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링크]이름만 황제였던 淸 푸이, 영국인 스승이 본 슬픈 삶

  • 입력 2008년 11월 15일 03시 00분


◇ 자금성의 황혼/레지널드 존스턴 지음·김성배 옮김/740쪽·2만5000원·돌베개

“신생 중국 공화국이 수립된 뒤 처음 13년 동안 수도의 한복판에는 (공화국의) 대총통과 (퇴위한) 황제가 거주하고 있었다.…중국의 외국인 사이에서는 ‘황제’도 ‘전 황제’라는 말도 이 경우에는 맞지 않는다는 판단 아래 가장 널리 통하는 호칭을 붙이기로 타협했다. 그 호칭은 ‘소년 황제’였다.”

1908년 10월 중국 청(淸)나라에 두 살배기 황제로 등극했던 선통제 푸이(溥儀) 얘기다. 이 책은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로 널리 알려진 푸이의 영국인 스승이었던 저자가 써 내려간 청 제국의 몰락에 관한 기록이다.

광서제(푸이의 큰아버지)가 캉유웨이(康有爲)의 개혁안을 받아들여 메이지유신 방식의 변혁을 시도하다 서태후의 견제로 실패한 1898년부터 일본이 만주사변을 일으킨 1931년까지의 사건들을 담았다.

저자가 특히 돋보기로 들여다보는 시기는 ‘쯔진청(紫禁城)의 황혼기’로 불리는 13년. 혁명파에 의해 중화민국이 수립되고 황제의 통치권이 상실된 1912년부터 황제가 쯔진청에서 추방된 1924년까지다. 푸이는 1912년 2월 ‘황제는 통치권을 포기하고 공화국은 황제의 제호 유지와 거액의 연금을 지원한다’는 공화국과 황실 간 타협이 이뤄진 뒤 1924년 11월 추방될 때까지 쯔진청의 한쪽 구역에서 이름뿐인 황제로 살아갔다. 저자가 영어교사로 푸이를 만난 것도 이때였다.

저자는 군주제와 황제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중국인에게 공화제보다 군주제가 낫다고 생각했던 그는 ‘공화국 깃발 아래 모여든 사람들’은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에 대한 한족의 반감 때문에 혁명파의 선동에 놀아난 것이라고 말한다. 중국 혁명의 아버지로 불리는 쑨원(孫文)에 대해서도 만주족을 배척하는 완고한 소수의 배만(排滿)파라고 묘사한다. 반면 푸이에 대해서는 “침착하고 의연함을 잃지 않았으며 급변하는 사태에 정확히 대처했다”고 묘사한다.

이 책과 달리 20세기 초 중국이 공화국으로 나아간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책들도 많다. 쑨원이 쓴 ‘삼민주의’(범우사)는 그가 망국의 길로 접어든 조국을 구하기 위해 제시한 혁명이론이자 정치사상인 삼민주의를 멸만흥한의 민족주의, 정치혁명의 근본인 민권주의, 민생주의로 나눠 설명한다.

‘만주국 건국의 재해석’(동아대출판부)은 일본이 푸이를 내세워 만든 괴뢰국으로 알려져 있는 만주국의 초기 형성을 분석한 책이다. 1930년대 전반 만주국이 어떻게 만들어지며 그 과정에서 민족주의를 어떻게 이용했는지를 검토한다.

‘중국 근대의 풍경-화보와 사진으로 읽는 중국 근대의 기원’(그린비)은 근대 중국의 변화상을 400여 점의 화보와 사진으로 보여준다. 서구화되는 도시와 생활 모습을 통해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 여겼던 중국인들이 외부 문화를 대하는 인식과 서구의 중국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보여준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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