에게 해안에서 불과 21km 떨어진 ‘공해’는 그녀들에게는 생존의 공간이기도 하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임신중지가 불법인 탓에 ‘안전하지 않은’ 임신중지 시술로 사망하는 여성들이 해마다 4만7000여 명에 이른다니 그들에게 바다는 죽지 않기 위해 가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책은 읽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다. 인간의 추악한 면을 본 탓도 있지만, 넓게 생각하면 나 자신도 세상을 그렇게 만든 부분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모두가 우리 동네에는 쓰레기 소각장조차 안 된다고 하면, 그 많은 폐기물이 누구의 영역도 아닌 곳(바다)으로 가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면 저자처럼 실상을 제대로 알리는 용감한 사람들이 많아져야 하지만, 해결하는 양보다 알게 되는 사회 문제가 훨씬 많아 점점 더 괴롭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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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형주 “교황님 알현때 갑자기 ‘칸타레’ 요청해 숨이 멎는 줄”

    “특별 알현 때 교황님이 갑자기 ‘칸타레’(노래하다란 뜻의 이탈리아어)라며 노래를 요청하는데, 숨이 멎는 줄 알았어요.” 몽골 울란바토르 스텝 아레나 경기장에서 3일 열린 프란치스코 교황 집전 미사 폐막행사에서 노래를 부른 팝페라 테너 임형주(37)는 6일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임형주는 이 무대에서 ‘아베 마리아’ ‘생명의 양식(Panis Angelicus)’ ‘유 레이즈 미 업(You Raise Me Up)’을 불렀다. 그는 이와 별도로 교황 특별 알현 때 ‘아베 마리아’를 불렀다. ―교황의 몽골 방문에 한국 음악가가 초청됐다니 의외다. “몽골은 천주교 신자가 1400명 정도밖에 안 될 정도로 적어 주한 교황대사가 몽골 교황대사를 겸임하고 있다. 그만큼 한국 천주교와 인연도 깊다. 선교는 물론이고 몽골에 ‘노밍요스 초등학교’ ‘고이혼도 유치원’ 같은 각종 학교를 세우는 등 우리가 많이 돕고 있다. 그중 하나가 살레시오수녀회가 설립한 노밍요스 중등학교다. 내가 천주교 신자이기도 하고, 노밍요스 중등학교 설립에 약간의 도움을 준 인연으로 명예 교장을 맡고 있다. 이런 인연을 안 몽골 천주교 측에서 직접 초청해 무대에 서게 됐다.” ―알현 때 노래하는 건 예정에 없던 것 아닌가. “교황 집전 미사 다음 날(4일) 오전에 울란바토르 몽골주교관 ‘비숍의 집’에서 특별 알현했다. 먼저 내가 이태리어로 ‘뵙게 돼서 무한한 영광입니다’라고 인사를 드리며 내 노래가 담긴 성가 음반 ‘마지막 고해(The Last Confession)’를 전달했더니 내 소개를 들은 교황이 환하게 웃으시며 갑자기 ‘칸타레! 칸타레!’라고 하셨다. 노래를 불러 달라고 하신 거다. 그때가 오전 8시 반이 조금 지난 때였다. 목이 잠긴 상태라 당황스러웠는데, 한편으로 이런 기회가 또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카치니의 ‘아베 마리아’를 무반주로 불렀다.” ―특별 알현은 쉽지 않다고 들었다. “몽골 장관과 각국 대사 등 주요 인사 가운데 가톨릭과 관계된 인물을 선별해 소수를 대상으로 한 것으로 안다. 그중에서도 나는 굉장히 앞쪽 순서였는데, 아마 한국 천주교가 몽골을 위해 노력해온 것을 교황이 잘 알고 있어서 우대해준 게 아닌가 싶다. 20년 넘게 몽골 선교활동을 하다 올해 5월 몽골에서 갑자기 돌아가신 김성현 신부라는 분이 있는데, 교황이 직접 이름을 언급하며 영원한 안식을 빈다고 말씀하실 정도다. 몽골에 대한 그의 사랑은 주님께서 더 잘 아실 거라며…. 그런 덕을 내가 받은 게 아닌가 싶다.” ―몽골에서 관광 홍보대사가 돼 달라고 요청했다고. “하하하, 바트울지 바트에르데네 몽골 환경관광장관과의 식사 자리가 있었는데 관광홍보대사를 맡아 달라고 요청하더라. 한국 천주교와의 인연도 깊고, 처음으로 교황을 뵌 인연도 있어서 수락했다. 교황이 말씀하신 ‘칸타레’는 물론 노래를 부탁한 것이지만 한편으론 앞으로도 계속해서 좋은 노래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삶을 살라는 뜻으로 하신 말이 아닌가도 싶다. 올해가 데뷔 25주년인데 정말 큰 선물을 받은 느낌이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3-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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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갓 쓴 김대건 신부 성상, 바티칸에 설치… 16일 축복식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16일(현지 시간)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한국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1821∼1846) 성상 축복식이 열린다고 6일 밝혔다. 성상 설치는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을 맞아 2021년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으로 있는 유흥식 추기경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성상 봉헌 의사를 밝히면서 결정됐다. 성상은 높이 3.7m, 가로 1.83m 크기의 전신상으로, 갓을 쓰고 도포 등 한복을 입은 김대건 신부가 두 팔을 벌린 모습이다.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 묘지 출구 인근 외부 벽에 설치된다. 동양 성인의 성상이 설치되는 건 성 베드로 대성전 역사상 처음이다. 제작은 이탈리아 카라라 국립미술아카데미 조소과를 졸업한 한진섭 조각가가 맡았다. 축복식은 16일 오후 3시(한국 시간 16일 오후 10시)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성상 설치 기념 미사를 봉헌하는 것을 시작으로 열린다. 이 자리에는 한국천주교주교회 의장 이용훈 주교를 비롯해 염수정 추기경, 유수일 주교, 군종교구장 서상범 주교, 청주교구장 김종강 주교, 부산교구 신호철 주교가 참석한다. 이에 앞서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한 작가가 별도로 제작한 성 김대건 신부 성상 모형 원형을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선물할 예정이다. 김대건 신부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때인 1984년 시성돼 성인품에 올랐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3-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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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른 사람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 줬으면…”

    “배…우마다 개…개성이 있듯, 장…애도 다른 사람이 쉽게 표현할 수 없는 다양성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뇌병변 장애가 있는 길별은(본명 길윤배·54·사진) 한국장애인방송연기자협회 회장은 4일 서울 마포구 협회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는 “배우마다 오랜 세월 살면서 생긴 개성은 남이 따라 할 수 없다. 장애도 마찬가지”라며 “장애인에게 장애는 연기가 아닌 인생 그 자체”라고 강조했다. 해외와 달리 국내에선 여전히 장애인 배역을 비장애인 배우가 연기하는 게 보통이다. 지난해 방송된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발달장애가 있는 배우 정은혜와 청각장애가 있는 배우 이소별이 열연해 주목받았지만 특별한 경우로 꼽힌다. 앞서 길 회장은 2004년 연극 ‘크리스마스 캐럴’로 데뷔해 드라마 ‘갑동이’, 뮤지컬 ‘날개 없는 천사들’, 영화 ‘독 짓는 늙은이’ 등에 출연했다. 2012년 대한민국 장애인문화예술대상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길 회장은 말을 매끄럽게 하진 못한다. 그는 “언어장애가 있어서 대사가 제일 힘들다”며 “발성 연습 등 훈련을 많이 해서 데뷔했을 때보다 크게 나아졌다”고 했다. 2014년 드라마 ‘갑동이’ 출연 때는 그의 연기에 마음이 움직인 제작진이 한 회로 끝날 이름 없는 배역에 ‘하일식’이란 이름을 부여하고 분량도 늘렸다.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 출연한 왜소증을 가진 배우 피터 딘클리지처럼 해외에선 장애 배우가 희화화되지 않는 역을 맡아 인기를 모으는 경우가 적지 않다. 길 회장은 “국내에선 아직은 장애가 있는 배우가 배역을 따는 게 쉽지 않고, 연기를 하는 사람도 적다. 나 같은 사람이 많아지면 나아지지 않을까 한다”며 웃었다. 그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는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자주 보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작품을 통하면 더 많은 사람이 장애인을 볼 수 있어요. 저를 보며 다른 분들이 ‘나도 할 수 있어’라는 희망을 품었으면 좋겠어요. 실제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던 분이 제 연기를 보고 마음을 돌렸다고 전해 듣기도 했고요. ‘저런 사람도 열심히 사는데 나도 할 수 있어’ 그런 생각을 했대요. 하하하.”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3-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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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대건 신부가 사목했던 ‘한국의 산티아고길’ 걸어볼까

    좁은 계곡 옆에 점점이 자리한 집들은 안개 탓에 잘 보이지 않았다. 세차게 내리는 비와 불어 넘친 계곡 물 소리는 사람이 내는 다른 모든 소리를 잠재웠다. 박해를 피해 숨어 살기에는 ‘딱’인 장소라는 느낌이다. 9월은 가톨릭의 순교자 성월(聖月·하느님이나 성인을 특별히 공경하는 달). 이를 맞아 서울, 원주 등 각 교구에서는 교구 내 순례길 걷기 대회가 열린다. ‘한국의 산티아고길’이라 불리는 ‘청년 김대건길’(경기 용인 은이성지∼안성 미리내성지·10.3km)은 최근 산림청이 발표한 걷기 좋은 명품 숲길에 선정됐다. 이 길을 지난달 30일 걸었다. 바티칸에서는 16일(현지 시간) 김대건 신부 성상 축성식이 열릴 예정이다. ‘청년 김대건길’은 우리나라 첫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사목 활동을 했던 활동로이자, 순교한 김대건 신부 시신을 미리내에 안장하기 위해 옮겼던 이장 경로다. 신덕∼망덕∼애덕 등 고개 3곳을 넘는 험한 산길이지만, 2021년 김 신부 탄생 200주년을 맞아 천주교 수원교구와 용인시가 정비사업을 펼쳐 걷기 좋은 순례길로 탄생했다. 출발지인 은이성지는 1821년 충남 당진에서 출생한 김 신부와 그 가족들이 천주교 박해를 피해 이주해온 곳이다. 은이(隱里·숨겨진 마을)라는 이름도 박해를 피해 들어온 많은 교인이 숨어서 신앙생활을 한 데서 유래했다. 중국에서 사제품을 받고 돌아온 김 신부가 처음으로 미사를 드린 곳이기도 하다. 은이성지에는 김 신부의 삶을 볼 수 있는 기념관과 1845년 김 신부가 사제품을 받은 중국 상하이의 성당(김가항성당)을 복원한 건축물이 푸른 잔디 위에 고즈넉하게 앉아 있다. 기자가 걸은 날은 비 때문에 힘들었지만, 맑은 날이라면 시원한 계곡을 따라 산책할 수 있는 아름다운 길이라고 한다.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4∼5시간 정도면 충분히 걸을 수 있다. 종착지인 미리내성지에는 김 신부와 그의 어머니, 김 신부의 시신을 이곳에 안장한 이민식 빈첸시오의 묘가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청년 김대건길’ 주변에는 골배마실길(은이성지∼골배마실 성지·4.4km), 한덕길(은이성지∼한덕골 성지·19.2km), 고초골 공소길(고초골 공소∼애덕고개·4.1km) 등 다른 순례길도 있다. 용인=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3-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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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 때도 자원봉사 줄 잇는 한국은 참 아름다운 나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때도 자원봉사를 하겠다는 분들이 줄을 이었어요. 한국은 참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고국 이탈리아에서 최근 자전 에세이 ‘사랑의 요리사(CHEF PER AMORE)’를 출간한 김하종 신부(66·이탈리아 이름 빈첸조 보르도)가 “이탈리아에 한국과 한국인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싶어 책을 냈다”며 이렇게 말했다. 경기 성남시 ‘안나의 집’에서 22일 김 신부를 만났다. 1987년 사제 서품을 받은 김 신부는 1990년 한국에 왔다. 1998년 노숙인과 어려운 청소년들을 돕는 ‘안나의 집’을 열고 지금까지 빈민 사목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인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싶어 고국에서 책을 내셨다고요. “2021년 한국에서 ‘사랑이 밥 먹여준다’라는 책을 냈어요. 그때 코로나19 때문에 후원이 많이 줄었거든요. 그 책을 이탈리아어로 번역해 이번에 낸 거죠. 한국에 30년 넘게 살면서 한국인들의 참 아름다운 모습을 많이 봤어요. 이를 알리고 싶었죠.” ―한국인의 어떤 모습이 그렇습니까. “한둘이 아니지만…. 안나의 집에서 노숙인들을 위해 무료 배식을 하고 있어요. 하루에 700명 넘게 오기 때문에 자원봉사자가 없으면 배식이 불가능하죠.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감염 우려가 컸잖아요. 자원봉사자들이 안 오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제 걱정이 기우였더라고요. 얼마나 많은 분이 도와주러 오셨는지….” ―코로나19 감염 우려 때문에 지방자치단체에서 배식 중단을 요구했다고요. “그랬죠. 그런데 여기 오는 분들은 거의 대부분 하루 한 끼밖에 못 먹는 분들이에요. 이것마저 못 먹게 되면 병에 걸려도 나을 수가 없잖아요. 오히려 그럴 때일수록 잘 먹어서 힘과 면역력을 길러야죠. 여기마저 문을 닫으면 그분들은 어떻게 하나요. 도시락 한 개가 그분들에게는 하루 목숨인데…. 대신 배식을 도시락으로 바꾸고 방역도 철저하게 했어요. 그 덕분인지 다행히 확진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어요. 지금도 모두 마스크를 쓰고 일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고국에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은 안 하십니까. “제 이름 ‘하종’은 ‘하느님의 종’이란 뜻이에요. 한국에 봉사하러 왔고, 봉사자로서 끝까지 살고 싶어서 그렇게 지었죠. 한국인으로 귀화도 했고, 장기와 시신 기증 서약까지 했으니까요. 제가 여기서 할 일이 없고, 또 봉사할 수 없는 상태라면 돌아가겠죠. 하지만 할 일이 남아 있고, 또 할 수 있다면 갈 생각은 없어요.” ―왜 한국을 선택하신 겁니까. “제가 이탈리아에 있을 때 대학원에서 동양철학을 공부했어요. 아시아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그러면서 한국을 알게 됐고 좋아하게 됐죠. 또 공부하면서 김대건 신부님에 대해 알게 됐는데 정말 매력적인 분이셨어요. 제 성도 김대건 신부님에서 따온 거예요. 중국은 종교 활동을 하기가 어렵고, 일본은 아예 관심도 없었거든요. 그래서 사제 서품을 받고 1년 정도 세네갈에서 봉사한 뒤 바로 한국으로 왔죠.” ―하루 700명이 넘는 노숙인들에게 무료 배식을 하는데 힘들지 않으십니까. “노숙인, 독거노인, 어려운 청소년들은 불쌍한 사람들이 아니라 부활한 예수님의 아픈 상처라고 생각해요. 부활한 예수님의 아픈 상처를 모시는 것은 제게는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여담입니다만,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이탈리아 대표팀을 위한 미사를 집전하셨더군요. 16강에서 한국이 이겼는데 혹시 어느 팀을 응원하셨습니까? “제가 미사는 했지만…. 하하하. 한국을 응원했어요.”성남=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3-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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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스마트폰 다음의 혁신? 보이는 세상이 달라진다

    대학 졸업반이던 1990년대 중반, 교내에서 한 PC통신 업체가 대대적인 홍보를 하고 있었다. 막 출범한 그 회사는 주 고객인 대학생을 대상으로 판촉 행사를 벌였고, TV 광고도 매우 야심차게 했는데 얼마 안 가 거의 볼 수가 없었다. 그즈음부터 인터넷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구나 아는 것처럼 이제는 인터넷이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이런 ‘세상을 바꾼 혁명’은 2000년대에는 스마트폰으로 이어졌다. 그 다음은 뭐가 올까? 음성 인식·로봇 공학 엔지니어 출신으로, 공간 컴퓨팅 분야의 선구자로 불리는 저자는 인공지능(AI), 공간 컴퓨팅, 컴퓨터 비전이 결합해 탄생한 스마트 안경이 그 뒤를 이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간단히 말해 신문을 보고, e메일과 날씨를 확인하고, 쇼핑에 회의와 영화 감상까지 지금 우리가 눈을 뜨자마자 하는 모든 것이 앞으로는 스마트 안경을 통해 이뤄지리라는 것이다. “‘…데이비드, 소방대원들에게 진정한 게임체인저가 뭔지 알아? 연기 속을 뚫고 앞을 내다보는 기술이야. 그래야 구조할 사람들이나 발화 지점을 빨리 찾아낼 수 있거든.’ (소방대원인) 에드의 소망은 이미 실현됐다.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소방장비 제조업체 퀘이크는 소방대원들이 어둠과 연기를 뚫고 앞을 내다볼 수 있도록 ‘생체공학적’ 눈을 개발했다. 이 회사가 공급하는 스모크 다이빙 헬멧은 벽이나 사람의 윤곽을 강조해서 비추고, 온도가 매우 높은 ‘핫 스폿’이나 불길이 소용돌이치는 곳을 색깔로 표시해준다.”(8장 ‘예측하다’ 중) 이런 혁신은 사람이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분야에서 벌어지고 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꿀 기술”이라고 극찬했고, 삼성 애플 구글 등 정보기술(IT) 기업들은 이미 사활을 걸고 기술 개발에 나섰다. 영화 ‘킹스맨’에 나오듯, 안경만 쓰면 다른 곳에 있는 요원들이 모두 함께 테이블에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대면 회의는 필요없을 것이다. 다른 곳에 있어도 안경만 쓰면 앞자리에 과장, 부장이 실제와 똑같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사무실이 왜 필요할까. 영화 ‘아이언맨’에 나오는 슈트처럼 챗GPT가 결합된 스마트 안경은 ‘보이는 것’을 넘어 궁금하고 모르는 것에 대한 답까지 줄지 모른다. 세계적인 기업과 과학자들이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으니 언젠가 그런 세상이 올 가능성은 커 보인다. 그리고 기술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폭이 넓어지면서 점점 더 인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될 공산이 크다. 한편으로 우리가 기술의 발전과 그에 관한 책을 읽을 때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할 것은, 그것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 얼마나 배려할 수 있느냐 여부다. 햄버거집 키오스크가 어려워서 이용을 못 하는 사람들은 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기술이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그 부작용을 언급하는 일은 드물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3-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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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사회 ‘화’ 가득… 사람들이 명상에 빠지는 이유죠”

    왜들 이렇게 가슴속에 ‘화’가 가득 찬 것일까. 흉기를 들고 거리를 배회하던 사람이 잡혔다는 뉴스가 매일같이 나온다. 취업난에, 생활고에 안 그래도 마음이 무거운 시대에 범죄까지…. 그래서일까. 마음의 안식을 찾기 위해 명상 센터를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경북 문경세계명상마을(대한불교조계종)에서 20일 만난 선원장 각산 스님은 “지난해 4월 개원 후 3만여 명이 다녀갔다”며 “25일 열리는 제2회 청년명상힐링캠프는 공지하자마자 신청자가 몰려 조기 마감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명상에 그렇게 관심이 많은지 미처 몰랐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 ‘화’가 가득 차 있지 않습니까? 지치고 힘들고…. 마음이 무거운 것이지요. 당일 체험부터 3박 4일, 7박 8일 등 여러 과정을 운영하고 있는데, 일부 프로그램은 이미 마감될 정도로 많이들 찾고 있습니다. 그래서 청년명상힐링캠프도 지난해 100명, 올해 150명인데 내년에는 1000명으로 늘리려고 합니다.” ―제대로 된 명상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요. 일종의 ‘멍 때리기’ 입니까. “하하하, 그것도 명상의 한 종류이기는 하지요. ‘멍 때리기’도 끊이지 않는 잡념, 생각을 잠시 멈추게 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심박수도 내려가고요. 이곳에서는 7일 코스를 예로 들면 저는 본격적인 수행에 들어가기 전에 하루 이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일단 쉬라고 합니다. 산책하든, 책을 보든, 잠을 자든 뭐든지요.”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만…. “물결이 세차게 치면 그 안에 황금 잉어가 있어도 보일 리가 있겠습니까? 먼저 내 마음에 이는 물결부터 가라앉혀야죠. 지금까지 막 뛰면서 숨 가쁘게 살아왔잖아요. 숨이 차는데 오자마자 앉아서 눈을 감는다고 명상이 될 리가 없지요. 그래서 먼저 쉬라고 합니다. 쉬기만 해도 많이들 나아져요. 긴장이 풀리니까요. 중요한 건 ‘하는 명상’이 아니라 ‘되는 명상’이거든요.” ―‘되는 명상’이 무슨 의미인지요. “삼매경(三昧境)이라고 들어봤지요? 잡념을 벗어나 오직 하나의 대상에만 정신을 집중하는 무아지경의 상태를 말하지요. 삼매경에 빠지면 1, 2분 정도 지난 것 같은데 실제로는 한두 시간이 훌쩍 넘어버리기 일쑤입니다. 그걸 느끼는 게 진짜 명상이지요.”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하하하, 안 되면 그렇게 많이 올 리가 있겠습니까. 물론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지요. 7일 체험 정도를 하면 참가자의 절반 정도가 느끼고 갑니다.” ―문경에 명상마을이 자리 잡은 이유가 있습니까. “바로 옆에 희양산 봉암사가 있습니다. 봉암사는 신라 헌강왕 때(879년) 지증대사 도헌 스님이 창건한 유서 깊은 절이지요. 광복 직후 극심한 사회 혼란 속에서 성철 청담 자운 우봉 스님 등이 ‘부처님 법대로만 살아보자’라며 수행 정진을 한 곳이고요. 이때 세운 추상같은 법도가 오늘날 수행의 근간이 됐습니다. 희양산 봉암사 지역은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오직 수행만을 위한 곳입니다. 그런 정신을 상징하고 있지요.” ―명상은 혼자서도 할 수 있지 않습니까. “하하하, 제대로 배운 뒤라면 괜찮지요. 처음에 명상마을에 들어오면 휴대전화를 모두 사무국에 맡기게 합니다. 개인이 소지하게 하면 무의식적으로 계속 들여다보게 되거든요. 그러면 명상이 안 되지요. 그래서 도반(道伴·함께 불도를 수행하는 벗)이 필요합니다. 서로가 함께 욕망과 습관을 제어하는 것이죠. 집에서 서랍 속에 휴대전화를 넣어놓은들 혼자서 참아지겠습니까. 삼매경은 참선과 이어지고, 삼매경에 빠지면 바른 지혜를 얻고 대상을 올바르게 파악하게 됩니다. 문제가 생겨도 문제로만 볼 뿐, 내 것으로 가져오지 않으니 마음 고통이 오래가지 않지요. 마음에 면역력이 생기는 것이고요. 이것이 우리가 명상을 하는 궁극적인 이유입니다.”문경=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3-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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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 80만명 이상 참가”

    “세계청년대회는 국가와 인종, 언어, 종교를 넘어 전 세계 젊은이들이 하나 되는 자리입니다. 현재 남북 대치 상황이나 국제 관계 등으로 볼 때 결과를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북한 청년들도 참가할 수 있도록 정부를 비롯해 다방면으로 접촉하겠습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는 2027년 세계청년대회(WYD·World Youth Day) 서울 유치와 관련해 22일 서울 중구 천주교 서울대교구청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 대주교는 “남북이 분단된 한반도에서 열리는 세계청년대회는 세계 젊은이들에게 분열과 갈등 상황을 숙고하고, 화해와 평화를 모색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계청년대회는 1984년 당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창설한 행사로 2∼4년 간격으로 대륙을 순회하며 열린다. 교황은 대회에 직접 참석해 개막미사와 파견미사를 집전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한국을 찾은 바 있다. 정 대주교는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청년대회를 계기로 교황의 방북에도 큰 기대감을 표했다. 정 대주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평소에도 남북 분단 상황에 관심이 많고, 북한 방문을 강력하게 희망하고 있다”며 “교황이 (서울 세계청년대회를 계기로) 남북 분단의 지엄한 현실을 뛰어넘을 수 있는 평화와 화해의 큰 발걸음을 놓아주실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고 밝혔다. 2027년 행사에는 국내외에서 최대 80만 명 이상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달 1∼6일(현지 시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올해 대회에는 약 150만 명이 참가했다. 정 대주교는 대회 준비와 관련해 “최근 열린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를 반면교사로 삼겠다”며 “수십만 명에 달하는 국내외 참가자들의 숙박은 홈스테이를 기반으로 성당, 학교 및 교육 시설 등을 최대한 확보해 해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과거에 큰 대회(2014년 아시아청년대회 등)를 치러본 경험이 있는 만큼 세계청년대회도 차질 없이 준비하겠다”며 “조직위원장은 교회 내 주교 중에서 맡을 것”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인 대회 기간은 추후 바티칸과의 협의를 거쳐 결정된다. 세계청년대회는 1987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회 이후 올해 리스본 대회까지 15번 개최됐다. 아시아에서 열리는 건 필리핀 마닐라(1995년) 대회 이후 서울이 두 번째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3-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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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짜 영재 부모들, 학교 찾아오지도 않고 전화도 안 해”[파워인터뷰]

    《지난해 8월 국내에서 ‘K클래식 제너레이션’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됐다. 영화는 “국제 주요 음악 경연에서 한국인의 우승은 최근에 거의 당연해졌다. 지난 20년간 700명이 결선에 올랐고, 그중 110명이 우승을 차지했다. 이렇게 빨리 정상급에 오른 비결과 그 간절한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영화감독은 20년이 넘게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를 현장 중계해온 벨기에 공영방송(RTBF) 음악감독인 티에리 로로.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61)은 서울 성북구 한예종에서 1일 가진 인터뷰에서 “궁금한 게 당연한데 사실 딱 이것 때문이라고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다.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한예종은 임윤찬(2022년 밴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최연소 우승), 문지영(2015년 부소니 국제 피아노 콩쿠르 1위), 임지영(2015년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 1위·바이올린) 등을 배출한 명실상부한 K클래식의 산실이다.》―요즘 학부모의 과도한 교권 침해가 사회문제다. 2021년 총장 취임 일성이 ‘치맛바람 사절’이었다. “1994년 (교수) 부임했을 때는 그런 게 많았다. 그래서 학부모들과 엄청나게 싸우기도 했다. 그렇게 일정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아예 ‘내가 연락하기 전에는 (학부모를) 만나지 않겠다’고 했다. 이게 참 그런데…. 학생에게 문제가 발견돼 부모를 만나 보면 왜 그런 문제가 생겼는지 알겠더라. 학생이 가진 문제를 그 부모가 가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부모가 더한 경우도 있고.” ―학생이 가진 문제를 부모가 갖고 있는 경우는 어떤 사례가 있나. “예를 들어 욕망이나 욕심이 굉장히 지나친 아이들이 있다. 그런 경우에는 집에서 부모님들이 콩쿠르에서 떨어져도 좀 다독이고 안심시켜 줘야 하는데 만나 보면 부모님이 더 하더라. (손)열음이 어머니가 그런 말을 했다. ‘엄마가 너무 앞서 나가면 자식이 엄마처럼 된다’고. 나는 그 말이 참 명언이라고 생각한다. 진짜 영재들 부모는 학교 찾아와서 이러쿵저러쿵 안 한다. 일절 연락하지 않는다.” ―예체능계는 다른 분야보다 부모가 신경을 훨씬 더 많이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선욱이 영국 유학 간 뒤였는데, 선욱이 어머니에게 전화가 온 적이 있다. 혹시 아들 영국 휴대전화 번호 아시냐고…. 정말 크게 성장한 아이들을 보면 부모가 앞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바라보거나 아예 무관심하다. 요즘 학교교육 문제가 심각한데, 나는 핵심은 가정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교육학자가 한 말인데, 학교에서 교사를 때리는 학생은 집에서 부모도 때릴 거라는 거다. 그럴 확률이 높다고. (아이도) 부모가 하는 걸 보고 자랐을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싶다.” ―영재 교육에 관심이 많은데 영재가 뭔가. 어릴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는 걸 말하나. “그런 아이들도 있는데, 임윤찬 같은 경우는 어렸을 때부터 두각을 나타낸 경우는 아니었다. 평범했다. 국내 삼익·자일러 콩쿠르에서 떨어진 적도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후에 스승인 손민수 교수(한예종)를 만나면서 안에 숨어 있던 뭔가가 ‘빵’ 터지면서 발현된 거다. 윤찬이의 어린 시절을 아는 사람들은 ‘아 저런 게 있던 아이였구나. 재능이란 게 늦게 발현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우리나라 음악가가 K클래식이라고 불릴 정도로 콩쿠르에 강한 이유가 뭔가. “하하하. 앞서 말한 대로 여러 가지가 작용한 결과겠지만…. 우리 학교의 경우 ‘위클리(weekly)’라는 실습 수업 시간이 있다. 학생 중 한 명이 연주하면 다른 학생들이 그 자리에서 바로 평가하고 지적하는데, 이게 평상시에도 무대 연습을 엄청나게 하게 되는 효과가 있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공연예술은 정해진 시간에 단 한 번으로 모든 것을 보여줘야 한다. 그런 면에서 얼마나 많은 무대 경험을 갖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 국제 콩쿠르 심사위원을 해보면 당일 연주보다 훨씬 더 많은 잠재력을 가진 참가자를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점수는 잠재력보다 현장에서 더 잘한 사람에게 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외국 기자들에게는 차마 말을 못 했는데…. 선생님의 헌신이 필요하다.” ―교수의 헌신이라는 게 무슨 의미인가.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려면 일주일에 한 번 정해진 레슨으로는 턱도 없다. 치는 곡만 10여 곡인데…. 매일 또는 이틀에 한 번씩 추가로 레슨을 하는데, 한 번 하면 3∼4시간 이상 걸리기 일쑤다.” ―외국 교수들은 그렇게 안 해주나. “그게 우리와의 차이다. 외국에서는 기본적으로 출전하는 학생이 알아서 해야 한다는 문화여서 정해진 수업 시간 안에서만 도와준다.” ―외국 기자들에게는 왜 이 말을 못 한 건가. “왠지 외국 선생님들을 안 좋게 말하는 것 같아서….” ―‘K클래식 제너레이션’을 만든 로로 감독은 ‘자유’를 그 이유 중 하나로 꼽았다. 연주에서 ‘자유’가 뭔가. “10여 년 전만 해도 정형화된 연주를 좋은 것으로 여겼다. 그런 연주가 좋은 결과를 얻기도 했고. 그런데 요즘은 다음 부분에서 어떻게 칠지 예측이 되고, 또 그대로 되면 재미없는 연주로 친다. 세계적인 추세가 ‘자, 뻔하게 연주하지 말고 나를 좀 놀라게 해봐’ 이런 식으로 변하고 있다. 그걸 개성이라고 해도 좋고, 창의성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그래서 나도 한동안은 ‘지금까지 몇십 년 동안 가르친 게 그럼 다 잘못 교육한 건가?’ 하는 회의에도 빠졌다.” ―자유나 개성, 창의성을 어떻게 가르치나. “그건 스스로 키우는 것이지 누가 가르칠 수 있는 영역은 아닌 것 같다. 단, 학생이 그런 능력을 기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한다. 책을 많이 읽으라는 것도 그런 이유 중 하나다. 개성은 악기 연습으로 길러지는 게 아니니까.” ―임윤찬이 리스트의 피아노 연작 ‘순례의 해’ 중 ‘단테 소나타’를 좀 더 이해하기 위해 단테의 ‘신곡’을 읽은 것도 그런 차원일까. “신곡은 굉장히 어려운 책이다. 윤찬이가 정말 그 내용을 다 이해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곡을 연주하기 위해 그 정도로 스스로 고민하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누가 시킨 게 아니지 않나. 그 과정에서 분명히 여러 가지 다른 생각과 감정이 떠오르고 자기만의 곡 해석이 생긴다. 악보 외에는 아무것도 모른 채 기계적으로 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연주에 고민을 해야 한다.” ―연주에 고민을 한다는 게 무슨 말인가. “자신이 미치도록 좋은 부분이 있다면 좋다는 걸 느끼는 걸로 끝나서는 안 된다. 이 멜로디가 왜 좋은지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인문학적, 철학적 접근도 필요한 거고. 자기만의 감정과 해석에 따른 연주. 그게 심사위원들을 깜짝 놀라게 한다. 어떻게 연주할지 뻔히 예상되는 연주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나도 미국 줄리아드 음악원 박사 면접에서 곡의 사상적 배경을 묻는데 제대로 대답을 못 해서 떨어졌다.” ―시험 준비를 많이 못 한 건가. “그전에는 실기만 봤는데, 그해(1986년) 새로 부임한 교장이 ‘박사를 실기로만 뽑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처음으로 면접 인터뷰를 추가하고 자신이 직접 질문했다. 요즘 뭘 치고 있냐고 묻기에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5번 황제라고 했더니 ‘마침 잘됐다’면서 곡에 깔린 시대적 사상을 30분 동안 얘기해 보라고 하더라. 30분은 고사하고 아는 게 없어서 3분도 채 못 했다. 그래서 그 다음 해에 들어갔다.”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직접 도전해봤을 텐데…. “차이콥스키 콩쿠르는 떨어졌고…, 리즈(국제 피아노 콩쿠르)도 1차에서 떨어졌고….” ―줄리아드 음악원 출신인데…. “임윤찬, 조성진은 피아노가 아예 자기 몸의 일부다. 피아노를 갖고 자유자재로 논다고 할까.” ―콩쿠르 출전자들은 대개 그렇지 않나. “말로 설명하긴 참 어려운데…. 다들 실수도 하나 없고 어려운 부분도 잘하긴 한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뭔가 연주자와 피아노가 한 몸으로 느껴지는 아이들이 있다. 내게는 그 정도의 재능은 없었다.” ―우리가 콩쿠르 강국은 맞는데, 클래식 강국은 아니라고 한다. “국제 콩쿠르에 심사위원으로 가 보면 한국은 좀 왕따 취급을 받는다. 와서 상만 타가고 아무것도 기여하지 않는다고.” ―기여한다는 게 무슨 말인가.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에서 우리 출전자가 우승하면 대서특필되고 연주가 줄을 잇는다. 그런데 외국 참가자가 우승하면 우리는 관심 밖이다. 국내 초청 연주도 거의 없다. 일본은 자기네 본선 진출자가 없는 콩쿠르라도 자국 심사위원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주재국 대사관에서 심사위원 전원 초청 만찬을 열어준다. 콩쿠르 후원도 하고. 우리는 그런 게 없다. 그러니 그쪽에서 보기에 한국은 잘하기는 하는데 상만 타갈 뿐 아무것도 교류하지 않는 나라라는 인식이 있다. 국제 콩쿠르를 통해 훌륭한 연주자들을 많이 배출한 만큼 우리도 세계 음악계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1962년생△미국 줄리아드 음악원 졸업, 동 대학원 박사△피아니스트 겸 지휘자△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 클리블랜드 국제 콩쿠르 등 심사위원△한예종 한국예술영재교육원장, 한예종 음악원장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3-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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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게 불교 영화냐 할 만큼 재밌습니다”

    제3회 ‘세계일화 국제불교영화제(OIBFF)’가 17∼20일 서울 중구 대한극장과 동국대에서 열린다. ‘Re:Sonance―불교의 울림으로 세상과 공명하다’를 슬로건으로 한 올해 영화제에선 28개국 60여 편의 작품을 선보인다. 상영작 발굴·선정 작업을 주관한 김세환 동국대 영상대학원 영화영상제작학과 교수(사진)를 15일 서울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국제불교영화제에 대해 김 교수는 “불교의 저변을 확대하고, 젊은층에게 다가가자는 취지로 2021년부터 시작됐다”고 말했다. 그는 “의외로 미국과 유럽에 8∼10개 정도 작은 규모의 불교 관련 영화제가 있을 뿐, 제대로 된 불교 영화제가 없다”며 “그런 면에서 우리 영화제가 불교 영화제로는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세계일화(世界一花)’는 ‘온 세상이 한 송이의 꽃’이라는 뜻으로 영화제가 지향하는 정신을 의미한다. 개막작인 ‘다크 레드 포레스트’는 중국 진화칭 감독의 작품으로, 티베트에서 2만여 명의 비구니들이 자신들만의 생활을 지키며 고난의 수행을 거듭하는 내용이다. 김 교수는 “영화를 보는 내내 무엇을 찾기 위해, 무슨 답을 얻기 위해 저렇게까지 힘들게 수도할까라는 생각이 들 것”이라고 했다. 이 영화는 지난해 시애틀 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경쟁 부문 수상작이다. 그는 “올해 영화제는 대중성을 더 많이 가미해 ‘불교 영화 맞아?’라고 느낄 작품도 꽤 있을 것”이라며 “불교 영화제지만 재미있을 것이라 확신한다”고 덧붙였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3-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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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엄사의 ‘비건 햄버거’ 한번 드셔보겠습니까”

    “하하하, 화엄사 비건 햄버거 한번 드셔보겠습니까.” 조선 숙종이 ‘선교양종(禪敎兩宗)의 대가람(大伽藍·큰절)’이라 한 천년고찰 전남 구례 화엄사의 주지 덕문 스님이 말했다. 숙종이 ‘절 중의 절’이라고 한 이 근엄하고 조용한 절이 몇 년 전부터 시끌벅적해졌다. 경내에서 모기장영화음악제, 홍매화·들매화 사진 찍기 대회, 화엄문화제와 요가 대회 개최, 굿즈 제작에 이어 이달부터는 야간 개방까지, 보통 절에서는 보기 힘든 변신이 쉴 새 없이 일어나고 있는 것. 덕문 스님은 화엄사에서 10일 가진 인터뷰에서 “절은 모든 사람을 위한 곳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이런저런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절에서는 잘 보기 어려운 행사들이 많습니다. “저도 아이디어를 내지만 절 차원에서 홍보위원회를 만들었어요. 제가 귀가 아주 얇아요.(웃음) 그래서 위원회에서 이런 거 저런 거 해보자고 하면 대부분 하지요. 실패할 수도 있지만 뭐 어떻습니까. 많은 분이 즐거워한다면 해보는 거죠. 모기장영화음악제도, 우리 어릴 때 마당 평상에서 수박 먹으며 TV 보던 추억을 떠올리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지친 사람들에게 힐링 시간을 만들어주고 싶어서 시작했지요. 처음에는 돗자리를 깔려고 했는데, 여름에 모기가 많아서 2, 3인용 모기장 안에 들어가서 보는 걸로 바꿨습니다. 근데 그게 더 운치 있다고 좋아합디다.” ―자체 굿즈도 만들었더군요.“버려지는 커피 원두 마대를 활용해 가방과 컵 홀더, 차받침 등을 만들었어요. 친환경적이고 홍보 효과도 있지만 지역 경제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이것저것 해보고 있습니다. 홍매화를 새겨 넣었는데, 꽤 예뻐요. ‘화엄사 비건 햄버거’도 개발 중인데, 곧 출시할 예정이에요. 요즘 사찰음식이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으니까 접목을 한 거죠. 절에서만 파는 게 아니라 백화점이나 마트에도 납품하려고 해요.” ―홍매화 사진 찍기 대회 때는 차가 하루에 1만 대씩 들어왔다고요. “구례 지역이 먹고살 거리가 부족해요. 절도 지역사회 안에 있는데, 스님들만 잘 먹고 잘살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지역이 발전하는 게 절에도 좋은 거지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면 아무래도 이런저런 효과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제가 주지로 취임해서 첫 번째로 했던 일이 절에 가로등을 설치하는 거였어요. 밤이면 어두컴컴해서 사람들이 다 내려갔으니까요. 보통 절들이 문화재 관리 때문에 야간 개방을 잘 안 하는데, 문화재청과 지방자치단체를 설득해서 8월부터 밤 12시까지 개방한 것도 같은 이유지요. 조명도 전문가들 도움을 받아 설치해서 걸어다니기에 굉장히 좋습니다.” ―각종 행사로 지난해 지역사회에 46억 원의 경제 유발 효과가 생겼다더군요. “행사가 있는 날은 절 아래는 물론이고 구례 읍내 음식점들까지 식재료가 오후면 다 떨어졌다고 해요. 전에는 안 그랬거든요. 하루 50잔도 안 팔린 커피가 200∼300잔이 팔린다고 하니 마음이 좋지요.” ―그래도 요가 대회는 너무 파격적이지 않습니까. “하하하, 젊은 여성들이 달라붙는 옷을 입고 절 안을 돌아다니는 걸 안 좋게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참가했어요. 저는 절이 스님들만의 공간이 아닌 모든 국민을 위한 곳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오래되고 국보·보물로 절을 채운들 사람들이 오지 않으면 그게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화엄사와 구례를 찾아오는 분들께 특별한 선물도 해주고 싶고…. 우리가 베풀 수 있는 것은 다 베푸는 게 부처님 뜻이 아닐까요. 화엄사 홍매화, 들매화가 얼마나 좋습니까. 섬진강을 낀 경치는 또 어떻고요. 그 좋은 걸 중들만 즐기면 너무 아깝지요.”구례=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3-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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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최후의 승자는 적응하는 종… 우리는 끝까지 살아남을까

    미국의 전설적인 무용가 이사도라 덩컨(1877∼1927)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버나드 쇼(1856∼1950)에게 말했다. “선생님의 머리와 제 외모를 닮은 아이가 태어나면 얼마나 근사할까요?” 이에 쇼가 말했다. “내 얼굴과 당신 머리를 닮는다면?” 웃고 넘어가면 그만인 에피소드다. 하지만 뭔가 생각하게 하는 지점이 있다. 우리 대부분도 덩컨처럼 ‘남보다 더 뛰어난 아이’를 낳기 위해 배우자를 고르는 데 열성이기 때문이다. 거기서 더 나아가 그 아이가 남과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게 길러진 아이들이 아닌 아이들에 비해 훨씬 더 사회에 잘 적응하고 살아남을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당뇨병을 연구하던 의사가 인류의 미래에 대해 물음을 던진 책이다. ‘우리는 어떻게 변해왔고, 또 어떻게 변할까’라는…. 저자는 당뇨병의 빠른 증가가 (코로나바이러스처럼) 당뇨병 자체가 달라져서가 아니라, 인간의 몸이 과잉 섭취 등 주어진 환경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유전자는 우리를 빚어내지만, 불변의 청사진이 아니라 환경에 따라 성장하는 프로그램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착안해 자연선택에서 벗어난 인류가 환경에 따라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우리는 세포가 만들어 낸 산물이지만 세포 또한 우리가 만들어 낸 산물이다. 생명은 하나의 세포에서 출발하며 그 세포가 200여 가지 전문화된 변이형으로 분화한다. 이 딸세포들은 환경의 단서에 반응하고, 우리와 마찬가지로 자라고 죽는다.”(15장 ‘죽어가는 짐승에 옭매여’ 중) 우리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이후 현재까지 환경에 적응하며 변화해 온 인류의 모습을 알고 있다. 그러면 미래에는? 기후변화, 환경오염 등 자연 생태적 변화에서 인공지능(AI) 등 과학적 변화, 약물 남용과 영양과잉으로 인한 비만 등 각종 질병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유전자가 살아남기 위해 적응해야 할 요인들은 100여 년 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넘쳐나고, 또 빠르게 늘고 있다. 저자는 이런 환경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변화할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살아남는 것은 가장 힘센 종도, 가장 영리한 종도 아닌 변화에 가장 잘 대처하는 종”이라는 찰스 다윈의 말을 인용하며. 저자는 여러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유사 이래 어느 때보다도 신체,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오래 살고 있으며, 이는 인간으로 인해 변화된 세상에 새롭게 적응한 결과라고 말한다. 상당히 낙관적인 결론인데, 지금까지 잘 버텨왔다는 것이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근거가 될 수 있을까? 이를 의식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저자는 자신의 결론에 살짝 여지를 뒀다. ‘어떤 상황이 닥쳐도 잘 적응할 수 있다’가 아니라 적응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3-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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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엄사, 故 차일혁 경무관 다례재 엄수

    6·25전쟁 중 소각 명령을 어기고 화엄사 전각을 지킨 고 차일혁(1920~1958) 경무관의 추모 다례재가 10일 대한불교조계종 지리산 대화엄사(주지 덕문 스님) 각황전에서 엄수됐다.차 경무관은 중일전쟁 직전인 1936년 말 16살의 나이로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펼쳤으며, 6·25전쟁 때는 경찰에 투신해 빨치산 토벌대장으로 지리산, 덕유산 자락을 누볐다. 차 경무관은 작전 중 상부로부터 화엄사를 불태우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절을 태우는 데는 한나절이면 충분하지만, 절을 세우는 데는 천 년 이상의 세월로도 부족하다”며 상부의 명령을 어겨 천년고찰 화엄사를 온전한 모습으로 보전케 했다. 덕문 스님은 “화엄사뿐만 아니라 천은사, 쌍계사, 금산사, 백양사, 선운사 그리고 덕유산 사찰을 비롯한 수많은 천년 고찰들이 고인의 지혜로운 결단으로 온전하게 보존될 수 있었다”며 “차 경무관의 민족문화유산에 대한 소중한 뜻을 대화엄사의 천년역사와 더불어 만대에 걸쳐 선양할 것”이라고 말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3-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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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퇴 앞두니, 네 교회 왜 남 주느냐고 악마가 속삭여…”

    “은퇴를 앞두니 악마가 속삭이더군요. 애써 키운 교회를 왜 남 주느냐고….” 최근 신간 ‘꺾이지 않는 사명’을 출간한 류영모 전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대표회장(한소망교회 담임목사)은 내년 말 은퇴를 앞두고 책을 낸 이유를 묻자 이 말부터 꺼냈다. 류 전 대표회장은 7일 경기 고양시 드림하우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세상이 한국 교회에 바라는 것은 공적인 교회, 공공의 선을 이루는 교회가 돼 달라는 것”이라며 “남에게 요구하기 전에 나부터 실천하는 게 당연하지 않으냐”고 말했다. ―실례지만 목사 사위가 있지 않으십니까. “제가 처음 교회를 개척할 때는 정말 예배드릴 공간 하나 없이 모든 것이 열악했습니다. 지금은 대형 교회(등록 신도 1만4000여 명)로 성장했지요. 그동안 제 피와 뼈를 갈아 넣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저는 평소에 교회 세습을 반대했습니다. 그런데도 은퇴할 때가 되니까 (자기 가슴을 가리키며) 여기서 다른 소리 하나가 들리더군요. ‘네 교회다, 네가 세웠는데 왜 남을 주려고 하느냐….’ 마귀의 소리지요. 그래서 시간 오래 끌지 말고 빨리 후임을 정하기로 결심했어요. 오래 끌면 저도 사람인지라 넘어질지 모르니까요.” ―후임은 어떻게 뽑으셨습니까. “후보가 20여 명 됐는데, 위원회를 꾸려서 몇 차례의 논의와 투표를 거치며 추리고 추려서 한 명을 선정했습니다. 투표는 만장일치로 했지요. 당연히 저와는 아무런 혈연관계도 없고요. 교회 세습이 정말 성경적으로 틀렸느냐는 건 논쟁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교회라면 일반 기업과는 좀 달라야 하지 않느냐는 목소리가 분명히 있습니다. 저는 교회가 설립자나 교회 지도자들의 것은 아니라고 믿지요.” ―교회 안팎에서 많은 유혹이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대형 교회 담임목사를 하면 이런저런 많은 유혹이 들어옵니다. 한교총 대표회장이면 말할 것도 없지요. 자기 진영을 위한 편향된 목소리를 내달라는 정치적 요구도 많고요. 더군다나 제가 한교총 대표회장이던 지난해에는 대선이 있었습니다. 한두 명이 찾아왔겠습니까? 조언을 듣겠다고 찾아와서는 ‘저희가 교회를 위해 뭘 도와드릴까요?’라고도 하고…. 교회도 세상 속에 있다 보니 민원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걸 정권과 소통해 해결하려 하면 안 되지요. (책에서도 언급했지만) 저는 한국 교회가 그동안 정권과 결탁해 왔던 악습의 고리를 끊는 것이 시대적 요청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목소리 내는 건 고사하고 정치인들의 조찬 기도회 요청도 다 거절합니다.” ―세상과 동떨어진 외딴 세상에 사는 교회가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셨더군요. “교회 안에도 진보와 보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보수적인 교단은 교회, 성경, 하나님 중심이라는 가치를 중하게 여기다 보니 사회의 어려움과 문제에는 소홀한 경향이 있지요. 반면 진보적인 쪽은 너무 사회 문제에 집착하다 보니 교회라기보다 시민단체처럼 된 면이 있습니다. 교회는 이념을 떠나 세상의 희망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양쪽의 장단점을 잘 수용해, 세상과 어려움을 함께하면서도 교회라는 본분을 잊지 않는 자세가 필요합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3-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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