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두코바니 원전 수주는 한국 원전 산업이 미국과 프랑스를 제치고 유럽의 중심에서 기술, 가격, 일정, 신뢰를 동시에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계약 전과 이후까지 이어진 법적 공방과 제도적 논란, 정치적 견제를 하나씩 넘어 결국 사업을 확고히 지켜냈다. 두코바니는 결과보다 과정이 더 인상적인 승리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웨스팅하우스와의 분쟁은 치열했다. 한국은 축적된 설계·건설·운영 역량을 바탕으로 독자적 경쟁력을 입증하려 했고, 상대는 지식재산과 기술 계보의 연속성을 중시했다. 시각차가 큰 만큼 충돌도 컸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갈등이 소모적 대립으로 머물지 않았다는 점이다. 양측은 합의에 이르렀고, 이제는 체코 사업의 원활한 추진은 물론 향후 해외 시장과 미국 내 협력 가능성까지 함께 모색하는 단계로 옮겨가고 있다. 경쟁을 넘어 협력의 질서로 재편됐다는 점에서, 한국 원전 산업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음을 보여준다.
프랑스전력공사(EDF)의 대응은 집요했다. EDF는 법과 규정 문제를 끝까지 끌고 갔지만, 최종 판단은 한국수력원자력의 손을 들어줬다. 프랑스인이 판정 책임을 맡고 있어, 불공정 판정이 우려되었던 역외보조금규정(FSR) 문제도 최근 의미 있게 정리됐다. 유럽연합(EU) 집행위는 한수원의 두코바니 사업 관련 외국 재정 기여를 예비 검토한 뒤 심층 조사에 착수하지 않기로 했다. 프랑스의 문제 제기를 EU가 정식 사건으로 확대하지 않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두코바니를 둘러싼 가장 큰 제도적 불확실성이 사실상 해소된 셈이다.
이 성과는 단지 한수원만의 승리가 아니다. 설계, 기자재, 시공, 운영, 금융, 외교 역량이 함께 일궈낸 대한민국 전체의 성과다. 그리고 이 승리는 다음 무대로 이어져야 한다. 체코 테멜린에서도 한국형 원전이 다시 경쟁력을 입증해야 한다. 결국 체코가 필요로 하는 것은 구호가 아니라 전기이고, 약속이 아니라 제때 완공돼 안정적으로 돌아가는 발전소다.
인공지능(AI) 시대는 원전 르네상스의 필요조건을 만들었다. 데이터센터와 첨단산업은 막대한 전력을 24시간 안정적으로 요구하고, 세계는 다시 원전을 찾고 있다. 그러나 충분조건은 따로 있다. 원전을 제때, 예측 가능한 비용으로 짓고 장기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바로 그 지점에서 한국의 경쟁력이 드러난다. 한국은 원전을 설계하고 건설할 수 있으며, 운영할 수 있다. 원전 르네상스를 말이 아니라 현실로 바꾸는 힘이 여기에 있다.
곧 한국과 체코는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만난다. 산업의 무대에서 두 나라는 이미 한편이다. 두코바니에서의 승리는 한국과 체코가 함께 나누는 승리다. 그러나 축구는 또 다른 이야기다. 원전에서는 함께 웃되, 월드컵의 승리는 미안하지만 양보할 수 없다. 지금 한국은 산업과 스포츠, 두 무대에서 모두 자신의 실력을 증명할 순간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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