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 갈등 풀 의외의 실마리[동아 시론/박훈]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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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에게 日王은 특별한 존재, 1500년 넘게 일본의 구심점 역할
아키히토 상왕, 한국에 호의적 태도 유명… ‘무령왕릉 초청’ 전략외교 고려할 만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일본의 새 천황 즉위식을 보면서 묘한 감정을 느꼈다. 중국식의 장엄함이 아니라 깊은 엄숙함을 추구하는 듯 보였으나, 일본 국민에게 실례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내게는 약간 재미있게 느껴졌다. 고대풍을 재현한 듯한 각종 의례와 복장, 행동들이 마치 인형극을 보는 듯했다. 정장을 입고 서 있는 남성들은 힘들어 보였고, 전통 복장을 한 여성들의 화장은 ‘21세기에 뭐 저렇게까지’라는 생각까지 들게 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새 천황 나루히토의 표정만은 인상 깊었다. 만 59세의 이 중년 남성은 부친인 전임 천황 아키히토(이제는 상황·上皇)를 닮아 온화한 미소가 보기 좋은 사람이나, 이날 그의 표정에서 나는 깊은 엄숙함을 느꼈다. 엄숙하면서도 뭔가에 짓눌린, 그 짓누름을 이겨내고 엄숙함을 지키려고 하는 ‘격투’ 같은 것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일본 천황가(家)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왕가다. 일본의 관변학설로는 2700년, 학계 통설로도 1500년에 걸쳐 일본에서 왕 노릇을 했다. 달리 유례가 없다. 권세가 하늘을 찌르던 고대 귀족들도, 창칼로 천하를 제패한 사무라이들도 천황을 폐하고 그 자리를 탐하지는 않았다. 왜 그랬는지, 아직도 정설이 없다. 이런 장구한 역사를 거치면서 천황은 일본인에게 신화가 되었다. 19세기 후반 서양 침략의 위기 앞에서 천황은 순식간에 일본의 구심점이 되었다. 사생결단하며 싸우다가도 천황 앞에서는 멈췄다. 일본은 이 덕에 청일, 러일전쟁에서 이겼지만 그 탓에 진주만으로 젊은이들을 밀어 넣었다.

태평양전쟁 패전에도 천황의 권위는 요지부동이었다. 맥아더는 이를 간파하고 히로히토와 협력하는 길을 택했다. 천황은 더 이상 권력의 전면에 나서지 않았지만 일본 국민은 그를 잊지 않고 있었다. 1989년 초 히로히토가 사망했을 때 일본인들이 보여준 ‘1억 총 자숙’(1억 명의 국민이 자숙한다는 뜻) 분위기는 이를 증명한다. 지금도 일본 국민의 95% 이상이 천황제를 지지한다. 그런 일본에서 메이지유신 이후 5번째의 천황, 나루히토(연호는 레이와)의 시대가 열렸다. 이 중년 남성의 표정이 끝 간 데 없이 엄숙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금 일본에서는 혐한 분위기가 한창이다. 그 계기는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이 천황의 사죄를 요구한 것이었다. 우익에 좋은 먹잇감을 던져준 것이다. 그 대통령은 독도에도 상륙했지만 일본 여론에 미친 영향은 천황 문제에 비교가 안 되었다. 독도 문제에는 한국에 이해를 표하던 많은 일본 지인들도 천황 사죄 발언 앞에서는 등을 돌렸다. 얼마 전 비슷한 발언을 한 국회의장은 사과하기도 했다.

일본인에게 신성불가침의 존재이니, 우리도 존경해야 한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천황에 대한 그들의 자세를 감안하고 계산하면서, 일본을 대하자는 것이다. 독도, 위안부, 강제징용 문제에 천황을 끌어들여 일본 우익을 신나게 하고 일본 내 지한파를 내쫓을 이유가 없다. 국익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본 문제를 다룰 때 우리는 철두철미 전략적이어야 한다. 특히 천황을 상대로는 섣부른 애국심보다는 전략적으로 그 존재의 무게를 이용할 필요가 있다. 얕은 애국심으로 국익에 깊은 손해를 끼친 것이 어디 한두 번인가.

아키히토 상황은 재임 시 일본 정사인 속일본기(續日本紀)에 자신의 직계 조상인 간무(桓武)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후손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발언하는 등 한국에 호의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에 관심이 많은 그는 공주 무령왕릉을 방문하고 싶어 한다고 알려졌다. 아베 총리의 강경한 대아시아 정책에 대해선 거리를 두어왔다. 지금 같은 한일관계 분위기에서 다소 뜬금없는 제안으로 들릴지도 모르나, 이제 천황 자리에서 내려온 그의 희망을 양국이 한번 신중히 검토해 보는 것은 어떨까.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한일관계는 논리나 증거 싸움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정치적으로 ‘통 크게’ 풀 수밖에 없다. 그러려면 양국 국민과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여론을 휘어잡을 수 있는 상징적 이벤트가 필요하다. 아직까지 일본 천황이 한반도를 방문한 적이 없다. 비록 전임이지만, 얼마 전까지 그 자리에 있었던 아키히토 상황이 머나먼 조상을 찾아 무령왕릉에 오고, 그걸 계기로 두 나라가 아시아 최고의 선진국답게 현안을 통 크게 처리한다면, 양국을 위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일왕#한일 관계#아키히토 상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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