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볼 수 없어야 보이는 아름다움에 관하여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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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눈 시력 잃게 된 저자
어둠 속에서 찾은 생의 의미
◇상실의 기쁨/프랭크 브루니 지음·홍정인 옮김/412쪽·1만9800원·웅진지식하우스

‘어둠은 빛의 존재를 반증한다.’

누군가에게는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어떤 말이 오랜 세월 무수한 사람의 입을 거쳐 내려온 데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저자는 “클리셰란 진실의 아주 가까운 친척이고 통찰의 보급형 유사품”이라며 독자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한쪽 눈의 시력을 잃은 후 나는 더욱 살아있다고 느꼈다. 이 책은 이 같은 클리셰로 가득하니 각오 단단히 할 것.”

어느 날 저자의 삶은 하루아침에 어둠으로 뒤덮였다. 전날 밤까지도 멀쩡하던 오른쪽 시야가 비틀리기 시작했다. 그는 25년간 뉴욕타임스(NYT)의 간판 칼럼니스트로 일하며 백악관 담당 기자와 이탈리아 로마 지국장까지 지냈다. 일주일에 60시간씩 일하면서 자신의 삶을 통제하며 스스로를 빛내 왔지만 뇌졸중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간밤에 시신경 일부에 혈액이 공급되지 않으면서 예기치 못한 절망이 닥쳐왔다.

처음에는 어둠으로부터 벗어나려 발버둥쳤다. 시신경 일부를 복구하는 임상시험에 참여했다. 안구에 주삿바늘을 찔러 넣는 고통이 반복됐지만 시야는 갈수록 더 비틀리고 흐릿해졌다. 절망하던 그는 약 2년 후 팬데믹이라는 전 세계적인 어둠을 통해 오히려 희망을 엿본다. 그는 “통상적인 대처 방식이 모두 막혔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든 차선을 찾아냈다”며 “잘 살기란 상실에 적응하는 것이자 내게 남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일임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시력이 나빠질 즈음 설상가상 덮친 아버지의 치매 진단 앞에서도 굴복하기보단 한발 내딛기를 택했다. 그는 자신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가 어릴 적 살던 동네를 찾는다. 그곳에서 아버지가 슬퍼하지 않고 감사하는 태도로 모든 상황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며 주어진 것들을 “친밀하고 아름답게” 받아들이기로 한다.

의사의 진단대로라면 저자는 왼쪽 눈의 시력 역시 잃을 가능성이 컸다. 어둠에 적응하기로 마음먹은 그는 자신보다 앞서 “일어나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후안 호세는 10대 후반부터 시력을 잃기 시작했음에도 현재 유엔에서 멕시코 상임 대표를 맡고 있는 외교관이다. 그 역시 처음에는 좌절했지만 이제는 실명을 개성으로 여긴다. 보이지 않는 덕에 참을성이 많아졌고, 매일 장애물에 부딪치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창의력을 길렀다는 것. 현재 저자의 왼쪽 눈은 시력이 나빠져 “글을 읽을 때 내 시야는 한 무리의 단어에 집중하는 대신 그 위를, 아래를, 둘레를 헤엄쳐 다닌다”고 한다.

상실과 기쁨은 빛과 어둠만큼이나 모순된 단어로 느껴진다. 그러나 저자는 감성에 호소하지 않고 초지일관 담담하게 자신의 경험을 담아내며 상실의 또 다른 말이 ‘기쁨의 기회’임을 설득한다. 빛과 색은 잃었지만 “낙엽의 소리가, 살갗에서 관현악을 연주하는 바람의 소리가” 더 진하게 남기 때문이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겨우내 차갑던 방바닥에 봄볕이 스미듯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독자들은 “기쁨을 향해 몸 돌릴” 각오를 해야 할 것 같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상실의 기쁨#어둠 속#생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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