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기홍]매보다 무서운 교사 추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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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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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홍 국제부장
이기홍 국제부장
“디스 이즈 더 라스트데이. 리브 인 언 아워(This is the last day. Leave in an hour·해고됐으니 방 빼).”

미국 텍사스 주의 소규모 업체에 다니던 A 씨는 해고 통보를 받았다. 비인간적이고 무례한 방식이었다. 하지만 순순히 짐을 꾸렸다. 보스의 멱살을 잡는 대신 “그동안 고마웠다. 다시 고용을 확대하게 되면 불러 달라”고 인사했다. 왜 속 터지게 참았을까.

“새 직장 취업 인터뷰를 하면 분명 인사담당자가 전 직장에 나에 대한 평판을 물을 텐데, 좋은 인상을 남겨야지요.”

서구사회에서 평판과 추천의 힘은 막강하다. 취업은 물론이고 대학입시에서도 교사가 추천서에 써넣는 한마디가 수능 성적보다 중요하다.

A 씨 에피소드를 듣는 순간, 체벌금지 이후 말을 듣지 않는 학생들을 통솔할 무기로 교사 추천서를 대폭 활성화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입·대입 지원 때 추천서는 물론이고 저학년 때부터 교사들이 작성해 놓은 행동·품성 관찰기록을 첨부해 입학사정의 필수자료로 삼도록 의무화하면 어떨까. ‘2학년 1학기-다른 학생을 괴롭히고 교사 지시를 거부’란 내용이 대입원서에 따라가리란 걸 안다면 안하무인의 행동을 하긴 어렵지 않을까.

이런 의견을 몇몇 교육전문가에게 얘기했더니 다들 웃었다. 현실을 모르는 생각이란 거다. “교사가 공정하게 추천서를 써줄 것이란 기대를 할 수 없다.” “점수가 아닌 추천서상의 평가로 인생이 뒤바뀐다면 소송이 난무할 것이다.”

선진국 일부 사회도 교권 상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일본에선 교사에게 윽박지르는 학부모를 일컫는 ‘몬스터 페어런츠’란 말이 있을 정도다. 영국에서는 학생의 비행에 못 견뎌 사직하는 신임 교사가 속출한다.

하지만 체벌 없이도 교권을 지켜가는 사회도 많다. 미국에서 일부 낙후한 학교를 제외하면 학생이 교사에게 대드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 미 텍사스대의 이길식 교수는 가정교육에서 원인을 찾는다.

“얼마 전 (미국)교회에서 한 아이가 정신없이 문을 열고 달려 나갔다. 자칫하면 차에 치일 수 있는 위험한 장난이어서 따끔히 야단쳤다. 그랬더니 그 어머니가 와서 몇 번이고 ‘고맙다’고 하더라. 한국 식당에선 정신없이 뛰는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면 부모에게 욕설을 듣기 십상이었다.”

교사의 권위와 자긍심이 높은 나라로 핀란드가 꼽힌다.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 레이코 라우카넨 씨에게 비결을 물어봤다.

“1주 동안 매끄럽게 수업을 진행해야 교원실습 과정을 통과할 수 있다. 수업 시간에 떠들거나 교사에게 대드는 상황이 빚어질 때 적절히 대처하는지 본다. 이 과정에서 탈락하면 실습생은 대학(원)으로 돌아가 교육을 다시 받는다. 이런 시스템을 통해 학생을 다스리는 ‘기술’을 습득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교실 현장 혼란의 1차 책임은 교사에게 있다고 강조한다.

“병원 응급실을 생각해 보자.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환자도 있을 것이고, ‘왜 우리 아이부터 치료 안 하느냐’고 억지 쓰는 보호자도 있을 것이다. 이들 때문에 응급실이 소란스럽다면 이건 의사, 간호사 잘못이다. 교실도 마찬가지다.”

문제를 한 번에 풀 비책은 없다.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체벌 부활은 ‘글로벌 코리아’의 선택지가 될 수 없다. 교사 추천서 강화 등 모든 보완책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선진국 사회들을 벤치마킹하면서 풀어가야 한다.

이기홍 국제부장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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