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윤

이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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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4-04-07~2024-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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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국인 관광 급증에… 생기 찾은 명동 상권, 백화점 매출도 ‘껑충’

    “블랙핑크 지수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분식집에 가보려고 한국에 왔어요!”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명동에서 만난 태국인 페리 씨(25)는 초록색 분식 접시에 차려진 떡볶이와 김치볶음밥 사진을 보여주며 활짝 웃었다. 이날 명동 거리는 외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거리 양쪽에는 길거리 음식을 파는 간이 트럭이 끝없이 늘어서 있었고, 앞으로 걸어가려면 줄을 선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야 했다. 서서 음식을 먹는 사람들과 지나가려는 사람들이 뒤엉켰다. 외국인 관광객에게 인기가 많은 칼국수집 ‘명동교자’는 오후 6시에 이미 만석이었고, 관광객 4개 팀이 대기 중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으로 지난해까지만 해도 점포들이 모두 문을 닫아 을씨년스러웠는데, 같은 곳인지 헷갈릴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엔데믹 국면과 한일 관계 개선, 중국발 입국자 유전자증폭(PCR) 검사 해제 등으로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대폭 늘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올해 1, 2월에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91만3677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8만1850명) 대비 5배가량으로 늘었다. 국가별로 일본(16만1293명) 대만(9만7447명) 미국(9만5324명) 중국(7만830명) 태국(5만3965명) 베트남(5만449명) 홍콩(4만3014명)의 순으로 많았다. 특히 홍콩은 춘제 이후인 2월이 관광 비수기임에도 불구하고 전년도 2월 대비 관광객이 약 60배로 폭증했다. 대만 역시 한국 관광 수요가 늘어난 데다 2월 평화기념일 연휴의 영향으로 방한객이 전년 동월 대비 56배로 늘었다. 코로나19로 급감했던 외국인 관광객 대상 매출도 기지개를 켜고 있다.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의 1, 2월 외국인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1배로 증가했다.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은 올해 들어 3월 22일까지 전년 동기 대비 외국인 매출이 8.5배로 늘었다. 명동 화장품 가게 점원 김정은 씨(37)는 “문을 닫았던 가게들이 지난해 가을부터 조금씩 다시 영업을 하기 시작했다. 올해 들어 주말에는 코로나 이전처럼 외국인 관광객이 많아 매출이 회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일본, 대만 등 22개국 외국인에 대해 전자여행허가제(K-ETA)를 내년 말까지 면제한다고 지난달 29일 밝혔다. 5월부터는 유럽, 미국 등 34개국 입국 비자 소지자가 환승 시 지역 제한 없이 최대 30일간 체류할 수 있도록 했다. 한국관광공사는 지난해 7월 외국인 관광객들이 다양한 한국 콘텐츠를 체험해 볼 수 있는 한국관광홍보관 ‘하이커 그라운드’를 열고 관광객 유치에 나서고 있다. 박경숙 한국관광공사 관광홍보관운영팀장은 “올해 2월 기준 하이커 일평균 방문객 수는 2088명이며 이 중 외국인이 30% 정도를 차지한다”며 “국제 관광 시장이 정상화되면 한류팬을 비롯해 외국인 관광객의 방문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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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팝 등 新한류 열풍 타고… 일본 MZ세대 “한국 가고 싶어요”

    《서울 중구 명동에서 27일 만난 일본인 관광객 아이미 씨(21)와 지히사 씨(21)는 또렷한 한국말로 “트와이스 너무 예뻐요”라고 외쳤다. 한국에 3박 4일 일정으로 놀러온 두 사람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바로 명동의 한 면세점. 이곳에 트와이스 멤버들의 핸드프린팅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미 씨는 핸드프린팅에 손을 대고 있는 기념사진을 보여주며 “트와이스를 좋아하다 보니 한국도 좋아하게 돼 여행까지 오게 됐다”고 말했다. 일본 오사카에서 온 히로 씨(28)는 한손엔 무거운 짐 가방을, 다른 한손에는 핫도그를 쥐고 있었다. 이날 서울 성동구 서울숲에서 ‘방탄 벤치’ 인증샷을 찍고, 유명 베이글 맛집을 방문해 30분 넘게 줄을 서 베이글을 구입한 뒤 숙소로 가는 길이었다. 그는 “지난해 방탄소년단(BTS)에 뒤늦게 빠진 뒤 멤버들이 즐겨 먹는 한국 음식이 실제로 어떤지 늘 궁금했다”며 “유명한 관광지도 좋지만 현지인 ‘핫플’에서 한국의 힙한 감성을 느껴보는 게 이번 여행의 목표”라고 했다.》한류 열풍의 시초 격인 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 NHK 위성에서 2003년 4월 3일 처음 방영된 지 꼭 20년이 지난 지금, 일본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중심으로 ‘제4차 한류’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BTS가 최근 일본 골드디스크 대상에서 10관왕을 달성한 데 이어 르세라핌, 스트레이키즈 등 K팝 아이돌 그룹들이 오리콘차트 부문마다 1위에 오르내리며 인기를 끌고 있다. 한류가 재확산되면서 한국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이 다시 늘어날 것이란 기대도 커지고 있다.● “역동적 K팝, 고단한 日 MZ세대 탈출구” 제1차 한류는 2003년 ‘겨울연가’를 계기로 일본 중년 여성들이 ‘욘사마’(배용준) 등 한국 드라마에 열광한 데서 시작했다. 이후 2010년대 동방신기를 비롯한 아이돌 그룹이 현지 투어 공연을 하며 제2차 붐을 일으켰고, 팬데믹 기간 K팝과 함께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를 통해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등이 인기를 얻으며 제3차 열풍을 이어갔다. 최근에는 가장 보수적인 문화 분야로 꼽히는 음식과 패션 등 라이프스타일 전반으로 확대된 추세다. 일본 내 재일교포가 세 번째로 많은 고베 지역에서는 한국 총영사관과 한인 사회가 주축이 돼 효고현과 함께 ‘아시안 파크’ 출범을 준비 중이다. 제1, 2차 한류를 일본 중년층이 이끌었다면 최근 열풍을 주도하는 건 MZ세대다. 이들은 반한 감정이 기성세대에 비해 현저히 낮고, 어릴 적 여행 등으로 한국 문화에 친숙한 세대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과거엔 한국과 일본이 수직적 관계로 인식됐지만 일본 경제가 30년간 침체된 반면 한국은 급속 성장하면서 젊은층은 양국을 대등한 관계로 느낀다”며 “1970, 80년대 세계적으로 전성기를 누렸던 일본 문화가 경제적 쇠퇴와 함께 정체되면서 젊은층이 자국 콘텐츠에만 만족하기는 어려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류 열풍의 기저엔 일본 젊은층이 느끼는 불안과 좌절이 깔려 있단 분석도 나온다. 장기적인 불황 속에서 자라난 일본의 20, 30대는 ‘무기력하다’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현실적으로 사고해 ‘사토리(득도) 세대’라고 불린다.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는 “전망이 불투명한 젊은층이 현실의 무기력을 탈피할 수 있는 탈출구로 한류를 낙점한 것”이라며 “동일한 아이돌 문화여도 아기자기하고 소위 ‘소녀풍’인 일본 현지 음악 대신 역동적이고 화려한 K팝 문화를 즐기는 것도 그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두 나라는 근현대 문화 코드가 닮아 공감하기 좋다는 점도 작용했다. 황진미 대중문화 평론가는 “우리나라 근대 문화가 일본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서로의 문화 콘텐츠에 친밀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며 “1970, 80년대 이후 국내 문화가 자기 색을 갖고 발전하면서 일본 젊은층이 서로 ‘비슷하고도 다른’ 점에서 재미를 느끼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특히 20년 전 ‘욘사마’ 팬들이 지금 2030의 엄마 세대가 되면서 한류는 현지 젊은층에게 더욱 자연스러운 문화가 됐다”고 덧붙였다. 2, 3년 사이 K콘텐츠가 아시아를 넘어 서구권에서 인기를 얻은 것도 제4차 한류 확산에 영향을 미쳤다. 동아시아 문화를 연구하는 김은영 인하대 중국학과 교수는 “통상 ‘문화 수도’로 여겨지는 북미와 유럽에서 K콘텐츠를 즐기는 현상이 일본 내에서 한류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자리 잡게 했다”며 “한류가 더 이상 마니아들만 즐기는 소수 문화가 아니라 당당하게 즐길 수 있는 주류 문화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올 1, 2월 외국인 관광객 중 일본인 비중 최대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우리나라를 찾는 일본인 관광객 수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올해 1, 2월 한국을 찾은 일본인 관광객 수는 16만1293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4096명)보다 40배로 급등했다. 같은 기간 대만인(9만7447명), 미국인(9만5324명), 중국인(7만830명)을 크게 앞질러 일본인 관광객은 전체 외국인 관광객 중 가장 큰 비중(17.6%)을 차지했다. 서울 마포구 홍익대 앞 거리에서 만난 일본인 나카지마 사야카 씨(22)는 처음 한국을 찾았다고 했다. 그는 YG엔터테인먼트 소속의 한일 보이그룹 ‘트레저’의 팬이다. 그는 “트레저를 좋아하면서 한국에도 관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일본 학교의 한국 수학여행이 팬데믹 이후 3년 만에 재개되면서 지난달 21일에는 일본 구마모토현 루테루 고등학교 학생 37명과 교사 2명 등 총 39명이 수학여행으로 한국을 찾았다. 이들은 5일간 전북 전주 한옥마을, 서울 경복궁과 롯데월드 등을 구경했다. 최근 우리나라를 여행하는 일본인 관광객은 팬데믹 이전에 비해 젊어지고, 방문지가 다양해진 것이 특징이다. 양경수 한국관광공사 일본팀장은 “일본 최대 온라인 여행 사이트 라쿠텐트래블에 따르면 ‘한국 여행’을 가장 많이 검색하는 연령대가 3년 전 40∼60대에서 한류 팬인 10, 20대로 바뀌었다”며 “20년 전 일본 중장년 여성 관광객이 드라마 촬영지를 구경했다면 지금은 젊은 여성들이 한국식 패션과 메이크업으로 꾸미고 성수동 등 서울 곳곳의 핫한 거리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한일 정상회담에 이어 5월 8일 일본 정부가 해외 입국자를 대상으로 유전자증폭(PCR) 검사 의무를 해제하면 관광객 유입은 더욱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일본 다이이치세이메이케이자이(第一生命經濟)연구소에 따르면 2004년 한 해 ‘겨울연가’ 열풍으로 유입된 일본인 관광객이 우리나라에서 유발한 경제적 효과는 총 1조1906억 원에 달했다. 한 여행업계 관계자는 “한류에 애정을 품고 온 여행객은 기존에 ‘가깝고 싸서’ 오던 이들보다 씀씀이가 큰 편”이라며 “5월 8일 일본 PCR 검사 의무 해제에 앞서 현지 한류 열풍을 관광 수요로 전환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장실 한국관광공사 사장은 “일본에서는 한류 20주년을 맞아 다양한 방한 캠페인을 준비 중이다. 중국권에서는 세대별 타깃 마케팅을, 미주에선 한류 콘텐츠를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김 사장은 “국가별 맞춤형 마케팅을 통해 올해 외래 관광객 1000만 명 유치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밝혔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 2023-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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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미제라블-노인과 바다… 창작 판소리극으로 “얼쑤”

    세련되고 말랑해진 창작 판소리가 연달아 무대에 오르고 있다. 1980, 90년대생 젊은 소리꾼들이 앞장서 판소리를 다양한 장르와 결합하고 TV 예능 프로그램에도 진출하며 관객의 저변을 넓히고 있다. 우선 해외 고전을 재해석한 판소리극이 눈길을 끈다.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에서 다음 달 8일 개막하는 ‘판소리 레미제라블―구구선 사람들’은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을 재창작한 작품이다. 뮤지컬 ‘아리랑’(2017년)의 차옥비 역으로 관객의 눈도장을 찍었던 소리꾼 이승희(41)가 판을 이끈다. 원작의 시민혁명은 의병 활동으로, 장발장은 장 씨로 등장하는 등 서사와 인물을 한국식으로 바꿨다. 소리꾼과 고수 외에 키보드, 드럼 등 현대 악기가 어우러진다. 인디밴드 ‘아마도이자람밴드’로 활동하며 팬층을 다진 소리꾼 이자람(39)도 어니스트 헤밍웨이 소설 원작의 창작 판소리극 ‘노인과 바다’(4월21∼22일·아트센터인천)를 공연한다. 국내 현대문학도 적극 활용한다. 창작 판소리극 ‘체공녀 강주룡’(3월 31일∼4월 2일·서울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은 박서련 작가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평양의 고무공장에서 일하며 독립운동가 겸 노동운동자로 활동한 실존 인물 강주룡(1901∼1931)의 일대기를 그렸다. 정지혜(37), 강나현(29) 등 젊은 소리꾼들이 창작 판소리 28곡을 노래한다. 판소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소리꾼을 찾는 매체도 늘었다. ‘국악계 아이돌’로 불리는 소리꾼 김준수(32)는 국립창극단 동료 단원인 유태평양(31)과 함께 KBS ‘불후의 명곡’을 비롯해 TV 예능 프로그램에 꾸준히 출연하고 있다. 김준수는 지난해 말 뮤지컬 ‘서편제’에서 뮤지컬 관객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소리꾼 이소연(39)도 뮤지컬 ‘서편제’ ‘아리랑’에서 실력을 뽐냈다. 판소리가 다변화하는 건 우리 문화에 대한 국내외 젊은층의 관심도가 높아진 것과 관련이 깊다. 인터파크에 따르면 지난해 말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에서 공연된 판소리극 ‘노인과 바다’의 예매자 중 20, 30대의 비율은 54%에 달했다. ‘판소리 레미제라블…’ 역시 30일 기준 20, 30대 예매자의 비중이 50%를 차지한다. ‘판소리 레미제라블…’의 유현진 총괄PD는 “판소리를 단순히 전통음악이 아니라 공연예술 자체로 즐기는 20, 30대 관객이 많아졌다”며 “해외에선 2017년 퓨전 국악 그룹 씽씽밴드가 이름을 알린 것을 시작으로 최근 K팝 열풍이 겹치며 국악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팬데믹 기간 온라인 플랫폼에서 수준 높은 판소리 콘텐츠가 많아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박인혜 작창가는 “과거 지상파 방송 클립영상에 그쳤던 판소리 콘텐츠가 최근 3년 사이에 질적, 양적으로 크게 성장하면서 젊은 관객이 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며 “젊은층에게 판소리가 고루한 것이 아니라 새롭고 세련된 예술로 인식되면서 창작자들 역시 독창적인 시도를 활발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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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미제라블’을 판소리로… 젊은 소리꾼 앞장서 말랑해진 판소리

    K컬처에 대한 국내외 관심도가 급등하면서 세련되고 말랑해진 창작 판소리가 무대에 줄줄이 오르고 있다. 1980~1990년대생 젊은 소리꾼들이 앞장서 판소리를 다양한 장르와 결합하고 TV 예능 등 다른 매체에도 진출하며 관객 저변을 넓히는 추세다.다음달 8일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에서 개막하는 ‘판소리 레미제라블-구구선 사람들’은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을 재창작했다. 뮤지컬 ‘아리랑(2017)’의 차옥비 역으로 관객 눈도장을 찍었던 1982년생 소리꾼 이승희가 판을 이끈다. 원작의 시민혁명은 의병 활동으로, 장발장은 장씨로 등장하는 등 서사와 인물을 한국에 맞게 바꿨다. 소리꾼과 고수 외에 키보드, 드럼 등 현대 악기가 협연한다. 해외 고전을 재해석한 판소리극도 다양하게 쏟아지고 있다. 인디 밴드 ‘아마도이자람밴드’로 활동하며 팬층을 다진 이자람(39)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원작의 창작 판소리극 ‘노인과 바다(4월21~22일·아트센터인천)’를 공연한다. 앞서 창작 뮤지컬 ‘아랑가’, ‘적벽’ 등으로 주목받은 작창가 겸 소리꾼 박인혜(39)는 올해 초 19세기 프랑스 작가 기 드 모파상의 단편소설을 토대로 한 ‘판소리 쑛스토리-모파상 편’을 선보였다. ‘보석’을 비롯한 모파상의 단편 3권을 엮어 1인극으로 풀어냈다. 국내 현대문학도 적극 활용되고 있다. 창작 판소리극 ‘체공녀 강주룡(3월31일~4월2일·서울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은 박서련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평양의 고무공장에서 일하며 독립운동가 겸 노동운동자로 활동했던 실존 인물 강주룡의 일대기를 다룬다. 새로운 형태의 판소리를 지향하는 ‘판소리공장 바닥소리’ 소속 정지혜(37), 강나현(29) 등 젊은 소리꾼들이 창작 판소리 28곡을 노래할 예정이다. 판소리가 다변화하는 건 우리 문화에 대한 국내외 젊은층의 관심도가 높아진 것과 관련된다. 30일 인터파크티켓에 따르면 지난 연말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에서 공연된 ‘노인과 바다’의 예매자 중 20, 30대의 비율은 54%에 달했다. ‘구구선 사람들’ 역시 2030 예매자가 50%를 차지하고 있다. 유현진 ‘구구선 사람들’ 총괄PD는 “팬데믹 이전에 비해 판소리를 단순 ‘전통음악’이 아니라 공연예술 자체로 즐기는 2030대 관객이 많아졌다”며 “해외에선 2017년 씽씽밴드가 이름을 알린 것을 시작으로 최근 K팝 등 열풍이 겹치며 국악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걸 체감한다”고 말했다. 판소리에 화제성이 더해지자 소리꾼을 찾는 매체도 자연스럽게 늘었다. 젊은 소리꾼들은 최근 정통 판소리 이외 장르와 매체에 진출하며 대중의 이목을 모으고 있다. 국립창극단 소속 김수인(28)은 팝페라 경연 프로그램에서 다채로운 소리를 들려주는 중이다. ‘국악계 아이돌’로 불리는 소리꾼 김준수(32)는 지난해 말 뮤지컬 ‘서편제’에서 뮤지컬 관객에게 눈도장을 찍었으며 지난달 음악 예능 방송에서 활약하며 주목을 받았다. 팬데믹 기간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에서 수준 높은 판소리 콘텐츠가 많아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박인혜 작창가는 “과거 공중파 방송 클립영상 등에 그쳤던 판소리 콘텐츠가 불과 3년 사이에 질적, 양적으로 크게 성장하면서 젊은 관객의 접근성이 높아졌다”며 “젊은층에게 판소리가 고루한 것이 아닌 새롭고 세련된 예술로 인식되면서 창작자들 역시 전승과 보존 이상의 예술적 활동을 활발히 하는 추세”라고 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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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뮤지컬 ‘영웅’, 14년만에 누적 관객 100만명 돌파

    안중근 의사의 생애 마지막 1년을 그린 뮤지컬 ‘영웅’이 ‘명성황후’에 이어 국내 대형 창작뮤지컬 사상 두 번째로 관객 100만 명을 돌파했다. 공연제작사 에이콤은 ‘영웅’이 28일 기준 누적 관객 100만 명을 넘어섰다고 29일 밝혔다.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을 맞아 2009년 10월 26일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초연된 지 14년 만이다. ‘영웅’은 2004년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의 제안을 시작으로 구상 및 제작 기간 5년을 거쳐 탄생했다. 창작진은 중국 다롄과 하얼빈,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등을 수차례 답사하며 안 의사의 행적을 담아냈다. 2011년 미국 뉴욕, 2015년 중국 하얼빈에서도 공연됐다. 지난해에는 동명의 뮤지컬 영화로 만들어져 326만 명이 관람했다. 뮤지컬 ‘영웅’은 5월 21일까지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공연된다. 7만∼15만 원.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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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대-객석 경계 허물자… 관객들이 춤춘다

    새까만 옷을 입은 배우들이 팔꿈치까지 소매를 걷어 신호를 보내자 관객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관객들은 빠른 박자의 노래에 맞춰 고개와 발끝을 까딱거렸다. 배우가 장막을 열어젖혀 너머의 공간을 가리키자 관객들이 그 방향으로 걸었다. 네 개로 나뉜 각각의 공간에는 ‘1000년에 한 번 열리는 차원의 틈으로 소환된 네 명의 영혼’이 자신들의 장례식을 다시 치르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 금천구 금나래아트홀에서 17일 공연된 ‘차차차원이 다다른 차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이 함께 작품을 만드는 관객 참여형 뮤지컬이다. 총 관객 80여 명이 공연 시작 전 극장 로비에 모인 뒤 안내자 역할인 까마귀 역 배우들의 호명에 따라 입장했다. 객석은 텅 비워둔 채 관객들은 빠짐없이 무대에 올랐다. 무대는 장막을 통해 4칸으로 나뉘어 다른 칸을 볼 수는 없지만 노래, 발걸음 등 소리로 서로 인지하고 소통할 수 있다. 작품은 대사 없이 노래로만 전개된다. 현대음악과 힙합이 섞인 듯한 7곡의 넘버는 가사와 멜로디보다 리듬에 집중했다. 관객은 원치 않은 방식으로 장례를 치렀던 주인공들이 어떤 삶을 살고, 어떻게 죽었는지를 온몸으로 따라가며 자신의 인생을 살펴보게 된다. 안무도 간단해 관객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관객은 서 있어도 되고 배부받은 손수건을 깔고 바닥에 앉아 있어도 된다. 작품은 올해 1월 제59회 동아연극상 새개념연극상을 수상한 극단 ‘코끼리들이 웃는다’와 LG아트센터가 공동 제작했다. 18일까지 열린 이틀간의 공연은 모두 매진됐다. 공연은 다음 달 15∼23일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 U+스테이지로 옮겨 열린다. 전 석 4만5000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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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대 휘몰아치는 파도… 흔들리는 조각배 같은 인생

    하얀 장막을 친 듯 무대 위 억수가 몰아쳤다. 방파제에 부딪친 파도는 무대 옆과 뒤에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와 관객 귓가에서 철썩였다. 만선을 꿈꾸는 가난한 어부 곰치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에도 고집스럽게 바다로 나갔다. 잘살아보겠다는 그의 간절한 마음은 강풍에 찢길 듯 펄럭이는 오방색 만선기 앞에서 절규로 돌변한다. 서울 중구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16일부터 공연 중인 연극 ‘만선’의 한 장면이다. 1964년 극작가 천승세가 쓴 희곡을 국립극단이 2021년 창단 70주년을 맞아 선보였다. 이번 공연은 2년 만의 재연이다. ‘만선’은 1960년대 남해안의 작은 섬마을에 사는 곰치네 가족이 거친 숙명과 자본가의 횡포로 겪는 비극적 삶을 다룬다. 평생을 배 타는 일에 바쳤지만 이 때문에 모든 것을 잃는 곰치 역은 배우 김명수가, 그의 아내 구포댁 역은 정경순이 맡았다. 강인하면서 재치 있는 구포댁은 “배암 섯바닥처럼 비양질 헌다(뱀 혓바닥처럼 비아냥거린다)” 등 전라도 방언으로 가득 찬 대사를 차지게 구사하며 말맛과 극적 재미를 더한다. ‘만선’의 무대는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최대한 현실적으로 살려냈다. 2∼3t에 달하는 빗줄기가 무대에 휘몰아치는 마지막 장면은 작품의 백미로 꼽힌다. ‘만선’ 무대는 제42회(2005년), 제55회(2018년) 동아연극상 무대미술상을 수상한 이태섭 디자이너가 맡았다. 명동예술극장에서 22일 만난 그는 “무대 뒤편에 있는 총 5t 용량의 물탱크에 저장된 물을 호스로 끌어와 천장에 일렬로 설치된 강수장치로 무대에 흩뿌린다”며 “빗물은 곧장 경사를 타고 내려와 무대 아래 설치된 수조에 고이도록 설계했다”고 말했다. 이어 “무대 바닥 표면이 거칠고 여러 겹 코팅된 덕에 공연 후 1시간이면 마른다”고 덧붙였다. 극 전체에 난파선 느낌을 주기 위해 무대 바닥을 송판으로 제작했다. 이 디자이너는 “무대의 돌도 스티로폼 모형이 아니라 쌀 한 가마니 무게에 달하는 실제 돌”이라고 했다. 나혜민 무대감독은 “안전을 위해 강수장치는 전기 설비보다 낮은 곳에 배치했다”고 말했다. 4월 9일까지, 3만∼6만 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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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대 위 휘몰아치는 폭풍우, 철썩이는 파도…사회 현실 그린 ‘만선’

    먼 곳에서 잔잔한 파도소리가 들려온다. 찰싹이는 소리 속 갈매기 울음도 껴있다. 평화로운 어촌 마을 뒤편에선 만선을 뜻하는 오방색 깃발이 잔바람에 나부낀다. 부둣가에 가난한 어부 곰치네 가족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이 모여 굿을 펼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기필코 만선일 것”이라는 무당의 말에 환호하던 이들의 간절한 마음은 거친 숙명과 선주의 횡포 앞에서 이내 절규로 돌변한다. 16일부터 서울 중구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중인 연극 ‘만선’의 도입부다. 극작가 천승세가 쓴 희곡을 국립극단이 2년 전 창단 70주년을 맞아 선보인 작품이다. ‘만선’은 1960년대 남해안의 작은 섬마을에서 만선을 꿈꾸는 곰치네 가족의 비극적 삶을 이야기한다. 평생을 골몰한 ‘배 타는 일’ 때문에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곰치 역은 배우 김명수가, 그의 아내 구포댁 역은 정경순이 맡았다. 약 60년 전 초연된 작품이지만 자본가의 횡포, 세대 간 갈등을 다룬 장면 등은 오늘날의 사회상과도 맞닿아있다. 당시의 말투를 생생하고 구수하게 담아낸 대사들은 ‘만선’의 묘미다. “부서(보구치) 떼가 사태라우” 등 토속적인 단어와 말투는 다소 낯설게 들리기도 하지만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배경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강인하면서 재치 있는 여성 주인공 구포댁은 “배암 섯바닥처럼 비양질 헌다(뱀 혓바닥처럼 비아냥거린다)” 등 방언 빼곡한 대사를 찰지게 구사해 말맛과 극적 재미를 더했다. 2~3t에 달하는 빗줄기가 무대에 휘몰아치며 거친 폭풍우를 구현한 엔딩은 공연의 백미로 꼽힌다. ‘만선’ 무대는 제55회(2018년), 제42회(2005년) 동아연극상에서 무대미술상을 수상한 이태섭 디자이너가 2021년 초연과 재연 디자인을 모두 맡았다. 그는 “보이지 않는 공기의 흐름마저 무대 위에 재현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무대를 구상한다”며 “올해 공연에서는 백척간두의 위험함과 비극성을 강화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초연에선 굵은 비만 내렸다면 이번엔 자욱하게 날리는 안개비 장치를 추가해 위태로움을 강조했다. 엔딩 장면에선 특별 제작한 강풍기 1대를 포함해 총 4대의 서큘레이터를 돌린다. 무대 끝자락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곰치네 집의 양철지붕은 몰아치는 비바람에 하릴없이 흔들리며 관객의 귀에 둔탁한 소리를 남긴다. ‘만선’이 사회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사실주의 희곡인 만큼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을 최대한 현실적으로 살려낸 무대도 볼거리다. 이 디자이너는 “극 전반에 난파선 느낌을 주기 위해 무대 바닥 전체를 단가 높은 송판으로 제작했다”며 “배우들이 앉거나 발을 올리는 돌 역시 스티로폼 모형이 아니라 쌀 한가마니 무게에 달하는 실제 돌”이라고 말했다. 방파제에 부딪친 듯 포물선을 그리며 철썩이는 파도는 무대 뒤편 스탭들이 직접 바가지로 물을 흩뿌려 표현한다. 배우들이 흠뻑 젖을 정도로 물이 사용되는 만큼 안전성을 높이려는 심혈도 기울였다. 나혜민 무대감독은 “공연 중 사용된 물이 새지 않도록 무대 하단 전체를 빈틈없는 수조로 만든 뒤 방수포와 비닐로 3~4겹 감쌌다”며 “강수장치 역시 조명기를 비롯한 전기 설비보다 낮은 위치에 설치해 물이 닿지 않도록 했다”고 말했다. 이어 “무대 바닥은 거친 질감을 낸 뒤 여러 겹 코팅함으로써 미끄러움을 최소화했고 공연 후 1시간이면 물은 전부 마른다”고 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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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우 이다해-가수 세븐 5월 결혼

    배우 이다해(39)와 가수 세븐(본명 최동욱·39)이 8년 연애 끝에 결혼한다. 이다해와 세븐은 각각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을 통해 5월 6일 결혼식을 올린다고 20일 밝혔다. 이다해는 웨딩 사진을 공개하며 “반려자에게 좋은 아내로서 더욱 배려하며 큰 힘이 되겠다”고 했다. 세븐은 자필 편지를 통해 “가장이자 남편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살겠다”고 밝혔다. 이다해는 드라마 ‘낭랑 18세’(2004년), ‘마이걸’(2005년), ‘추노’(2010년) 등에 출연했고, 세븐은 2003년 ‘와줘’로 데뷔해 ‘열정’, ‘라라라’로 인기를 끌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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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볼 수 없어야 보이는 아름다움에 관하여

    ‘어둠은 빛의 존재를 반증한다.’ 누군가에게는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어떤 말이 오랜 세월 무수한 사람의 입을 거쳐 내려온 데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저자는 “클리셰란 진실의 아주 가까운 친척이고 통찰의 보급형 유사품”이라며 독자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한쪽 눈의 시력을 잃은 후 나는 더욱 살아있다고 느꼈다. 이 책은 이 같은 클리셰로 가득하니 각오 단단히 할 것.” 어느 날 저자의 삶은 하루아침에 어둠으로 뒤덮였다. 전날 밤까지도 멀쩡하던 오른쪽 시야가 비틀리기 시작했다. 그는 25년간 뉴욕타임스(NYT)의 간판 칼럼니스트로 일하며 백악관 담당 기자와 이탈리아 로마 지국장까지 지냈다. 일주일에 60시간씩 일하면서 자신의 삶을 통제하며 스스로를 빛내 왔지만 뇌졸중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간밤에 시신경 일부에 혈액이 공급되지 않으면서 예기치 못한 절망이 닥쳐왔다. 처음에는 어둠으로부터 벗어나려 발버둥쳤다. 시신경 일부를 복구하는 임상시험에 참여했다. 안구에 주삿바늘을 찔러 넣는 고통이 반복됐지만 시야는 갈수록 더 비틀리고 흐릿해졌다. 절망하던 그는 약 2년 후 팬데믹이라는 전 세계적인 어둠을 통해 오히려 희망을 엿본다. 그는 “통상적인 대처 방식이 모두 막혔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든 차선을 찾아냈다”며 “잘 살기란 상실에 적응하는 것이자 내게 남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일임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시력이 나빠질 즈음 설상가상 덮친 아버지의 치매 진단 앞에서도 굴복하기보단 한발 내딛기를 택했다. 그는 자신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가 어릴 적 살던 동네를 찾는다. 그곳에서 아버지가 슬퍼하지 않고 감사하는 태도로 모든 상황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며 주어진 것들을 “친밀하고 아름답게” 받아들이기로 한다. 의사의 진단대로라면 저자는 왼쪽 눈의 시력 역시 잃을 가능성이 컸다. 어둠에 적응하기로 마음먹은 그는 자신보다 앞서 “일어나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후안 호세는 10대 후반부터 시력을 잃기 시작했음에도 현재 유엔에서 멕시코 상임 대표를 맡고 있는 외교관이다. 그 역시 처음에는 좌절했지만 이제는 실명을 개성으로 여긴다. 보이지 않는 덕에 참을성이 많아졌고, 매일 장애물에 부딪치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창의력을 길렀다는 것. 현재 저자의 왼쪽 눈은 시력이 나빠져 “글을 읽을 때 내 시야는 한 무리의 단어에 집중하는 대신 그 위를, 아래를, 둘레를 헤엄쳐 다닌다”고 한다. 상실과 기쁨은 빛과 어둠만큼이나 모순된 단어로 느껴진다. 그러나 저자는 감성에 호소하지 않고 초지일관 담담하게 자신의 경험을 담아내며 상실의 또 다른 말이 ‘기쁨의 기회’임을 설득한다. 빛과 색은 잃었지만 “낙엽의 소리가, 살갗에서 관현악을 연주하는 바람의 소리가” 더 진하게 남기 때문이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겨우내 차갑던 방바닥에 봄볕이 스미듯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독자들은 “기쁨을 향해 몸 돌릴” 각오를 해야 할 것 같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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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명훈, 伊 라스칼라 필 역대 첫 명예지휘자 위촉

    지휘자 정명훈(70·사진)이 이탈리아의 세계적 오케스트라 ‘라스칼라 필하모닉’의 명예 지휘자로 위촉됐다. 라스칼라 필은 13일(현지 시간) 홈페이지를 통해 “35년 가까이 인연을 이어온 지휘자 정명훈에게 명예 지휘자 칭호를 수여했다”고 밝혔다. 명예 지휘자는 오케스트라의 발전에 기여한 지휘자에게 부여하는 직책으로, 라스칼라 필 역사상 명예 지휘자를 위촉한 건 정명훈이 처음이다. 이탈리아 밀라노 라스칼라 극장 소속 오케스트라로 출발한 라스칼라 필은 1982년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1933∼2014)에 의해 솔로 교향악단으로 창단됐다. 유명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82)가 1987년부터 2005년까지 음악감독을 맡으면서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로 자리 잡았다. 정명훈은 1989년 라스칼라 필과의 첫 협연을 시작으로 해외에서 120차례 함께 공연했다. 라스칼라 필의 부사장인 다미아노 코탈라소는 “정명훈은 지휘대에 오를 때마다 매번 놀라운 음악을 만들어낸다”며 “그에게 명예 지휘자 칭호를 수여하는 것은 오랜 협업에서 우리가 공유한 모든 것을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정명훈은 지난해 이탈리아 공로 훈장(2등장)을 받았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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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밉지 않은 ‘킹받는’ 캐릭터… 일상 유머에 MZ세대 열광

    유튜브 등에서 쇼트폼 콘텐츠를 중심으로 ‘킹받는’ 캐릭터들의 인기가 뜨겁다. ‘킹받다’는 ‘열받다’에 ‘킹(King)’을 넣어 만든 말로 본래는 ‘엄청 화가 났다’는 의미였지만 최근 들어 짜증과 호감을 함께 내포한 의미로 확장됐다. 2, 3년 전 ‘카페 사장 최준’ 등 일부 연예인의 부캐(자신의 본모습이 아닌 제2의 자아 캐릭터) 콘텐츠가 열풍을 일으킨 데 이어 최근 개그맨 출신부터 일반인까지 다양한 창작자들이 킹받는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킹받는 캐릭터들은 공통적으로 극사실주의 문법을 구사한다. 현실에선 비호감으로 인식될 요소를 가졌지만, 웃음을 유발하는 상황에 이를 적절히 녹여 ‘밉지 않은 캐릭터’로 그려낸다. SNL코리아 시즌3 ‘MZ오피스’는 MZ세대 직원들이 회사에서 상사, 동료와 빚는 갈등을 우스꽝스럽게 담아내 화제가 됐다. MZ세대를 대표하는 ‘맑은 눈의 광인’ 신입 직원 아영은 사무실에서 이어폰을 낀 채 일한다. 아영은 일부 꼰대 상사들의 말 중 듣고 싶은 것만 골라 듣고 대답해 웃음과 빈축을 동시에 산다. 유튜브 채널 ‘사내뷰공업’은 직종별 알바생의 ‘킹받는’ 고충을 그리는가 하면, 두발 검사 때 앙칼진 목소리로 선생님에게 대드는 2000년대 일진을 재현해 호응을 얻었다. 빵집 알바 편에서 알바생이 ‘이 안에 뭐가 있게 샐러드 듬뿍 고로케’ ‘오븐에 노릇 핏자핏자 피자빵’ 등 복잡한 빵 이름을 모두 외워야 하는 고충을 그리는 식이다. 사내뷰공업 채널을 운영하는 파괴연구소 관계자는 “출연자이자 제작자인 김소정 PD 본인의 경험과 구독자 제보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든다”며 “현실에 있을 법한 캐릭터는 시청자들 기억 저편에서부터 공감을 끄집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맘카페에서 인기인 ‘신도시 아재들’의 ‘서준맘’은 신도시에 사는 ‘젊줌마’(젊은 아줌마)다. 몸에 딱 달라붙는 롱 원피스, 로고가 크게 새겨진 명품 크로스백 등 인터넷에서 이른바 ‘신도시 미시 패션’이라 불리는 옷차림이 트레이드마크다. 서준맘은 아들을 비싼 영어유치원에 보내려 애쓰고 화려한 네일아트를 즐기며, 친한 동네 언니들에게 알짜배기 정보를 공유하는 다정한 푼수 캐릭터다. 맘카페 회원들은 “딱 우리 동네 엄마들 스타일” “내가 바로 서준맘”이라며 기존 ‘맘충’에 담겼던 혐오를 유쾌하게 탈바꿈시킨다. ‘신도시 아재들’, ‘피식쇼’ 채널을 보유한 메타코미디의 정영준 대표는 “MZ세대들이 경험했을 법한 일상적 감정을 파고들려 한다”며 “비슷한 상황에서 느꼈을 슬픔, 분노를 웃음으로 승화시켜 스스로를 놀릴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시청자들은 제작진과 댓글을 통해 소통하며 킹받는 캐릭터에 호감을 표한다. 킹받는 캐릭터들 특유의 자조적 개그와 ‘힘 뺀’ 느낌이 지쳐 있는 동시대 젊은층을 매료한 것으로 풀이된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열심히 사는 걸 높게 평가했던 기성세대와 달리 현재 2030세대는 만성적인 정체 앞에서 ‘하면 된다’는 마음가짐이 오히려 좌절로 이어지는 경험을 적잖게 하고 있다”며 “내면 깊이 자리 잡은 자조적, 냉소적 태도가 킹받는 콘텐츠에 열광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젊은층이 동영상 콘텐츠를 보는 스마트폰은 개인화된 도구여서 아주 일상적인 소재를 다룬 유머에 끌리게 된다”고 분석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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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英 오리지널로 보는 ‘식스 더 뮤지컬’… 폭발적 성량에 관객들 환호

    16세기 잉글랜드 군주였던 헨리 8세의 부인 6명의 삶을 조명한 ‘식스 더 뮤지컬’(식스) 오리지널 내한공연이 10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신한카드 아티움에서 개막했다. 아시아에서 작품을 선보이는 건 처음이다. 뮤지컬 식스는 헨리 8세의 여성 편력으로 이혼당하거나 참수되는 비극을 겪은 부인들에게 마이크를 건넨다는 착안에서 만들어졌다. 토비 말로와 루시 모스가 공동제작해 2017년 초연한 뒤 2019년 영국 웨스트엔드에 입성했다. 이듬해 미국 브로드웨이에도 진출했으며 지난해 토니상 최우수음악상 등 2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11일 공연은 인기 가수의 콘서트장을 방불케하는 관객의 환호와 배우들의 폭발적 성량으로 시작됐다. 출연진은 통상 뮤지컬 배우들이 이마에 부착하는 마이크 대신 핸드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불렀다. 1시간 20분짜리 공연은 널리 알려진 팝 음악을 토대로 작곡된 10개의 넘버로 채워져 흥을 돋웠다. 주인공 6명이 돌아가며 부르는 넘버는 각자의 삶을 이야기한다. 아들을 낳지 못한다며 이혼을 요구받는 첫 번째 부인 아라곤이 헨리 8세를 향해 부르는 ‘No way(말도 안 돼)’는 ‘팝의 여왕’ 비욘세 등의 음악에서 영감을 얻은 곡이다. 아라곤 역의 클로이 하트가 힘차게 불러 큰 환호를 받았다. 두 번째 부인이자 반항적인 캐릭터 앤 불린의 넘버 ‘Don′t lose your head(정신 좀 챙겨)’는 에이브릴 라빈 등의 펑키한 음악을 토대로 작곡됐다. 26일까지 오리지널팀의 내한공연이 진행된다. 그 후엔 한국어 공연이 같은 공연장에서 31일부터 6월 25일까지 이어진다. 라이선스 공연은 세계에서 처음이다. 앤 불린 역은 김지우, 배수정이 맡았다. 내한공연 7만∼14만 원, 한국어 공연 6만∼12만 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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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맑은 눈의 광인’ ‘서준맘’…‘킹받는’ 캐릭터들이 사랑받는 이유

    숏폼 콘텐츠를 중심으로 ‘킹받는’ 캐릭터들의 인기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2, 3년 전 ‘카페사장 최준’ 등 부캐(자신의 본모습이 아닌 제2의 자아) 콘텐츠가 열풍을 점화한 데 이어 최근 개그맨 출신이 아닌 크리에이터까지 킹받는 콘텐츠를 제작하며 기세를 확대 중이다. ‘킹받다’는 ‘열받다’에 ‘킹(King)’을 넣어 만든 말로 본래는 ‘엄청 화가 났다’는 의미였지만 최근들어 짜증과 호감을 함께 내포하는 의미로 확장됐다. ●일상에서 겪었을 감정 자극해 공감대 형성 킹받는 캐릭터들은 공통적으로 하이퍼리얼리즘 문법을 구사한다. SNL 코리아 시즌3 ‘MZ오피스’는 MZ세대 직원들이 회사에서 빚는 갈등을 우스꽝스럽게 담아냈다. ‘맑은 눈의 광인’ 캐릭터는 사무실에서 이어폰을 낀 채 근무하며 상사의 말 중 듣고 싶은 것만 골라 들어 빈축과 웃음을 샀다. ‘사내뷰공업’은 빵집 알바가 ‘이안에 뭐가 있게 샐러드 듬뿍 고로케’ ‘우리 농부 호밀빵’ ‘오븐에 노릇 핏자핏자 피자빵’ 등 다양한 빵 이름을 외워야 하는 등 직종별 알바생의 고충을 비롯해 2000년대 일진 등을 완벽하게 재현해내 호응을 얻었다. 사내뷰공업이 소속된 MCN 파괴연구소는 “출연진이자 제작자인 김소정PD 본인의 경험과 구독자 제보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구성한다”며 “현실에 있을 법한 캐릭터는 시청자들 기억 저편에서부터 공감을 끄집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시청자들은 킹받는 콘텐츠에서 소비자인 동시에 풍자 대상으로도 다뤄진다. 맘카페에서 인기몰이 중인 ‘신도시 아재들’의 ‘서준맘’은 신도시에 사는 ‘젊줌마’(젊은 아줌마)로서 아들을 값비싼 영어유치원에 보내려 애쓰고 화려한 네일아트를 즐기며, 친한 언니들에게 알짜배기 정보를 공유하는 다정한 푼수 캐릭터다. 맘카페 회원들은 “내가 서준맘”이라며 기존 ‘맘충’에 담겼던 혐오를 유쾌하게 탈바꿈시킨다. ‘신도시 아재들’, ‘피식쇼’ 등을 보유한 메타코미디의 정영준 대표는 “과거의 코미디와 달리 지금의 MZ세대(밀레니얼+Z세대)들이 경험했을 법한 일상적 감정을 세밀하게 파고들려 한다”며 “비슷한 상황에서 느꼈을 슬픔, 분노 등을 웃음으로 승화시켜 스스로를 놀릴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크리에이터와 플랫폼에서 쌍방 소통하며 시청자들도 콘셉트에 과몰입하는 것도 특징이다. 중국 틱톡커를 따라한 닛몰캐쉬 채널에는 “그는 매우 멋진 남자. 그의 선행이 모두를 감동시켰다” “그의 친절은 천사와 같습니다. 그의 친절에 박수를 보내다” “슈트남의 정성에 나는 찬사를 보낸다”등 마치 해외 팬이 파파고 등 번역기를 돌려 쓴 듯한 문체의 댓글로 가득하지만 이는 모두 국내 네티즌들이 쓴 것들이다. 중국어를 자동번역했을 때 나오는 어색한 말투를 그대로 따라하며 콘셉트에 동조하는 것. 닛몰캐쉬(본명 차청일)는 “창의적인 댓글을 주고받으며 더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한다”며 “무조건 웃기고 싶단 생각보단 내 채널이 시청자들의 놀이터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영상을 기획한다”고 했다.●자조적 젊은층 사로잡은 ‘힘 뺀’ 개그 킹받는 캐릭터들 특유의 자조적 개그와 ‘힘 뺀’ 느낌이 지쳐있는 동시대 젊은층을 매료한 것으로 풀이된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발전주의 시대를 살며 열심히 사는 걸 숭상했던 기성세대와 달리 현재 2030세대는 만성적인 정체 앞에서 ‘하면 된다’는 마음가짐이 오히려 좌절이라는 독이 된다”며 “내면 깊이 자리 잡은 자조적, 냉소적 태도가 킹받는 콘텐츠에 열광하는 트렌드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집단성이 강하다면 ‘우리 집단이 혐오를 받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나이 외에는 정체성 분모가 느슨한 2030세대는 콘텐츠와 같이 비웃을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치료학과 교수는 “특별하고 화려한 것보다 평범한 일상에 관심을 쏟는 ‘노멀크러시’ 현상이 콘텐츠로도 확산했다”며 “과거 기성세대와 비교해 자존감은 높아지고 취향은 다원화한 젊은층은 나와 비슷한 모습에 동일시하려는 양상이 두드러진다”고 했다. 플랫폼의 댓글 문화를 기반으로 각자 세분화한 웃음코드에 공감하는 과정은 하나의 놀이문화이자 인정욕구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젊은층이 콘텐츠를 소비하는 모바일은 아주 개인화된 도구인 만큼 웃음코드 역시 아주 일상적이고 B급인 소재가 이용자 특성과 잘 부합한다”며 “누가 뭐라든 자신에게 의미 있는 개그라면 가치부여를 하고 SNS에서 공유하면서 공감 받는 과정 전체가 젊은층의 놀이문화”라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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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젤’ 무대서 군무 이끈 강호현씨 “무용수의 꿈 이뤘죠”

    “7년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 작품을 준비할 때 파트너 무용수를 도와 지젤 역을 맡았어요. 그땐 제가 파리오페라발레단의 무용수로 지젤 무대에 설 거라곤 상상조차 못했죠. 무용수로서 꿈을 이룬 것 같아요.” 354년 역사를 지닌 세계 최고(最古)이자 최정상 발레단인 파리오페라발레단(BOP) 소속 한국인 무용수 강호현(27)이 말했다. 그를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에서 10일 만났다. 발레단에서 쉬제(솔리스트) 등급인 그는 8일부터 11일까지 열린 BOP 내한 공연 ‘지젤’ 무대에서 군무를 이끄는 역할을 맡았다. ‘지젤’은 BOP가 1841년 세계 초연한 작품으로, 2막에서 처녀 귀신 윌리들이 시시각각 대열을 바꾸며 추는 ‘윌리들의 군무’가 백미로 꼽힌다. “윌리가 인간의 영혼인 만큼 공중에 떠다니는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 무용수의 동작은 최대한 가볍게 표현돼야 해요. 다리를 아주 빠르게 움직이면서도 상체는 공기를 감싸 안듯 부드럽게 표현하죠. 고난도 안무입니다.” 그는 쉬제로서 군무와 솔리스트 안무를 모두 익혀야 해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연습했다. 그는 “낮에는 밥 먹을 시간이 부족해 저녁에 두 끼를 먹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번 내한 공연에서 그는 BOP 소속 한국인 무용수 중 유일하게 무대에 올랐다. 강호현은 퇴단한 김용걸과 현재 에투알(수석무용수)인 박세은, 카드리유(군무단) 윤서후에 이어 BOP에 4번째 입단한 한국인 무용수다. 올 초 출산한 박세은은 이번 내한 무대에 서지 않았다. “세은 언니의 출산이 임박한 시점에 ‘지젤’ 캐스팅이 발표됐어요. 발레단 내 한국인이자 에투알인 세은 언니는 큰 의지가 되는 존재예요. 어려움이 있을 때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요. 이번 내한 공연을 앞두고선 언니가 잘 다녀오라는 문자를 보내줘 큰 힘이 됐습니다.” 세계 무대에서 쟁쟁한 무용수들과 경쟁하는 그에게 발레는 행복이자 삶의 일부다. 어릴 적 유난히 내성적인 성격 탓에 동네 스포츠센터에서 배운 발레가 마냥 좋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본격적으로 다니기 시작한 발레 학원에선 거의 살다시피 했다. 이후 예원학교, 서울예고, 한국예술종합학교 등 발레리나로서 엘리트 코스를 거쳤지만, 실기 성적은 중위권에 그쳤다. 하지만 그저 춤추는 게 즐거웠다. 그는 “다른 친구들과 실력을 비교하기보다는 ‘나 자신이 과연 어디까지 해낼 수 있을까’만 생각하며 스스로에게 집중했다”며 “무용수의 최대 역량을 궁금해하는 BOP와 이 점에서 잘 맞았던 거 같다”고 했다. 2017년 발레단에 입단해 올해로 단원 7년 차를 맞은 그는 지난해 경사가 겹쳤다. 쉬제로 승급했고, BOP의 드라마 발레 ‘마이얼링’에서 여주인공 마리 베체라 역에 발탁됐다. 감성적인 연기와 안무로 프랑스 발레 팬들에게 눈도장을 찍으며 주목받았다. “한국 관객분들께 아직 보여드리지 못한 BOP만의 레퍼토리가 정말 많아요. 다음번엔 그런 작품과 배역으로 돌아오고 싶습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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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레는 ‘행복해서’ 하는 일… ‘지젤’로 내한한 BOP 무용수 강호현

    “7년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작품을 준비할 때 파트너 무용수를 도와 ‘지젤’ 역을 췄어요. 그땐 제가 ‘지젤’로 프로 무대에 설 거라곤 상상조차 못했죠. 어릴 적 동경하던 작품을, 그것도 파리오페라발레단 무용수로 고국 무대에서 춤을 추다니…. 무용수로서 꿈을 이룬 것 같아요.”세계 최정상 발레단인 파리오페라발레(BOP)의 단원 강호현(27)을 서울 강서구 LG아트엔터에서 10일 만났다. BOP는 지난 8일부터 11일까지 이 공연장에서 1993년 이후 30년만에 ‘지젤’로 내한공연을 가졌다. 강호현은 앞서 퇴단한 김용걸과 에투알(수석무용수) 박세은, 콰드리유(군무단) 윤서후 등에 이어 BOP 내 4번째 입단한 한국인 무용수다. 2017년 입단 후 지난해 쉬제(솔리스트)로 승급했다. 올초 출산한 에투알 박세은은 이번 무대에 서지 않았다. BOP내 한국인 무용수 가운데 강호현만이 이번 서울 공연에 참여했다. ‘지젤’은 BOP가 1841년 세계 초연한 작품이다. 2막에서 처녀 귀신 윌리들이 시시각각 대열을 바꾸며 추는 ‘윌리들의 군무’는 백미로 꼽힌다. 강호현은 이 군무를 이끄는 선두 역할 ‘두 윌리’를 맡았다. 공기 속을 떠다니듯 가벼운 동작을 보여줘야 하는 배역이다. 그는 “다리는 아주 빠르게 움직이면서도 상체는 공기를 감싸 안 듯 부드러워야해 고난도”라며 “지난해 함께 쉬제로 승급한 클라라와 두 윌리 역을 논의하며 군무가 조화를 이루는 데도 신경을 많이 썼다”고 말했다.‘지젤’의 원조 발레단인 만큼 뼈를 깎는 연습이 수반됐다. 쉬제로서 군무와 솔리스트 안무를 모두 익혀야 해 모든 리허설에 참여했다. 리허설은 오후 12시부터 7시까지 이어졌다. 쉬는 시간은 30분 남짓에 불과했다. 리허설 전 몸 풀기 2시간은 별도다. 연습시간 외에 개인 운동까지 하는 동료들을 보며 그는 부족함을 느꼈다. 170cm를 훌쩍 넘는 단원들이 많아 167cm인 그는 척추부터 곧게 세워 ‘길게’ 춤추려고도 노력했다. 스스로를 끊임없이 담금질한 덕인지 가녀린 체구 속엔 곧은 심지같은 단단함이 느껴졌다.“BOP에선 나 혼자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유기적인 조화를 중시해요. 연습할 때는 너무 힘들었어요. 그렇지만 ‘언제 또 힘든 시기가 오겠냐’며 힘듦을 즐기려고 하는 편이에요. 대신 미치도록 힘든 날엔 연습을 쉬고 발레단 친구들과 맛집에 가서 재충전합니다.(웃음)”지난 연말 쉬제 승급과 군무 리더 발탁 등 호재가 이어졌음에도 그는 기뻐할 겨를조차 없었다. 케네스 맥밀런이 안무한 비극 발레 ‘메이얼링’ 주인공으로 무대에 오르는 동시에 승급 시험과 ‘지젤’ 준비까지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기쁨을 만끽하기엔 남은 공연과 새로운 연습에 집중해야 했다”며 “승급 발표 때도 부모님께 제대로 된 연락을 못 드렸다”고 했다.매일매일 해낼 것투성이지만 그에게 발레는 ‘행복해서’ 하는 일이자 삶의 일부다. 어릴 적 유난히 내성적인 성격 탓에 동네 스포츠센터에서 배운 발레가 마냥 좋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본격적으로 다니기 시작한 발레 학원에선 거의 살다시피 했다. 이후 예원학교, 서울예고, 한국예술종합학교를 거치는 동안 실기 성적은 중간권에 그쳤지만 춤추는 게 즐거웠다. 그는 “내가 어디까지 해낼 수 있는가만 집중했다”며 “무용수의 최대 역량을 궁금해하는 BOP와 이 점에서 잘 맞았던 거 같다”고 했다. 그는 올해로 6년차 단원이 됐지만 연습실에 갈 때마다 설렌다고 했다. BOP의 주된 공연장이자 19세기에 지어진 유서 깊은 오페라 하우스인 팔레 가르니에를 보면서는 ‘대단한 사람들과 춤을 추고 있구나’를 다시금 실감하고 감사해한다. “한국 관객 분들께 아직 보여드리지 못한 BOP만의 레퍼토리가 정말 많아요. 다음번엔 그런 작품과 배역으로 돌아오고 싶습니다. 어떤 배역이냐고요? 전부 하고 싶어서 도저히 고를 수가 없어요. (웃음)”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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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050 배우들 “수다 좀 떨게요”… 공연장이 왁자지껄

    딸로, 아내로, 엄마로 정신없이 살다 보니 어느 새 중년이 된 일곱 명의 여성. 진짜 중년의 삶을 담아내기 위해 문희경(58) 등 실제 40, 50대 배우들이 주인공으로 무대에 선다. 중년 여성들의 삶을 수다 떨 듯 유쾌하게 풀어내고 노래하는 창작뮤지컬 ‘다시, 봄’이다. 지난해 10월 초연 당시 객석 점유율이 80%에 달해 5개월 만인 이달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다시 막을 올린다. 공연계에서 중장년층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작품들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관객층을 2030세대에서 ‘잠재적 큰손’인 4050세대로 확대하기 위해서다.● “중장년 겨냥 작품 개발”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에서는 28일 ‘어떤가요’ 시리즈 네 번째 공연이 열린다. ‘오직 하나뿐인 그대’를 통해 1990년대 국내 가요계를 휩쓸었던 심신을 비롯해 이덕진 최용준 김세헌까지, 가수 4명이 합동 공연을 펼친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1∼3회 공연에는 이정석, 이치현, 김완선, 박남정 등이 출연해 시야방해석을 제외한 800여 석이 모두 매진됐다. 전체 관객 중 70% 이상이 40, 50대였다. 송제용 마포문화재단 대표는 “당초 한 번만 공연할 예정이었으나 관객의 반응이 워낙 뜨거워 시리즈 공연으로 확장하게 됐다”며 “트로트 외에도 중장년층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6일 인터파크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서울에서 공연을 시작해 현재 전국 공연장을 돌고 있는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는 예매자 중 40, 50대 비율이 지역별로 40∼60%를 차지한다. 시골 출신 페기가 뮤지컬 댄서의 꿈을 이루는 과정을 화려한 볼거리와 신나는 음악으로 구성해 중장년층의 호응이 높다. 동창회, 동호회에서 단체 관람하는 경우도 많다. 아바의 히트곡을 엮어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 ‘맘마미아’와 ‘다시, 봄’ 역시 각각 40, 50대 예매 비율이 40%, 58%를 차지한다. 다음 달 개막하는 뮤지컬 ‘데스노트’는 40, 50대 예매 비중이 약 17%, 5일 폐막한 ‘스위니토드’는 21%에 그치는 것과 대비된다.● 재밌으면 지갑 활짝 여는 4050제작사들도 중장년층 배우들을 발탁해 나이에 맞는 연기로 친근감을 높이고 있다.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24일 개막하는 ‘맘마미아’에는 50대 배우 송일국, 장현성이 합류했다. 신시컴퍼니는 “2004년 초연 당시엔 배우층이 얕아 30, 40대 배우들이 50대 배역을 연기했다”며 “시장이 성숙해지면서 중장년 배우들이 실제 자기 나이에 해당하는 역할을 연기하게 됐다”고 말했다. 중장년층 가운데는 경제력을 갖춘 데다 공연 관람을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여는 이들이 많다. 국내 공연시장이 성장하기 시작한 1980, 90년대에 젊은 시절을 보내며 공연을 관람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김덕희 서울시뮤지컬단장은 “베이비붐 세대와 비교해 4050세대는 문화예술을 다채롭게 즐긴 경험이 있어 공연 관람에 적극적이다”라며 “젊은 관객에게만 편중되면 시장이 커지지 못하고 출혈 경쟁만 계속돼 구매력 높은 중장년층이 볼만한 작품을 적극 확보해 관객층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중장년층에게 익숙한 고전 등을 젊은 감각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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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큰손 4060 모셔라”… 중장년층 공략 나선 국내 공연계

    50대 여성들의 삶을 노래하는 창작뮤지컬 ‘다시, 봄’이 이달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막을 올린다. 딸로, 아내로, 엄마로 정신없이 살다보니 어느 새 중년이 된 일곱명의 여성이 주인공이다. ‘젊은 척’ 연기하지 않고 진짜 중년의 삶을 담아내고자 50대 배우들의 속마음을 진솔하게 담아냈다. 지난해 10월 초연에 이어 5개월 만의 재연이다. 부부나 모녀가 함께 공연을 관람하면 티켓을 30% 할인해준다. 최근 국내 공연계가 중장년층의 공감대에 맞춘 작품을 선보이며 ‘잠재적 큰손’인 4060대 모시기에 시동을 걸고 있다. 현재 2030대 관객에 편중된 데서 벗어나 관객 저변을 넓히고, 공연시장의 지속 성장을 도모하기 위함이다.●‘큰손’ 중장년층 눈높이 맞춘 공연 늘어야 이달 28일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에서는 ‘어떤가요’ 시리즈 네 번째 공연이 열린다. 과거 ‘테리우스’라 불리며 1990년대 국내 가요계를 휩쓸었던 ‘오직 하나뿐인 그대’의 심신 등 가수 4명이 합동 공연을 펼친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1~3회 공연은 시야방해석을 제외한 800여 석이 전부 매진됐다. 전체 관객의 70% 이상이 4050대였다. 송제용 마포문화재단 대표는 “중장년층 관객을 모으기 위해선 트로트 이외의 양질의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러한 트렌드는 4060대 중장년층 관객이 즐길 수 있는 공연이 부족한 상황과도 관련 이 깊다. 2030 젊은 관객들을 타깃으로 한 작품이 대다수인 시장의 ‘틈새’를 노린 전략이다. 실제로 중장년층의 공감대를 이끄는 작품의 경우 중장년층의 예매 비율이 상당하다. 6일 인터파크티켓에 따르면 인생 황금기를 돌아보게 하는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는 전체 예매자 중 4050대 비율이 지역별로 40~60%대에 달했다. 뮤지컬 ‘맘마미아’와 ‘다시, 봄’ 역시 각각 40%, 58%씩 차지한다. 다음달 개막하는 뮤지컬 ‘데스노트’의 4050대 예매 비중이 약 17%, 5일 폐막한 ‘스위니토드’가 21%에 그치는 것과 대비된다. 공연계가 변화를 시도하는 건 관객 저변을 넓혀야 공연시장이 꾸준히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중장년층은 과거 기성세대와 달리 공연 관람에 기꺼이 지갑을 열고, 경제력 역시 뒷받침되는 이들이다. 김덕희 서울시뮤지컬단장은 “과거 베이비붐 세대 등과 비교해 문화예술을 다채롭게 향유해본 경험이 있어 공연 관람에 대한 심리적 장벽이 낮다”며 “국내 공연계가 젊은 관객에만 편중된다면 전체 파이가 커지지 못하고 땅따먹기 싸움만 계속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장년 참여하는 문화예술 프로그램도 다양화 국내 공연시장이 본격 확장되던 1980~1990년대에 젊은 관객 또는 배우였던 이들이 지금 4060대가 된 것도 이같은 변화를 가능케 했다. 다음달 개막하는 ‘맘마미아’에는 50대 배우 송일국, 장현성 등이 합류해 중장년층 친근감을 높였다. 신시컴퍼니는 “19년 전 초연 당시엔 배우의 스펙트럼이 적어 3040대 배우들이 50대 배역을 연기했다”며 “시장이 성숙해지면서 중장년 눈높이에 맞는 배우들이 무대에 많이 오르게 됐다”고 설명했다. 연극 ‘두 교황’에서 주역을 맡았던 배우 서인석이 지난해 9월 ‘아침마당’에 출연하자 이튿날 40대 이상 예매자가 출연 이전 평균대비 2.5배 급증하기도 했다. 중장년층을 아우르는 문화예술 프로그램도 기존 서화, 클래식 음악 등으로 국한되지 않고 다양해지는 추세다. 올 초 국립현대무용단은 60세 이상 일반인 25명을 대상으로 ‘시니어 즉흥춤 교실’을 운영했다. 남정호 국립현대무용단장은 “고령화사회가 되면서 중장년층은 더 이상 주변에 물러서 있는 존재가 아니게 됐다”며 “수업이 끝난 뒤 삼삼오오 공연을 관람하기도 해 공연장으로 발길을 모으는 장점도 있다”고 했다. 서울문화재단이 지난해 개최한 제1회 서울생활예술페스티벌에는 중장년층으로 이뤄진 훌라춤 동호회, 7080 밴드 등 단체들이 다수 참여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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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년 만의 뮤지컬 복귀… 밤마다 얼른 해뜨길 바라며 잠들어”

    “요즘 밤마다 얼른 내일의 해가 떠오르길 바라며 잠들어요. 빨리 연습실에 가서 ‘맘마미아’ 넘버를 노래하고, 동료 배우들과 춤추고 싶거든요.”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24일 스테디셀러 뮤지컬 ‘맘마미아’가 막을 올린다. 작품에서 주연 샘 역을 맡은 배우 장현성(53)을 2일 충무아트센터 연습실에서 만났다. 그는 “맘마미아를 통해 뮤지컬 무대에 22년 만에 복귀한다”며 “매일 설레고 행복하다”고 했다. 그룹 아바(ABBA)의 음악을 뮤지컬로 재창작한 ‘맘마미아’는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1999년 초연된 뒤 2004년 국내에 첫선을 보였다. 도나와 그리스의 작은 섬에 사는 그녀의 딸 소피가 결혼을 앞두고 자신의 아빠로 추정되는 세 남자를 섬으로 초대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뤘다. 샘은 세 남자 중 가장 순정파 캐릭터다. 뮤지컬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1993년) 오디션에 합격해 앙상블로 연기를 시작한 그는 2001년 극단 학전의 대표작 ‘지하철 1호선’을 끝으로 뮤지컬 무대에 오르지 않았다. 그는 “뮤지컬 배우들의 풍부한 성량과 노래 실력, 끼를 보며 주저하게 됐다”면서 “마치 그들은 ‘뮤지컬을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느껴졌다”고 털어놓았다. 그에게 재도전의 용기를 준 건 뮤지컬 ‘맘마미아’의 김문정 음악감독이었다. 지난해 한 음악 예능프로그램을 함께 한 김 감독은 장현성에게 뮤지컬 ‘맘마미아’ 출연을 제안했다. 그는 “평소 존경했던 감독님이 ‘연기 경력이 많은 배우만이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는 노래가 있다’면서 노래 실력에 기죽지 말고 오디션을 보라고 설득했다”며 “이에 용기를 내 출연하게 됐다”고 말했다. 올해로 30년 차인 베테랑 배우지만, 그는 ‘연습벌레’로 통한다. 다른 배우들이 안무를 10번 만에 익힐 때 그는 200∼300번씩 반복한다. 그는 “연기와 달리 노래는 음정과 박자라는 정답이 있는데 숙련된 뮤지컬 배우들에 비해 나는 늦었다고 느꼈다”며 “칠 줄도 모르는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 음 2개만 번갈아 누르며 음정을 맞췄다”고 했다. 쉽지 않은 연습이지만 다른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는 과정은 힐링이 된다고 했다. 그가 ‘맘마미아’에서 가장 아끼는 장면은 모든 배우가 디스코풍의 넘버 ‘불레부(Voulez-Vous·프랑스어로 ‘당신은 원하나요’)’를 다 함께 신나게 부르는 대목이다. “샘을 연기하는 내내 확실한 행복을 느껴요. 이 행복감을 관객 여러분과 얼른 나누고 싶습니다.” 6월 25일까지, 7만∼15만 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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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모차르트를 죽였소” 독백으로 푼 살리에리의 고뇌

    “나의 고해를 들어주시오.” 무대가 암전되고 휠체어를 탄 노인이 등장한다. 자신이 ‘신이 내린 음악가’ 모차르트를 죽였다며 관객에게 고해성사하는 그의 이름은 살리에리. 긴 독백이 끝나면 극은 살리에리가 31세에 궁정 작곡가로 왕성히 활동하던 1781년 오스트리아 빈으로 돌아간다. 음악 신동이지만 무례하고 방탕한 모차르트의 연주를 처음 마주한 그는 환희와 좌절을 동시에 느낀다. ‘모차르트 앞에서 나는 한낱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다’며 고통의 굴레에 빠진다. 18세기 실존 음악가 안토니오 살리에리의 맹렬한 고뇌를 다룬 연극 ‘아마데우스’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되고 있다. 35세에 요절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그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살리에리의 삶에 극작가 피터 셰퍼가 상상력을 더했다. 1979년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초연된 후 1981년 토니상에서 최우수 작품상 등 총 5개 부문을 수상했다. 동명의 영화(1985년) 역시 제5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8개 부문 상을 휩쓸었다. ‘아마데우스’는 존경과 질투 등 여러 감정이 오가는 살리에리의 내면을 치밀한 독백으로 풀어낸다. 극의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을 안내하는 내레이터 역할인 만큼 대사량이 방대하다. 배우 김재범과 차지연, 김종구, 문유강이 돌아가며 살리에리를 연기한다. 김재범은 “왜 내게 음악적 욕망만 주고 재능은 주지 않았느냐”며 신에게 울부짖는 대목에서 악에 받친 눈빛으로 폭발하는 내면을 표현한다. 광기를 내뿜는 모차르트 역은 배우 이재균과 전성우, 최우혁이 맡았다. 연극이지만 모차르트의 음악 20여 곡을 사용해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독백 사이에 풍부함을 더했다. 오페라 ‘마술피리’가 공연되는 극 중 극 장면에선 ‘밤의 여왕’ 아리아가, 모차르트가 죽어가는 장면에선 레퀴엠(진혼미사곡)이 흘러나오는 등 협주곡부터 세레나데, 합창곡까지 다채롭게 오간다. 인기 프리마돈나인 카발리에리 역을 맡은 배우 손의완은 성악 전공자로서 시원한 가창력으로 오페라 곡을 노래한다. 4월 11일까지, 4만4000∼9만9000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3-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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