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기홍]政-敎공존하려면 제자리로

  • Array
  • 입력 2011년 3월 10일 03시 00분


코멘트
이기홍 국제부장
이기홍 국제부장
어제 프랑스에서 들어온 짤막한 외신이 눈에 띄었다. 공공장소에서 이슬람 복장인 부르카나 니캅, 얼굴을 가리는 베일을 쓰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이 다음 달 11일부터 시행에 들어간다는 내용이었다.

지난해 프랑스는 이 법을 놓고 심각한 갈등을 겪었다. 여성인권 보호라는 명분과 종교 자유 침해라는 이슬람 측의 비판이 격렬히 맞섰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나서서 공개적으로 법안 지지의사를 밝히면서 갈등은 더해졌고 에펠탑 테러 위협설 등이 나도는 가운데 결국 법안은 10월 통과됐다. 하지만 막상 프랑스 기독교계는 이 문제에 절대적 중립을 지켰다. 시종일관 아무런 의견표명도 하지 않았다. 교회가 현실 정치 문제에 개입해선 안 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미국도 지난해 이슬람과 관련된 홍역을 앓았다. 미국 내 이슬람 신자들이 9·11테러 현장인 뉴욕 ‘그라운드 제로’ 인근에 이슬람커뮤니티 센터를 지으려 하자 기독교계가 격렬히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나섰다. 그는 “무슬림은 이 나라의 시민으로서 다른 모든 이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종교를 누릴 권리가 있다. 이는 사유지에 신앙의 장소를 지역 법령에 부합되게 건립하는 권리를 포함한다”고 천명했다. 그러면서 “여기는 미국이며 종교의 자유에 대한 신념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워싱턴 에피파니성당의 이덕효 신부는 9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당시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은 종교의 자유를 강조한 원론적인 내용이지만 실제론 대단히 용기 있는 발언이었다”고 평가했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기독교의 나라고 보수의 나라다. 가뜩이나 이슬람교도라는 유언비어에 시달리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하기 어려운 말을 한 것이다”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퓨리서치 조사 결과 여전히 18%의 미국인은 오바마 대통령이 이슬람교도라고 믿는 게 현실이다.

사르코지와 오바마 대통령의 종교 관련 대응을 단순 비교할 생각은 없다. 우연인지 어제 두 나라에서는 내년 대선 전망에 대한 외신이 동시에 들어왔다. 내년 4월 재선에 도전하는 사르코지 대통령은 우파에 대한 끈질긴 구애에도 불구하고 극우정당 후보에게 밀려 3위로 처져 있다. 곧 재선 캠프를 가동하는 오바마 대통령은 지지율이 50%를 웃도는 가운데 탄탄한 재선가도를 달리고 있다.

우리 사회도 요즘 일부 종교 간 마찰음이 커지고, 정교분리(政敎分離)의 원칙이 훼손되는 것 아니냐는 경고음이 들리고 있다. 궁극적 해결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어제 종교담당 기자에게 부탁해 종교학자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서울대 종교학과 윤원철 교수는 “공직자들은 공적인 장소에서는 특정 종교색을 띠어서는 안 된다”며 “이명박 대통령은 몸에 특정 종교가 배어 있다. 그런 게 문제가 된다는 인식을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학자들도 비슷한 의견이었다.

정치에 간여하기 시작한 종교가 ‘쿨’하게 제자리로 돌아가는 건 어렵다. 국가원수가 결자해지의 자세로 치유에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대통령, 그리고 일부 교계 인사는 미국 최초의 로마가톨릭신자 대통령인 존 F 케네디의 말을 새겨보기 바란다.

“미국은 정교분리가 절대적인 나라임을 나는 믿는다. 그 어떤 가톨릭 고위성직자도 (설령 대통령이 가톨릭 신자여도) 대통령에게 어떻게 행동하라고 얘기할 수 없으며, 어떤 목사도 신도들에게 누구에게 투표하라고 얘기하지 않으며, 어떤 교회나 교구도 어떤 공적인 기금이나 정치적 혜택을 받지 않는 곳임을 나는 믿는다.”(1960년 9월 12일 연설)

이기홍 국제부장 sechep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