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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월째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뒤흔들고 있는 재스민혁명, 미국 재정위기에 따른 국가신용등급 강등, 유럽의 위기…. 올해 들어 지구촌을 뒤흔든 격변의 목록을 보다 문득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중 어느 것 하나도 2011년에 이슈가 될 것이라고 지난해 말에 예측됐던 게 없기 때문이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전 세계 언론과 석학들이 새해 지구촌 이슈 전망을 쏟아놓는데 어떻게 하나도 못 맞힌 걸까. 동일본 대지진 같은 자연재해나 노르웨이 테러 같은 돌발사건은 어쩔 수 없다 해도 중동 변혁, 미국 재정위기 같은 일의 징후를 전문가들이 읽지 못했던 이유는 무얼까. ‘헨리의 이야기’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해리슨 포드가 연기한 헨리는 잘나가는 변호사다. 어느 날 강도에게 총을 맞고 혼수상태를 거쳐 깨어나지만 과거의 기억을 잃게 된다. 새로운 헨리의 눈을 통해 본 ‘사고 전 헨리’의 삶은 온통 비정상투성이였다. 불륜, 협잡, 해체로 치닫는 가족관계…. 사고 전의 헨리는 비정상의 일상 속에 젖어 있다 보니 그것들이 비정상인지조차 모른 채 지냈던 것이다. 석학과 중동 전문가들이 신년 벽두부터 터져 나온 이슬람 민중들의 봉기를 그 직전까지 예측하지 못했던 것도 이슬람권의 독재 현실에 너무 오래 익숙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지역의 특성상 민주혁명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선입견도 눈에 백태처럼 끼었을 것이다. 튀니지를 시작으로 이집트 리비아 시리아 등에서 터져 나온 함성은 자유 인권 생존권이라는 기본권은 인간에게 공기와 물 같은 존재이며, 그것이 박탈된 비정상 상태는 그 어떤 종교, 지역, 체제에서도 더는 용인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런 대세에서 북한도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북한의 3대 세습, 인권 탄압은 그 어떤 논리로도 변명할 수 없는 부조리의 극치다. 하지만 타성에 젖어서든, 아니면 ‘우리에겐 아무런 해결 도구가 없다’는 무기력감의 발로이든, ‘자칫하면 우리도 피해를 본다’는 생각 때문이든, 우리는 그런 비정상을 으레 그런 것이려니 여긴다. 하지만 지구촌의 격변들은 이제 비정상의 성역은 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강등도 비정상이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는 시대가 끝났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미국의 재정적자는 이미 수년째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불어났는데도, 다들 “미국이니까 괜찮을 거야”라며 심각한 비정상으로 여기지 않았다. 유럽이 앓고 있는 복지병도 마찬가지다. ‘복지천국’을 지탱하기 위해 경제의 건전성을 희생시켜온 비정상적 시스템은 더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질 수 없는 시대가 됐다. 외부세계에서는 유럽을 복지천국이라며 부러워하고 꿈꿔왔지만 그 안에서는 비정상이 고름처럼 자라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사회의 무상복지 논란도 헨리의 눈으로 보면 답이 보이지 않을까. 미국의 아시아문제 전문가인 마이클 슈먼은 타임지 기고문에서 한국의 무상급식 주민투표 소식을 전하면서 이렇게 썼다. “아시아인들이 서구의 복지정책을 모방해 미래에 (현재 서구가 앓고 있는 것과) 같은 문제를 물려받을까? 아시아의 정치인들에겐 서구의 경험에서 배울 많은 선례가 있다. 그들이 (서구와) 같은 실수를 답습할지 지켜보자.” 외부인의 눈에는 보이는 걸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보기 힘든가 보다. 헨리처럼 사고를 당하고 나서야 비정상을 분별하는 눈을 갖게 된다면 너무 늦지 않을까.이기홍 국제부장 sechepa@donga.com}

두 자식 중 한 명만 선택해 살릴 수밖에 없는 어머니. 누구든 한 자식의 생명 줄을 놓아야만 할 때 어머니는 자신의 인생도 놓아버리게 된다. 자신의 몸뚱이를 잘라내는 듯한 선택을 해야만 하는 어머니의 심정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이 세상에 없다.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참혹한 선택을 강요당하는 어머니들이 있다.소말리아에서 살던 와르도 모하무드 유수프 씨(29)는 한 살배기 딸을 등에 업고 네 살 난 아들의 손을 잡은 채 케냐를 향해 떠났다. 아프리카 동부를 덮친 60년 만의 가뭄으로 그의 마을엔 자고 나면 사망자가 속출했다. 앉은 채로 죽을 바에는 차라리 유엔이 제공한 캠프가 있다는 케냐로 목숨 걸고 가야겠다고 결심했다.먼지만 날리는 사막을 2주 동안 걸었다. 용케 따라오던 아들이 끝내 타는 듯한 태양 아래 쓰러졌다. 얼마 남지 않은 물을 아들의 얼굴에 뿌려봤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함께 피난 중이던 다른 가족들에게 도움을 구했으나 자신들의 생존이 급한 상황에 아무도 선뜻 나서지 않았다.유수프 씨는 결국 어떤 부모도 감당할 수 없는 결정을 해야 했다.“결국 아들을 신의 뜻에 맡기고 길에 버려두고 올 수밖에 없었어요. 날마다 그 애를 생각하면서 고통 속에 밤을 보내지만 그 아이가 죽었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아요. 아들 또래의 다른 아이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찢어집니다.”유수프 씨는 케냐 다다브 난민촌에서 AP통신 기자에게 이렇게 심정을 토로했다.피난길에서 자식을 두고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참담한 경험은 유수프 씨만 체험한 것이 아니다. 이 난민촌에 머무르고 있는 파두마 사코우 압둘라히 씨(29)도 같은 일을 겪었다.일찍 남편을 잃은 그는 기근을 견디다 못해 다섯 살, 네 살, 세 살, 두 살 된 자식과 갓난아이를 안고 다다브를 향해 떠났다. 그 역시 난민촌에 도착하기 불과 하루 전날 두 아이를 잃었다. 잠이 든 줄 알았던 다섯 살배기 아들과 네 살 난 딸이 아무리 흔들어도 깨어나지 않았던 것. 물이 조금 남아 있었지만 갓난아이를 포함한 다른 3명의 자식을 생각하면 함부로 쓸 수도 없었다. ▼ “죽은 아들 무덤도 못팠다, 남은 자식 위해 힘 아끼려고…” ▼결국 그는 두 자식을 나무 그늘로 옮겨놓고 발걸음을 옮겼다. 자식들이 깨어났을 것 같은 생각에 얼마 못 가 다시 되돌아오기를 여러 차례. 하지만 다른 세 아이라도 살리기 위해선 피눈물을 머금고 그 자리를 떠나야 했다.선택의 순간은 어머니만 강요받은 것은 아니었다. 이 난민촌에 있는 농민 출신 아흐메드 자파 누르 씨(50)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열네 살짜리 아들, 열세 살인 딸과 함께 케냐를 향한 피난길에 오른 누르 씨는 이틀 만에 물이 떨어졌다. 사흘째 되는 날 두 자식은 더는 걸을 수 없었다. 함께 갈 수도, 되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 그렇다고 계속 지체하면 셋 다 목숨을 잃게 된다. 누르 씨는 고향에 남아 있는 5명의 자식과 아내를 생각하며 결정을 내렸다.“그들을 운명에 맡기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내 몸의 일부와도 같은 자식들을 포기하는 것은 정말 심장이 찢어지는 고통이었습니다.”그는 난민촌에 도착해서도 그들의 얼굴이 어른거려 고통 속에 몸부림쳐야 했다. 하지만 누르 씨와 그의 자식들에게 운명은 미소를 던져주었다. 남기고 온 두 아이는 기적적으로 유목민에게 구조돼 소말리아의 엄마 곁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누르 씨도 석 달 만에 그 소식을 전해 들었다. 6명의 자녀를 데리고 난민촌으로 가던 파퀴드 누르 엘미 씨는 세 살배기 아들이 굶주림과 갈증으로 괴로워하다 결국 숨졌을 때 엄마로서 해 줄 수 있었던 유일한 일은 자식의 시신 위에 마른 나뭇가지를 덮어주고 하염없이 우는 것이었다고 회상했다. “남은 다섯 자식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는데 죽은 아들을 위한 무덤을 팔 힘이 어디서 나겠나. 나에게 아들을 내려준 신이 그를 먼저 데리고 간 것뿐”이라고 엘미 씨는 담담하게 말했다.다다브 난민촌에서 활동하는 국제구호위원회 소속의 정신과 의사 존 키벨렝에 씨는 소말리아의 부모들은 극도의 압박감에 노출돼 있다고 말했다. “가만히 앉아서 다같이 죽을 순 없습니다. 그런 비정상적 상황에선 누군가를 선택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한 달쯤 뒤면 부모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게 됩니다. 두고 온 아이들의 환영이 떠올라 밤낮으로 악몽에 시달리죠.”AP통신이 12일 전한 다다브 난민촌의 비극은 지금 제3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애끊는 아픔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극심한 가뭄으로 지금 소말리아를 비롯한 동아프리카 지역에선 1200만 명의 주민이 기근에 시달리고 있다. 기근 피해지역으로 선포돼 당장 급박한 구호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만 280만 명. 이 중 소말리아 주민은 45만 명이다. 미국의 통계에 따르면 최근 석 달 동안 사망한 5세 이하 소말리아 어린이는 최소 2만9000명. 다른 가족을 위한 음식과 물을 아끼기 위해 거리에 버려진, 더는 걸을 수 없는 어린이들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아프리카에서 부모들이 선택을 강요받는 이유는 비단 가뭄 때문만은 아니다. 2009년엔 설사에 걸린 18개월 쌍둥이 아들 중 한 명을 선택해야 했던 한 잠비아 부모의 사연이 한 국제구호단체를 통해 알려졌다. 보건소에는 한 명분의 약밖에 없었고 결국 부모는 상태가 좀 더 나은 동생을 선택했다. 치료를 받지 못한 형은 숨졌다. 이렇게 치료를 받지 못해 숨지는 5세 미만 아동은 아프리카에만 45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생사가 결정되는 긴급한 상황에서 한 자식만을 선택해야 하는 부모의 아픔은 종종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나치 수용소에서 가스실에 보낼 자식을 선택해야 했고 끝내 그 아픔 속에 몸부림치다 자살하는 부모를 그린 영화 ‘소피의 선택’(1982년)이 대표적이다. 지난해에도 지진으로 무너진 기둥 아래 깔린 두 자식 중 한 명을 선택해야 했던 어머니의 심정을 묘사한 영화 ‘탕산대지진’이 중국과 한국 등에서 개봉돼 수천만 명의 눈물샘을 자극했다.현실에서 그런 참혹한 비극은 카메라도, 펜도 지켜보지 않는 숱한 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멀리 아프리카에서만의 일은 아니다. 탈북자들의 수기에도 이런 비극은 수없이 등장한다. 어린 아들딸의 손을 잡고 소용돌이치며 흐르는 두만강을 건너다 딸의 손을 그만 놓쳐버린 어머니. 아들마저 잃을까봐 ‘살려 달라’고 비명을 지르는 딸을 보고만 있어야 했던 어머니는 끝내 미쳐버렸다. 간신히 두 딸을 데리고 중국으로 탈출했지만 딸을 한 명 팔지 않으면 신고하겠다는 협박에 못 이겨 어떤 딸을 팔지 결정해야 했던 어머니도 많았다.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비극의 주인공이 된 어머니들의 모성애만이라도 지켜줄 수 있다면….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다다브=AP 연합뉴스 }

최초의 한국계 주한 미국대사로 지명된 성 김 미 국무부 6자회담 특사(51)가 한국 부임의 마지막 관문인 상원 인준청문회의 벽을 무난히 넘을 것으로 보인다. 짐 웹 외교위원회 동아태소위원장(민주·버지니아)은 21일 김 지명자에 대한 청문회가 끝난 뒤 “인준은 8월 6일 의회 휴회 이전에 무난하게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상원 인준 청문회는 이날 오전 10시 반부터 워싱턴 시내 연방상원 오피스인 덕슨빌딩 419호에서 열렸다. 청문위원들이 앉는 단상에는 청문회를 주재하는 웹 위원장만 참석했을 뿐 다른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다른 청문위원들은 청문회가 끝날 때까지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아 결국 웹 위원장 혼자 사회를 보고 질의까지 하는 1인 청문회로 막을 내렸다. 대부분 의원이 참석하지 않은 것은 김 지명자와 관련해 논란이 될 만한 문제가 없는 데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최대 현안인 부채한도 인상 문제를 놓고 대치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김 지명자는 웹 위원장을 직접 방청석으로 안내해 바로 뒷줄에 앉아 있던 부인 정재은 씨와 두 딸, 조카 및 형 등 가족을 소개했다. 인준 청문회장에 가족들을 동반하는 것은 미 의회의 전통이다. 가족이 청문회에 나와 영광스러운 자리에 지명된 것을 함께 축하하고 격려하는 것이다. 상원의 공직자 인준청문회는 그 대상이 차관보급 이상 공무원 등 600여 자리에 이르는데 결코 호락호락한 형식적 통과의례는 아니다. 대통령이 지명한 뒤 청문회가 열리기까지 수개월씩 걸리고 청문회가 며칠씩 열리는 경우도 다반사다. 하지만 이날 김 내정자 청문회에서 보듯 일단 자격을 갖춘 것으로 판단되는 내정자에 대해서는 앞길을 축하해주고 본인의 다짐을 들으며 격려해주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김 지명자는 모두발언에서 “35년 전 나를 미국으로 데리고 온 부모님은 내가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첫 주한 미국대사로 일할 기회를 가질 것이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며 “하지만 부모님은 내가 어릴 때부터 공직에서 일하기를 권유했다”고 밝혔다. 이어 “내가 외교관이 됐을 때 부모님은 자랑스러워했고 한반도 관련 일을 하게 됐을 때는 무척 좋아하셨다”고 말했다. 김 지명자는 한국이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의 폐허를 딛고 경제적으로 눈부신 성장을 이룬 것에 경의를 표시했다. 그는 “한국민의 놀랄 만한 성공스토리에는 한미 양국의 강력하고 건설적인 동맹과 파트너십이 기여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외교관은 특별한 지위이지만 가족에게는 항상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때때로 두 딸이 ‘이사 그만 다닐 수 있도록 나가서 제대로 된 직업을 구해보라’고 말하기도 한다”고 해 방청객들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웹 위원장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 북한의 도발, 북한의 권력 승계 및 주한 미군기지 이전 문제 등 한반도 현안에 대해 간략하게 질문했고 김 지명자는 자신의 소견을 거침없이 밝혔다. 청문회장에는 로버트 킹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도 방청객으로 참석해 청문회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이명박 대통령의 자서전 영문판이 11월 미국에서 출간된다는 소식이다. 대통령 이명박에 대해 찬반이 엇갈리겠지만, 그의 인생 역정이 범상하지 않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미국 현지 출판사는 “가난한 학생이 CEO와 시장을 거쳐 대통령에까지 오른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 싶어 하는 미국인이 많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실제로 미국 내 지한파들 사이에서 이 대통령에 대한 평가와 관심은 서울에서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높다. 노무현 정권이 불필요한 말들로 한미관계에 생채기를 남긴 데 대한 반작용인지, 요즘엔 미국이 짝사랑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한국을 중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차에 나오는 대통령 자서전이기에 반가웠다. 그런데 영문 번역자가 누구인지 알아보니 청와대 공식통역관인 K 행정관이라고 한다. K 행정관은 외교통상부 출신 직업외교관이다. 대통령부속실의 여성 행정관 1명도 번역을 도왔다고 한다. 설명을 듣고 보니 ‘자서전 출간은 대통령 공식 직무가 아닌 개인의 일인데…’ 하는 석연찮은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세금으로 녹을 받는 공무원이 개인 자서전 번역을 하는 게 적절할까. 청와대에 문의하니 “통역관이 밤에 작업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아르바이트인 셈인데 보수는 지급된 것일까. 다시 물으니 청와대는 “자원봉사여서 보수는 없었다”고 답했다. 존경하는 윗사람을 위해 퇴근 후에 잠을 쫓으면서 번역했다는 게 사실이라면, 그런 행정관들의 순수한 마음은 높이 평가하고 싶다. 하지만 그런 평가와 별개로 청와대 측에 묻고 싶다. 정식으로 출판사에 번역을 맡기면 되지, 왜 사소한 일로 공사(公私) 구분이 모호하다는 의심을 살 상황을 자초했는지. 지도자에 대한 신뢰와 존경은 거대한 업적보다는 작은 에피소드들의 축적으로 생긴다. 됨됨이를 엿보게 해주는 사소한 스토리의 편린(片鱗)들이 사람들의 마음에 젖어드는 것이다. 2009년 12월 당시 일본 최고 실세인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간사장은 680명의 수행단을 이끌고 중국을 공식방문했다. 이어 개인 자격으로 서울에 올 때는 비서관과 경호원 1명씩만 남기고 수행원은 다 귀국시켰다. 한국 정부가 제공한 차량도 사양하고 인천공항에서 차를 렌트했다. 존 베이너 미 하원의장은 매주 자신의 지역구를 오갈 때 하원의장용 군용기 대신 민항기를 탄다.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은 상원의원 시절 36년간 기차를 타고 델라웨어에서 워싱턴까지 왕복 250마일을 출퇴근했다. 주미 한국대사관에 근무했던 A 씨의 회고다. “평일 저녁에 미 고위직 부인들의 모임이 열렸다. 부부동반인데 현직 장관, 상원의원인 남편들이 다들 직접 운전해서 왔다. 퇴근 후 사적인 용무에 관용 기사를 부리는 사람은 없었다.” 사모님용 관용차를 별도로 구입하는 수준의 한국 일부 정치인과 저가항공사 티켓을 직접 끊어 부인과 단둘이 휴가를 떠난 영국 캐머런 총리를 대비시키는 그런 자의적 비교는 하고 싶지 않다. 우리나라에도 캐머런, 베이너 못지않게 공사 구분이 철저한 공복이 많다. 지금은 은퇴한 김모 대사는 모시고 사는 아버지가 관사의 사무용품을 쓰려고 하자 “국가 재산”이라며 냉정하게 뺏었다고 한다. 그런 공복들의 정점에 대통령이 있어야 한다. 월급을 불우이웃들에게 기부하고, 평생 모은 재산을 국가에 헌납한 대통령이 자꾸 사소한 일로 공사 개념이 부족한 사람처럼 비친다면 그처럼 안타까운 일이 또 있을까.이기홍 국제부장 sechepa@donga.com}

“디스 이즈 더 라스트데이. 리브 인 언 아워(This is the last day. Leave in an hour·해고됐으니 방 빼).” 미국 텍사스 주의 소규모 업체에 다니던 A 씨는 해고 통보를 받았다. 비인간적이고 무례한 방식이었다. 하지만 순순히 짐을 꾸렸다. 보스의 멱살을 잡는 대신 “그동안 고마웠다. 다시 고용을 확대하게 되면 불러 달라”고 인사했다. 왜 속 터지게 참았을까. “새 직장 취업 인터뷰를 하면 분명 인사담당자가 전 직장에 나에 대한 평판을 물을 텐데, 좋은 인상을 남겨야지요.” 서구사회에서 평판과 추천의 힘은 막강하다. 취업은 물론이고 대학입시에서도 교사가 추천서에 써넣는 한마디가 수능 성적보다 중요하다. A 씨 에피소드를 듣는 순간, 체벌금지 이후 말을 듣지 않는 학생들을 통솔할 무기로 교사 추천서를 대폭 활성화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입·대입 지원 때 추천서는 물론이고 저학년 때부터 교사들이 작성해 놓은 행동·품성 관찰기록을 첨부해 입학사정의 필수자료로 삼도록 의무화하면 어떨까. ‘2학년 1학기-다른 학생을 괴롭히고 교사 지시를 거부’란 내용이 대입원서에 따라가리란 걸 안다면 안하무인의 행동을 하긴 어렵지 않을까. 이런 의견을 몇몇 교육전문가에게 얘기했더니 다들 웃었다. 현실을 모르는 생각이란 거다. “교사가 공정하게 추천서를 써줄 것이란 기대를 할 수 없다.” “점수가 아닌 추천서상의 평가로 인생이 뒤바뀐다면 소송이 난무할 것이다.” 선진국 일부 사회도 교권 상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일본에선 교사에게 윽박지르는 학부모를 일컫는 ‘몬스터 페어런츠’란 말이 있을 정도다. 영국에서는 학생의 비행에 못 견뎌 사직하는 신임 교사가 속출한다. 하지만 체벌 없이도 교권을 지켜가는 사회도 많다. 미국에서 일부 낙후한 학교를 제외하면 학생이 교사에게 대드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 미 텍사스대의 이길식 교수는 가정교육에서 원인을 찾는다. “얼마 전 (미국)교회에서 한 아이가 정신없이 문을 열고 달려 나갔다. 자칫하면 차에 치일 수 있는 위험한 장난이어서 따끔히 야단쳤다. 그랬더니 그 어머니가 와서 몇 번이고 ‘고맙다’고 하더라. 한국 식당에선 정신없이 뛰는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면 부모에게 욕설을 듣기 십상이었다.” 교사의 권위와 자긍심이 높은 나라로 핀란드가 꼽힌다.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 레이코 라우카넨 씨에게 비결을 물어봤다. “1주 동안 매끄럽게 수업을 진행해야 교원실습 과정을 통과할 수 있다. 수업 시간에 떠들거나 교사에게 대드는 상황이 빚어질 때 적절히 대처하는지 본다. 이 과정에서 탈락하면 실습생은 대학(원)으로 돌아가 교육을 다시 받는다. 이런 시스템을 통해 학생을 다스리는 ‘기술’을 습득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교실 현장 혼란의 1차 책임은 교사에게 있다고 강조한다. “병원 응급실을 생각해 보자.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환자도 있을 것이고, ‘왜 우리 아이부터 치료 안 하느냐’고 억지 쓰는 보호자도 있을 것이다. 이들 때문에 응급실이 소란스럽다면 이건 의사, 간호사 잘못이다. 교실도 마찬가지다.” 문제를 한 번에 풀 비책은 없다.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체벌 부활은 ‘글로벌 코리아’의 선택지가 될 수 없다. 교사 추천서 강화 등 모든 보완책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선진국 사회들을 벤치마킹하면서 풀어가야 한다.이기홍 국제부장 sechepa@donga.com}
“더는 화를 참을 수 없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3일 한국인이 경영하는 중국 광둥(廣東) 성 광저우(廣州) 시의 한 핸드백 제조공장에서 근로자 4000여 명이 벌이고 있는 파업을 보도하면서 이런 제목을 붙였다. 이 공장 근로자들은 임금 인상과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며 20일부터 파업을 벌이고 있다. 근로자들은 최소 2명이 보안 요원들로부터 구타를 당했다고 주장한다고 SCMP는 전했다. 한 여성 근로자(26)는 “잔업 4시간을 포함해 하루 12시간을 일해야 1900위안(약 31만 원)을 받는데 회사는 매달 월급에서 사회보험료 명목으로 200위안을, 식대로 100위안을 공제하고 있다”며 “식사는 거의 쓰레기 수준으로 사람이 먹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 남성 근로자(26)는 “한국인 관리직들은 우리를 인간 이하로 취급하고 있다”면서 “한국인 남자 관리자들이 여자화장실을 맘 내키는 대로 들어간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공장 관계자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악의적인 보도다. 보도 내용은 대부분 사실이 아니다”라며 “대응방안을 강구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공장은 미국 바이어들이 정기적으로 작업환경을 점검해온 곳”이라며 “처우가 나쁘면 어떻게 납품을 하냐”고 반문했다. 베이징=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
‘한국군에서는 보병이 소총으로 비행기 쏘는 연습을 하는가.’ ‘역사상 여객기가 오인 사격을 당한 적은 있지만 소총을 사용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여객기와 전투기 구별이 그렇게 모호한가.’ 17일 있었던 인천 강화도 해병대 초병의 민간 여객기 오인 사격 사건을 놓고 중국 관영 환추(環球)시보가 20일 사용한 표현들이다. 이 신문은 이 사건을 ‘여객기 사격으로 한국의 체면을 구겼다’는 제목의 1면 머리기사로 다루면서 “한국의 방공(防空) 능력이 국내적으로 의심을 받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며칠 전 군인의 전투정신을 강조한 것도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사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또 이 신문은 “소총으로 비행기를 맞히는 것이 가능한가”라고 물으면서 “북한의 초등학교 교과서에는 김일성 장군이 소총으로 미국 비행기를 떨어뜨렸다는 내용이 있지만 요즘은 비행 기술이 발달해 소총으로 비행기를 떨어뜨리기는 점차 불가능해졌다”고 보도했다.공산당이 발간하는 광밍(光明)일보의 웹사이트 ‘광밍(光明)망’은 평론에서 이 사건에 대해 ‘슬프면서도 우스꽝스럽다’고 논평하면서 “이번 사건이 슬픈 이유는 한국이 자국 민간 항공기를 향해 총을 발사했기 때문이며, 만약 항공기에 명중했다면 천안함 사건처럼 진상은 귀신만이 아는 상황이 될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천안함이 남측의 실수로 침몰했다는 뉘앙스를 깔고 있는 것이다. 광밍망은 이어 이번 사태가 우스꽝스러운 이유는 ‘한국군 병사의 수준이 낮다는 점과 한국군의 지휘 계통이 혼란스럽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19일에도 홍콩 영자지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 중국어 신문인 밍(明)보, 빈과일보, 원후이(文匯)보 등이 1면 머리기사 또는 국제면 톱기사로 이 사건을 보도했다. 중국 언론의 보도 내용 가운데는 한국에 대한 조롱과 비아냥거림을 담은 대목이 많다. 미국이나 일본 언론이 이 사건을 팩트 위주로 객관적으로 전달한 것과는 차이가 크다.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왜 우리 사회는 해외 입양을 ‘고아 수출’이라고 비하하는 걸까? 기자는 미국에서 특파원으로 일하면서 한국 등에서 입양한 자녀들을 지극한 사랑과 정성으로 키우는 부모를 많이 만났다. 일부러 장애아를 입양해 키우는 가정도 적지 않다. 아동병원 가운데 세계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 필라델피아 아동병원에서 동아일보 취재진이 만난 멀그루 씨 부부는 중국에서 입양하려는 아기가 입천장이 갈라지는 기형을 안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고민 끝에 부부는 입양을 결행했고 아기를 위해 병원을 찾았다. 한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병원에는 해외에서 입양돼온 아이 환자가 많다. 부모들이 장애가 있는 아이를 일부러 골라 입양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차피 장애를 안고 태어난 운명이라면 중국보다는 미국 중산층 가정에서 사는 게 아이를 위해 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먼 나라의 장애아를 데려다 정성을 기울여 키우는 이런 부모에게 한국에서는 해외 입양을 ‘고아 수출’이라고 비난한다고 하면 얼마나 상심할까. 우리 사회 해외 입양의 시작은 ‘고아 수출’의 측면이 컸다. 6·25전쟁 뒤 아이들을 거둘 여력이 없던 가난한 조국은 아이들을 해외로 보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한국 아기가 해외로 입양된다고 해서 이를 고아 수출로 볼 그런 삐딱한 외국 사회는 없다. 해외의 입양희망 부모 사이에서 한국 아이 선호도는 매우 높다. 엄밀한 관리, 80% 이상이 대학에 진학하는 우수한 자질 등 때문이다. 해외에서 한국 아이 입양은 조금 과장하면 ‘하늘의 별따기’로 불린다. 한국 정부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쿼터제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국내에는 입양될 가정을 찾지 못해 기다리는 아기가 넘쳐난다. 지난해 말 현재 입양가정을 찾지 못한 대기아동이 1800명에 달한다. 생후 3개월 이내 여아를 선호하는 경향 때문에 남아들은 시간이 갈수록 입양될 가능성이 희박해져간다. 특히 장애아의 국내 입양 기회는 정말 희소하다. 지난 10년간 국내 입양아 1만300명 가운데 장애아는 248명에 불과했다. 해외로 입양된 장애아는 5300명으로 전체 해외 입양아의 30%에 달한다. 장애아는 대부분 해외로 입양되는데 쿼터에 묶여 장애아들이 새 가정을 찾기는 더 어려워진 것이다. 물론 입양정책의 1순위인 국내 입양은 더욱 활성화되어야 한다. 아이들을 위해서도 한국 가정이 가장 바람직하다. 견제장치가 아예 없으면 일부 입양 알선 기관들이 국내 입양은 뒷전에 돌리고 수수료가 높은 해외 입양에만 매달릴 것이란 우려도 없지 않다. 그런 점에서 2007년 정부가 ‘국내 입양 활성화 대책’으로 쿼터제를 강화한 취지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후 국내 입양은 연간 10명 안팎 증가에 그쳤다. 해외 입양을 막는다고 국내 입양이 느는 것은 아닌 것이다. 결국 “고아 수출국이란 오명을 벗자”는 이데올로기에 발목 잡혀 수많은 아이가 입양 기회를 놓친 채 보육원에서 자라게 되는 구조다. 온 사회가 꾸준히 노력하면 장기적으론 국내 입양이 점차 늘겠지만, 아기들은 정책의 과도기적 기간에도 자란다. 각자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한 번밖에 가질 수 없는 소(小)우주들이다. 국가의 자존심도 중요하지만, 아기들의 인생이 더 소중하다. 해외 입양은 ‘고아 수출입’이 아닌 국적과 인종을 넘어선 사랑이다. 한 미국인 부모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 “하느님께서 지구 저 건너편에 데려다 놓으신 우리 아이를 찾아온 겁니다.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이기홍 국제부장 sechepa@donga.com}

“김정일 위원장은 식견이 있는 지도자입니다. 얘기가 되는 사람입니다.” 2001년 3월 8일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김대중 대통령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김정일을 긍정적으로 소개하면서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권했다. 비단 이때뿐 아니라 DJ는 평양에서 김정일을 만나고 온 뒤 그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발언을 많이 했다. 김정일을 만날 기회를 얻었던 다른 인사들도 그런 말을 많이 한다. 외부세계에서는 독재자, 테러리스트로 찍혀 있지만 직접 만나본 사람들로부터는 호평을 받는 지도자는 김정일만이 아니다. 과거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를 만난 사람들은 그의 카리스마와 민중 사랑을 칭송했다. 석학인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 같은 이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수많은 무고한 인명을 앗아간 오사마 빈라덴 역시 일부에선 우상처럼 칭송돼 왔다. 남미 민중 해방에 삶을 바친 체 게바라에 비유하는 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역사는 그렇게 상반된 평가를 받는 지도자가 죽음이나 파멸 등 한계상황에 닥쳤을 때 본색이 드러남을 보여준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례는 메인스트림의 평가가 옳았음을 증명해준다. 비디오 메시지 속에서 산악지대 동굴을 배경으로 등장했던 빈라덴은 부촌의 저택에서 여러 부인을 데리고 살고 있었다. 마지막 순간엔 부인보다 뒤에 있었다. 설사 부인이 인간 방패를 자처한 것이라 해도, 동네 깡패조직의 보스 정도만 되어도 “나만 죽여라”라고 나서며 아내를 옆으로 밀쳐내지 않았을까. 빈라덴을 만나본 사람들은 그가 항상 부드럽게 악수했다고 전한다. 온화하고 인자한 성품이라는 평판도 돌아다녔다. 하지만 그의 넷째 아들의 증언이 담긴 책은 자녀들을 자주 때리고 애완동물을 사격 연습 대상으로 삼는 빈라덴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카다피는 정권이 위기에 몰리자 시민을 파리 목숨 취급하고 있다. 합리적인 성품의 서구 유학파로 묘사됐던 시리아의 알아사드 대통령은 1982년 4만 명을 죽인 아버지의 ‘학살 유전자’를 세습한 듯 시위대를 무차별 사살하고 있다. 비록 오류로 드러난 이념이었지만 진정성을 갖고 사회주의 이상을 꿈꾸며 마지막까지 신독의 삶을 산 혁명가라면 베트남의 호찌민, 남미의 체 게바라 정도가 꼽히지 않을까. 드러나는 빈라덴의 실체 앞에서 체 게베라 운운했던 지식인들은 부끄러움을 느껴야 마땅하다. 아무리 독재자라고 해도, 국가나 거대한 조직의 지도자가 호의를 베풀며 인간적 매력을 살짝 보여주면 사람들은 쉽게 감동한다. 미국의 지도자론 연구자들은 ‘Dictators can be charming’이란 말을 자주한다. 베일 속의 독재자는 멋있게 보이기 쉽다는 뜻이다. 1972년 평양을 방문한 일본 잡지 ‘세카이’의 야스에 료스케 편집장은 김일성이 숙소까지 찾아와 6시간 동안 대화를 나눠주자 ‘따뜻한 포용력, 인자하신 인품’이라며 김일성을 극찬했다. 반면 민주주의 사회의 정치인은 멋있게 보이기 힘들다. 장단점이 모두 투명하게 드러나고 항상 비판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DJ로부터 김정일 칭찬을 들은 부시의 반응은 어땠을까. 기자는 미국의 정통한 외교관계자로부터 당시 오간 비공개 대화 내용을 전해 들었다. 부시는 이렇게 반문했다고 한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귀하나 저나 정치를 하는 사람 아닙니까?” 부시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정치를 합니까. 정치라는 건 국민을 편안히 잘살게 해주려고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어떻게 김정일이 정치지도자라 할 수 있습니까. 자기 국민을 굶어 죽게 만들고….”이기홍 국제부장 sechepa@donga.com}

“리비아전쟁은 부족 간 내전인데 왜 유럽과 미국이 개입합니까?” 가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생각해본다. 훗날 역사는 이번 전쟁을 어떻게 규정할까…. 누구도 미래의 평가를 장담할 수는 없다. 다만 가까운 진실은 일단 현장에 있지 않을까. 영국 신문 가디언에 실린 한 아버지의 사진이 생각난다. 리비아 동부 라스라누프의 거리를 돌아다니는 56세 남자다. 목에 건 종이에는 ‘내 아들을 찾습니다’라는 글자와 아들의 사진이 붙어있다. 화물차 운전사였던 그와 28세의 아들은 민주화 시위 초기 거리로 나섰다. 공권력이 이웃을 학살하는 걸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총을 들었다. 어느새 반군 병사가 된 것이다. 카다피군의 반격이 시작되자 아들의 손을 잡고 도망쳤다. 하지만 18개월짜리 아기 아빠인 아들은 “비겁해지기 싫다”며 다시 전장으로 달려갔고 실종됐다. 병원에서 시신을 뒤지면서 그는 카다피군에 잡힌 사람들이 어떻게 처형됐는지를 보고 몸서리쳤다. “다들 귀가 잘리고 입술이 잘리고 손톱이 뽑혀 있었습니다. 아들이 죽었다면, 그런 식으로 죽음을 맞지는 않았기만을 기원할 뿐입니다. 내가 바란 건 그저 자유였고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바라는 건 내 아들입니다.” 분명 리비아전쟁에는 부족 간 내전의 성격이 깔려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전쟁을 촉발한 시위의 본질이다. 전쟁의 도화선은 2월 15일 벵가지에서 열린 작은 시위였다. 이집트 민주혁명에 놀란 카다피 정권이 인권변호사를 연행했고, 항의하는 주민들을 무차별 학살했다. 분노한 시민들이 무기고로 몰려가면서 무장투쟁으로 이어졌다. 1980년 5월 18일 아침 비상계엄 확대에 항의하는 전남대생들을 공수부대원들이 무차별 구타하면서 5·18민주화운동이 촉발된 상황을 연상시킨다. 당시 광주의 시민군은 대부분 평범한 시민이었다. 만약 5·18민주화운동 당시 외국 언론이 ‘영호남 지역갈등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거나 ‘북한 공작원이 섞여 있다’고 보도했다면 그것이 본질을 얘기한 것이었을까. 리비아 반군이 초심을 잃고 부족 간 암투로 변질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알카에다가 반군 속에서 암약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어떤 민주화운동도 100% 순수한 참가자들만으로 이뤄지지는 않는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당시 학생운동 지하지도부의 상당수는 주사파였다. 하지만 6월 민주항쟁을 급진좌파 주도의 민족해방 투쟁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항쟁의 본질은 무수한 학생이 고문을 받아 숨지고 최루탄에 쓰러지는 걸 보다 못한 동료 학생,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민주화를 염원한 것이었다. 세상에 ‘좋은 전쟁’은 없다. 하지만 덜 나쁜 전쟁이라는 차원에서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정당한 전쟁’의 필요조건인 정의로운 동기, 합법적 수행주체 등의 요건을 리비아 무장투쟁과 유엔 군사개입은 상당 부분 충족하고 있다. 정당한 전쟁과 반란·침략의 경계선은 아슬아슬하다. 반군이 부족 이기주의적 권력욕을 앞세우거나, 다국적군 오폭 등의 부작용이 심해지면 선악의 구도에서 이전투구로 바뀔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순수했던 시위대만 억울한 희생양으로 남게 될 수 있다. 중립적이어야 하는 기자의 신분을 벗어나, 민주화 격동기를 먼저 겪은 사회의 시민으로서 리비아를 지켜보는 심정은 조마조마하고 안타깝다. 매일 전해지는 수십, 수백 명이라는 희생자 숫자가 단순한 아라비아숫자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 다 소(小)우주였던 귀중한 인명들임을, 죽음이 두려워 떨면서도 인간적 분노와 정의감에서 떨쳐 일어섰던 생명들임을 알기에….이기홍 국제부장 sechepa@donga.com}
△서방 다국적군, 미스라타 해역 카다피군 해상경비선 공격△카다피군,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 고향인 수르트 시 외곽에서 반카다피군 격퇴△리비아 야권 국내외 인사들, 카다피 원수에게 맞설 독립위성채널 ‘리비아 TV’ 곧 출범△반카다피군 약진에 국제유가 하락 지속△수전 라이스 미국 유엔대사, “반카다피군에 무기 제공하는 방안을 배제하지 않는다”△북대서양조약기구, 다국적군의 군사작전 지휘권을 31일 오전 6시 인수키로 결정}
사흘 연속 이어진 다국적군의 리비아 공습이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의 숨통을 조이고 있는 가운데 미군 전폭기가 야간 공습 과정 중 추락했다. 고장에 의한 것이고 일단은 조종사도 구조됐지만 그렇지 않아도 군사작전에서 2선으로 발을 빼려는 미국을 더욱 움츠리게 만들 일이 터진 것이다. 특히 다국적군이 비행금지구역 범위를 트리폴리 인근까지 확대하기로 함에 따라 다국적군 공군의 피해는 갈수록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트리폴리의 카다피 원수 관저는 20일에 이어 21일 밤에도 다국적군의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 이날 오후 9시경 관저 인근에서 다시 거대한 폭발음과 대공화기 소리가 들렸으며 적어도 한 발은 관저를 명중했다고 외신이 전했다. 이런 가운데 카다피 원수의 막내아들 카미스가 한 조종사의 자살특공 공격을 받아 화상을 입고 병원에서 사망했다는 보도의 진위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리비아 정부는 카미스 사망설을 계속 부인하고 있지만 반군 측 일부 웹사이트에는 정부군 전투기를 몰고 기수를 돌려 카다피 관저로 돌진했다는 ‘무함마드 무크타르 오스만’이라는 조종사의 이름과 얼굴 사진이 게재됐다. 사진 밑에는 “그의 희생이 자유민주주의 리비아에 의해 보상받기를…”이라는 설명이 달려 있다. 카다피의 행방 역시 여전히 묘연한 상태다. 일부 전문가는 카다피가 20일 다국적군의 관저 공습으로 실제 신변의 타격을 받았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첫 공습 직후인 20일 전화 녹음으로 국영 TV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한 뒤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는 그가 지하 벙커에 몸을 숨겼거나 자신의 영향력이 미치는 서부 지역 모처에 머물고 있을 공산이 크다. 동부 벵가지를 공격하려다 다국적군의 공습을 받고 퇴각한 카다피군은 21일 탱크를 몰고 트리폴리 동쪽 미스라타 시내로 진입했다. 건물 지붕에선 정부군 저격수들이 발포해 시민 수십 명이 사망했다. 반군 대변인은 “정부군은 미스라타에서 정전 약속을 깨고 있다”며 “이곳의 파괴 행위는 상상을 초월한다”고 말했다. 카다피 축출에 가장 앞장서고 있는 영국은 지상군 파견 문제를 본격화하고 있다. 영국 정부 고위관계자는 인디펜던트지 인터뷰에서 “유엔의 이름하에 전면적인 지상군을 파견하는 것과 민간인 보호를 위해 제한적으로 필요한 병력을 파견하는 것은 확실한 차이가 있다”며 지상군 파병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무엇보다 대원들의 가족에게 미안했다. 이 자리를 빌려 사과한다.” 19일 밤 도쿄소방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나이가 지긋한 소방대원 세 명이 눈물을 흘렸다. 일본 후쿠시마(福島) 제1원자력발전소에서 막 돌아온 사토 야스오(佐藤康雄·58) 총대장과 도미오카 도요히코(富岡豊彦·47) 제6방면대 총괄대장, 다카야마 유키오(高山幸夫·54) 제8방면대 총괄대장이었다. 도쿄소방청 특별구조대의 현장 팀장인 이들은 방사선 피폭의 위험을 무릅쓰고 19일 0시 30분경 원전 3호기의 턱밑까지 다가가 ‘10시간 살수작전’을 진두지휘하며 작전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도미오카 대장은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이었나’란 질문에 “대원(의 안전)이었다”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한 채 눈물을 글썽였다. 이어 감정에 북받친 목소리로 “남겨진 (대원들의) 가족에게도 진심으로 미안했다. 사과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들이 지휘한 도쿄소방청 특별구조대원 139명은 모두 자원자였다. 이들은 가족의 얼굴을 보면 마음이 약해질까 봐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안심하고 기다려라. 꼭 돌아온다”고 통보했다. 남편을 사지로 보내면서도 용기를 북돋워준 아내들의 격려도 돋보였다. 사토 총대장의 아내는 남편에게 “일본의 구세주가 되어 돌아오라”는 내용의 e메일을 보냈고, 다카야마 대장의 아내는 “안심하라”는 남편의 e메일에 “당신을 믿고 기다리겠다”는 답을 보냈다. 대원들은 해변에서 바닷물을 끌어오기 위해 700kg이 넘는 350m짜리 소방호스를 손으로 직접 소방차에 연결했다. 도로 곳곳에 폭발로 인한 파편이 널브러져 있어 호스 연결 작업은 더뎠다. 19일 0시 30분. 흰 연기가 피어오르는 수조 지붕을 향해 살수차가 물을 뿜었다. 전 국민이 TV를 통해 지켜보며 가슴을 졸였다. 1분에 3t의 바닷물이 정확하게 수조에 명중했다. 현장의 방사선량은 시간당 60mSv(밀리시버트)에서 거의 ‘0’으로 내려갔다. 작전은 성공이었다.도쿄=윤종구 특파원 jkmas@donga.com}

어제 프랑스에서 들어온 짤막한 외신이 눈에 띄었다. 공공장소에서 이슬람 복장인 부르카나 니캅, 얼굴을 가리는 베일을 쓰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이 다음 달 11일부터 시행에 들어간다는 내용이었다. 지난해 프랑스는 이 법을 놓고 심각한 갈등을 겪었다. 여성인권 보호라는 명분과 종교 자유 침해라는 이슬람 측의 비판이 격렬히 맞섰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나서서 공개적으로 법안 지지의사를 밝히면서 갈등은 더해졌고 에펠탑 테러 위협설 등이 나도는 가운데 결국 법안은 10월 통과됐다. 하지만 막상 프랑스 기독교계는 이 문제에 절대적 중립을 지켰다. 시종일관 아무런 의견표명도 하지 않았다. 교회가 현실 정치 문제에 개입해선 안 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미국도 지난해 이슬람과 관련된 홍역을 앓았다. 미국 내 이슬람 신자들이 9·11테러 현장인 뉴욕 ‘그라운드 제로’ 인근에 이슬람커뮤니티 센터를 지으려 하자 기독교계가 격렬히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나섰다. 그는 “무슬림은 이 나라의 시민으로서 다른 모든 이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종교를 누릴 권리가 있다. 이는 사유지에 신앙의 장소를 지역 법령에 부합되게 건립하는 권리를 포함한다”고 천명했다. 그러면서 “여기는 미국이며 종교의 자유에 대한 신념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워싱턴 에피파니성당의 이덕효 신부는 9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당시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은 종교의 자유를 강조한 원론적인 내용이지만 실제론 대단히 용기 있는 발언이었다”고 평가했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기독교의 나라고 보수의 나라다. 가뜩이나 이슬람교도라는 유언비어에 시달리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하기 어려운 말을 한 것이다”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퓨리서치 조사 결과 여전히 18%의 미국인은 오바마 대통령이 이슬람교도라고 믿는 게 현실이다. 사르코지와 오바마 대통령의 종교 관련 대응을 단순 비교할 생각은 없다. 우연인지 어제 두 나라에서는 내년 대선 전망에 대한 외신이 동시에 들어왔다. 내년 4월 재선에 도전하는 사르코지 대통령은 우파에 대한 끈질긴 구애에도 불구하고 극우정당 후보에게 밀려 3위로 처져 있다. 곧 재선 캠프를 가동하는 오바마 대통령은 지지율이 50%를 웃도는 가운데 탄탄한 재선가도를 달리고 있다. 우리 사회도 요즘 일부 종교 간 마찰음이 커지고, 정교분리(政敎分離)의 원칙이 훼손되는 것 아니냐는 경고음이 들리고 있다. 궁극적 해결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어제 종교담당 기자에게 부탁해 종교학자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서울대 종교학과 윤원철 교수는 “공직자들은 공적인 장소에서는 특정 종교색을 띠어서는 안 된다”며 “이명박 대통령은 몸에 특정 종교가 배어 있다. 그런 게 문제가 된다는 인식을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학자들도 비슷한 의견이었다. 정치에 간여하기 시작한 종교가 ‘쿨’하게 제자리로 돌아가는 건 어렵다. 국가원수가 결자해지의 자세로 치유에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대통령, 그리고 일부 교계 인사는 미국 최초의 로마가톨릭신자 대통령인 존 F 케네디의 말을 새겨보기 바란다. “미국은 정교분리가 절대적인 나라임을 나는 믿는다. 그 어떤 가톨릭 고위성직자도 (설령 대통령이 가톨릭 신자여도) 대통령에게 어떻게 행동하라고 얘기할 수 없으며, 어떤 목사도 신도들에게 누구에게 투표하라고 얘기하지 않으며, 어떤 교회나 교구도 어떤 공적인 기금이나 정치적 혜택을 받지 않는 곳임을 나는 믿는다.”(1960년 9월 12일 연설)이기홍 국제부장 sechepa@donga.com}

이명박 대통령의 일본 국빈방문 등 ‘화사한 봄’을 예고하던 올 상반기 한일 관계가 독도 교과서 문제라는 복병에 위협받고 있다. 3월에 일본은 독도 문제를 다루는 교과서 검정 결과를 발표한다. 지금 양국 관계는 사상 최고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좋지만 교과서 검정을 앞두고는 살얼음판을 걷는 형국이다. 이 대통령이 1일 3·1절 경축사에서 한일 관계 발전을 위한 일본의 진정성 있는 행동을 특히 강조한 것도 양국 앞에 놓인 이 같은 암초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르면 이달 말 일본 중학교 교과서 검정 결과가 나온다. 일본 정부가 독도 영유권 주장을 담은 교과서를 대거 통과시키면 양국 관계가 냉각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독도 문제와 관련 있는 것은 사회과 교과서로 역사 8종, 공민 8종, 지리 5종의 교과서가 검정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극우 성향 출판사인 지유샤(自由社)와 이쿠호샤(育鵬社)가 포함돼 있다. 지유샤는 2004년 황국사관에 의거해 일본제국주의를 미화하고 한국 침략을 정당화하는 내용을 담아 물의를 빚었던 후소샤(扶桑社)판 교과서를 집필한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과 손잡은 출판사다. 이쿠호샤는 후소샤의 자회사. 특히 올봄 교과서 문제가 우려되는 것은 2008년 개정된 일본 중학교 학습지도요령 해설서가 독도 문제를 일본이 러시아와 영유권을 다투고 있는 쿠릴열도 남단(일본명 북방영토) 문제와 마찬가지로 취급하도록 하고 있으며 그 지침에 따라 만들어진 교과서가 이번에 처음으로 나온다는 점이다. 이 해설서는 ‘사회(지리영역)’에서 ‘우리나라(일본)와 한국 사이에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 이름)에 대한 주장에 차이가 있다는 점 등을 취급, 북방영토와 동일하게 우리나라의 영토 영역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는 것도 필요하다’고 지침을 제시했다. 해설서는 교과서가 따라야 하는 ‘가이드라인’이기 때문에 조만간 검정 결과가 발표될 교과서들에는 독도 영유권 주장이 강화될 확률이 높은 것이다. 2008년 해설서는 자민당 정권 때 만들어졌지만 현 민주당 정권도 태도에 큰 차이는 없다. 일본 정치상황도 독도 문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간 나오토(菅直人) 내각이 실각 위기에 몰려 있기 때문에 민감한 영토 문제에서 유연성을 발휘하기 힘들고, 나아가 여론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이를 이용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도 있다. 민주당 정권은 중국과의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분쟁, 러시아와의 쿠릴열도 분쟁에 미숙하게 대응해 국민의 격한 반발을 부른 경험이 있어 독도 문제에서 운신의 폭이 좁다는 분석도 있다. 반면 일본이 중국 러시아와 동시에 영토 마찰을 빚고 있기 때문에 한국과는 되도록 분쟁을 피하려 할 것이란 견해도 있다. 이달 말이나 늦어도 4월 초까지 검정 결과가 발표되는 교과서는 5월경 일반에 공개되고 8월 지역별 교육위원회와 일선 학교 채택 과정을 거쳐 내년도부터 정식으로 사용된다.도쿄=윤종구 특파원 jkmas@donga.com ▼ MB 日국빈방문도 어려워지나 ▼日 작년부터 타진… 韓“가시적 성과 필요”, 교과서문제 등 여론 살핀후 검토할 듯이명박 대통령은 1일 3·1절 기념사에서 자신의 일본 ‘국빈 방문(State Visit)’이나 히로히토(裕仁) 일왕의 방한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은 지난해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의 담화를 바탕으로 진정성 있는 행동과 실천에 나서야 한다”고 밝히며 사실상 교환 방문의 전제조건을 제시했다. 일본은 지난해부터 이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타진해 왔다. 지난해가 한일강제병합 100년이라는 연대기적 의미가 있는 만큼 과거사를 정리하고 미래로 나가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신중한 태도를 유지해 왔다. 일본을 국빈 방문하려면 그에 걸맞은 ‘가시적 성과’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기념사에선 이런 우리 정부의 태도를 더욱 확고히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 간 총리는 지난해 8월 10일 담화에서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와 더불어 조선왕조의궤 반환 등을 약속했으나 아직 이행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11월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양국 외교장관이 ‘일본으로 반출된 도서 1205책을 반환한다’는 내용의 협정에 서명했지만 일본 의회 비준 절차가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문제가 국빈 방문의 결정적 요인은 아니다. 최근 재외공관장회의 참석차 입국한 권철현 주일대사는 외교부 출입기자들과 만나 “일본 정기국회에서의 예산안 통과시기에 따라 도서 반환이 약간 늦춰질 수는 있겠지만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결정짓는 보다 중요한 변수는 3, 4월에 몰린 일본 정부의 중학교 검정 교과서 채택 문제가 될 것이라는 게 외교가의 관측이다. 정부는 일본 의회의 조선왕실의궤 반환 비준, 독도 영유권 주장을 담은 중학교 검정 교과서 채택 여부 등을 지켜보며 국내 여론을 살핀 뒤 일본 국빈 방문을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5월 일본에서 예정된 한중일 3국 정상회의는 이 같은 민감한 현안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기 때문에 예정대로 참석할 계획이다.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 카다피 정권이 막다른 골목에 몰림에 따라 ‘포스트 카다피’ 체제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반대파를 철저히 억압해온 카다피 정권의 특성상 아직 뚜렷한 조직이나 인물이 드러나지는 않는 상황. 하지만 카다피 체제의 고위 관료와 부족장들이 하나둘 반정부 시위대 편으로 돌아서면서 새 체제를 이끌 얼굴들도 수면으로 떠오르고 있다. 》 ▼ 무스타파 압델 잘릴 전 법무장관 ▼과도정부 지도자로 추대 전면부상 카다피 정권의 유혈진압을 비난하며 21일 법무장관직을 내던진 그는 25일 벵가지 시평의회에서 과도정부 지도자로 추대돼 새로운 리비아 건설을 위한 실질적인 절차를 주도하고 있다. 그는 장관직 사퇴 후 “1988년 270명이 사망한 미국 팬암기 폭파사건을 카다피가 직접 지시했다”고 증언하는 등 연일 폭로전을 펴고 있으며 “자유화된 리비아의 영토는 하나가 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 타리크 사드 후세인 대령 ▼반정부 시위대 트리폴리 진격 지휘 이번 반정부 시위를 이끌고 있는 핵심 인물로 꼽힌다. 트리폴리 진격을 위해 벵가지를 포함한 여러 지역에서 많은 사람을 동원하고 이들을 진두지휘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시사주간지 타임 인터넷판은 25일 이번 시위를 ‘카다피 대령과 후세인 대령의 대립’으로 묘사하기 까지 했다. 후세인 대령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시위는 군사쿠데타가 아닌 젊은이들의 봉기(uprising)”라며 “카다피 체제가 무너진 후 일시적으로 군대가 큰 역할을 하겠지만 우리가 바라는 것은 민주주의이지 군사체제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 압델 살람 잘루드 ‘마가리하’ 부족장 ▼관료 많은 ‘제2부족’ 수장포스트 카다피 체제에서 리비아의 특성상 군대보다 더 큰 힘을 갖고 있는 부족장들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리비아 부족 중에서 가장 먼저 “우리는 이제 카다피의 형제가 아니다”라고 선언했던 알와르팔라 부족이 주목된다. 600만 인구 중 100만여 명이 소속된 최대 부족이다. 1988년 팬암기 폭파범으로 종신형을 선고받은 압델바세트 알메그라히가 속했던 제2부족 마가리하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 일간 ‘더내셔널’은 “마가리하 부족에 고위급 정부관료와 보안 기관 출신이 많다”고 전했다.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3일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정권에 대한 강경 대응을 천명했다. 이를 신호탄으로 국제사회도 카다피 원수와 리비아 정부에 대한 제재 움직임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리비아의 유혈진압은 국제규범 위반”이라며 “행정부에 이번 위기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모든 대처방안(full range of options)을 준비하도록 지시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침묵해오던 오바마 대통령은 리비아 내 미국인들을 소개(疏開)하기 위한 선박이 트리폴리 항에 도착한 직후인 이날 오후 백악관에서 리비아 사태와 관련해 첫 연설을 했다. 그는 “리비아인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유혈사태는 너무도 충격적인 것(outrageous)으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사태”라며 “폭력은 반드시 중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은 카다피 국가원수의 이름을 직접 거명하거나 그의 사퇴를 요구하지는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28일 스위스에서 이번 사태에 대한 국제사회 대응방안을 논의한다고 밝혔다. 유럽연합(EU)은 카다피 원수와 가족이 유럽 각국에 갖고 있는 재산을 동결하고 리비아에 대한 각국의 경제협력 금지와 금수 조치 등을 담은 제재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르피가로 등 프랑스 언론이 전했다.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이명박 대통령은 20일 우리 군의 연평도 사격훈련에 대해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분단국가에서 영토 방위를 위해 군사훈련을 하는 것은 주권국가로서 당연한 일이다. 여기에는 누구도 개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후 임태희 대통령실장으로부터 사격훈련 결과 보고를 받고 이같이 강조한 뒤 “훈련이 끝난 후에도 북한의 도발에 대비해 만반의 대응태세를 갖춰주기 바란다”고 지시했다고 홍상표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이 전했다. 이 대통령은 앞서 이날 오전 행정안전부의 내년도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국방력이 아무리 강하고 우월해도 국론이 분열되면 상대(북한)는 그걸 활용하려 할 것”이라며 “가장 강한 안보, 최선의 안보는 단합된 국민의 힘”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북한은 (우리의) 국론이 분열됐을 때 우리를 넘본다. 튼튼한 안보는 튼튼한 국방력에만 있는 게 아니다. 국민이 하나가 될 때 가장 튼튼한 안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 당정청 수뇌부는 10일 일제히 새해 예산안 국회통과 및 후속조치 준비과정에서 나타난 공직사회의 ‘무신경함’을 질타했다. 청와대는 내년 예산배정 계획을 확정짓는 후속 국무회의를 이달 하순으로 잡으려던 당초 계획을 문제 삼았다. 여기엔 안보위기 속에 여야가 예산 처리를 놓고 국회에서 대격돌을 벌이는 비상한 상황에 걸맞은 공직사회의 책임감이 부족했다는 여권 수뇌부의 공감대가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 여당 지도부의 불호령에 부랴부랴 추가지원 결정 안상수 대표가 예산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중점적으로 문제 삼은 사업은 △템플스테이 지원 △재일본대한민국민단 지원 △춘천∼속초 동서고속화철도 사업 등이다. 안 대표는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여당이 불교계에 직접 약속한 (템플스테이) 예산이 삭감된 데 대해 책임져야 할 사람은 책임지게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한나라당은 ‘당 차원에서 약속한 예산안이기 때문에 반드시 반영해야 한다’고 했지만 기획재정부에서 (관련 예산을) 깎았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이것이 사실이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불교계의 강한 반발에 봉착한 여당은 10일 문화체육관광부가 운영하는 관광기금에서 추가 지원을 하기로 결정했다. 정부가 운영하는 사업성 기금은 증액이나 감액이 전체 기금의 20% 범위 내에서 이뤄질 경우 국회의 심사를 받지 않는다. 재일민단 지원 사업의 경우 올해 예산은 73억 원이었으나 정부가 제출한 내년 예산안에는 18억8500만 원만 편성됐다. 그러자 외교통상통일위 예비심사에서 의원들은 올해 수준으로 예산을 늘릴 것을 정부에 요구했다. 2012년부터 실시될 재외국민선거를 의식한 것이다. 하지만 8일 국회를 통과한 최종 예산안에는 최초 정부안보다 32억2500만 원 늘어난 51억1000만 원만 반영됐다. 결국 정부는 10일 재외동포재단 예산의 일부를 전용해 재일민단 지원 예산을 올해 수준에 맞추기로 했다. 춘천∼속초 동서고속화철도 사업의 경우 한나라당은 30억 원의 신규 예산 편성을 정부에 요구했으나 최종 예산에서 이 사업 지원 예산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결국 한나라당은 한국철도시설공단의 예산을 전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 차관회의 건너뛰고 국무회의 앞당겨 정부는 통상 화요일에 열리는 국무회의를 하루 앞당겨 월요일인 13일에 열기로 결정했다. 또 국무회의 안건 조율을 위해 사전에 열던 차관회의도 생략하기로 했다. 국회가 홍역을 치러 가며 통과시킨 예산의 배정계획을 하루라도 먼저 결정짓고 내년 업무를 시작하겠다는 청와대의 방침 때문이다. 청와대의 속도감 있는 후속조치 요구는 규정을 거론해 가며 ‘느긋하게’ 일정을 짠 행정부처의 일처리 방식에 임태희 대통령실장이 제동을 걸면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에 따르면 정부는 당초 국무회의 일정을 12월 하순으로 잡으려 했다. ‘차관회의=목요일’이란 관행 및 시행령에 필요한 입법예고 기간 등을 감안한 것이다. 정부는 처음에는 국무회의를 28일에 열 계획도 갖고 있었다. ‘난장판 국회통과’(8일) 후 무려 20일 뒤에야 내년도 예산배정 계획을 확정짓겠다는 이야기가 된다. 임 실장은 9일 이 같은 보고를 받고 “하루라도 빨리 예산을 확정짓기 위해 국회가 이런 일을 겪었는데 이래선 안 된다. 주말에 차관회의를 열어서라도 최대한 빨리 국무회의를 열라”는 취지의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내부 검토 끝에 ‘차관회의는 생략 가능하다’고 결론짓고 국무회의 날짜를 13일로 잡았다.○ 김 총리, 공직기강 확립 촉구 김황식 총리는 이날 국가정책조정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각 부처는 내년 예산이 조속히 집행되고, 중점법안 후속조치가 바로바로 이뤄질 수 있도록 지금부터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 달라”고 주문했다. 이어 그는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등 안보상 엄중한 상황이고, 대통령이 해외 순방 중”이라며 “전 공직자는 긴장감을 늦추지 말고 책임감 있는 근무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국회 국토해양위원회는 이번 정기국회에서 4대강 사업 예산을 놓고 충돌하느라 정부 예산안을 전혀 심의하지 않은 채 예산결산특위로 넘겼다. 하지만 국토위 소속 31명의 여야 의원 가운데 대다수가 뒤늦게 자신들의 지역구 이해관계가 걸린 예산을 챙겨달라고 예결위에 ‘민원’을 했다 거부당한 사실이 5일 밝혀졌다. 국토위는 국가가 시행하는 각종 건설사업 예산안에 의원들이 자신의 지역구 이해관계가 걸린 사업을 끼워넣을 수 있어 ‘노른자위’로 통한다. 국토위는 여야 의원들의 지역예산 배정안을 담은 자료를 예결위에 급하게 제출했으나 예결위의 자료집을 인쇄 및 제본하는 데드라인(지난달 30일)을 이미 놓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결국 국토위 소속 여야 의원들은 예결위에 ‘참고자료’ 형태로 3조 원이 훨씬 넘는 예산증액 자료를 제출했다. 이어 세부적인 예산안 조정을 시도하는 예결위 계수조정소위에 이 자료를 배포해 달라고 요청했다. 특히 4대강 사업을 반대했던 야당 의원들도 지역의 하천공사 사업 관련 예산의 증액을 많이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주영 예결위원장은 “해당 상임위에서 예산안을 심사도 하지 않고 나중에 예결위에 이런 식으로 자료를 제출해 반영해달라고 하면 잘못된 선례가 될 수 있다”며 국토위의 요청을 거부했다. ‘참고자료’를 반려한 것이다. 국토위 차원의 자료 제출이 무산되자 국토위 의원들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계수조정소위 소속 의원들과 개별 접촉해 “핵심적인 지역구 사업 예산만큼은 반영해 달라”며 읍소하고 있다. 지난해 국토위는 일단 상임위 차원의 예결소위를 가동해 4대강 사업 예산 이외 일반 예산은 모두 심사한 뒤 예결위로 넘겼다. 지난해 국토위 여야 의원들은 상임위 차원에서 지역구 민원 예산은 반영한 셈이다. 논란이 된 4대강 사업 예산은 국토위에서 야당의 반대가 거세자 한나라당이 이를 단독 처리한 이후 예결위로 넘겼다. 국토위 관계자는 “예결위에서 심사를 한 차례 하겠지만 전문성을 가진 소관 상임위가 정쟁 때문에 두 손을 놓은 채 예산심사를 하지 않고 뒤로는 지역구 예산 챙기기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비판했다.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