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기홍]해외 입양은 고아 수출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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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1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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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홍 국제부장
이기홍 국제부장
왜 우리 사회는 해외 입양을 ‘고아 수출’이라고 비하하는 걸까?

기자는 미국에서 특파원으로 일하면서 한국 등에서 입양한 자녀들을 지극한 사랑과 정성으로 키우는 부모를 많이 만났다. 일부러 장애아를 입양해 키우는 가정도 적지 않다.

아동병원 가운데 세계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 필라델피아 아동병원에서 동아일보 취재진이 만난 멀그루 씨 부부는 중국에서 입양하려는 아기가 입천장이 갈라지는 기형을 안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고민 끝에 부부는 입양을 결행했고 아기를 위해 병원을 찾았다.

한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병원에는 해외에서 입양돼온 아이 환자가 많다. 부모들이 장애가 있는 아이를 일부러 골라 입양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차피 장애를 안고 태어난 운명이라면 중국보다는 미국 중산층 가정에서 사는 게 아이를 위해 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먼 나라의 장애아를 데려다 정성을 기울여 키우는 이런 부모에게 한국에서는 해외 입양을 ‘고아 수출’이라고 비난한다고 하면 얼마나 상심할까.

우리 사회 해외 입양의 시작은 ‘고아 수출’의 측면이 컸다. 6·25전쟁 뒤 아이들을 거둘 여력이 없던 가난한 조국은 아이들을 해외로 보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한국 아기가 해외로 입양된다고 해서 이를 고아 수출로 볼 그런 삐딱한 외국 사회는 없다.

해외의 입양희망 부모 사이에서 한국 아이 선호도는 매우 높다. 엄밀한 관리, 80% 이상이 대학에 진학하는 우수한 자질 등 때문이다. 해외에서 한국 아이 입양은 조금 과장하면 ‘하늘의 별따기’로 불린다. 한국 정부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쿼터제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국내에는 입양될 가정을 찾지 못해 기다리는 아기가 넘쳐난다. 지난해 말 현재 입양가정을 찾지 못한 대기아동이 1800명에 달한다. 생후 3개월 이내 여아를 선호하는 경향 때문에 남아들은 시간이 갈수록 입양될 가능성이 희박해져간다.

특히 장애아의 국내 입양 기회는 정말 희소하다. 지난 10년간 국내 입양아 1만300명 가운데 장애아는 248명에 불과했다. 해외로 입양된 장애아는 5300명으로 전체 해외 입양아의 30%에 달한다. 장애아는 대부분 해외로 입양되는데 쿼터에 묶여 장애아들이 새 가정을 찾기는 더 어려워진 것이다.

물론 입양정책의 1순위인 국내 입양은 더욱 활성화되어야 한다. 아이들을 위해서도 한국 가정이 가장 바람직하다. 견제장치가 아예 없으면 일부 입양 알선 기관들이 국내 입양은 뒷전에 돌리고 수수료가 높은 해외 입양에만 매달릴 것이란 우려도 없지 않다. 그런 점에서 2007년 정부가 ‘국내 입양 활성화 대책’으로 쿼터제를 강화한 취지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후 국내 입양은 연간 10명 안팎 증가에 그쳤다. 해외 입양을 막는다고 국내 입양이 느는 것은 아닌 것이다.

결국 “고아 수출국이란 오명을 벗자”는 이데올로기에 발목 잡혀 수많은 아이가 입양 기회를 놓친 채 보육원에서 자라게 되는 구조다. 온 사회가 꾸준히 노력하면 장기적으론 국내 입양이 점차 늘겠지만, 아기들은 정책의 과도기적 기간에도 자란다. 각자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한 번밖에 가질 수 없는 소(小)우주들이다. 국가의 자존심도 중요하지만, 아기들의 인생이 더 소중하다. 해외 입양은 ‘고아 수출입’이 아닌 국적과 인종을 넘어선 사랑이다. 한 미국인 부모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

“하느님께서 지구 저 건너편에 데려다 놓으신 우리 아이를 찾아온 겁니다.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기홍 국제부장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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