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의 도발]‘이재명 방탄’이 김포공항보다 중한가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5월 31일 17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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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공항 이전’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인천계양을 국회의원 후보)이 반년 전 대통령 선거 때도 내놓을까 말까, 주물럭거렸던 도깨비 방망이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계양을 보궐선거 후보가 29일 지역구에서 \'김포공항 이전\' 내용이 포함된 공약을 적은 패널을 들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계양을 보궐선거 후보가 29일 지역구에서 \'김포공항 이전\' 내용이 포함된 공약을 적은 패널을 들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지난해 11월 28일 17시 56분. 매일경제 인터넷 판은 ‘단독’이라며 ‘이재명, 김포공항 자리에 신도시 검토…“최대 20만 가구 공급 가능”’이라고 보도했다.

이재명 측 선거대책위원회가 서울 강서구와 경기 부천, 인천 계양구에 걸쳐 있는 730만㎡ 면적의 김포공항을 인천공항으로 통합 이전할 경우, 위례신도시급 규모의 주택공급이 가능하다고 본다는 내용이다.

● 대선 때도 ‘김포공항 이전 카드’ 내밀려 했다


김포공항 이전은 워낙 복잡해 쉽게 추진하기 어렵다는 국토교통부 반응이 붙어 있는 건 물론이다. “공항 하나가 없어진다는 데 따른 반대와 우려가 있지만 김포공항 용지를 적극 활용하자는 분위기”라는 민주당 측 발언도 당근 들어가 있다.

문재인 정권의 부동산 정책 실패로 인해 민주당 대선 후보 이재명 지지율이 32%에 머문 상황이었다(갤럽 11월 셋째 주 윤석열 지지율 42%). 김포공항 이전은 수도권 서남부 개발과 지역 표심까지 끌어낼 수 있는 쌍끌이 공약이다. 심지어 대선 때도, 지방선거와 보궐선거 때도 써먹을 수도 있다.

당장 김포공항 소음 피해지역 주변에선 열렬한 환영이 쏟아졌다. 그럼에도 이재명의 김포공항 이전 카드는 더는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 지금 서울과 제주도 의원들이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듯이, 말이 좋아 김포공항 이전이지 김포공항이 문 닫으면 일자리 13만 개, 연간 GDP 13조8000억 원이 감소할 만큼 문제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김포공항 전경. 코로나 확산 이전인 2019년 기준 승객 2544만여 명이 14만여 비행편을 이용해 김포공항을 거쳐 갔다. 동아일보DB
김포공항 전경. 코로나 확산 이전인 2019년 기준 승객 2544만여 명이 14만여 비행편을 이용해 김포공항을 거쳐 갔다. 동아일보DB


● 민주당엔 그래도 이성적 인물이 있었다


그로부터 한 달쯤 지난 2021년 12월 29일 22시 26분 7초. “한가한 정책 할 때냐” 이재명 대선 후보의 이 말에 김포공항 이전이 급부상했다고 중앙일보가 ‘단독’ 보도했다.

송영길 당시 대표가 김포공항 이전을 계속 주장했고, 민주당의 이성적 의원들은 계속 반발했고, 몸이 단 이재명 대선 후보가 12월 19일 비공개 고위전략회의에서 김포공항 이전을 포함한 대규모 주택공급 정책마련을 지시했다는 거다. “한가한 정책 만들자고 여기 있는 게 아니지 않느냐. 이기려고 선거 하는 거다”라면서.

이재명 후보가 대선 예비후보 때인 지난해 11, 12월 김포공항 이전 공약을 준비했다는 내용을 다룬 당시 언론 보도.
이재명 후보가 대선 예비후보 때인 지난해 11, 12월 김포공항 이전 공약을 준비했다는 내용을 다룬 당시 언론 보도.



그럼에도 천만다행히도 김포공항 이전은 이재명의 대선 공약에 들어가지 못했다. 이재명은 2022년 초 ‘김포공항을 존치하는 상태에서’ 주변 공공택지를 개발해 8만 호 등 문 정권의 기존 206만 호에 105만 호 추가공급을 발표했을 뿐이다. 국토위 간사인 조응천 의원도 극구 반대했을 뿐더러, 김포공항 이전이란 결코 쉽게 추진할 수 없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 김포공항 공약을 보면 이재명이 보인다

이재명은 2021년 12월 26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주택공급이) 정말 부족하다면 용산(미군기지) 일부는 청년들을 위한 공공주택으로 활용하고 서울·김포공항도 논란이 있는데 어떻게 할지 계속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김포공항 이전 계획을 이미 짜놓고도 자신의 입으로는 절대 “김포공항 이전”이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점에 유의하기 바란다. ‘검토 중’이라고 말했을 뿐이다.

김포공항 이전 공약을 보면 이재명을 알 수 있다. 이재명은 자신의 입으로 “김포공항 이전”을 말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불똥이 튈까봐서 몸조심 한 것이다.

결코 제 입으론 말하지 않으면서 민주당 다른 사람의 말을 통해 “서울공항과 김포공항을 이전, 개발하면 각각 10만 호, 20만 호 주택을 공급할 수 있다”고 알려지도록 했다. 그러면서 “(김포공항 이전은) 다양한 문제가 연관돼 있어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자락을 깔았다. 그리고 대선에서 패배했다.

● “이재명은 합니다”가 무섭다


대선 때는 제 입으로 말하지도 않은 김포공항 이전 공약을 이재명은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에선 막판 TV토론 때 다시 꺼냈다. 거대 여당의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인물이, 대선 패배 후 두 달도 안 돼 ‘방탄용 배지’를 위해서, 공항 하나 없어지든 말든, 나라와 국민이 어찌되든 말든,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이는 셈이다.

이재명 후보가 25일 OBS경인TV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TV토론에 앞서 토론 자료를 검토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재명 후보가 25일 OBS경인TV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TV토론에 앞서 토론 자료를 검토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그가 김포공항 이전 문제점을 모를 리 없다. 빤히 알면서도 금배지가 너무나 절박해 김포공항 이전을 들고 나온 거다. 대장동 의혹과 성남 FC 의혹에서 철갑을 두를 수만 있다면, 김포공항쯤이야 없어져도 상관없다는 식이다.

지방선거를 하루 앞둔 31일도 이재명은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D Y노선을 건설하면 인천에서 김포로 이동하는 데 10여 분도 걸리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2년짜리 보궐선거에 나선 그가 GTX 완성 때까지 인천 계양에 있을 리 없다. 김포공항 이전이 실제로 이뤄질 리 없지만, 민주당이 밀어붙인 검수완박처럼 김포공항 이전도 실제 이뤄진다면 더 큰 일이다!

● “한국의 시진핑이 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기 어렵다”


마르크스주의자인 윤소영 전 한신대 교수가 이재명에 대해 올 초 신동아 인터뷰에서 한 말이 있다. “이재명이 자신과 의견이 다른 야당이나 전문가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 한국의 시진핑이 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선 때 그의 캐치 프레이즈는 "이재명은 합니다"였다. 나는 그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스스로를 위해서. 제발.

※ 민주당 공동촐괄선대본부장인 김민석은 31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김포공항 이전은 이재명의 ‘공약’이 아니라 ‘초장기 연구과제’라고 분명히 밝혔다. 설사 이재명이 의원에 당선되고, 당 대표가 돼 김포공항 이전을 선포한대도 10년 이상 걸릴 수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서울시민, 인천 계양구민, 제주도민은 물론 전 국민께서는 이재명이 김포공항을 놓고 무슨 말을 하든지 절대 동요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6월 1일 안심하고 투표를 해도 되는 것이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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