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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효 미국 줄리아드음악원 겸 예일대 교수(사진)와 대관령국제음악제가 대원문화재단(이사장 김일곤)이 시상하는 제5회 대원음악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강 교수는 2004년 제1회 대관령국제음악제부터 올해까지 7년 동안 예술감독을 맡았다. 연주상은 베이스 연광철 서울대 음대 교수, 작곡상은 백병동 서울대 음대 명예교수에게 돌아갔다. 대상 수상자는 상패와 상금 1억 원을, 연주상과 작곡상 수상자는 상패와 상금 3000만 원을 각각 받는다. 시상식은 12월 15일 오후 6시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그랜드볼룸.}

학생들이 낄낄거리며 하는 말마따나 처음 손에 받아든 스마트폰은 ‘깻잎 통조림’의 파지감(把持感)이 느껴졌다. 그러나 머릿속에는 다른 물건이 떠올랐다. 솜털 보송한 중학생 시절 친구 집에서 손에 쥐어본 ‘스위스 군용칼’이었다. 갖가지 용도의 칼을 넘어 톱, 가위, 송곳, 핀셋, 돋보기…. TV 드라마 ‘맥가이버’를 들 것도 없이 머릿속은 이미 모험의 세계를 넘나들고 있었다. 어느 날 예상 못한 위기에 부닥친다면 손아귀에 쏙 들어오는 이 물건으로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고 (아마도 곁에 있을) 동년배 여학생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스마트폰이 전해주는 로망도 비슷했다. 유튜브 동영상에 나온 것처럼 팝콘을 튀길 수는 없겠지만 전화, TV, 카메라, 수첩, 계산기, 녹음기…. 온갖 고래(古來)와 첨단의 장비로 무장한 채 사무실 하나를 주머니에 옮겨주겠다고 이 작은 물건은 자신감을 표현하고 있었다. 스위스칼은 나사를 풀어 새로운 장비를 추가할 수 없지만 스마트폰이라면 다르다. 위기가 생기면 필요한 애플리케이션을 신속히 내려받고 정보를 검색해 난관을 헤쳐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21세기의 스위스 군용칼을 거머쥐고 거리로 나서는 우리는 ‘디지털 노마드(유목민)’를 넘어 ‘디지털 전사(戰士)’다. 그러나 이제는 필요한 만큼 손 안에 쥔 것일까. 공짜부터 0.99달러, 4.99달러짜리 앱을 성이 찰 때까지 내려받은 뒤에도 새 종복(從僕)은 포만을 모른다. 가장 뛰어나다는 지하철 안내 앱, 가장 다양한 채널이 나온다는 라디오 수신 앱을 내려받고 이전 것을 지운다. ‘팟캐스트(자동으로 새 에피소드를 띄워주는 주문형 방송)’의 신세계에 눈을 뜨고 이것저것 구독 신청을 했지만 관심이 가는 프로그램을 ‘고속주행’으로 볼 시간조차 낼 수 없다. 수많은 앱이 ‘찾기’라는 이름을 단 것은 그만큼 상징적이다. 수많은 정보의 바닷속에서 내게 맞는 방송 프로그램을, 책을, 음식점을 찾아주겠다고 아우성친다. 가장 인기가 많은 무료 앱 중 하나가 다양한 요구와 용도에 맞춤한 앱을 찾아주는 ‘앱 찾아주기’ 앱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이 궁핍한 시대에 시가 무슨 소용인가.” 18세기 독일 문인 횔덜린은 동시대 문화에 가해지는 위협을 ‘궁핍’에서 찾았다. 그러나 오늘날 인류의 문화에 가해지는 중대한 위협 중 하나는 ‘궁핍’이 아니라 ‘과잉’에서, 선택의 자유와 선택권의 과잉에서 나온다. “무엇이 문제냐, 각자의 개성에 딱 맞는 것을 추구할 수 있게 되었는데”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막대한 정보량 속에서 길 찾기에 들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찾아낸 대상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만인이 만 가지 취향을 추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의 영역 속에서 카페와 트위터로 소통한다. 그러나 바로 옆에 있는 사람과는 이내 대화가 막힌다. 누구와도 대화할 수 있는 주제라면 이미 깊이 있는 취향은 추구하기 힘들어진다. 마음에 딱 맞는 앱처럼 손쉬운 해결책을 찾으려는 생각은 없다. 라디오가, TV가, 인터넷이 처음 나왔을 때 그랬듯 ‘이 문명의 이기가 문명의 쇠퇴를 불러올 것이다’라는 단언은 지나친 단순화나 센세이셔널리즘으로 판명되리라고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할지 모른다. 그런데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 친구는 그 칼에 달린 기구 중 몇 가지나 써봤을까. 참, 정작 칼 자체는 썩 쓸 만하지 않다고 불평하던 것은 기억난다.유윤종 문화부 차장 gustav@donga.com}

20년째를 맞은 제10회 서울평화상이 ‘예술을 통한 나눔과 공존’에 주어졌다. 서울평화상위원회는 올해 서울평화상 수상자로 베네수엘라의 음악교육 프로그램 ‘엘시스테마’(베네수엘라 국립 청년 및 유소년 오케스트라 시스템 육성재단) 창설자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72·사진)를 선정했다고 27일 발표했다. 엘시스테마는 빈곤층을 포함한 청소년들에게 무상으로 악기를 제공하고 오케스트라 훈련을 실시하는 프로그램. 이철승 서울평화상 위원장은 “청소년들을 폭력과 범죄로부터 구해내고, 오케스트라의 화합 협동 단결의 가치를 청소년과 사회구성원에게 전파해왔다”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엘시스테마는 오늘날 베네수엘라의 미래와 가능성을 나타내는 문화사회적 아이콘이다. 열네 살짜리 청소년이 열한 살짜리 어린이에게, 열한 살짜리가 여덟 살짜리에게 악기를 가르치고 이들은 지역 악단에서 화음을 맞춘다. 참가자 중 약 60%는 빈민층이다. 마약과 폭력에 빠져들 수도 있었던 청소년이 관현악에 몰두하면서 삶의 목표와 의미를 찾는다. 전국 200여 개 지부에서 30여만 명의 어린이와 청소년이 150여 개의 청소년 오케스트라와 70여 개의 유년 오케스트라에 참여하고 있다.이런 엘시스테마도 시작은 보잘것없었다. 1975년 아브레우 박사는 수도 카라카스의 빈민가 차고에 청소년 11명을 모아 악기를 사주고 관현악 합주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해 4월 외교부 청사에서 노동절 기념 콘서트를 열고 7월 멕시코 순회연주를 하면서 ‘청소년 오케스트라의 기적’은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듬해 말엔 단원이 300명을 넘었고, 지역별 연령별로 독립된 오케스트라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처음 구성한 오케스트라는 남미 독립운동 영웅의 이름을 따서 1978년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오케스트라’로 명칭을 바꿨다. 오늘날 엘시스테마 출신의 구스타보 두다멜이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이 오케스트라는 영국 BBC ‘프롬스’ 등 해외 음악축제 출연을 비롯해 세계를 누비며 힘과 열정이 넘치는 연주로 찬사를 받고 있다. 이를 본뜬 ‘엘시스테마 열풍’도 세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영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엘시스테마의 이름을 딴 청소년 음악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9월 서울시립교향악단과 구로구가 손잡고 어린이 교향악단 창설 계획을 밝히는 등 한국판 엘시스테마 논의도 활발하다. 이에 앞서 8월에는 엘시스테마의 성공요인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취재, 분석한 책 ‘엘시스테마, 꿈을 연주하다’(푸른숲)가 출간됐고 영화 ‘기적의 오케스트라-엘시스테마’도 개봉됐다. 아브레우 박사는 카라카스의 음대에서 조교수와 대작곡가 타이틀을 받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석유경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독특한 이력의 주인공. 그는 서울평화상위원회를 통해 “빈곤층 청소년들에게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려 한 노력이 인정받은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시상식은 다음 달 27일 서울에서 열린다. 아브레우 박사에게는 상장과 상패, 20만 달러의 상금이 수여된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서울평화상 역대 수상자1회 1990년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2회 1992년 조지 프랫 슐츠(전 미국 국무장관)3회 1996년 국경없는 의사회 (MSF·국제의료구호조직)4회 1998년 코피 아난(유엔 사무총장)5회 2000년 오가타 사다코(유엔 난민고등판무관)6회 2002년 옥스팜(Oxfam·국제구호단체)7회 2004년 바츨라프 하벨(전 체코 대통령)8회 2006년 무함마드 유누스(그라민은행 총재)9회 2008년 수잰 숄티(미국 디펜스포럼 회장)10회 2010년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엘 시스테마 설립자)}

1971년 4월 15일 5년차 이하의 젊은 기자들을 중심으로 한 동아일보 기자들은 중앙정보부 요원의 사내 상주 또는 출입을 거부하고 기자적 양심에 따라 진실을 자유롭게 보도할 것을 결의하는 선언문을 채택했다. 한국 언론 최초의 언론자유수호 선언이었다. 이 선언은 16일 한국일보, 17일 조선일보 대한일보 중앙일보 기자들의 선언문 채택으로 이어지며 5월 초까지 전국 14개 언론사로 확산됐다. 그러나 그해 10월 박정희 정권의 위수령 발동에 이어 1972년 10월 유신이 단행되면서 언론자유는 다시 위축됐다. 동아일보의 언론자유수호 선언이 나오기 전인 3월 26일 서울대 문리대 법대 상대의 학생회장단 30여 명이 광화문 동아일보 사옥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당시 박정희 정권이 3선 개헌으로 장기집권의 길을 연 뒤 4월 27일 제7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중앙정보부 요원이 편집국에 수시로 출입하며 “이것은 빼고 저것은 키우라”고 하는 현실을 인식한 대학생들이 언론의 자성을 촉구한 행동이었다. 시위를 동아일보 사옥 앞에서 벌인 것은 동아일보가 한국 언론의 상징이었기 때문이었다.1973년 10월 초 서울대에서는 유신 이후 최초의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이를 보도하려 했던 동아일보는 10월 4일자와 5일자 기사가 중앙정보부의 개입으로 강제 누락되자 해당 지면을 백지로 발행해 언론탄압의 실상을 대내외에 폭로했다. 이런 사건들을 계기로 2차, 3차 언론수호성명이 채택됐으나 그 성과는 개별 사안의 보도를 관철하는 선을 넘어서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1974년 10월 24일 동아자유언론실천선언은 획기적 돌파구였다. 오전 9시 15분 동아일보 광화문 사옥 3층 편집국에 모인 편집국 출판국 방송국 기자 180여 명은 ‘자유언론에 역행되는 어떠한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자유민주사회 존립의 기본 요건인 언론 실천선언에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을 선언했다. 행동강령으로 △신문·방송·잡지에 대한 외부 간섭 배제 △기관원의 출입 거부 △언론인의 불법연행 거부 및 불법연행 시 연행자가 귀사할 때까지 퇴근하지 않는다는 3항을 채택했다. 실천선언이 지면과 방송에 제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자유언론실천특별위원회라는 기구도 설치했다. 실천선언의 파급효과는 3년 전 언론자유 수호선언의 파장을 넘어섰다. 그날 오후 한국일보 기자들이 자유언론실천 선언을 한 데 이어 25일엔 경향신문 중앙일보 신아일보 등 31개 전국 신문·방송·통신사 기자들로 확산됐다. 동아일보는 ‘왜 자유언론을 부르짖는가’ 제하의 25일자 사설을 통해 자유언론의 뜻을 밝혔다. 유신정권이 이를 묵과할 리 없었다. 국내외 언론이 주목하고 있는 동아일보에 직접적 탄압을 가할 수 없자 간접적 고사(枯死) 작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중앙정보부가 직접 동아일보 광고주들을 남산 중정으로 불러 동아일보와 관련 매체에 광고를 주지 않겠다는 서약서와 보안각서에 서명을 받아냈다. 그해 12월 20일 그렇게 시작된 광고해약 사태는 1년 중 광고가 가장 많이 들어오는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무더기로 몰아닥쳤다. 동아일보 광고 수입의 절반 이상을 점하던 8개 광고주가 일시에 광고계약을 철회했다. 크리스마스였던 12월 25일엔 극장광고가 일제히 끊겼다. 급기야 12월 26일엔 일부 광고면을 공란으로 내보내는 ‘백지광고 사태’가 초래됐다. 광고탄압 한 달가량인 1975년 1월 23일까지 평상시 상품광고의 98%가 사라졌다. 동아방송의 광고도 1월 7일 무더기로 사라지기 시작해 역시 한 달 만인 2월 7일까지 건수로는 88.7%, 금액으로는 91.7%가 떨어져 나갔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전국에서 동아일보를 격려하는 격려광고가 물밀 듯 쏟아졌다. 1975년 1월 1일자 ‘자유언론수호 격려’란 제하의 광고란에 22건의 광고를 필두로 31일까지 한 달간 무려 2257건의 격려광고가 쏟아졌다. 이러한 격려광고는 5069건으로 최고를 기록한 2월을 포함해 격려광고가 끊긴 5월 중순까지 1만352건에 이르렀다. ‘동아! 너마저 무릎 꿇으면 진짜 이민 갈꺼야-이대 S생’을 비롯해 ‘이렇게 화날 땐 어떤 약이 좋은지 광고야 말해다오-약사’ ‘작은 광고들이 모두 민주탄환임을 알라-○○출판사 편집부’ 등의 명문구가 쏟아졌다. 하지만 동아일보의 경영상태는 악화일로였다. 1972년 3300여만 원의 흑자를 기록했던 동아일보는 1973년 1억1000만 원 적자로 돌아선 데 이어 1974년엔 적자규모가 1억7000만 원으로 불어났다. 광고 해약사태 이후엔 하루 평균 315만 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결국 경영난 돌파를 위해 그해 3월 1실 3부를 폐지하는 과정에서 기자 18명이 해임됐다. 이 조치는 49명 해임, 84명 무기정직으로 이어진 ‘동아투위사건’으로 이어지며 동아일보에 큰 내상을 안겼다. 유신정권은 이후에도 타협을 종용해왔다. 6월 중순 양두원 중앙정보부 차장이 이동욱 주필에게 면담을 요청해 유신체제를 계속 수호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사설을 게재하라고 요구했다. 동아일보는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사설 게재 요구를 철회한다는 조건으로 7월 11일 김상만 사장과 양두원 차장이 만나 밤샘 담판을 벌인 끝에 ‘긴급조치 9호를 준수한다’는 선에서 타협이 이뤄졌다. 광고 게재는 7월 16일 재개됐다. 광고탄압이 시작된 지 8개월 만이었다.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 “격려광고는 가장 먼저 읽는 정치적 칼럼” ▼해외언론 ‘광고투쟁’ 성원 빗발… 朴대통령에 항의전문 보내기도 세계 언론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광고탄압이 동아일보에 이어지자 해외 언론들도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백지광고가 나간 다음 날인 1974년 12월 27일 일본 일간지인 아사히, 요미우리, 마이니치신문은 광고탄압 사실을 상세히 보도했다. 1975년 1월 14일 아사히신문은 ‘동아일보와 언론의 자유’ 제목의 사설에서 “우리는 동아일보 문제를 금후에도 주시하고자 한다. 그것은 민주주의 언론, 보도의 자유에 치명적인 타격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아사히신문은 1월 20일자 6면 전면을 할애해 광고탄압 특집기사를 실었다. 1월 중순부터는 미국과 유럽의 언론이 잇달아 특집기사로 광고탄압 사건을 다뤘다. 영국의 더 타임스는 1월 16일자 ‘한국의 신문, 압력에 용감히 맞서고 있다’ 제목의 기사에서 광고탄압 경위와 국내외의 관심을 상세히 보도했다. 영국의 가디언은 2월 19일자에서 “조그만 격려광고들은 원래의 의도를 넘어서 한국인들이 신문을 펼쳐들고 첫 번째로 읽는 정치적 개인칼럼”이라고 전했다. 미국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뉴스위크, 프랑스의 르몽드 르피가로도 특집기사와 사설로 광고탄압의 실상을 다뤘다. 국제 언론단체들도 동아일보에 대한 격려와 한국 정부에 대한 항의에 나섰다. 국제신문편집인협회(IPI)의 어네스트 마이어 사무국장은 각국 회원들에게 동아일보에 대한 지원을 호소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국제기자연맹(IFJ)과 국제신문발행인협회(FIEJ)는 대표 명의로 박정희 대통령에게 전문을 보내 “현재의 동아일보 사태에 깊은 충격을 받았으며 동아일보가 공정한 조건 아래서 발간될 수 있도록 귀하가 적절한 조치를 취해주기 바란다”고 항의했다. 국제신문발행인협회는 매년 언론자유의 증진에 기여한 인사에게 주는 ‘언론자유 금펜상’의 1975년 수상자로 김상만 동아일보 사장을 선정했다. 외국 저명 언론인이 동아일보에 보내는 격려 메시지도 이어졌다. 데니스 헤밀턴 더 타임스 회장 겸 주필은 “동아일보는 사원들과 국민, 그리고 각국 자유언론의 성원으로 끝까지 살아남을 것”이라고 격려했다. 세계의 민권 및 정치권력을 조사 평가해온 미국 단체 프리덤하우스는 ‘정부의 입김이 서린 새로운 고통을 주는 행위’라고 광고 해약을 비난하는 성명을 냈다.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 격려광고 낸 유재천 現상지대 총장▼ “신방과 교수 12명 규합 탄압규탄 광고 큰 파장” “상식을 넘어서는 사상 초유의 광고탄압 사태를 언론학자들이 손놓고 바라만 볼 수 없었습니다.”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태와 이에 따른 격려광고 물결이 이어지던 1975년 2월 10일, 동아일보 사회면에는 서울시내 언론관련 학과 교수 12명의 이름으로 광고가 실렸다. 이 움직임을 주도한 유재천 상지대 총장(당시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사진)은 “언론의 자유와 책임을 논하는 학자들로서 해야 할 일을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유 총장은 “나와 강현두, 이강수 교수 3인이 시국에 관해 얘기를 나누다가 격려광고를 싣자는 데 합의하면서 일이 시작됐다”고 회상했다. “뜻을 같이할 만한 교수들의 명단을 함께 작성한 뒤 일일이 전화로 설득했죠. 12명에게서 5만 원씩 걷어 60만 원을 마련한 뒤 세 사람이 광화문 사거리의 다방에서 문안을 작성했죠. 문안과 광고비를 들고 동아일보사로 올라갔어요. 송건호 편집국장이 홍승면 주필에게 안내하더군요.” 홍 주필은 “이름이 널리 알려진 교수들이 자신들 명의로 의견을 표현하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지 않겠느냐”며 우려를 표시했다. 송 편집국장도 같은 의견이었다. “성의는 충분히 알겠지만 교수들 신상에 닥칠 위협이 염려된다”며 말리는 두 사람 앞에 세 교수는 억지로 문안과 광고료를 떠밀 듯 맡기고 나왔다. 같은 날 석간에 광고와 기사가 실렸다. “우리가 걷은 광고비에 비해 큰 지면을 떼어주셨더군요.” 언론학자들이 나서 광고탄압을 규탄한 이 광고는 큰 파장을 불렀다. 참여 교수가 없는 대학의 학생들이 ‘부끄럽다’는 광고를 내기도 했고 참여 학교의 학생들이 ‘교수님들의 뜻에 동참한다’는 광고를 싣기도 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 씨(23·사진)가 26일 폐막한 제8회 미국 인디애나폴리스 국제바이올린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윤소영 씨(25·스위스 취리히 음대)는 2등상을 차지했다. 강 씨는 베이스 강병운 서울대 교수의 막내딸로 김남윤, 자카르 브론, 도로시 딜레이 교수를 사사했으며 2009년 서울시와 동아일보가 공동 주최한 ‘LG와 함께하는 서울국제음악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올해 6월에는 일본 센다이 국제음악콩쿠르 바이올린 부문에서 우승했다. 인디애나폴리스 국제바이올린콩쿠르는 1982년 창설됐으며 4년마다 열린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오수영 오수영산부인과 원장 중환 연세대 원주의대 교수 기영 국방부 부이사관 모친상·최철호 대한승마협회 기획이사 장모상=21일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 발인 25일 오전 7시 02-2019-4001}

더블베이시스트 성미경 양(17·한국예술종합학교 2학년·사진)이 19일 폐막한 독일 마티아스 슈페르거 국제 더블베이스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이 콩쿠르에서는 2006년 성 양의 오빠인 성민제 씨가 동양인 최초로 우승한 바 있다. 성 양은 비르투오소상과 게리 카 특별상, 청중상도 받았다. 상금은 5000유로(약 760만 원).}

러시아를 대표하는 아이스발레단 ‘러시아 국립 아이스쇼(사진)’가 추석 연휴를 맞아 한국 관객들을 찾아온다. 23∼26일 서울 양천구 목동 아이스링크에서 총 7회 공연을 갖는다. 러시아 국립 아이스쇼는 1959년 옛 소련 최초로 아이스발레쇼를 시작했으며 러시아에서 유일하게 자체 공연장과 연습장을 갖고 있다. 이번 공연에는 국제빙상연맹 세계선수권대회 챔피언 출신인 알렉세이 모토린, 러시아컵 페어스케이팅 부문 챔피언을 지낸 아나스타시야 이그나티예바 등 팀 대표스타들이 출동한다. 1부에서는 차이콥스키의 발레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아이스발레로 축약 각색해 보여준다. 2부 서커스 갈라쇼에서는 에어쇼, 훌라후프 묘기, 불꽃서커스 등 아이스발레로 표현할 수 있는 온갖 기교를 펼쳐낸다. 3만3000∼8만8000원. 23, 25, 26일 오후 3시 7시, 24일 오후 8시. 1599-6171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서울 서초동 모차르트홀 연습실 앞. 출렁이는 듯 구르는 듯 서늘한 물빛 피아노 소리가 새나왔다. 귀를 기울여보니 묵직하면서 감칠맛 나는 아쟁 소리도 들렸다. 익숙한 멜로디는 바로 정선아리랑이었다. 잠시 후 피아니스트 유키 구라모토 씨(59)가 모습을 나타냈다. “안녕하세요, 유키 구라모토입니다.” 그는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제작하는 ‘지한파(知韓派) 아티스트 아리랑 음반’에 아리랑(경기아리랑)과 정선아리랑을 연주하기 위해 지난달 서울에 왔다. 아쟁 연주가 신현식 씨가 협연한다. 28일 서울광장 특설무대에서 열리는 ‘아리랑 페스티벌’에서도 두 아리랑을 연주할 예정인 그를 인터뷰했다. ―일본인들에게도 ‘아리랑’은 친숙한 멜로디일 걸로 생각합니다. 정선아리랑도 잘 알고 계셨나요. “아리랑은 물론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한국과 일본에서 열었던 콘서트에서도 앙코르로 연주한 적 있죠. DVD에 싣기도 했고요. 정선아리랑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됐는데도 친숙한 느낌입니다.” 그는 ‘경기아리랑’이라고도 불리는 아리랑이 부르기 쉽고 일본에 없는 ‘대륙적’인 느낌인 반면, 정선아리랑은 애달프고 자장가 같은 느낌으로 일본인이 이해하기 쉬운 감성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아쟁을 연주한 신현식 씨는 “처음 소리를 맞추는 순간부터 구라모토 씨는 완전히 준비된 듯했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세부를 조절하면서 호흡을 맞출 수 있었죠. 한마디만 의견을 말해도 제 의도를 완전히 이해하셨어요.” 구라모토 씨는 1999년 이후 열세 차례 내한공연을 하면서 전회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한국에서는 조지 윈스턴 못잖게 뉴에이지 음악을 친숙하게 만든 ‘뉴에이지 피아노의 대명사’로 통한다. ―구라모토 씨의 음악이 가진 어떤 점에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으로 보십니까. “제 음악이 추구하는 것은 ‘치유받는다, 상냥하다, 고향이 떠오른다’와 같은 느낌입니다. 늘 그렇습니다. 매일 먹는 밥처럼, 늘 있는 재료로 맛있게 만드는 게 쉬워 보이지만 힘듭니다. 정성을 가득 담아야 알아주니까요.” 선(禪)문답 같지만 명쾌했다. 구라모토 씨는 10월 2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네 번째 내한 콘서트 ‘POEM’을 연다. 신보 ‘POEM’에 실린 ‘저녁 무렵’ 등 신곡과 첫 내한공연 때 선보인 ‘레이크 루이스’ 등을 연주한다. 디토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협연한다. 3만∼8만 원. 1577-5266 그가 참여한 ‘아리랑’ 음반은 10월 1일 발매한다. 구라모토 씨 외에 브라질 보컬리스트 이타마라 쿠락스, 재즈 기타리스트 리 릿나워, 아카펠라 그룹 ‘리얼그룹’ 등이 참여한다. 지난해 발매된 ‘마음을 이어주는 세계인의 노래 아리랑 1’ 음반에는 재즈그룹 살타첼로, 유러피안 재즈트리오, 피아니스트 유이치 와타나베 등이 참여해 ‘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 등을 담았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10월 1, 2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어부사시사’ 공연 중 1일 공연이 노사 갈등으로 인한 지연 우려로 취소됐다. 방지영 국립극장 홍보팀장은 15일 “오디션과 연봉제를 둘러싼 국립극장예술단원노조(예술노조) 측의 집단행동으로 공연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을 우려가 있어 첫날 공연을 취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국립극장은 이에 앞서 7일 열릴 예정이었던 국립무용단 ‘Soul, 해바라기’ 공연을 예술노조의 공연 지연으로 취소한 바 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국악관현악단의 유장한 연주가 흐르는 무대 위로 영상과 빛의 율동이 넘실댄다. 소리가 영상이미지로, 그림이 음향이미지로 환원되는 보기 드문 공감각(共感覺) 국악 공연이다. 17일 오후 7시 반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오르는 서울시국악관현악단 창단 45주년 기념 ‘에르도스 한과 함께하는 음의 전람회’. 2007년 한국평론가협의회 ‘올해의 최우수 예술인상’을 수상한 화가 에르도스 한 씨가 영상 구성을 맡고, 임평용 단장이 지휘하는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이 창작곡을 연주한다. 이번 공연의 부제는 올해 안중근 의사의 순국 100주년을 기념해 ‘네오 액티즘(Neo Actism) 안중근 그 오래된 미래’로 정했다. 네오 액티즘이란 음악과 미술, 영상이 결합된 새로운 개념의 예술 형식을 뜻하는 말. 에르도스 한 작가는 “접목과 귀속, 융합, 순환으로 이어지는 생각의 순환을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통해 체험하는 무대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 단장이 작곡한 국악관현악곡 ‘안중근 그 오래된 미래’가 연주되는 동안 화가는 음악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무대 위에 설치된 큐브 형태의 특수장치가 이를 입체영상으로 변환해 관객 앞에 펼쳐 보인다. 이용도 연출가는 “색과 소리, 리듬의 기본 속성인 공간과 시간을 수치화해 증강(augmented) 이미지로 창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연에서는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이 위촉한 이의영 씨(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예술전문사과정)의 관현악곡 ‘신령산(新靈山)’도 소개한다. 불교음악 범패의 짓소리 중 ‘거영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이 씨는 올해 6월 열린 26회 동아국악콩쿠르 작곡부문 금상을 수상한 신예 작곡가. 2만∼12만 원. 1544-1114∼6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갈릴리 바다(Sea of Galilee)’는 생각보다 푸르고 잔잔했다. 거센 풍랑을 꾸짖어 잠잠케 했다는 복음서 내용이 떠올랐기 때문일까. 예수 그리스도가 예루살렘 입성 전 제자들을 모으고 군중을 가르치며 ‘공(公)생애’의 대부분을 보낸 무대, 이스라엘의 갈릴리 호수 지방을 7일 찾았다. 주변의 언덕에 서면 호수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둘레 53km의 담수호이지만 물이 귀한 이스라엘에서는 ‘바다’로 불린다.》○ 산상수훈의 현장 팔복교회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의 것임이요….”자신을 따르는 무리가 언덕에 모인 것을 보고 예수는 그 앞에 나가 복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8가지 길을 가르쳤다. 호수 서북부의 가버나움과 게네사렛 사이에 있는 이 언덕에는 4세기경 비잔틴제국 시기에 교회가 들어섰으나 614년 페르시아의 정복과 함께 교회는 파괴됐다. 호수 주변에서도 풍광이 아름다워 많은 사람이 찾았던 이 자리에 1939년 프란체스코 수녀회가 이탈리아 정부의 지원으로 오늘날의 ‘팔복교회’를 세웠다. 교회의 지붕은 팔복을 상징하는 팔각형이며 내부에도 팔각의 유리창에 라틴어로 팔복의 내용이 기록돼 있다. 예수의 가르침은 마음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溫柔)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矜恤)히 여기는 자, 마음이 정결한 자, 화평케 하는 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에게 복이 있다는 내용이다. 2000년이 흘렀지만 오늘날에도 화평과 온유보다 포만과 개인의 안위를 앞서 추구하는 세태 속에서 가치를 잃지 않을 가르침이다.○ 5000명을 먹인 기적, 오병이어 교회팔복교회에서 3km 정도 떨어진 타브가 지역에 오병이어(五餠二魚) 교회가 있다. 380년경 스페인 순례단이 세운 이 교회는 팔복교회와 비슷한 시기에 파괴돼 제단 없이 1300여 년을 보냈다. 1888년 독일 ‘가톨릭 팔레스틴 미션’이 교회를 사들여 재건했다. 은은한 베이지색 석재로 마감한 교회의 외관은 온화하면서도 경건한 느낌을 풍긴다. 복음서는 예수가 이곳에서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개에 축복을 내려 여자와 어린이를 제외하고 5000명을 먹이고도 남아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고 기록했다. 교회 내부에는 비잔틴 양식의 모자이크로 표현한 물고기와 빵 장식이 있다.○ ‘날 사랑하느냐’ 베드로 수위권 교회 여러 성직자와 성서학자가 성서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 중 하나로 베드로를 꼽는다. 지식이 얕고 경솔했으며 세 번이나 예수를 모른다고 했지만 그는 자신의 약점을 뼈저리게 후회하고 예수의 가르침을 세상에 전파하는 최일선에 섰다. 타브가의 호숫가에 있는 ‘베드로 수위권 교회’는 그렇게 부족한 사람을 도구로 선택한 이의 뜻을 생각하게 하는 장소다. 요한복음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부활한 뒤 어부로 돌아가 있던 베드로에게 나타났다고 기록했다. 베드로는 배를 미처 대지도 못한 채 물에 뛰어들어 예수에게 다가간다. 예수는 그에게 세 번 묻는다. “베드로야,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째 베드로는 “주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것을 아시나이다”라고 말한다. 그런 그의 뺨에는 눈물이 흐르지 않았을까. 예수는 베드로에게 “내 어린 양들을 잘 돌보아라”라고 세 번 당부한다. 교회는 예수가 승천하기 전 지상(地上)의 권한인 이른바 수위권(首位權)을 베드로에게 맡기는 의미라고 해석한다.이 자리에 세워진 베드로 수위권 교회도 4세기에 세워졌다가 이슬람 통치기인 1263년 파괴됐다. 1933년 프란체스코 수도회가 임시교회를 세웠고 1982년 오늘날의 교회가 세워졌다. 내부에는 예수가 제자들과 식사했다는 큰 바위가 순례객들을 맞고 있다.티베리아스(이스라엘)=유윤종 기자gustav@donga.com}

서울 동숭동 문예진흥원 강당에 모인 작가들의 표정은 긴장과 결연함으로 가득했다. 10년 전인 2000년 6월이었다. “전자책은 물류비용과 종잇값이 들지 않으니 50%의 인세를 지급해야 한다.” “전자책의 특정 업체 독점권은 1년만 인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쏟아졌다. 같은 시기 한 작가는 “5년 이내 전자책이 (책 시장의) 60∼70%를 차지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오늘 한국에서 전자책의 위상은 딱하다. 국내 대표작가 중 한 사람인 황석영 씨의 작품도 교보문고 전자책 코너에서는 만화 콘텐츠 정도만 검색된다. 인터파크 도서에서도 차트 상위 작품들은 무료로 제공되는 이육사 한용운 등의 근대 문학작품이다. 그래도 변화의 바람은 다시 불고 있다. 박범신 씨의 소설 ‘은교’는 4월 종이책과 전자책으로 동시 출간됐다. 교보문고는 최근 직원들이 책을 읽고 학습하는 ‘북마일리지’ 제도를 전자책 중심으로 재편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새로운 기류는 하드웨어의 변화에서 비롯된다. 책만 읽기 위해 단말기를 장만하겠다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스마트폰의 보급과 ‘아이패드’를 선두로 한 태블릿 PC의 등장은 컴퓨터를 휴대기기화한 모바일 컴퓨팅 시대를 열고 있다.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전자책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기가 손에 쥐이게 된 것이다. 1960년대 반짝하다 잊혔던 3D 영화가 새로운 영상환경 속에서 부활한 것처럼, 전자책도 적합한 외부의 틀이 갖춰진 오늘날 재발견의 기회를 맞은 듯하다. 물론 변화는 질문들을 동반한다. 그 하나. 서권향(書卷香·책의 향기)이란 콘텐츠의 품격을 나타내는 비유이지만 책의 물성(物性)이 주는 친근함을 가리키는 표현이기도 하다. 물성을 잃어버린 전자책이 종이책과 다름없는 기쁨을 줄 것인가. 이런 논의는 의미 없을 수도 있다. 오늘날 LP와 MP3가 공존하듯 종이책은 많은 점에서 전자책을 능가하는 편의성을 제공하며 변함없는 가치를 자랑할 것이다. 또 하나의 질문은 ‘멀티미디어 기기 환경에서 사용자들이 전자책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것이다. 태블릿 PC와 스마트폰을 든 사용자들은 동영상 콘텐츠나 인터넷 검색, 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에 들이는 시간과 독서에 쓰는 시간을 나눠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걱정하기는 이르다. 문자가 가진 미덕은 이 같은 경쟁 속에서 아직 충분히 재발견되지 않았다. 책은 빠르게도, 느리게도 읽을 수 있다. 사용자가 시간을 능동적으로 지배한다는 특성은 실제 사용 환경에서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 된다. 시청각의 디테일이 강제되는 동영상과 달리 상상과 우의(寓意), 수용자의 고유한 경험이 발현되는 문자 텍스트는 생각이 텍스트에 못 박히지 않고 오히려 텍스트를 풍요하게 한다. 어쩌면 새로운 전자책 환경 속에서 새로운 형태의 텍스트가 나타날지도 모른다. 문자와 동영상, 하이퍼링크가 혼합된 ‘하이퍼텍스트’는 오늘날 ‘다기능 브로슈어’ 정도의 취급밖에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풍부한 시청각 정보를 제공하면서 사용자의 능동성을 보장하는 이 같은 텍스트가 새롭게 발견되고 나아가 예술적 창작의 도구로 이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자 예찬자들도 눈살을 찌푸리는 대신 이런 새로운 텍스트를 환영해도 좋지 않을까. 그것이 인간을 종속시키지 않고, 오히려 인간의 사고에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며 그 세계를 풍요롭게 하는 것이라면.유윤종 문화부 차장 gustav@donga.com}
10일 오후 3시 51분경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석전동 경남은행 본점. 현금 보관 금고가 있는 지하 1층에서 청원경찰 박모 씨(43)가 갑자기 뛰어나왔다. 손에는 5만 원권 5만 장(5억 원)이 가득 차 있는 현금 수송용 비닐봉투가 들려 있었다. 박 씨는 곧바로 1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따라 건물 밖으로 달아났다. K시스템 소속 청경인 박 씨는 추석을 앞두고 경남은행이 각 영업점에 배부할 현금을 한국은행 경남본부에서 가져와 지하 금고에 넣는 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그는 다른 경비원이 한눈을 파는 틈을 타서 순식간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경남은행 측은 전했다. 현금이 담긴 비닐봉투는 가로, 세로 각 45, 30cm에 두께는 10cm. 무게는 10kg 정도다. 1992년 설립된 K시스템은 경남은행의 콜센터 관리, 경비, 청소용역 인력을 공급하고 있다. 박 씨는 그동안 본점 안전관리실에 근무하며 현금 수송을 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남은행으로부터 신고를 받은 경찰은 은행 관계자와 박 씨 가족 등을 상대로 정확한 사건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또 박 씨 얼굴이 담긴 수배전단을 만들어 배포하는 등 박 씨의 소재 파악에 주력하고 있다. 창원=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해설이 있는 음악회에 갔다가 “플루트는 금속으로 만들지만 예전에는 나무로 만들었으므로 목관악기”라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러면 나무를 깎아 만든 스위스 민속악기 ‘알펜호른’은 호른이지만 목관악기인가요?”(안화영·14·과천시 갈현동)A: 떨림판 없이 입술진동으로 소리내면 ‘금관악기’ 목관악기와 금관악기의 차이는 재료만의 차이가 아닙니다. 두 그룹의 핵심적인 차이는 오히려 소리(진동)을 어떻게 빚어내는가와 음높이를 어떻게 바꾸는가에 있습니다. 금관악기는 악기 끝부분(취구)에 입술을 대고 숨을 세게 불면 입술이 진동하면서 소리를 냅니다. 이와 달리 목관악기는 입에 대는 떨림판(리드)이 진동하거나 숨결이 갈라지면서 소용돌이를 일으켜 소리를 내죠. 이 설명이 어렵다면 음높이를 바꾸는 원리에 따라 구분하는 게 편합니다. 목관악기의 경우 관(管)에 구멍을 여러 개 내서 손가락으로 막거나 열면 악기 안에 있는 공기기둥의 길이가 바뀌면서 음높이가 달라집니다. 오늘날 키(누름쇠)가 있는 목관악기도 키를 이용해 구멍을 빠르게 여닫기 쉽게 한 것뿐이지 이 같은 원리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반면 금관악기는 숨을 부는 강도와 입술 모양에 따라 갖가지 자연배음(自然倍音)이 나면서 음높이가 달라집니다. 기본음이 100Hz(1초에 100번 진동하는 소리)라면 200, 300, 400Hz 하는 식으로 소리가 달라지는 거죠. 금관악기의 중간 음역대에서 이 소리들은 대체로 도, 미, 솔 음이 됩니다. 우리가 금관악기의 ‘팡파르’에서 쉽게 연상할 수 있는 멜로디가 도, 미, 솔 3음계로 구성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여기서 의아하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어, 금관악기도 ‘단추’를 눌러서 소리를 바꾸던데” 하고 말이죠. 금관악기의 밸브는 목관악기의 ‘키’와 기능이 다릅니다. 금관악기는 관이 돌돌 말려 있죠. 키를 누르면 이 돌돌 말린 관이 서로 다른 관으로 연결됩니다. 말하자면 관 사이의 ‘지름길’을 터주거나 닫아주어 공기기둥의 길이를 바꾸는 겁니다. 그렇지만 18세기 이전의 금관악기에는 이런 기능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전통적 관념에서 볼 때 금관악기는 ‘누름쇠가 없는 악기’였습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보통 목관악기는 ‘나무로 만든 악기’, 금관악기는 ‘금속으로 만든 악기’라고만 설명할까요? 18세기 무렵 대부분의 목관악기는 나무로, 금관악기는 금속으로 만들면서 굳어진 명칭과 구분 때문입니다. 금관악기는 수 m의 긴 관이 필요해 나무를 깎아 만들기보다는 금속을 길게 펴서 만드는 쪽이 쉽고 경제적이었습니다. 질문하신 알펜호른 정도가 예외적인 경우이겠습니다만, 알펜호른도 엄밀히 구분하자면 ‘금관악기’ 가문입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연극 뮤지컬 무용 클래식 등을 보다가 궁금한 게 있으면 팬텀(phantom@donga.com)에게 e메일을 보내주세요. 친절한 팬텀 씨가 대답해드립니다.}

‘클래식계 대표 최고경영자(CEO)’로 불리는 금난새 씨(사진)의 8월은 뜨거웠다.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경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이기에 앞서 ‘축제 감독’으로서다. 음악가들에게 오프시즌으로 통하는 계절이지만 그는 8월 1∼8일 경북 포항에서 열린 ‘포스텍과 함께하는 뮤직페스티벌 & 아카데미’ 음악감독을 시작으로 12∼14일 전북 무주 뮤직 페스티벌 예술감독을 맡았다. 30일부터 9월 5일까지는 올해 처음으로 서울 신세계 본점에서 열리는 신세계 뮤직 페스티벌 예술감독까지 맡아 뛰고 있다. 1∼2월 제주에서 열리는 제주 페스티벌까지 합하면 4개 음악축제를 밑그림부터 해설까지 주관한다. 그가 꼽는 성공 예술경영의 비결은 무엇일까. 지난달 31일 신세계백화점에서 만난 그는 ‘윈윈’ ‘독립심’ ‘도전’의 3가지 키워드를 꼽았다.○ 윈윈: 서로가 필요로 해야 “개인 레슨을 받는 음악캠프는 많았죠. 그렇지만 여름에는 전혀 새로운 예술적 경험을 해야 합니다. 다른 연주가들과 함께 호흡하는 오케스트라 체험이 대표적이죠. 우리나라에 ‘오케스트라 연주 아카데미’가 없다는 사실이 아쉬웠어요.” 문화적 기반이 크지 않지만 포스텍이라는 좋은 시설을 갖고 있는 포항이 떠올랐다. 포스텍에 오케스트라 아카데미와 페스티벌을 제안했다. 지역과 학교는 그동안 아쉬웠던 대규모 음악행사를 유치하고, 금 감독으로서는 기대하던 오케스트라 아카데미를 만들 수 있었다. 첫해부터 3번 연주에 포스텍 대강당이 꽉 찼다. 올해 8일 연주에서 마지막으로 연주한 스트라빈스키 ‘불새’에서는 청중 전원이 기립박수를 보냈다. “청중은 연주에서 감동을 얻었지만, 저로서는 청중이 보낸 에너지를 흠뻑 받은 셈이죠. 그러고 보면 콘서트 자체가 행복한 윈윈 아니겠어요?”○ 독립심: 자리가 아니라 감동을 그가 주관하는 축제가 전국에 퍼져 있다는 사실에 눈길이 갔다. 그는 뜻밖에 ‘독립심’으로 이를 설명했다. “예술가가 제도권의 자리에 연연하면 그 자리에 갇혀버립니다. 어디 ‘소속’이라서 위대한 게 아니라 나를 통해 ‘위대한 감동’을 나누려 할 때 좋은 예술가가 됩니다. 이게 예술가로서의 독립심이죠.” 무주 뮤직 페스티벌은 4년 전 시작했다. 리조트를 인수한 대한전선 산하 설원량문화재단과 ‘대자연 속에서 멋진 축제를 만들어보자’는 데 의기투합했다. 야외연주회 ‘서머나이트 콘서트’에서는 리조트 내 만선광장에 수만 명이 모인다. “연주를 했을 때 현장에 있는 사람이 행복한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세계 최고의 악단이 왔다, 초일류의 협연자가 왔다는 것보다 이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도전: 지금까지 없던 걸 찾아라 올해 처음 문을 연 신세계 뮤직 페스티벌은 두 가지 공간에서 진행한다. 서울 신세계 본점 문화홀과 명품관 3층 계단 앞 공간이다. “80년 된, 서울의 근대사를 담은 공간이죠. 계단이 양쪽으로 펼쳐진 우아한 곳이에요. 역사와 함께하는 실내악이랄까.” 명품관 콘서트는 초대관객 단 50명만을 앞에 놓고 열린다. “무주에서 수만 명을 앞에 놓고 하는 연주회도 있고, 19세기 살롱처럼 하는 연주회도 있어야죠. 다 달라야지, 똑같으면 안 되잖아요?” 그의 설명을 듣고 보니 그의 작업들은 그가 든 세 가지 키워드와 모두 연관돼 있다. 올해 6년째인 실내악 축제 제주 페스티벌 또한 지자체와 참가자, 청중이 모두 행복한 ‘윈-윈’ 전략으로 개발했다. 연주자들은 외국 연주자들과 우리나라에 적(籍)이 없는 이미경 뮌헨음대 교수,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 등 해외파 연주자들로 채웠다. 학연과 지연을 따지지 않는 ‘독립심’의 강조다. 이 축제는 최근 아시아 축제로서는 이례적으로 ‘유러피안 페스티벌 어소시에이션’ 회원 축제로 등록됐다. 세계적 네트워킹을 염두에 둔 새로운 도전의 결실이다. 그는 다가오는 가을도 뜨겁게 보낼 예정이다. 10월에 삼성전자의 협찬으로 중국 베이징의 대학 2곳에서 콘서트를 연다. 벌써 가슴이 설렌다고 했다. “작은 시작이지만 이제부터 중국에 ‘클래식 한류’를 일으킬 생각입니다. 자신 있냐고요? 지금까지처럼 한다면 문제없죠. 음악엔 국경이 없다는 말, 진부할 정도로 당연하지 않나요?”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6·25전쟁은 수백만 명의 사상자와 헤아릴 수 없는 전쟁 유가족을 낳고 남북한 경제기반을 붕괴시켰으며 동족 간 극한 대치를 초래한 민족사의 일대 비극이었다. 동아일보도 숱한 간부와 사원이 사망되거나 납북되는 등 막대한 인적 물적 피해를 입었다. 전쟁기간 중 다섯 차례나 사옥을 옮기면서 동아일보는 올바른 정보를 국민에게 전달하기 위해 후방에서 힘겨운 싸움을 펼쳤다.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아침. 비상연락을 받은 사원들이 세종로 동아일보 사옥에 모여들었다. 기자 10여 명이 경무대와 중앙청, 국방부, 주한 외국공관 등을 취재한 결과 전세가 위급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정부 발표를 토대로 제작한 26일자 동아일보는 ‘괴뢰군 돌연 남침을 기도’ ‘정예 국군 적을 요격 중’ 등의 제목으로 채워졌다. 그러나 악화되는 전황은 38선에서 멀지 않은 서울에도 시시각각 전해졌다. 27일 아침에는 외국 공관들을 취재하던 정인영 기자(훗날 한라그룹 회장·2006년 작고)가 ‘외국 기관들이 철수 준비를 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최두선 사장은 전 사원을 모아놓고 ‘일단 해산하자’고 말한 뒤 신문사가 갖고 있던 은행 예금을 모두 찾아 똑같이 나누어 주었다. 27일 오후 4시경 기자들이 편집국에 모였다. “이제는 취재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인쇄 담당 직원들은 흩어진 상태였다. 정인영 기자가 일본 유학 시절 식자공으로 일한 경험을 살려 문선 작업을 끝냈다. 수동 인쇄기로 호외 300부를 찍었다. ‘적, 서울 근교에 접근, 우리 국군 고전 혈투 중’이란 제목이었다. 기자들은 이 호외를 서울시경에서 빌린 지프로 서울 시내 일원에 직접 배포했다. 서울에서 다른 어느 신문보다도 나중에 배포된, 최후의 호외였다. 호외를 낸 뒤 장인갑 편집국장, 이언진 공무국장과 10여 명의 기자 등 사원들은 무교동 ‘실비옥’으로 가서 숨돌릴 틈도 없이 이별의 술잔을 나눈 뒤 헤어졌다. 공산군의 남침 3개월여 만인 9월 28일 유엔군이 서울을 탈환했다. 사원들이 다시 모이자 동아일보는 10월 4일 신문을 속간했다. 2면에는 가슴 아픈 사고(社告)가 실렸다. “다음 본사 사원의 행방이 불명인바 가족 되시는 분은 즉시 본사로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장인갑(편집국장) 정균철(영업국장) 이동욱(조사부장) 백운선(사진부장) 김성열 서정국 조용근 변영권 김준섭 편집국기자….” 장 편집국장은 인민군 치하인 8월 6일 오전 2시 자택에서 연행된 뒤 소식이 끊겼다. 일장기 말소사건의 주역 중 한 명인 백운선 사진부장도 7월 10일 내무서에 출두하라는 통보를 받고 집을 나선 뒤 소식이 끊겼다. 고영환 논설위원, 정균철 영업국장, 등도 연행된 뒤 소식이 끊어졌다. 뒤늦게 들려온 기쁜 소식도 있었다. 이동욱 조사부장은 평안북도 개천까지, 변영권 기자는 함경남도 홍원까지 끌려갔다가 탈출해 돌아왔다. 훗날 동아일보 회장을 지낸 이동욱 부장은 “개천에서 피부병에 걸려 방공호에서 격리돼 지냈다. 9월 하순 어느 날, 미군 폭격기의 굉음이 쏟아지자 인민군이 북쪽으로 달아났다. 꿈인가 생시인가 했는데 그 끔찍한 피부병이 나도 모르게 나았다”고 회상했다. 수복과 함께 돌아온 서울 세종로 사옥은 공산군이 인쇄시설을 파괴한 상태였다. 전시의 자금난과 용지난이 겹쳐 신문은 오늘날의 1개 면 크기에 불과한 타블로이드 2개 면으로 제작했지만 뉴스에 목말랐던 국민들의 갈증을 긴급히 풀어주기에 충분했다. 10월 중순, 서울 수복 후 첫 대통령 기자회견이 경무대에서 열렸다. 대통령과의 대담이 끝날 때쯤 동아일보의 최흥조 취재부장이 일어나 대통령에게 말했다. “지금 계엄하 국방부 정훈국이 모든 신문을 검열하고 있는데 (…) 이래서는 좋은 신문을 만들 수 없습니다.” 대통령은 즉시 “공산당과 전쟁을 하는 까닭은 민주주의를 하기 위해서야. 민주 국가에서 신문을 검열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야”라며 신문 검열을 중지하도록 지시했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선이 후퇴하면서 동아일보는 1951년 1월 3일 다시 피란을 준비해야 했다. 황망히 해산해야 했던 첫 피란과 달리 이번에는 20명의 사원을 ‘최종 잔류조’로 편성해 정부 각 기관 인원들과 함께 마지막 피란열차를 타기로 했다. 신문 용지가 가장 큰 문제였다. 당시 김진섭 기자는 “서울역장에게 내가 올 때까지 절대 열차를 출발시키지 말라고 했다. 서울 철도경찰대장의 도움을 얻어 미군 스리쿼터를 얻어 타고 신문 용지를 역까지 실어 날랐다. 이 때문에 열차는 50분 연발했다”고 훗날 회고했다. 이렇게 실어 나른 신문 용지는 보통 크기의 신문 장수로 2만2000장(4만4000면) 분량에 달했다. 이 덕택에 동아일보는 피란지 부산에서 다른 신문들보다 빨리 1월 10일자로 속간호를 낼 수 있었다. 전시 피란지에서 내는 신문인 만큼 여건은 열악했다. 부산 지역신문 ‘민주신보’의 평판 인쇄시설과 편집국을 빌려 민주신보와 교대하면서 ‘2부제’로 신문을 제작했다. 판매망이 없어 광복동 사거리, 영도 다리, 서면 같은 번화가에 책상을 내놓고 신문을 팔았는데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던 피란 사원들이 많이 참여했다. 부산 속간 만 2년 뒤인 1952년 1월 15일에야 동아일보는 토성동에 임시 사옥을 지어 입주했다. 가두판매로 매일 2만∼3만 부가 팔릴 정도로 동아일보는 피란지 부산에서 인기였다. 판매 대금이 들어오면 곧바로 다음 날 신문 제작에 투입했다. 동아일보는 파괴된 건물과 시설을 정비한 뒤 1953년 8월 18일자를 마지막으로 2년 8개월간의 피란시대를 마무리하고 8월 19일 서울 세종로 사옥으로 돌아왔다. 이듬해에는 시간당 5만 장을 인쇄하는 신형 윤전기를 추가 도입해 발행부수 8만 부로 국내 최대 신문 자리를 굳혔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국민방위군 거액로비 사건’ 보도 큰 반향 ▼ 전쟁중 정권비리-탄압 정면으로 맞서 전쟁이라는 국가 존망의 위기를 맞아 동아일보는 북한의 반민족적 침략을 규탄하고 국민의 결속을 촉구하며 국군 장병의 사기를 북돋우는 데 힘썼지만 이 시기에도 정권의 비리와 언론 탄압에는 분연히 일어나 맞섰다. ‘국민방위군 사건’과 관련한 정권과의 대립은 그 대표적 사례다. 국민방위군 사건이란 예비병력 확보를 위해 소집한 ‘국민방위군’의 사령관 김윤근 준장과 부사령관 윤익헌 대령 등 10여 명이 예산과 물자를 빼돌린 사건을 말한다. 사령관과 부사령관 등 5명이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아 1951년 8월 13일 처형됐다. 이 사건으로 음식과 피복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한 17∼40세 장정 1000여 명이 사망하고 수많은 병자가 발생했다. 9월 25일 동아일보는 ‘내무부 차관이 9월 8일 국회 본회의에서 밝힌 경찰 조서의 내용 때문에 미국대사관이 한국 정부에 항의하는 등 외교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조서의 내용은 국민방위군 사건으로 사형이 확정된 부사령관 윤익헌을 구하기 위해 그의 부인이 미대사관 고위층에 거액의 구명운동비를 주었다는 것이었다. 미 대사관은 조서 내용 공개로 인한 명예훼손 등을 문제 삼아 한국 정부에 항의했다. 이 같은 내용이 보도되자 공보처는 ‘해당 기사는 사실무근의 허위이므로 동일한 크기로 취소 기사를 지정하는 날짜에 게재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동아일보는 이를 거부했다. 이후 미대사관의 참사관이 내무부 장관을 방문해 항의했음이 사실로 밝혀졌는데도 검찰은 취재기자를 소환해 기사내용을 알려준 정부 관료를 대라고 다그쳤다. 검찰은 대한제국기 을사늑약 이후인 1907년 이완용 내각이 만든 광무신문지법까지 끌어들여 11월 9일 편집인 고재욱과 취재기자 최흥조를 불구속 기소했다. 광무신문지법에서 적용한 조문은 ‘황실의 존엄을 모독하고 국헌을 문란하고 혹은 국제 교의를 저해할 사항을 기재할 수 없다’는 시대착오적인 것이었다. 동아일보는 사설을 통해 이를 정면 비판했으며 이를 계기로 대다수 언론사가 일제히 언론 관련 법안의 비민주성과 위헌성을 지적하고 나섰다. 중앙청 기자단과 국회·법조기자단은 언론 관련 악법의 위헌성을 지적하고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에게 무효화를 건의했다. 국회가 11월 15일 의원 26명의 발의로 언론탄압법인 광무신문지법 철폐에 관한 법률안을 제안하는 등 큰 반향이 일었다. 광무신문지법은 고재욱 편집인과 최흥조 기자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던 1952년 3월 19일 결국 국회에서 폐기됐다.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 ‘6·25 아픔’ 반세기 특집기사 ▼1960 외국인이 본 6·251970 납북인사들 추적1980 이산가족의 절규 “수십만 명의 남녀 및 어린이들은 안전을 찾아 먼짓길을 물결이 되어 피난해 내려갔다. 헤아릴 수 없는 무고한 사람들이 길바닥에 쓰러지고 가족과 멀어져 뿔뿔이 헤어졌다.”(스탄리·곳쉬 記) 6·25전쟁이 발발한 지 10년이 지난 1960년 6월 25일. 동아일보 2면에는 ‘외국인이 본 6·25’ 시리즈가 실렸다. 이 시리즈는 2회에 걸쳐 개전 직후의 상황과 유엔의 참전, 3년간의 전쟁 끝에 이른 휴전과 원조에 이르는 과정을 회고했다. 전쟁이 남긴 상처를 잊지 않기 위해 6월이면 어김없이 6·25를 다룬 기사가 등장했다. 1962년에는 ‘6·25의 유산’시리즈가 5회에 걸쳐 실렸다. 통일의 날 ‘기쁨의 비석’을 세울 곳인 휴전선과 월남피란민, 전쟁고아, 납북인사 가족, 유엔묘지를 다루며 전쟁의 아픔을 어루만졌다. 전쟁 20돌을 맞았을 때는 납북인사들의 행방을 추적하기도 했다. 1970년 6월 25일자에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인사 30명의 행적과 소식을 전했다. 제2대 국회의원인 원세훈은 ‘서울 출신. 북경대학 로문학과 졸업. 임정 참여…자택에 내무서원이 나타나 찝에 태워 납치. 59년 임정 요원들을 국제간첩으로 몰아 처형할 때 희생당했다’고 기록했다. 김규식 조소앙 최동오 안재홍 김동원 엄항섭 등에 대한 내용도 함께 실렸다. 헤어진 가족을 그리는 절절한 그리움도 지면에 소개됐다. 1980년 6월 25일에는 시인 김광림 씨(81)가 ‘북의 어머님께’라는 제목의 편지를 썼다. 김 씨는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30년이면 무엇인들 변하지 않았겠읍니까. 저는 그동안 세 아들과 딸 하나를 두었읍니다”라고 그리움을 표현하며 “어머니! 어서 길을 트십시다. 마음을 여십시다. 그리고 얼싸안고 30여 년 동안 맺힌 한을 울음으로 풀어 보십시다”라고 마무리했다. 전쟁 발발 50년이 된 2000년에는 남북평화를 위해 전쟁을 되돌아보는 기획이 마련됐다. ‘6·25전쟁 50년’이라는 제목의 이 코너에서는 ‘양민학살과 같은 비인도적 행위도 제대로 짚어야 한다’ ‘문학에서 화해를 이야기하자’와 같은 각계 전문가들의 제언이 소개됐다. 올해도 어김없이 6·25 기획은 마련됐다. 참전자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은 ‘6·25 60년, 참전 16개국을 가다’와 ‘유물로 만나는 6·25’가 전쟁의 비극을 상기시켰다.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 MOVIE ◆골든 슬럼버일본 총리의 취임 퍼레이드가 한창인 순간, 폭탄이 터지며 반미 성향의 젊은 새 총리가 암살당한다. 사건 현장 근처에서 대학시절 친구를 만나던 택배기사 아오야기(사카이 마사토)는 친구에게 ‘총리 암살범으로 지목될 테니 도망가라’는 알 수 없는 말을 듣게 되고, 그 말이 끝나자마자 경찰들의 추격이 시작된다. 무작정 총부터 쏴대는 경찰 앞에서 자신이 거대한 음모의 희생양이 됐다는 사실을 깨닫는 아오야기. 하지만 그를 돕는 의문의 친구들이 하나 둘씩 나타나기 시작한다. 나카무라 요시히로 감독. 사카이 마사토, 타케우치 유코 출연. 26일 개봉, 12세 이상.20자평: 숨 막히는 추격, 한 방울씩 더해진 사랑과 유머로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 (정지욱)▲ 영화 `골든 슬럼버` 예고편◆피라냐평화롭던 호수에서 형체를 알 수 없는 시체 한 구가 발견된다. 세 아이의 엄마이자 보안관인 줄리(엘리자베스 슈)는 동료들과 함께 수사에 나서고 호수 바닥의 갑작스러운 지진을 조사하기 위해 미국 지질조사국(USGS) 요원들도 호수를 찾는다. 그러나 호수를 탐사하던 요원들마저 목숨을 잃게 되고, 범인은 200만 년 전 사라진 줄 알았던 식인물고기 피라냐의 흉포한 종(種)으로 밝혀진다. 줄리는 호수 폐쇄를 명령하지만 봄 휴가를 맞아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청춘 남녀들의 파티는 계속된다. 알렉상드르 아자 감독. 엘리자베스 슈, 스티븐 매퀸, 제시카 스자르, 켈리 브룩, 애덤 스콧, 제리 오코넬 출연. 26일 개봉, 18세 이상.20자평: 벌거벗은 젊음, 물고기의 시뻘건 눈알과 이빨만 보인다. ★★☆ (정지욱)▲ 영화 `피라냐` 예고편◆프레데터스특수부대원, 의사, 마약상, 야쿠자, 연쇄살인범 등 하는 일도 다르고 고향도 다른 7명이 의식을 잃고 하늘에서 떨어진다. 자신들이 어디에 와 있는지, 왜 그곳으로 끌려왔는지 감조차 잡지 못하는 그들. 하지만 미처 그들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강력한 힘을 가진 우주 최강의 포식자 ‘프레데터’들이 그들을 쫓기 시작한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로이스(애드리언 브로디)를 중심으로 힘을 합친다. 님로드 앤탈 감독. 애드리언 브로디, 토퍼 그레이스, 알리스 브라가, 로런스 피시번 출연. 26일 개봉, 15세 이상. 20자평: 지루해진 사투, 뭥미?! ★☆ (정지욱)▲ 영화 `프레데터스` 예고편◆ 죽이고 싶은뇌질환 환자로 끊임없이 자살을 시도하는 민호(천호진). 어느 날 병원에 장기 입원 중인 그의 옆 침대에 사고로 기억 상실증에 걸린 상업(유해진)이 실려 온다. 상업이 자신의 아내를 살해한 살인범임을 직감한 민호는 다시 재활치료에 전념하며 상업에 대한 복수의 칼을 갈기 시작한다. 전신마비가 되어 꼼짝도 할 수 없는 상업도 조금씩 돌아오는 기억 속에 민호에 대한 적개심이 커져간다. 조원희, 김상화 감독. 유해진, 천호진 출연. 26일 개봉, 18세 이상.20자평: 예술영화이기에도 상업영화이기에도 2% 부족. ★★★ (정지욱)▲ 영화 `죽이고 싶은` 예고편■ CONCERT ◆ 늦여름의 마지막 휴가 27일 오후 8시 브라질의 재즈 디바 이타마라 쿠락스(7만7000원), 28일 오후 7시 싱어송라이터 이한철(5만5000원), 29일 오후 6시 하모니카 전제덕과 기타 박주원의 조인트 콘서트(5만5000원)가 열린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백암아트홀. 070-8777-4028 탱고의 혁명 ‘바호폰도’ 2010 내한공연영화음악의 거장 구스타보 산타올라야가 이끄는 아르헨티나의 8인조 일렉트로닉 탱고 밴드 바호폰도가 단독 콘서트를 연다. 이들의 인기음반 ‘마르둘세’의 수록곡을 연주한다. 8만8000원. 28일 오후 7시 서울 광진구 광장동 악스코리아. 070-8683-3787◆ 하우스 룰즈 첫 콘서트 ‘매직 텔레비전’3인조 하우스 일렉트로닉 그룹 하우스 룰즈의 첫 단독공연. 하우스 룰즈의 앨범에 피처링 참여한 호란, 유브이, 웨일 등 여러 뮤지션과 DJ들이 무대에 오른다. 5만5000∼17만6000원. 28일 오후 7시 서울 광진구 광장동 쉐라톤그랜드워커힐 리버파크. 02-512-9496◆ 기타 신동 정성하 1집 발매기념 투어-부산 ‘기타 신동’이라는 별명을 얻은 핑거스타일 기타리스트 정성하가 1집 앨범 ‘퍼펙트 블루’ 발매를 기념해 콘서트를 연다. 2만2000∼3만3000원. 28일 오후 7시 부산 해운대구 좌동 해운대문화회관 대공연장. 051-752-5547■ PERFORMANCE ◆ 록키호러쇼컬트 뮤지컬 고전의 첫 내한공연. 약혼한 자넷과 브래드는 양성애자인 프랭크의 저택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다. 크리스토퍼 루스콤비 연출. 후완 잭슨, 루카스 글로버, 루시 몬더 출연. 6만6000∼11만 원. 10월 10일까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아티움. 02-501-7888◆ 톡식 히어로녹색 돌연변이 괴물 톡시로 변한 청년 멜빌이 환경파괴에 맞서 싸운다는 오프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한국어 공연. 이재준 연출. 오만석 라이언 홍지민 김영주 신주연 출연. 6만6000∼5만5000 원. 10월10일까지 서울 강남구 삼성동 KT&G 상상아트홀. 1544-1555◆ 장례의 기술고 김대복 씨의 빈소를 지키던 3남매가 아버지 유산문제로 싸우는데 정체불명의 여인이 나타나 서럽게 울기 시작한다. 임지혜 작. 이기쁨 연출. 조하나 김희연 정도원 유은석 임영우 출연. 1만5000 원. 9월12일까지 서울 종로구 명륜동 마방진 극공작소. 1544-1555◆ 너희가 나라를 아느냐경술국치 100주년을 맞아 애국지사 면암 최익현의 생애를 극화했다. 신봉승 작. 표재순 연출. 오현경 기정수 장영주 노현희 출연. 무료. 29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9월1일 광주 빛고을시민회관 대극장. 9월7,8일 부산 KBS홀. 02-3668-0029■ CLASSICAL ◆ 인천펜타포트아츠페스티벌-오페라 아이다고대 이집트와 에티오피아의 경쟁과 사랑을 배경으로 한 베르디 후기의 대작 오페라. 소프라노 모니아 마세티, 박상희, 테너 김남두 이병삼 등 출연. 2만∼15만원. 27, 28일 오후 7시반, 29일 오후 4시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032-429-0248,0255◆ 바리톤 서정학 리사이틀 ‘숨’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과 오스트리아 빈 국립 오페라극장에서 활동한 바리톤. 로시니 ‘세비야의 이발사’ 중 ‘나는 거리의 만물박사’, 슈베르트 ‘겨울나그네’ 하이라이트 등. 2만∼6만원. 28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02-3461-0976◆ 이정석 트롬본 독주회동아음악콩쿠르에서 1위 입상하고 독일 데트몰트 음대 전문연주자 과정을 졸업한 트롬보니스트. 고베르 ‘교향적 소품’, 타운젠드 ‘실내 협주곡 2번’, 케이지 ‘슬라이드 트롬본을 위한 독주곡’ 등. 2만원. 28일 오후 7시반 서울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 070-7799-0805◆ 숭실OB남성합창단 정기연주회37년의 역사를 지닌 남성합창단. 허걸재 ‘남성합창과 여창 정가를 위한 신용비어천가’, 김동진 ‘가고파’, 러시아 민요 ‘검은 눈동자’, 김동률 ‘동반자’ 등 연주. 지휘 이문기. 2만∼5만원. 31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02-2203-0483■ EXHIBITION ◆ PROPOSE 7>>VOL.5국립고양미술창작스튜디오와 금호미술관이 공동 기획한 전시. 송영욱 씨의 작품(사진)을 비롯해 안경수 조해영 배희경 박혜수 정윤석 정기훈 씨 등 7명의 젊은 작가의 실험적 작품을 선보였다. 9월26일까지 서울 종로구 사간동 금호미술관. 02-720-5114◆ ‘crypto-MUSEUM’-이승현 전개성적 드로잉 작업으로 잘 알려진 작가의 개인전. 독특한 선묘를 바탕으로 탄생한 ‘미확인 생명체’들이 ‘풀밭 위의 점심식사’ 등 사람들과 친숙한 그림과 만나 기괴한 미술관이 탄생했다. 29일까지 서울 마포구 서교동 갤러리 잔다리. 02-323-4155 ◆ ‘Demoli-Creation’-변시재 전숨을 쉬듯 무너지고 생성되는 과정을 반복하는 이동형 구조물이 전시장에 놓여 있다. 공사장 팬스 천을 이용한 녹색 구조물 안에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영상을 볼 수 있다. 9월 1일까지 서울 종로구 소격동 갤러리 조선. 02-723-7133◆ 맛있는 그림 전사과 복숭아 등 과일과 케이크와 초콜릿 등 음식을 소재로 한 그림과 조각을 모았다. 참여작가 한운성 윤병락 박종필 박성민 황남진 김병진 윤은정 유용상 백유일 최정혁 씨 등 16명. 30일까지 경기 안양시 안양1동 롯데백화점 7층 롯데갤러리 안양. 031-463-2715}

《“이게 서양음악?” 유럽에서 발원하고 발전했지만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중심의 문화 전통과 동떨어진 공연물이 잇달아 한국 무대를 찾아온다. 동서로마 분열 이후 독자적으로 발전한 비잔틴(동로마) 제국의 음악, 아랍인의 문화유산이 침투한 프랑스 코르시카 섬과 스페인의 음악 무용들이다. 서양과 다른 연희문화를 발전시켜온 우리로서는 오히려 친숙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찾아볼 수 있다.》○ 특색 있는 목 떨기, ‘아 필레타’ ‘코르시카 폴리포니’의 대표주자인 남성중창 그룹 ‘아 필레타’는 31일 오후 8시 서울 연세대 백주년기념관 콘서트홀에서 첫 내한공연을 갖는다. 폴리포니란 두 가지 이상의 선율이 동시에 진행되는 음악을 뜻하는 말. 바흐의 푸가 같은 대위법(對位法) 음악이 먼저 연상되지만 코르시카와 불가리아 등 세계 곳곳의 민속음악에서도 폴리포니적 특징이 발견된다. 코르시카는 12세기부터 독자적으로 폴리포니 음악을 발전시켰다. 4∼6명의 남성이 중창 형태로 노래한다. 아 필레타란 코르시카 토종 고사리를 부르는 말. 리더인 장클로드 아카비바가 1978년 이 이름으로 중창단을 결성했다. 30여 년 동안 10장 이상의 앨범을 발매하고 연극 ‘메데아’, 영화 ‘히말라야’ 등 타 예술장르에도 진출하면서 활동을 넓히고 있다. 코르시카 폴리포니의 특징으로는 악절 끝을 길게 끌면서 목을 떠는 멜리스마 창법이 꼽힌다. 이 섬에 폴리포니가 나타나기 전부터 있던 북아프리카 음악의 영향이다. 코르시카는 로마제국 성립 이전 카르타고를 비롯한 북아프리카의 영향권에 있었으며 이들의 문화와 생활양식이 지금까지도 짙게 남아 있다. 내한공연에서는 창립자인 아카비바를 비롯한 일곱 명이 출연해 전통음악인 ‘파젤라’, 창작곡인 ‘명상’ ‘불쌍히 여기소서’ 등을 노래한다. 6만6000∼7만7000원. 070-8683-3787○ 비잔틴 제국의 유산 ‘비잔틴 성가단’ 한국 정교회가 한국선교 100주년을 기념해 초청한 그리스 ‘비잔틴 성가단’이 서울과 부산에서 무료 공연을 연다. 21, 23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과 명동성당에서 공연한 데 이어 26일 오후 8시 용산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28일 오후 6시 부산 민주공원 민주항쟁기념관 중극장에서 공연한다. 정교회(Orthodox Church)는 11세기 가톨릭과 분리돼 비잔틴(동로마) 제국과 슬라브권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발전을 이뤘으며 이에 따라 교회음악의 전통도 분리됐다. 오늘날 전해지는 비잔틴 성가는 베이스의 지속저음 위에 멜로디가 흐르거나, 같은 음에 여러 음절을 붙이거나, 오늘날의 장단조와 다른 다양한 선법(旋法)을 사용하는 등 독특한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이번에 초청된 성가대는 1983년 창단한 ‘성가의 거장(The Maistores of the Psaltic Art)’으로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300차례 이상 공연해왔다.○ 플라멩코 댄스뮤지컬 ‘상그레 플라멩카’ 스페인에서 유래한 플라멩코는 언뜻 ‘변방의 유럽문화’로 여겨지지 않는다. 국내에서도 적잖은 교습 인구를 확보할 만큼 대중화됐기 때문. 그러나 플라멩코는 8세기 초반부터 800년 가까이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한 무어인 이슬람교도들의 문화에 기반을 둔 장르다. 기타 위주의 반주부만 보아도 격렬한 리듬이나 ‘미(mi)’음이 주음(主音)이 되는 음계 등에서 지금은 북아프리카로 밀려난 무어인의 유산을 발견할 수 있다. ‘플라멩코 댄스뮤지컬’을 표방한 ‘상그레 플라멩카’는 10명의 남녀 무용수와 7명의 뮤지션이 등장하는 대형 플라멩코 무대. 9월 8∼12일 서울 능동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무용을 리드하는 주인공은 뮤지컬 ‘돈주앙’의 플라멩코 장면을 안무한 로하스와 로드리게스 콤비. 이번에 공연하는 ‘상그레 플라멩카’는 ‘플라멩코의 피’라는 뜻으로 1997년 초연했다. 미국 영국 독일 등 세계 순회공연을 펼치며 전통적 플라멩코에 현대 스페인 무용까지 접목한 ‘플라멩코의 진화’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5만5000∼15만 원. 1544-1555, 1577-5266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초가을 서울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 ‘젊은 목소리’가 몰려온다. 예술의 전당은 올해부터 3년간 9개 대학이 참여하는 ‘대학 오페라 페스티벌’을 마련한다. 올해는 9월 1일 이화여대(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를 시작으로 서울대(베르디 ‘라 트라비아타’), 한국예술종합학교(모차르트 ‘코지 판 투테) 등 세 학교가 무대를 준비했다. 25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정동혁 예술의 전당 공연사업본부장은 ‘전당과 대학, 관객의 윈윈’을 강조했다. 전당은 무료로 공간을 제공하고, 대학은 학생 실기 체험의 일환으로 합창단과 관현악을 사용하니 제작비 거품을 줄일 수 있다는 것. 이에 따라 관람료도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으로서는 파격적인 1만∼5만 원으로 낮췄다. 대학생에게는 1층 200석, 2층 100석의 좋은 좌석을 각각 2만, 1만 원에 제공하는 ‘대학생 페스티벌석’ 혜택도 제공한다. 정 본부장은 한국 오페라계를 짊어질 젊은 유망주들에게 일찌감치 큰 무대 체험을 제공하는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각 작품의 주연급은 졸업생에서 촉망받는 학부생을 망라한다. 서울대 ‘라 트라비아타’에서 남자주역인 알프레도 역을 맡은 이명현 씨는 성악과 4학년 재학생으로 올해 서울국제음악콩쿠르 4위를 차지한 기대주다. 세 작품 중 첫 무대인 이화여대 ‘피가로의 결혼’은 한국식 마당놀이를 응용한 무대가 기대를 모은다. 정선영 연출가는 “우리 전통 이야기의 코드를 활용해 변학도처럼 탐욕스러운 백작, 우악스러운 뺑덕어멈 같은 마르첼리나 등 친숙한 인물들을 보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사는 이탈리아어로 진행하는 대신 자막에 ‘올해 삼재(三災)라더니’ 등 상황에 걸맞은 우리말을 활용해 재미를 높인다. 평일 오후 7시 반(3일 3시 공연 추가), 토요일 3시, 7시 반, 일요일 4시 개막. 02-580-1300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