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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의 도발]좌파라고 다 이렇진 않다…포르투갈의 경우

김순덕 대기자 입력 2020-04-08 15:30수정 2020-04-08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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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미스터리인가, 포르투갈 모델인가. 코로나19가 휩쓸고 있는 스페인과 이탈리아, 프랑스 옆에서 포르투갈의 선방(善防)이 눈길을 끈다.

확진자로 치면 유럽에서 스페인의 비극은 이탈리아를 넘어섰다. 8일 오전 10시 현재 확진자 14만여 명에 사망률 9.9%. 스페인과 국경을 맞댄 포르투갈은 확진자 1만2000여 명에 사망률 2.8% 정도다.

물론 포르투갈 인구는 스페인 4분의 1에 불과하다. 하지만 중국 턱 밑의 우리나라처럼 스페인과 딱 붙은 포르투갈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는 쉽지 않을 터. 확진자 순으로 17위인 우리 눈에는 16위인 포르투갈의 분투가 남의 일 같지 않다.

포르투갈 국기.


● 유럽에서 가장 신속한 조치 취한 나라

최근 프랑스의 쿠리에 인터내셔날은 포르투갈의 선전(善戰) 이유를 유럽에서도 가장 신속한 조치를 취한 덕분이라고 전했다. 3월 2일 첫 확진자가 나온 지 일주일 만인 9일 포르투갈은 ‘유럽의 중국’이 된 이탈리아발(發) 입국과 대규모 행사를 금지시켰다. 16일 첫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전이다. 스페인과 이탈리아가 첫 사망자 발생 뒤에도 열흘 이상 미적댄 것과 딴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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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 정당 없는 통합의 정치 풍토도 큰 몫을 했다. 포르투갈은 준대통령 체제인데 2016년 취임한 우파야당 대통령이 2015년부터 연임한 중도좌파 사회당의 안토니우 코스타 총리와 잡음 없이 협치한다. 스페인에선 같은 기간 총선을 네 번이나 치르며 퉁탕댔다.

마르셀루 헤벨루 드 소자 포르투갈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코로나19와 관련해 대국민 담화를 하는 모습이 포르투갈의 한 상점의 TV에서 방영되고 있다. 리스본=신화 뉴시스


9일 첫 조치를 발표하기 전, 우리의 노사정협의회 같은 사회협의상임위원회에서 지원대책을 논의하는 분위기도 부럽기 짝이 없다. 그날 나온 1차 코로나 대책은 중소기업 재정지원금 12일 지급, 확진 근로자 임금 100% 정부 보장, 피해업종 직원의 월급 70% 정부 부담 등 파격적이고도 구체적이다. 미등록 난민에게도 코로나 치료를 받게 해준 포용적 풍토 역시 바이러스도 고개 숙이게 만들 것 같다.

● 유능한 좌파, 소득주도성장 성공시켜

3월 19일 코스타 총리는 이동제한을 골자로 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며 “국민의 기본권이나 표현의 자유는 절대 훼손되지 않을 것”이라고 국민의 불안을 덜어주었다. 1974년 카네이션 혁명으로 민주화가 도래하기까지 수십 년 계엄령 치하에 살아온 포르투갈 국민의 트라우마를 잘 알기 때문이다.

올 초 나는 포르투갈 여행을 다녀왔다(이번 생의 마지막 여행이 아닐까 싶게 아득하고도 아련하다). 포르투갈이 유독 내 관심을 끈 것은 사민주의가 후퇴한 유럽에서 좌파가 집권해, 심지어 경제적으로 성공하고 있어서다. 제러미 아이언스가 덜 섹시하게 등장한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감동받은지라 민주화 혁명의 후예는 어떻게 변했을지도 궁금했다.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한 장면.


유럽연합(EU) 27개국 가운데 중도좌파가 집권한 나라는 6개국에 불과하다. 10년 전 유럽 재정위기에 빠진 PIGS(포르투갈·아일랜드·그리스·스페인) 모두 좌파정권이었고,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 포르투갈은 노동시장의 경직성 때문에 산업 경쟁력을 높일 수 없어 만성 경상수지 적자에 빠진 상태였다. 평상시 재정건전성에 신경 쓰지 않으면 외부에서 경제적 충격이 닥쳤을 때 나라 경제는 급격히 무너진다는 것을 온몸으로 입증한 나라가 포르투갈이다.

그랬던 이 나라가 이제는 ‘좌파 정권도 잘할 수 있다’는 성공스토리로 파이낸셜타임스, 슈피겔 등 유럽 언론에 종종 등장한다(코로나19 위기 전까지). 심지어 최저임금과 연금을 인상하는 등 문재인 정부가 목 놓아 외쳤던 소득주도성장을 통해(!) 나랏빚은 물론 실업률까지 줄이는 데 성공을 했다.

● 알고도 거꾸로 간 문재인 정부

비결이 궁금한가. 2011~2015년의 우파정권에서 단행한 노동개혁·공공개혁을 그 다음에 집권한 좌파정권이 뒤집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권을 잡자마자 임금피크제 같은 전임정부의 개혁조치를 없었던 일로 만들어버린 문재인 정부와 정반대였던 거다.

2018년 고용노동부 업무보고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 동아일보DB

구제금융을 받는 조건으로 포르투갈은 2012년 해고규정 완화, 노사합의에 따른 근무일수 확대, 시간외수당 삭감 등 강도 높은 노동개혁을 해야 했다. 최저임금은 사회협의상임위에서 결정하되 노사합의가 안 되면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하는 식으로 노사관계의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바꿔놓았다. 2017년 1월 전해철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포르투갈 방문 뒤 국회에 제출한 ‘노동개혁 및 일자리 창출 사례 조사를 위한 해외시찰 결과보고서’에 나오는 내용이다.

간담회 자리에서 포르투갈의 노동부 차관 보좌관은 “현 사회당 정부에서 2012년 노동법에 완전히 반대해 100% 원위치를 시킬 계획은 아님”이라고 밝혔다고 분명히 기록돼 있다. 그런데도 보고서의 ‘방문성과’ 대목에는 “노동자의 권익을 축소하게 된 노동개혁에 대해 개혁 이전으로 환원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음”이라고 요약돼 있다.

2017년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포르투갈 방문 뒤 국회에 제출한 보고서.


민주당이 집권 전부터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을 뒤집을 작정이었다는 건 이해한다고 치자. 그러나 혈세 들이고 포르투갈까지 가서 왜곡된 교훈이나 얻어와 경제를 망친 것은 용서하기 어렵다.

● 좌파든 우파든 시장원리는 같다


물론 노동개혁만으로 포르투갈 경제를 살려냈다고 할 순 없을 것이다. 좌파든 우파든 시장논리는 벗어날 수 없는 법이다. 좌파정권이면서도 기업 하기 좋은 정책을 편 것이 주효했다.

법인을 설립하면 정부는 투자비용의 절반을 돌려줬다. 외국인이 부동산을 사거나 현지인을 고용하면 골든비자를 발급했다. 구글이 연구개발(R&D)센터를, 메르세데스 벤츠가 디지털혁신센터를, BNP파리바가 유럽 총괄본부를 세울 만큼 기업과 인재가 몰려들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이다.

유럽 경기 회복과 관광 붐도 포르투갈을 도왔다. 2014년 0.9%였던 성장률은 2016년 1.9%, 2018년 2.1%로 올라갔다. 실업률은 2014년 14%에서 2018년 7%로 떨어지면서 자기 삶에 만족한다는 포르투갈 사람들이 66%, 1년 만에 두 배가 됐다.

유능한 정부가 좋은 경제정책을 펴면서 최저임금과 연금 인상, 소득세와 보유세 인하로 국민의 주머니를 채워준 까닭에 소비와 투자, 수출이 늘어나는 선순환이 가능했다. 소득주도성장이라고? 어떤 좌파정권도 노동개혁 없이 성장과 고용과 평등과 분배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포르투갈이 또 한번 온몸으로 입증한다.

● 어디 이런 좌파 정치인 없소?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정치력이 코스타 총리에서 나왔다. 한(恨) 서린 파두 같은 포르투갈의 민족성이 정권 교체 1년 만에 ‘뽕 맞은 듯’ 달라졌다는 소리까지 들린다. 단임으로 끝난 프랑스의 좌파 대통령, 프랑수아 올랑드가 “코스타를 보면 좌파 정권도 신뢰할 수 있고, 가치에 충실한 정책을 펼 수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할 만큼, 그는 좌파 정치인의 희망이 됐다.

안토니우 코스타 포르투갈 총리.


푸근한 미소가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그러면서도 극좌파나 노조의 무리한 요구에 절대 흔들리지 않는 현실주의자이자 실용주의자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작년 5월 사회당을 뺀 극좌파 정당들과 우파야당이 9년간 동결했던 교사 월급을 소급 인상하는 법안을 통과시키자 코스타는 내각 총사퇴를 불사해 모두를 항복시키기도 했다. 더 많은 국민을 위해 “성장-일자리-평등은 책임예산하에 이뤄져야 한다”는 소신을 지켜낸 거다.

그가 우리나라 86그룹과 비슷하게도 1961년생이다. 공산주의자이며 작가인 아버지 밑에 자라 1974년 카네이션 혁명 직후 사회당 청소년부에 입단해 정치를 배웠다. ‘리스본행 야간열차’ 속에 액자처럼 등장하는 과거는 1970년대 카네이션 혁명 직전이었다. 포르투갈에서 이어진 제3의 민주화물결을 타고 우리나라에도 1980년대 구국의 강철대오가 등장했다. 그들이 과거 독재정권 뺨치게 변한 모습을 목도하는 요즘, 코스타 같은 정치인을 지닌 포르투갈이 부럽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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