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의 도발]악마는 싸우지 않고 이긴다. 중국 비밀경찰서처럼.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2월 27일 13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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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없는 짜장면은 없다. 불어터진 짜장면은 좀 문제가 있지만(그건 면의 문제이지 짜장면의 죄는 아니라고 본다) 짜장면은 냄새만 맡아도 먹고 싶어지는 국민적 최애 외식메뉴다. 죄 없는 짜장면을 죄스럽게 만든 서울 송파구 한 중국음식점의 정체가 마침내 드러날 모양이다.

이 중국집이 중국의 ‘해외 비밀경찰서’가 아닌지, 방첩당국이 조사에 착수했다는 최근 보도다. 동작 참 늦다. 스페인의 인권단체 세이프가드 디펜더스가 ‘중국 공안당국이 해외 54개국 110곳에 비밀경찰서를 운영 중’이라고 폭로한 게 9월과 이달 초였다. 한국 건은 9월 보고서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민주국가에 다 설치돼 있을 정도면 우리 공안당국도 진작 확인했어야 했다.

서울 중구 명동 중국 대사관 전경.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서울 중구 명동 중국 대사관 전경.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 미국과 유럽선 발각됐는데 중국은 부인
물론 주한 중국대사관 관계자는 부인한다. “한국뿐 아니라 해외에 별도로 설치한 비밀경찰서는 없다”는 거다. 믿기 어렵다. 네덜란드는 10월 26일 암스테르담과 로테르담에 불법 중국 해외경찰서가 있다고 발표했다. 미국 FBI국장은 11월 미 상원 국토안보위원회에 출석해 “우리는 중국 비밀경찰서 존재를 알고 있다”고 발언했다.

남의 나라에서 중국 공안이 경찰권을 행사하는 건 주권침해다. 중국인 상점이나 식당처럼 위장해놓고 중국에 반체제적, 비애국적 중국인들을 강제 송환시키는 등 불법행위를 한다. 애들이 교육을 못 받게 되는 등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협박하는 식의 ‘북한식 수법’으로 5개 대륙에서 23만여 명을 중국에 돌려보냈다. 그러자면 자국민 감시를 해야 한다. ‘중국특색의 감시’가 이 땅에서 벌어졌을 수도 있다는 게 무섭고 불쾌하다.

중국인만 대상으로 하는 것도 아니다. 비밀경찰서는 중국공산당(중공) 통일전선공작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남의 나라에 붉은 영향을 미치려 든다. 2020년 초 총선을 앞두고 “나는 개인이오”라는 기이한 문구가 일으켰던 ‘차이나 게이트 의혹’을 기억하시는지?
● 비밀과 기만은 중국공산당의 철칙
당시 나는 미국 의회 산하 미중 경제안보검토위원회가 2018년 발표한 ‘중국의 해외 통일전선 공작’ 보고서를 도발에 소개하며 우리나라만 빼놓을 리 없다고 지적했다. 친중(親中) 문재인 정권은 내 글을 무시했고 실상은 밝혀지지 않았다. 당연하다. 공산당 철칙이 비밀과 기만 아니던가.

2020년 3월 필자는 <‘차이나게이트’ 주시하되 反中은 반대다> 칼럼에서 중국이 선거개입을 포함한 여러 투명하지 못한 방식으로 정관계 인사에게 접근해 중국의 영향력을 극대화시켜 왔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2020년 3월 필자는 <‘차이나게이트’ 주시하되 反中은 반대다> 칼럼에서 중국이 선거개입을 포함한 여러 투명하지 못한 방식으로 정관계 인사에게 접근해 중국의 영향력을 극대화시켜 왔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중공 해외통전 공작과 맞물려 진행되고 있는 것이 초한전(超限戰)이다. 한자를 빼고 쓰면 초패왕 항우와 한나라 시조 유방의 전쟁을 다룬 초한전쟁(우리에겐 고우영이나 이문열의 楚漢志로 유명한)과 헷갈릴 듯한데, 그건 아니다. 중공이 2000년대 이래 군사안보와 대외전략 추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신전략 개념이다.

초한전이란 중국특색의 대전략 수행방법론을 의미한다(이지용 계명대 교수 2021년 논문 ‘중국의 초한전 전략과 실제; 해외통전 전개 사례를 중심으로’). 1999년 당시 인민해방군 공군대령이었던 차오량, 왕샹수이가 쓴 ‘초한전; 세계화시대 전쟁과 전법 상정’에서 나왔다. 미국서 출판돼 나온 책의 부제는 더 무시무시하다. ‘Unrestricted warfare; China‘s Master Plan to Destroy America’.
● 손자+마오쩌둥+IT+악마성 = 초한전
1999년 당시 인민해방군 공군대령이었던 차오량, 왕샹수이가 쓴 ‘초한전; 세계화시대 전쟁과 전법 상정’에 대한 미국 번역서 표지. 부제가 ‘Unrestricted warfare; China’s Master Plan to Destroy America‘이다.
1999년 당시 인민해방군 공군대령이었던 차오량, 왕샹수이가 쓴 ‘초한전; 세계화시대 전쟁과 전법 상정’에 대한 미국 번역서 표지. 부제가 ‘Unrestricted warfare; China’s Master Plan to Destroy America‘이다.

중공은 일단 아시아 지역패권을 잡고, 이를 기반으로 집권 100주년인 2049년까지는 세계 패권을 장악한다는 대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아시아에선 혹시 몰라도 중국이 제 실력으로(하드파워든, 소프트파워든) 미국을 꺾고 세계정복을 할 수 없다는 건 중공도 익히 아는 모양이다. 그래서 짜낸 전략이 초한전이다. 기실, 전쟁의 궁극적 목적이 뭔가. 적국을 굴복시켜 아국의 의지를 따르도록 강제하는 것 아닌가. 그 수단이 반드시 무력이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무조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상대를 무너뜨리기만 하는 되는 것이다. 정치, 경제, 사회문화, 미디어, 사이버 공간 가릴 것 없다. 전시와 평시, 법과 규칙, 양심이든 뭐든 따질 것도 없다. 전쟁과 비전쟁의 경계를 뛰어넘는 신개념 전쟁이 바로 ‘초한전’의 핵심이다.

이렇게 개념만 바꾸면 전쟁은 갑자기 너무 쉬워진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절차적 정당성을 최대한 악용하는 것이야말로 초한전의 극강 마력이다. 투자자문사 설립, 기업 인수합병, 컨설팅업체에 퇴직 관료 군인 영입 정도는 박수 받으며 한다. 그러면서 스리슬쩍 로비와 뇌물로 적국 정치인을 부패시키고 정책 바꿔놓기, 기술 탈취와 저가 상품 공세로 경제교란 시키기, 협박과 선전선동 가짜뉴스로 혼란에 빠뜨리기, 마약이나 범죄조직 침투시켜 뒷골목까지 피폐하게 만들기, 짱깨스러운 친중 인사 동원해 반중 행태 검열하기…중국 공안의 비밀스러운 활약 역시 초한전의 일환이 아닐 수 없다.
● 이미 중국은 세계와 초한전 벌이는 중
손자병법은 싸우지 않고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을 최상으로 본다. 여기에 모택동의 인민전쟁론은 물론 21세기 최첨단 정보 테크놀러지와 중국특색의 비밀과 기만의 악마성까지 교합해 적들을 스스로, 내부로부터 무너지게 만드는 ‘초한전’이 중국의 신개념 전쟁이면…중국은 이미 전 세계를 대상으로 전쟁 중이라고 봐야 한다. 2023년 혹은 시진핑 3기 집권기에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것인가 아닌가를 걱정할 때가 아니다. 국내의 중국집 한두 곳이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10여년부터 ‘가리봉동 왕중왕’으로 유명했던 그 중국집 운영자 A 씨는 숱한 한중관련단체장 역할을 하면서 2020년 말 여의도 국회의사당 코앞에 지점을 내고 정치인들과 친교까지 다졌다. 지자체장들이 경쟁적으로 나선 중국 지방과의 자매결연은 물론 대학마다 설치된 공자학교도 초한전과 무관치 않다.

전임 문재인 정권이 국민적 심판을 받은 데는 중국과 공동운명체를 자처하며 초한전을 방치한 친중 행각도 작용했다고 본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초한전을 중공만 하고 있겠느냐는 점이다. 공산독재정권 중에서도 가장 악랄한 북한 김정은 정권이 중공에서 배운 초한전을 우리에게 펼치고 있는지 주시할 때다. 북한에서 날아왔던 드론은 물론이고!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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