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공방에 민생-경제 뒷전… “대통령이 결단해야” 목소리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9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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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블랙홀’ 50일]멈춰선 ‘국정시계’

25일 조국 법무부 장관이 대전지검 천안지청에서 열린 2차 ‘평검사와의 대화’를 마치고 청사를 나서고 있다. 천안=김동주 기자zoo@donga.com
25일 조국 법무부 장관이 대전지검 천안지청에서 열린 2차 ‘평검사와의 대화’를 마치고 청사를 나서고 있다. 천안=김동주 기자zoo@donga.com

“국회에 1만6000건이 넘는 법률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500조 원이 넘는 예산도 곧 국회로 넘어온다. 법률안 심사, 예산 심사, 국감 열심히 하는 것이 국회의원 소임이다.”(더불어민주당 전재수 의원)

“더불어민주당이 조국 장관을 지키기 위해 국정감사를 무력화하고 있다.”(자유한국당 김종석 의원)

“지금 여당은 국민이 아닌 조 장관을 바라보고 정치를 하고 있다.”(바른미래당 이태규 의원)

25일 오전 10시 7분 시작한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는 10시 57분 산회하기까지 50분 내내 ‘조국 타령’만 이어졌다. 의사진행 발언을 한 의원 17명 전원이 조 장관 관련 증인 채택 문제를 두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무위는 올 초에도 무소속 손혜원 의원 부친의 독립유공자 선정 관련 자료 공개를 둘러싸고 150일간 파행을 이어왔다. 지난달 말까지 단 한 건의 법안도 처리하지 못하면서 ‘전무(全無)위’라는 오명까지 얻었던 정무위가 20대 국회의 마지막 정기국회 시작과 동시에 ‘조국 블랙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무위뿐 아니라 당장 다음 달 2일부터 국감을 치러야 하는 국회 상임위마다 ‘조국 사태’ 관련 증인 채택 등 온통 조국 이슈가 뒤덮고 있다. 법제사법위원회는 조 장관 부인 등 관련 증인 69명을 부르는 문제를 두고 아직까지 여야 합의를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 국토교통위원회 역시 조 장관 동생의 전처를 국감 증인으로 소환할지를 두고 여야가 맞서면서 국감 일정조차 합의하지 못했다. 교육위도 여야 간사 간 수차례 조율을 거쳤지만 증인 채택이 번번이 무산됐다. 국감 막바지인 종합 국감에 일반 증인을 부르려면 다음 달 10일 이전에는 여야 합의가 이뤄져야 하지만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조국 사태와 거리가 멀어 보이는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도 조 장관 관련 증인을 대거 부르기로 하면서 결국 국감은 물론 정기국회 내내 ‘조국판’이 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26일부터 나흘간 이어지는 대정부질문 역시 처음부터 끝까지 ‘조국 수렁’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한국당은 △정치 △외교·통일·안보 △경제 △사회·문화 전 분야별로 조국 관련 질의에 집중할 계획이다. 민주당은 한국당의 파상 공세에 맞서 ‘조국 방패’를 자처할 것이 확실시된다.

이처럼 조국 사태로 꽉 막힌 정국을 뚫어야 할 교섭단체 원내지도부 간 정상적인 대화도 실종된 지 오래다.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와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8·9 개각’ 이후 이달 24일까지 각각 7, 8차례 열린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단 한 차례도 빠지지 않고 조 장관 이슈를 언급하며 서로를 비난했다.

여야가 조국 공방을 이어가는 사이 경제 활력 및 민생 법안들은 협상 테이블에 오르지도 못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발의된 ‘유치원 3법’은 국회 파행 속에 결국 상임위에서 논의 한번 못 한 채 본회의로 넘어갔다. 2011년 발의된 이후 8년째 국회에 막혀 있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나 데이터산업 육성을 위한 ‘빅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법)’ 등은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

정보기술(IT) 업계에서는 빅데이터 3법 개정안의 통과가 늦어지는 것에 대해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며 애를 태우고 있다. IT 업체 관계자는 “지금 이 순간에도 미국, 중국의 경쟁사들은 엄청난 분량의 데이터를 쌓아가고 있다”며 “법안 통과가 늦어질수록 인공지능(AI)을 비롯한 데이터 기반 산업의 경쟁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국내 14개 대기업 기업인들을 만나 애로사항을 직접 들은 민주당 민병두 의원은 “지난해 ‘데이터 경제’를 선언한 이후 입법, 제도적 뒷받침을 못하고 있는데 내년 총선 이후로 넘어가게 되면 우리 기업은 갑이 아닌 ‘을병정’이 된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조국 사태로 인한 국회 공전의 책임은 집권여당이 더 크다고 보고 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여야가 함께 국회에서 행정부를 견제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인식이 없다”며 “대통령이 민심을 거부할 때, 집권여당이 무기력할 때, 집권여당이 비선조직에 의해 움직일 때 정권이 흔들리는데 지금 딱 그런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김지현 jhk85@donga.com·최고야·이지훈 기자
#조국 법무부장관#정기국회#대정부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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