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인간은 자신을 닮은 사람을 좋아한다. 오랜 수렵, 채집 생활 기간 동안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 ‘우리 편’이었기 때문이다. 모르는 사람인데도 어느 스포츠팀의 팬이라는 걸 알면 왠지 가깝게 느껴지고, 양복 입은 사람과 작업복 입은 사람을 섞어 놓으면 비슷한 복장끼리 모이는 것도 이래서다. 인종 간의 갈등 역시 이 오래된 마음의 영향이다.
사람에게만 그런 게 아니다. 반려견이 주인을 닮은 건 자신을 닮은 개를 고르기 때문이라는 연구도 있다. 영화 속 외계인의 기본 형태도 인간에게서 멀리 가지 않고, 요즘 대세인 로봇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의 형상에 가까울수록 기능적으로 훌륭할 것이라고 여기는” 경향 때문이라는 게 이 분야의 선구자로 인정받고 있는 김상배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의 말이다. 그래서 “로봇의 손도 사람처럼 다섯 손가락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현대자동차그룹 로보틱스 계열사 보스턴다이내믹스(BD)가 올 초 선보인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는 손가락이 4개였다. 테슬라의 ‘옵티머스’를 비롯한 다른 로봇들은 손가락이 5개인데 왜 4개였을까? 4개로도 충분하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산업 현장에서는 3개만 있어도 된다는 얘기들이 많다고 한다.
생명체가 손가락의 전신인 발가락을 갖게 된 건 3억6500만 년 전쯤이다. 물에서 살던 생명체가 육지로 올라올 때 지느러미를 다리로 진화시키는 과정에서 발가락이 탄생했다. 물론 처음부터 5개는 아니었다. 육지 동물의 조상으로 여겨지는 익티오스테가는 한 다리당 발가락이 8개였고, 아칸토스테가는 앞다리는 8개, 뒷다리는 7개였다. 이후 숫자는 점점 줄었다. 원시 양서류는 6개였고, 이후 사지동물은 5개 이상의 발가락을 갖지 않았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필요한 숫자를 찾은 것이다.
지구의 오랜 지배자였던 공룡은 초기에는 5개였는데 육식공룡의 경우 1, 2개씩 줄었다. 공룡의 후예라는 사실이 점점 굳어지고 있는 새 역시 앞발가락에 해당하는 날개뼈가 3개이고 뒷발가락은 4개다. 분류로 따지면 엄연히 새에 속하는 닭의 발가락, 그러니까 닭발이 4개인 이유다. 새들은 앞발가락의 가운데 발가락을 길게 늘여 날개를 만들었고, 말은 가운데 발가락을 길게 늘인 후 다른 발가락은 다 없애 버렸다.
신체 부속기관의 진화 과정을 보면 효과적인 삶의 원형이 있는 듯한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처음에는 새로운 시도여서 그런지 많이 만든다. 그런 다음 익숙해지면 수를 줄이면서 전문화하는 방향으로 간다. 남아도는 기관들은 새로운 용도로 활용된다. 처음에는 같은 모양이었던 이빨이 각각 다른 기능을 가진 이빨로 진화한 것처럼 말이다.
우리의 손 역시 이런 과정에서 얻은 것인데, 걷게 되면서 남아돌게 된 앞발을 십분 활용해 문명을 만들었다. 이런 큰일을 해낸 손이 인공지능(AI)을 탑재한 로봇의 등장으로 그동안 해온 일을 잃을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고 있다. 생명체는 남아도는 기관을 새로운 용도로 전환하는 용도 변경을 통해 진화해 왔다. 그런데 손의 기능을 진화시킨 로봇들이 인간을 대체하는 날이 오면 인간의 손은 어떤 진화를 하게 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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