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카다피’ 윤곽… 떠오르는 3인

  • Array
  • 입력 2011년 2월 28일 03시 00분


코멘트
《 카다피 정권이 막다른 골목에 몰림에 따라 ‘포스트 카다피’ 체제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반대파를 철저히 억압해온 카다피 정권의 특성상 아직 뚜렷한 조직이나 인물이 드러나지는 않는 상황. 하지만 카다피 체제의 고위 관료와 부족장들이 하나둘 반정부 시위대 편으로 돌아서면서 새 체제를 이끌 얼굴들도 수면으로 떠오르고 있다. 》
▼ 무스타파 압델 잘릴 전 법무장관 ▼
과도정부 지도자로 추대 전면부상


카다피 정권의 유혈진압을 비난하며 21일 법무장관직을 내던진 그는 25일 벵가지 시평의회에서 과도정부 지도자로 추대돼 새로운 리비아 건설을 위한 실질적인 절차를 주도하고 있다. 그는 장관직 사퇴 후 “1988년 270명이 사망한 미국 팬암기 폭파사건을 카다피가 직접 지시했다”고 증언하는 등 연일 폭로전을 펴고 있으며 “자유화된 리비아의 영토는 하나가 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 타리크 사드 후세인 대령 ▼
반정부 시위대 트리폴리 진격 지휘


이번 반정부 시위를 이끌고 있는 핵심 인물로 꼽힌다. 트리폴리 진격을 위해 벵가지를 포함한 여러 지역에서 많은 사람을 동원하고 이들을 진두지휘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시사주간지 타임 인터넷판은 25일 이번 시위를 ‘카다피 대령과 후세인 대령의 대립’으로 묘사하기 까지 했다. 후세인 대령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시위는 군사쿠데타가 아닌 젊은이들의 봉기(uprising)”라며 “카다피 체제가 무너진 후 일시적으로 군대가 큰 역할을 하겠지만 우리가 바라는 것은 민주주의이지 군사체제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 압델 살람 잘루드 ‘마가리하’ 부족장 ▼
관료 많은 ‘제2부족’ 수장


포스트 카다피 체제에서 리비아의 특성상 군대보다 더 큰 힘을 갖고 있는 부족장들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리비아 부족 중에서 가장 먼저 “우리는 이제 카다피의 형제가 아니다”라고 선언했던 알와르팔라 부족이 주목된다. 600만 인구 중 100만여 명이 소속된 최대 부족이다. 1988년 팬암기 폭파범으로 종신형을 선고받은 압델바세트 알메그라히가 속했던 제2부족 마가리하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 일간 ‘더내셔널’은 “마가리하 부족에 고위급 정부관료와 보안 기관 출신이 많다”고 전했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