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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느긋하면서도 팽팽한 英 ‘코지 미스터리’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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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느긋하면서도 팽팽한 英 ‘코지 미스터리’의 매력

정양환 기자 입력 2018-09-29 03:00수정 2018-09-2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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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의사의 죽음/M C 비턴 지음·문은실 옮김/332쪽·9800원·현대문학
해미시 맥베스 순경 시리즈의 주요 무대인 스코틀랜드 고지의 풍경. 이 시리즈는 살인사건을 다루는 추리소설인데도 흔히 ‘하일랜드’라 불리는 이곳 경치를 묘사하는 데 적지 않은 지면을 할애한다. 아무리 인간이 아등바등해도 결국 세상 이치는 자연을 거스를 수 없다는 걸 알려주고 싶은 걸까. 현대문학 제공
스코틀랜드에서도 북부 외진 곳에 있는 로흐두 마을. 이 촌구석에서 유일한 경찰인 해미시 맥베스는 어느 날 극심한 치통과 함께 잠에서 깬다. 하지만 건넛마을에 있는 프레더릭 길크리스트는 ‘웬만하면’ 이를 뽑아버리는 걸로 악명 높은 치과의사. 다들 기차를 타고 큰 도시 인버네스에 가길 권하지만, 해미시는 괜한 귀찮음과 호기심이 발동해 그에게 진료받기로 맘먹는다. 예약 당일, 오전 일찍 방문한 병원은 묘한 기운이 물씬한데…. 아니나 다를까, 치과의사는 의자에 늘어진 상태로 숨을 거둔 채 맥베스 순경을 맞이한다.

이달 국내에 나온 ‘치과의사의 죽음’은 추리소설 ‘해미시 맥베스 순경 시리즈’ 13편에 해당하는 작품. 저자는 본명이 매리언 채스니라는 영국 인기 작가로, 주로 역사로맨스 계열을 많이 써왔다. 비턴은 그가 추리소설을 쓸 때 사용하는 필명. 현지에선 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사 크리스티(1890∼1976)의 후계자로 호평받기도 한다. 맥베스 시리즈는 1985년 1편 ‘험담꾼의 죽음’부터 지금까지 33권이 세상에 나왔다. 1936년생인 저자는 팔순이 넘었지만, 조만간 시리즈 차기작을 내놓을 예정이란다.

‘촌구석 셜록 홈스’쯤 되는 주인공 해미시는 깡마르고 큰 키에 후줄근한 차림새를 지닌 시골 순경. 30대로 여겨지는데, 약혼 경력은 있지만 아직 총각이다. 농촌 경찰을 비하할 생각은 없지만, 얼핏 봐선 흔하디흔한 캐릭터다. 그다지 성실해 보이지도 않거니와, 승진 욕심도 없이 한적한 전원생활에 만족한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깊은 사려를 바탕으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스타일이랄까. 게다가 사건이 발생하면 날카로운 탐정 본능으로 척척 범인을 찾아낸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출신인 소설가 매리언 채스니. 비턴은 추리소설에 쓰는 필명으로 ‘애거사 레이즌 시리즈’도 유명하다. 현대문학 제공
흥미진진하나 스케일이 크진 않은 이 연작이 영국은 물론 세계에서 30년 이상 사랑받은 비결은 뭘까. 여러 이유야 있겠지만, “스코틀랜드의 나른하고 아름다운 마을 로흐두로 여행을 떠날 시간”이란 뉴욕타임스 북 리뷰만큼 안성맞춤인 소개 문구도 없을 듯하다. 언제나 끔찍한 살인사건을 다루는데도, 왜 이렇게 가상의 마을인 로흐두가 끌리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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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이 소설은 박진감이라곤 찾을 길 없는데도 몽롱하되 매혹적으로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느릿느릿 느긋한데도 스멀스멀 팽팽하고, 소탈한 인정과 속물의 악취가 희한하게 공존한다. 출판사에 따르면, 서구 문단에선 맥베스 시리즈를 ‘코지 미스터리(cozy mystery)’의 대표작으로 꼽는다고 한다. 이름처럼 평범한 듯 여유로운 추리소설들을 일컫는데, 참으로 잘 어울리는 용어다.

1권부터 읽으면 좋겠지만, 어느 편부터 봐도 어색하진 않다. 재밌는 건, 세월 따라 소설도 시대가 변하는데 등장인물들은 별로 나이 먹지 않는다. 예를 들자면, 1편은 대처 수상이 거론되는 1980년대가 배경. 하지만 ‘치과의사의 죽음’은 발행연도인 1997년 시절이 반영됐는데, 해미시는 여전히 30대. 하긴 뭐. 일본 추리만화 양대 산맥인 ‘소년탐정 김전일’과 ‘명탐정 코난’도 20여 년째 청소년이니까. 역시 사랑받으면 젊게 사나 보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치과의사의 죽음#매리언 채스니#하일랜드#스코틀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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