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제품을 가장 싸게”… ‘오프라인 공룡’이 아마존을 넘는 방식[이준만의 세상을 바꾼 기업가들]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4월 7일 23시 06분


월마트 창업자, 샘 월턴

이준만 서울대 경영대 교수
이준만 서울대 경영대 교수
《2025년 기준 쿠팡은 연 매출 약 49조1000억 원을 올리며 사상 최대치를 경신한 반면, 전통의 강자 이마트는 약 28조9000억 원, 롯데쇼핑은 약 13조7000억 원 수준에 머물렀다. 더 놀라운 것은 시장이 평가하는 기업의 가치다. 쿠팡의 시가총액이 50조 원에서 60조 원 사이를 오가는 동안, 이마트와 롯데쇼핑의 시가총액은 각각 2조 원대 초반에 불과할 만큼 체급 차이가 벌어졌다. 투자자들이 오프라인 거점의 가치보다 쿠팡의 압도적인 온라인 물류망에 20배 이상의 가치를 부여하면서, ‘오프라인 시대’의 완전한 종언 아니냐는 질문도 나온다.》

하지만 시선을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으로 돌리면 반전이 펼쳐진다. ‘온라인의 제왕’ 아마존이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 같았던 시장에서, 60년 역사의 ‘오프라인 공룡’ 월마트가 오히려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5 회계연도 기준 월마트의 매출은 무려 6810억 달러(약 1026조 원)에 달한다. 이로써 월마트는 세계 1위 유통 기업의 자리를 공고히 지켰다. 2025년 한 해 동안 주가가 25% 이상 급등했고, 시가총액은 약 1000조 원을 돌파했다. 유통 테크기업으로 재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이 생존의 비밀을 풀기 위해서는 월마트 물류 시스템의 이면과 그 시스템을 설계한 창업자 샘 월턴의 철학을 들여다봐야 한다.

기술과 물류의 결합 ‘상시 최저가’

1918년 미국 오클라호마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월턴은 대공황의 파고를 견디며 비즈니스의 실체를 깨달았다. 어린 시절 우유 배달과 신문 배달로 생계를 돕던 그는 부를 일구는 동력이 단 한 푼의 비용이라도 깎아내는 지독한 운영의 효율에서 나온다고 믿었다. 미주리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며 학문적 기틀을 닦은 그는 졸업 후 곧바로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첫 직장이었던 소매 체인 J C 페니에서의 경험은 그에게 매장 운영의 기초를 가르쳐줬고, 이후 벤 프랭클린 잡화점 프랜차이즈를 직접 운영하며 실전 감각을 익혔다.

1962년 아칸소주의 작은 도시 로저스에서 첫 월마트 매장을 열었을 때, 월턴은 유통업계의 상식을 거스르는 도박을 감행했다. 당시 대형 유통기업들은 구매력이 검증된 대도시의 노른자위 땅을 선점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임차료를 지불하며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월턴은 시골 오지를 파고들었다. 그는 화려한 간판과 값비싼 입지 대신, 임차료와 지대 비용을 구조적으로 낮추는 길을 택했다. 남들이 화려한 매장에서 고객을 기다릴 때, 그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는 철저한 저비용 구조를 설계했다.

유통의 역사에서 수많은 기업이 고객의 접근성을 최우선으로 삼거나 감각적인 큐레이션, 혹은 화려한 쇼핑 경험을 전략으로 내세울 때, 월턴은 전혀 다른 생각을 했다. 그는 유통의 본질이 결국 ‘괜찮은 품질의 제품을 가장 싸게 파는 것’에 있다고 봤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중간 유통 단계를 혁명적으로 축소하고 대규모 물량을 직거래로 매입해 단가를 낮췄다. 또 재고 회전율을 극한까지 끌어올려 자본의 유휴 시간을 없애는 ‘비용 구조의 재설계’에 모든 초점을 맞췄다.

월마트 매장에 들어서면 이러한 설계의 흔적을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다. 화려한 조명 아래 친절하게 물건을 설명해주는 직원은 좀처럼 보기 힘들다. 그 대신 고객들은 박스째 쌓여 있는 진열대 사이를 직접 누비며 필요한 물건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계산대 역시 대부분 셀프 서비스로 운영된다. 이 투박함의 이면에는 철저한 계산이 깔려 있다. 매장 내 응대 인력을 최소화해 노동비용을 줄이고, 상품을 박스 단위로 진열함으로써 하역과 정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물류비용을 줄인 것이다.

이 운영 효율의 산물이 바로 월마트의 상징인 ‘Everyday Low Price’(상시 최저가)이다. 그는 왜 상품이 비싼지 끊임없이 질문하며 기술과 물류를 결합해 낮은 가격이 도출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매장은 더 이상 ‘가게’가 아니다

1992년 월턴의 사망 후 여러 전문 경영인을 거쳐 현재는 존 퍼너 월마트 US 최고경영자(CEO) 등이 월마트를 운영하고 있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르고 경영진은 바뀌었지만, 상시 최저가(EDLP)를 향한 월마트의 집념은 여전히 경영 철학의 근간이다. 월마트가 한국의 오프라인 강자들과 달리 아마존의 파상 공세 속에서도 눈부신 성장을 구가하는 비결은 바로 이 지독한 비용 효율성에 있다.

특히 매출의 핵심인 식료품 분야에서 그 격차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신선도가 생명인 식료품은 온라인 기업에 막대한 콜드체인 비용을 요구하는 영역이다. 월마트는 이 지점을 파고들어 식료품 분야의 압도적 우위를 점하는 동시에, 매장을 방문한 고객들이 자연스럽게 다른 품목까지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모델을 정교화했다.

또한 미국 인구의 90%가 월마트 매장 10마일(약 16km) 이내에 거주한다는 점은 현대 물류 전쟁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됐다. 월마트는 온라인 주문 시 거대 센터에서 물건을 보내는 대신, 고객과 가장 가까운 매장에서 즉시 상품을 전달하는 ‘분산형 물류 시스템’을 구축했다. 매장이 곧 창고가 된 이 혁신 덕분에 월마트는 온라인 서비스에서도 압도적인 비용 효율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 결과 2025년 이커머스 매출이 20% 가까이 성장하며 아마존의 영역을 무섭게 잠식하고 있다.

미국 유통전쟁의 본질은 ‘온라인 vs 오프라인’의 단순한 대결이 아니다. 아마존으로 대표되는 ‘집중형 물류’와 월마트로 대표되는 ‘분산형 물류’ 사이의 고도의 설계 싸움이다.

기술은 변해도 본질은 유지된다

한국에도 대규모 오프라인 유통 공룡들이 존재하지만, 이들은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위용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필자가 주변에 “요즘 왜 오프라인 마트에 가느냐”고 물어보면 대개 “물건이 많아서” 혹은 “집에서 가까워서”라고 답한다. 이것이 유일한 경쟁력이라면 한국 오프라인 마트의 미래는 어둡다. 상품의 가짓수는 온라인 리테일러가 압도적으로 많고, 현관 앞까지 가져다주는 배송 서비스는 집 근처 매장을 방문하는 수고보다 훨씬 높은 편의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인구밀도가 높고 배송 인프라가 초밀집된 한국의 환경이 온라인 유통에 유리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필자는 한국의 오프라인 유통사들 역시 본질에 다시 집중한다면 새로운 경쟁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 실마리는 한국 시장에서 독보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 다이소와 코스트코에서 찾을 수 있다.

다이소는 ‘균일가’라는 가격 정책을 유지하기 위해 극단적인 비용 절감을 실현하고 있다. 코스트코는 ‘유료 회원제’와 ‘저마진 정책’을 통해 고객에게 압도적인 가격 혜택을 돌려준다. 이들은 화려한 쇼핑 경험이나 근접성보다 월턴이 강조했던 ‘좋은 품질의 제품을 가장 싸게 공급한다’는 유통의 원초적 본질에 충실했다. 결국 소비자들은 온라인보다 더 확실한 가성비를 체감할 수 있을 때 기꺼이 오프라인 매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월턴은 생전에 “우리는 비용을 낮춰 고객에게 가치를 돌려주는 대행인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월마트가 드론 배송을 시험하고 자율주행 카트를 도입하는 등 현대적 실험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다. 바로 “우리가 가장 싸야 한다”는 설계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다. ‘가장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공급하는 구조가 승리한다’는 월턴의 규칙은 여전히 유효하다. 승부의 본질은 결국 누가 더 효율적인 시스템을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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