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남북 축구 경기에서 나타난 북한 당국의 뻔뻔함

  • 뉴시스
  • 입력 2019년 10월 15일 08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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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단은 물론 취재진과 중계도 불허
평양 시민 10만 관중 일방적 응원할까
정치적 이유 때문에 벌어지는 소극(笑劇)

북한은 참 뻔뻔할 때가 있다. 특히 한국에 대한 그들의 태도가 그렇다. 그들의 뻔뻔한 처신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사안들은 한 두가지가 아니다.

이번엔 평양에서 열리는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H조 조별리그 3차전을 둘러싸고 북한 당국이 ‘뻔뻔한’ 횡포를 부리고 있다.

10만 관중을 수용할 수 있다는 김일성 경기장에서 열리는 남북 대표팀 경기를 한국 관중은 현장에서는 물론 중계로조차 관람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전세계 모든 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전세계 모든 사람들이 직접 실시간으로 목격할 수 있는 21세기 인터넷 세상에서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 셈이다. 북한 당국의 뻔뻔함과 옹졸함이 빚어내는 소극(笑劇)이다.

이 때문에 평양에서 벌어지는 경기에 출전한 우리 국가대표 축구선수들은 철저히 고립된 상태에서 평양 시민들의 북한 대표팀에 대한 일방적인 응원을 이겨내며 경기를 벌여야 할 가능성이 있다. 혹시라도 북한 당국이 우리 대표팀을 응원하도록 주선하는 유연성을 발휘한다면 좋을 것이다. 아쉽게도 지금까지 분위기로는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또 대표팀의 활동 상황은 물론 경기 내용은 현장에 있는 축구협회 관계자가 메시지로 축구협회에 전해주면 축구협회가 이를 다시 언론이나 인터넷을 통해 공개하는 ‘전근대적 방식’으로 우리 국민들에게 전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화가 발명되기 전 모르스 부호를 타전해 전보를 보내던 19세기 방식을 연상케한다.

북한이 이렇게까지 처신하는 이유가 궁금해진다.

우선 한국보다 전력이 크게 떨어지는 북한 대표팀이 평양 시민들의 일방적인 응원과 북한 당국의 은근한 편파적 운영에 힘입어 승리하기를 꿈꾸는 얄팍한 계산이 있을 수 있다.

축구는 북한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스포츠이며 평양 시민들은 김일성 경기장에서 열리는 A매치 축구 경기에서 일방적인 응원전을 펴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이 때문인지 김일성 경기장에서 열린 A매치 경기에서 북한 대표팀이 패배한 적이 없다는 전설같은 얘기가 떠돈다.

이런 상황은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치러지는 월드컵 예선전 특성상 어느 정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렇더라도 상대팀 응원단은 물론 취재진이나 중계 인력까지 차단한 건 북한의 ‘뻔뻔함’이 국제 관례를 뛰어넘는 수준임을 말해준다.

둘째 국내정치적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객관적으로 볼때 손흥민 등 국제적 스타 선수들이 즐비한 우리 국가대표팀 전력이 북한 대표팀을 압도한다. 김일성 경기장 A 매치 무패(無敗)를 자랑한다는 북한팀이 처음으로 패배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모든 전체주의 국가는 스포츠에 대대적으로 투자함으로써 국력에 비해 월등한 성적을 내는 것이 보통이다.

대표적인 전체주의 국가인 북한에서도 스포츠는, 특히 축구와 같은 경기는, 국민의 사기를 북돋우고 단결을 이끌어내는 주요한 선전수단으로 쓰인다. 북한 체제가 우월하다는 허구(虛構)를 북한 주민들에게 세뇌(洗腦)하는 좋은 계기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북한은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낸 스포츠 선수들을 ‘영웅’으로 치켜 올리면서 정치적, 경제적으로 크게 우대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팀에 북한팀이 평양의 대표적 경기장에서 패배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북한 당국은 낭패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번에 경기 실황을 생방송으로 중계할 수 없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점일 것이다. 한국의 생중계를 허용하면 북한내에서도 생중계를 할 수밖에 없는데 북한 대표팀이 패배하는 상황이 북한 주민 모두에게 즉각적으로 전해지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어차피 경기 결과는 경기장에 나온 평양주민들의 입을 통해서라도 하루 이틀이면 북한 전역에 퍼져 나갈 것이다. 그렇더라도 생중계를 통해 북한 대표팀 패배 소식이 전해지는 충격과는 비할 바가 아니다.

마지막으로 북한이 한국팀 응원단과 중계, 취재진의 평양 입성을 거부한 배경으로 경색된 남북관계를 꼽을 수 있다.

지난 2월의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됨으로써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크게 체면을 구긴 뒤로 북한의 모든 매체들은 한국 정부와 문재인 대통령, 또 우리 군당국에 대한 비난을 매일같이 쏟아내고 있다.

마치 우리 정부와 문대통령 때문에 하노이 회담이 결렬되기라도 했다는 투다. 북한 주민들과 국제여론을 호도하기 위한 터무니없는 대남 ‘갑질’이요 투정이다.

정작 회담을 결렬시킨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서로 ‘연애편지’를 주고 받는 친밀한 사이라고 김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수시로 강조하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모든 매체를 동원해 북한 주민들에게 대남 ‘갑질’을 세뇌(洗腦)하는 상황에서 우리 응원단과 취재진, 중계팀이 평양을 방문해 시끌벅적해지는 건 북한 당국으로선 허용할 수 없는 모순일 수밖에 없다.

북한도 예전엔 이번만큼 뻔뻔하진 않았다. 적어도 축구경기를 두고서는 그랬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아시아 3차예선으로 치러진 2008년 홈 앤드 어웨이 경기 당시 북한은 “우리 하늘 아래서 남쪽 국기와 애국가를 허용할 수 없다”고 주장한 끝에 남북 대표팀은 제3국인 중국 상하이에서 두 차례 경기를 치른 일이 있다.

이 에피소드조차 북한 체제의 폐쇄적이고 전체주의적인 특성이 빚어낸 우스꽝스러운 일이지만 적어도 북한의 뻔뻔함은 이번 만큼은 아니었다.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치러지는 경기인 만큼 다음 남북한 경기는 서울에서 치러질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이 때 우리도 똑같이 갚아주면 되지 않느냐는 옹졸한 생각이 들지 않는 건 아니다. 그러나 한국의 국제적 위상과 이를 뛰어넘는 국민의 수준은 절대로 이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북한팀이 서울에 오는 경우 북한 응원단이 서울에 오는 것을 환영하는 것은 물론 상당수 국민들이 북한팀 응원에 나설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남북한 경색을 푸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서울에서 열리는 경기에서 북한팀이 승리할 가능성이 작기에 그런 기대는 다소 성급해 보인다.

만에 하나라도 북한 당국이 대범하게 경기 결과와 무관하게 남북 친선을 도모하는 계기로 삼겠다는 ‘획기적이고 전략적인 결단’이라도 내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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